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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로운 그림책을 선보이는 ‘재미마주’ 대표 이호백

다행히도 우리 아이들은 이런 멋진 기획과 기획자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민화 수록 요청에 응해준 개인 소장자들의 도움 덕분으로 민화집을 그림책 형식으로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저라도 넙죽 이호백 선생님께 절을 올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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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화풍으로 늘 새로운 그림책을 선보이는 ‘재미마주’의 대표 이호백 선생님 
 
I.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아주 가끔이지만, 가만히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을 쳐다보고 있으면 한없이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안 보는 사이에는 무엇을 할까?’ 이런 궁금증을 가진 채 어항 속을 뱅뱅 도는 조그마한 물고기를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가끔은 먹이를 어항에 넣어주면서 “많이 먹어라, 귀여운 친구들아”, “얘, 넌 너무 많이 먹잖아. 친구들은 홀쭉한데, 너만 뚱뚱이 배가 되었잖아”라며 나름대로 말을 건네기도 합니다. 또 ‘어쩌다 저 녀석만 뚱뚱해졌을까?’ 추리하며 어항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어항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뚱뚱이 물고기가, 다른 날씬이 물고기 친구들이 먹이 근처에 얼씬대지도 못하게 자신의 꼬리지느러미로 약한 상대를 툭툭 치거나, 입을 삐쭉거리며 먹이를 향해 다가오는 약한 친구 물고기를 위협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럴 때는 너무나도 괘씸하단 생각이 들어 뚱뚱이 물고기를 다른 그릇으로 옮겨 잠시 격리한답니다.


‘우리 집 고양이는 만화 속 주인공 고양이처럼 물고기를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갑작스레 궁금해집니다. 혹시 내가 학교에 간 사이 고양이 녀석이 날렵하게 앞발을 어항에 넣어 물고기를 괴롭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게 살금살금 다가와서 야옹거리며 애교를 부리지만, 내가 없던 사이 어떤 짓을 했을지 너무 감쪽같기만 합니다. 좀 더 생각을 비약하자면, 혹시라도 내가 학교 간 사이에 내 멍멍이가 내 일기장을 훔쳐보면서 키득거린다거나, 내 돼지저금통의 찢어진 구멍에 눈을 대고 그 틈 사이로 얼마나 동전이 쌓여 가는지 확인하지는 않을까요? 그리고 얼마 없음을 확인하고 이렇게 혼잣말을 하겠죠. ‘도무지 저축이란 걸 몰라. 이러니 내가 좀 꺼내서 내 몫으로 숨겨둘 것도 없지.’



내게 한없이 애굣덩어리인 애완동물이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무엇을 하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으세요?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에서는 식구들이 집을 비운 밤에 하얀 토끼가 베란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아이들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옷을 입어보며 유쾌하고 감쪽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식구들이 돌아오기 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살며시 베란다 문을 열고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죠. 정말이지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나의 멍멍이, 야옹이, 토실이가 혹시라도 나 대신 내 방의 주인 노릇을 하는 건 아닐까요? 이런 다분히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이 그림책은 시작된답니다.

토끼 똥 찾기



이 책에는 그림마다 잉크 얼룩처럼 보이는 토끼 똥이 숨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똥은 어른보다는 어린이에게 잘 보인답니다. 어린이는 누구나 토끼와 같은 소망을 품고 자신에게 금지된 부모님의 세계를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토끼와 같이 아이들도 집안에 혼자 남게 되면, 부모님의 옷장을 뒤져 엄마, 아빠의 옷을 입어보고, 엄마의 화장품으로 치장을 하죠. 남자아이는 아빠처럼 수염을 다듬고 싶어 면도용 거품을 턱에 바르고 향기 좋은 아빠의 스킨로션을 바르면서 자신에게 금기된 세상을 경험하는 거겠죠. 그렇기 때문인지, 이 책의 그림에 숨은 작은 얼룩 같은 토끼의 흔적을 아이가 바라볼 때는 전혀 숨은 대상이 아니란 것이지요. 그것은 마치 아이가 동경하는 어른의 세상을 엄마, 아빠 몰래 흉내 내곤 하는 자신이 흘린, 즉 어른의 눈에 띄지 않는 성장의 흔적 같은 것이?고나 할까요? 제 말이 별로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되시면 아이와 함께 누가 먼저 그림에서 토끼 똥을 찾는지 겨뤄보세요. 꿈을 꾸는 아이의 눈에는, 꿈을 잃고 현실에 급급한 어른의 눈으로 쉽사리 찾을 수 없는 보석이 그만큼 많이 보인다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예요. 음, 꿈을 잃고 세상을 배워버린 어른에게도 이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글만 읽는다면 그림책은 존재 이유가 없답니다. 그림 속에 숨은 여러 가지 장치도 함께 읽는 그림 읽기를 먼저 시작해보세요.

뉴욕타임스 2003년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

2003년, 매해 미국 뉴욕타임스가 선정하는 10권의 어린이 그림책에 이 책이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2002년 류재수 님의 『노란 우산』에 이어 국내작품으로는 두 번째이자 연이은 쾌거로서 우리 그림책이 이제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장도 이룩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이 책은 또한 2003년 3월 미국의 ‘케인밀러출판사’에서 『While We Were Out』이란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으며, 일본의 헤본샤에서 일본어판으로, 프랑스의 ‘파스텔 출판사’에서 불어로 출간되었습니다.



II. 토끼의 빈집 체험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낸 이호백 선생님



이호백 선생님은 서울대 응용미술과와 고려대 대학원 신문방송과를 졸업하고 파리 제2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우연히 토미 웅게러의 그림책을 본 충격으로 그림책에 사로잡혀, 93년 귀국한 이호백 선생님은 삼성출판사, 길벗어린이 등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에서 기획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95년에, 이호백 선생님은 ‘재미마주’라는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를 세우고, 지금까지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림책 한 권 한 권 모두가 가장 자연스러운 그림책, 가장 감동적이고 예술적인 그림책이 되도록 하고자 수백 장의 그림을 놓고 지칠 때까지 씨름한다는 사실은 장인정신의 철두철미함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더불어 ‘감동을 주는 그림책, 예술적인 그림책’에 대한 선생님의 신념이 녹아든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는 2001년 스위스 바젤에서 있었던 ‘국제 어린이 도서협의회(IBBY)’에서 지난 50년간 만들어진 가장 우수한 어린이 책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한편 그림책 작가와 출판인의 길을 동시에 걷는 이호백 선생님은 그림책의 소재를 대부분 일상에서 직접 끌어낸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낯설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야말로 설득력 있고 교육적 효과도 크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우리가 눈여겨보고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선생님이 세운 ‘재미마주’ 출판사의 좌우명인 작가주의 정신입니다. 한 해 평균 100여 권의 책을 내는 아동출판사와 달리, 선생님이 세운 ‘재미마주’는 지금까지 한 해 평균 3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그런데도 개개의 그림책은 진열대에 전시되었다가 반짝하고 사라지고 마는 작품이 아닌, 장기간에 걸쳐 독자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 마침 <북리뷰>와의 인터뷰 기사 내용이 있어 이곳에 인용해 봅니다.

“일 년에 3권을 낸다고 하니까 무척 한가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말 바빠요. 책 한 권을 내려면 작가나 출판사가 한숨 돌리면서 고치는 여유가 필요해요. 하나하나 됨됨이를 고쳐 가다보면 시간이 후딱 가버리죠. 그렇게 천천히 고쳐가는 것이 책의 완성도를 높여줍니다.”

책 한 권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과정에서 노력을 쏟는지 배울 수 있는 이호백 작가 겸 대표의 말씀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어떤지 함께 새겨볼까요?

“그간 한국 아동도서 출판은 어린이 책을 사업 수단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작가는 자신의 언어를 자신의 자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있는 출판사에 자신의 언어를 팔았을 뿐이지요. 그러나 이제는 작가 자신이 제작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언어를 상품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 갈래에서 이 말씀을 새겨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놓겠습니다. 다만 많은 삽화가와 그림책 작가 지망생, 간혹 이야기하게 되는 제 입장에서는 그들이 작가 고유의 색을 내지도 못한 채 출판사의 입장에 따라 평범하게 묻혀버리는 그림을 그릴 때 한숨짓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는 점. 그래서 꼭 여기서 이 말씀을 인용해 보고 싶었다는 점을 밝힙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절판된 그림책이라 도무지 구할 수 없어 출판사에 직접 전화를 걸었지요. 그런데 그 책을 출판했던 그곳에도 여유분이 없었던 거예요. 글쎄요, 사실 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인데요, 이호백 선생님도 YES24의 ‘어린이 독서 도우미 클럽’의 어머님들과 만났을 때 이 점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현하셨더군요. 그리고 작품성이 좋고 나쁜 것을 떠나 상품성을 따져 보관하는 현상을 개선하고자 선생님은 직접 ‘어린이책 예술센터’를 건립했지요.

그림책 작가이면서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호백 선생님을 소개하면서, 제 글이 많이 길어졌는데요, 끝으로 선생님의 책을 정리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
『꼬마책, 동물의 세계』『담이네 식구』『쌀 한 톨로 장가든 총각』『쥐돌이는 화가』『도시로 간 꼬마 하마』『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토끼 탈출』

* 글을 쓴 책
『뽀끼뽀기 숲의 도깨비』『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우리 집 고양이 봄이』

* 기획한 책
『우리문화발견』 시리즈, 『내가 처음 가 본 그림박물관』 시리즈

III. ‘빨빨이’ 토끼의 딸 ‘예뻐’의 겁 없는 탈출기



이호백 선생님은 집에서 키우던 토끼를 수컷으로 알았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난 후 토끼의 배가 두둑해지더니 새끼를 낳았다고 합니다. 암컷이었던 거죠. 그런데 한동안 어미 토끼가 새끼를 외면하는 바람에 선생님 가족은 동물병원에서 토끼 우유를 구해야만 했습니다. 수의사도 토끼 우유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난감해 이 책 저 책을 보고 개가 먹는 우유로 토끼가 먹기에 적당한 우유를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끼를 낳은 어미 토끼가 그만 죽었고, 이 새끼 토끼는 자꾸 토끼장을 탈출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토끼가 탈출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자꾸만 탈출하려고 하는 토끼 덕분에 『토끼 탈출』이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앞서 소개해드린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에도 토끼가 나오지요. 그 토끼의 이름은 ‘빨빨이’인데 바로 『토끼 탈출』의 주인공 ‘예뻐’의 엄마예요. 음, 그렇다면 두 그림책을 통해 토끼 모녀의 일상 이야기가 재미나게 펼쳐진 셈이죠? 얼마 전에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 교실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함께 이호백 선생님 그림책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중에는 삽화를 공부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가 대뜸 책마다 화풍이 다르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림에 까막눈인 우리는 정말인가 싶어 눈을 비비며 그림책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죠. 정말 그렇더군요. 한 권 한 권 소재에 맞게 그림풍이 어찌나 다르던지…. 그러나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토끼 탈출』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인 만큼 꽤 유사한 화풍이었어요. 그렇지만, 이야기의 얼개까지 얼추 비슷하기는 해도, 전자가 판타지 풍에 가깝다고 한다면, 후자는 그런 느낌이 덜하지요.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았어요. 그랬더니 답이 조금 보이더군요. 바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화자가 『토끼 탈출』에서는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 엄마와 아이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토끼 탈출』은 실제로 선생님 가족이 키운 새끼 토끼의 경험담이 판타지 풍의 그림에 슬그머니 섞여들면서도 아이들이 공감할 만한 아이들의 상상을 멋지게 보여줍니다. 토끼가 토끼장에서 자꾸만 나오려는 것은 엄연한 실재지만, 토끼가 세면대에서 비누를 갖고 놀고 토끼장 안에서 아이들의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어린이가 상상할 만한 상상 속 장면이죠. 이처럼 이야기는 왼쪽 면의 엄마와 아이의 현실 속 대화와 오른쪽 면의 아이의 상상 그림으로,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면서 거의 마지막에 가서는 토끼가 집 밖으로 탈출하여 아이의 손을 잡고 학원에 가는 모습으로 연결됩니다. 신이 난 토끼가 빨간 가방을 메고 ‘토끼전문’ 학원에서 수학시험을 보았지만, 이런! 겨우 50점을 받았어요. 이때 왼쪽 페이지로 시선을 돌려 아이와 엄마의 대화를 보며 엄마가 아이의 상상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어요. 함께 보실까요?

“정말 큰일이야, 큰일. 토끼가 수학을 50점밖에 못 받았잖니, 특별히 과외를 시키는 수밖에 없겠어.” 음, 이 정도 되면 이 책을 읽던 아이는 키득거리며 신날 거예요. 평소 나쁜 성적을 걱정하는 엄마가 하는 이야기니까요. 다만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토끼라는 점만으로도 아이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으로 일상을 환기하게 되지요.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책의 매력이 충분히 발휘되는 것 같아요.

IV. 한국의 매튜, ‘쥐돌이’도 화가


미국의 그림책 작가 레오 리오니(Leo Lionni)의 작품 중에는 『Matthew's Dream』이 있습니다. 매튜란 이름의 가난한 새끼 쥐가 하루는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되지요. 그날 이후로 매튜는 언젠가는 화가가 되리라 마음을 먹고 결국 그 꿈을 이룬다는 내용을 담은 그림책이지요. 『Matthew's Dream』이 매튜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꿈속에서 다양한 그림이 걸려있는 미술관의 회랑을 걸으며 소명을 깨닫게 되고, 결국 화가의 꿈을 이룬다는 성장을 다루는 것과 달리, 이호백 님의 그림책 『쥐돌이는 화가』는 어린이들의 미래 소망을 더 현실감 있게 밀착해서 포착합니다. 얼핏 보기에 두 작품이 소재 탓에 유사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향과 디테일은 상당히 다릅니다. 어쨌거나 이호백 선생님 덕분으로 우리 그림책에도 화가가 꿈인 생쥐 캐릭터 ‘쥐돌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두 작품이 어떻게 다르게 미래의 꿈을 펼쳐보이는지 자세히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 일은 차차 나중에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호백 님의 쥐돌이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주인공 쥐돌이가 엄마 손을 잡고 미술관에 가서 어마어마하게 큰 그림도 보고, 눈이 뱅글뱅글 돌 것만 같은 추상화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앞부분에 있습니다. 주로 칸딘스키의 그림이나 클레의 그림과 같이 추상화를 감상하는 쥐돌이를 보여주는 작가 이호백 선생님은 이런 작품들이 쥐돌이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쥐돌이가 작품을 통해 ‘붕어 왕자’ 이야기를 하게 하였습니다. 사실 ‘붕어 왕자’는 이호백 선생님이 만든 우화입니다만, 그 자체만으로도 간단한 스토리를 갖춘 우화며 무척 재미있습니다. 쥐돌이는 그날 미술관에서 자신의 미래를 결심하게 되지요. 스탕달 신드롬까지는 아니겠지만, 쥐돌이가 확실히 충격을 받았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군요.

그날 이후 쥐돌이는 어떻게 해야 화가가 될 수 있는지 궁금했지요. 그래서 극장 간판을 그리는 곰 아저씨를 찾아가 화가가 되는 방법을 물어봅니다. (그런데요, 곰 아저씨가 그리는 간판의 영화 제목은 ‘간담서늘’이지요.) 아저씨의 대답에서 힌트를 얻은 쥐돌이는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우선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고 나서 마음속 그림을 스케치북에 옮겨 그리기 시작했지요. 저녁 무렵 쥐돌이는 다 그린 그림을 엄마와 아빠에게 보여드리며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엄마의 즉각적인 칭찬과는 달리, 퇴근해서 돌아온 아빠는 ‘이게 뭐냐?’ 하고 물끄러미 그림만 쳐다보며 쥐돌이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쥐돌이는 흥에 들떠 신나게 자신의 그림 이야기를 합니다. 그림 설명을 듣고야 그림을 이해한 아버지는 ‘우와, 정말 굉장한 그림인데!’ 하며 놀라는 척하지요. 부모님의 칭찬에 용기를 얻은 쥐돌이는 다음날 유치원 선생님께도 그 그림을 보여주고, 간판 그림을 그리는 곰 아저씨에게도 보여주지요. 점점 자신의 그림에 자신감을 얻은 쥐돌이는 더욱 창작활동에 매진하게 되지요. 쥐돌이의 부모님 또한 그런 쥐돌이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움이 되어 줍니다. 엄마는 쥐돌이의 그림을 냉장고에 붙이고, 아빠는 낡은 액자를 벽에서 떼어내고 쥐돌이의 새 그림을 벽에 달아놓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쥐돌이의 그림이 걸린 쥐돌이의 집은 이제 꼭 미술관 같은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쥐돌이지만, 쥐돌이는 벌써 화가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지요.



이야기는 위와 같습니다만, 우리가 여기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아이의 꿈을 어떻게 부모가 이해하고 협조해 아이만의 선택을 강화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강압적으로 ‘무엇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요하며 부모 자신이 이루지 못한 욕망을 아이로 하여금 대체실현하고자 하는 못난 어른이 많습니다. 어떤 직업이 현실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데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어떤 직업이 더 명예롭다는 이유로 아이의 재능과 욕구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판단 없이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것이지요. 사실 아무 힘도 없이 부모의 선택과 강제 앞에 무력한 아이들은 억지로 부모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 희생됩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쥐돌이의 부모님과 어른은 참으로 현명해요. 쥐돌이가 스스로 자신의 꿈을 발견할 기회를 주고 발견한 꿈을 실현할 방법을 제시해주고 아이의 재능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해주는 모습이야말로 우리 어른들에게 반성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라 판단하게 됩니다. 어린이 책이란 참 묘해요. 어린이가 독자이면서도 그 책을 선정하는 구매 주체는 어른이지요. 그래서 어린이 책은 어른들의 손을 거쳐 선별됩니다. 그리고 이 그림책과 같이 유치원 아이를 주독자로 선정하고 만들어진 책은 대체로 책을 읽을 때 어른과 아이가 동시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때 아이가 그림을 통해, 또 어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잘 살펴보세요. 그리고 작가가 어린이 말고 어른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없는지, 반성하는 자세로 책을 접해보세요.

V. 21세기에는 우리 아이들도 민화를 보고 자라요


『민화그림책』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나온 『무얼 타고 어디 가요?』의 띠지를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21세기의 어린이들은 민화를 감상하면서 큽니다. 조상들이 즐겨 그리고 보던 민화 속에는 우리만의 소박하고 감칠맛 나는 이야기와 정서가 듬뿍 담겨 있답니다.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가 들려주는 구수한 옛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이제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우리의 민화. 부모와 아이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민화 그림책 시리즈로 그 특별하고 아름다운 재미에 폭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인용한 말로도 이호백 님이 『민화그림책』 시리즈를 기획한 목적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민화에는 미지의 아름다운 공간과 이상 세계가 그려져 일반 서민의 꿈이 반드시 세속적인 것만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즉 옛 서민의 판타지의 세계, 염원이 형상화된 세계를 엿볼 수 있지요. 따라서 이제라도 우리의 옛 그림 민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 할 수 있지요. 게다가 그림책이란 장르에서 민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거대한 프로젝트라 생각하게 되지만, 저는 많은 그림책을 사서 모으며 감상하면서, 그림책의 본령은 역시 글보다는 그림에 있음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서양 그림 감상에만 익숙한 우리가 비로소 우리 선조의 그림에 눈을 돌리고 그 즐거움을 아이와 함께 나눌 수 있다니, 참 멋진 일 아닌가요?



이 책에는 <화조도> <도석화> <신선도> <백접도> <요지연도> <어락도> <고사인물도> 등등의 14점의 민화가 수록되어 있어요. 그중에는 가회박물관이 소장한 그림도 있고 개인이 소장한 그림도 있으니, 우리로서는 특별한 전시회가 아니고서는 육안으로 접하기도 어려운 그림인 거죠. 그런 멋들어진 민화가 어떻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개되는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우선 책장을 넘기고 첫 번째 소개된 민화 <화조도>를 보면 동자가 피리를 불며 소 등에 타고 모란꽃이 핀 나무 아래로 지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익숙한 것이 쉽게 느껴지고 시선을 오래 잡아끌지요. 그렇다면 <화조도>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쉽게 집중할 수 있는 그림이 아니라고 가정할 때, 어떻게 해야 두 세대의 시선을 오래 묶어둘 수 있을까요? 그 대안으로 이호백 선생님은 아이가 탄 소의 모습이 어떤 것일지, 왼쪽의 지면 아래 공간에 3가지의 소를 그려두고 아이가 민화 속 소를 찾도록 유도합니다. 자세히 살펴봐야지만 맞는 소를 찾아낼 수 있으니, <화조도>를 보는 어른도 아이도 유심히 그림을 들여다보게 되겠지요.



아래쪽의 민화는 <풍속화 - 경직도> 10폭 병풍의 부분입니다. 풍속화의 경직도는 농사짓고 베 짜는 모습을 그린 농촌생활도로 서민의 풍습, 세태 등 여러 생활상과 자연의 정경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 많습니다. 바쁘게 김을 매는 장면 한편으로 나그네가 한가하게 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표현한 농촌의 봄 풍경 그림(왼쪽)과 마을 사람들이 벼를 베고 타작을 하며, 지게 진 농부가 벼 베는 사람들에게 농담도 하며 수확한 벼를 소 등에 실어놓는 등의 가을걷이가 한창인 오른쪽의 그림을 통해 이번에는 두 그림에서 ‘다리를 건너는 나그네’, ‘지게 놓고 쉬는 농부’, ‘소 타고 가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마치 숨은그림찾기 식으로 꼼꼼하게 그림을 쳐다봐야만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쉽게 찾을 수 없더군요. 그만큼 집중력이 약해서인 것 같은데요. 여러분도 한 번 찾아보세요.



음… 이 시리즈를 보며 그림책에서 다룰 수 있는 소재의 무궁무진함에 많이 놀라고 충격까지 받게 되었는데요, 우리의 민화를 발굴하여 아이들에게 소개한다는 점은 정말 반갑고 고마운 일입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저 자신도 우리 것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우리 문화를 의도적으로라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요. 지난 5월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에 갔을 때도, 사실 국보급 문화재 감상을 하면서도 왜 중요한지, 어떤 미학적 덕목을 눈여겨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리 것에 대해 무관심했어요. 그래서 지난 늦여름부터는 아예 각오를 하고 ‘리움’의 고미술관에 가서 노트정리를 하면서 일부만 공부하고 왔지요. 한꺼번에 많이 알려고 하기보다는 조금씩이라도 정리하고 검색해가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뒤늦은 각오를 실천하고 있는데, 하긴 이제 겨우 두 번 갔어요. 다행히도 우리 아이들은 이런 멋진 기획과 기획자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민화 수록 요청에 응해준 개인 소장자들의 도움 덕분으로 민화집을 그림책 형식으로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저라도 넙죽 이호백 선생님께 절을 올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번에는 이호백 선생님의 몇몇 작품을 함께 살펴보면서 몇 가지 논제를 다뤄봤는데요, 『모기보시』『뽀기뽀기 숲의 도깨비』를 다루지 못해 참 아쉬워요. 둘 다 제가 요즈음 관심을 둔 소재를 다룬 것이지요. 전자에는 사천왕이, 후자에는 도깨비가 등장하거든요. 여건이 허락된다면 내년에는 우리나라 사찰을 돌면서 사천왕을 공부할까 했어요. 참, 도깨비를 공부하고 싶은 분에게는 『도깨비를 둘러싼 민간신앙과 설화』(김종대 지음, 인디북)를 추천합니다. 제가 조금 읽어 보았는데요, 우리나라 도깨비만의 특징을 지역별 설화와 함께 보여주는 좋은 책이지요. 그럼 연말인데 분주하기보다는 차분한 시간 보내시기를 바라면서, 이만 그림책 읽는 마녀는 사라집니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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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딥마인드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저자의 신작.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절망과 공허함에 빠진 이들에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말인 '딥마인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행복과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자신만의 딥마인드 스위치를 켜는 방법을 진솔하게 담았다.

화가들이 전하고 싶었던 사랑 이야기

이창용 도슨트와 함께 엿보는 명화 속 사랑의 이야기. 이중섭, 클림트, 에곤 실레, 뭉크, 프리다 칼로 등 강렬한 사랑의 기억을 남긴 화가 7인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남긴 감정을 살펴본다. 화가의 생애와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해석은 작품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필사 열풍은 계속된다

2024년은 필사하는 해였다. 전작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에 이어 글쓰기 대가가 남긴 주옥같은 글을 실었다. 이번 편은 특히 표현력, 어휘력에 집중했다. 부록으로 문장에 품격을 더할 어휘 330을 실었으며, 사철제본으로 필사의 편리함을 더했다.

슈뻘맨과 함께 국어 완전 정복!

유쾌 발랄 슈뻘맨과 함께 국어 능력 레벨 업! 좌충우돌 웃음 가득한 일상 에피소드 속에 숨어 있는 어휘, 맞춤법, 사자성어, 속담 등을 찾으며 국어 지식을 배우는 학습 만화입니다. 숨은 국어 상식을 찾아 보는 정보 페이지와 국어 능력 시험을 통해 초등 국어를 재미있게 정복해보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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