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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면 다 통한다'는 얘길 왜 하면 안되나요?

아는 누군가가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길 만한 영화를 하나 골라달라기에 <미녀는 괴로워>를 추천해 줬죠. 얼마 전에 보고 왔다고 해서 어땠느냐고 물어봤더니 그쪽에서 하는 소리, “재미있긴 했는데, 결국 예쁘면 다 통한다는 얘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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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누군가가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길 만한 영화를 하나 골라달라기에 <미녀는 괴로워>를 추천해 줬죠. 얼마 전에 보고 왔다고 해서 어땠느냐고 물어봤더니 그쪽에서 하는 소리, “재미있긴 했는데, 결국 예쁘면 다 통한다는 얘기잖아.”

이곳저곳에서 참 자주 들은 소리인데… 뭐, 맞는 말이긴 합니다. 그러나 반박하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해봐요. 그런 소리를 해서 안 되는 이유가 있나?

그럴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실제로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보다는 날씬하고 예쁜 사람이 더 편하게 살죠. 물론 개인차는 있습니다. 직업이나 자기 만족도도 영향을 끼치고요. 예를 들어 전 <판의 미로>와 <악마의 등뼈>의 감독인 기예르모 델 토로의 뚱뚱한 체격을 욕하는 사람은 본 적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지요. 그가 21세기의 가장 쿨한 영화감독 중 한 명인 건 그의 미모 때문이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 든 창작력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한나와 같은 가수라면 아무래도 외모에 신경이 쓰이게 마련입니다. 연예계에서 미모는 권력이에요. 차라리 오페라 가수로 전향하라고요? 요샌 오페라 가수도 체중에 신경 쓴답니다. 한나 같은 사람이 무대에 서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예요.

수많은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이 다양한 방법으로 신분 상승을 이룩하거나 권력을 얻습니다. 신데렐라는 요정 대모의 도움을 받았고 에드몽 당테스는 보물섬을 찾았습니다. 피터 파커는 돌연변이 거미에게 물렸고 애니는 대디 워박스를 만났지요. 흥부에게는 금은보화가 꽉 들어찬 박이 있었고 심청에게는 황제 남편이 있었습니다. 한나에겐 외상으로 전신 성형수술을 해 줄 천재 성형외과의사가 있었지요.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죠? 모두 문제가 있는 각자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자기만의 권력을 얻은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한나가 성형수술로 얻은 미모밖에 없는, 텅 빈 사람인 것도 아니었고요.

꼭 한나가 연예계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예쁘면 다 통한다는 거잖아’라는 말은 너무 쉽습니다. 한나 정도의 체격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정상적인 삶이 어렵죠. 몸을 가누기도 어렵고 맘에 드는 옷을 찾기도 어렵고 연애도 힘겨우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따갑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은 타협을 해요. 종종 아주 성공적으로요. 하지만 타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들에게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한나에게 주어졌던 선택의 문이 열렸어도 과연 그런 현실의 타협으로 만족했을까요?

종종 우리는 옳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옳은 ‘정치적 공정성’의 개념을 지나치게 가볍게 쓰면서 오히려 일을 망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네, 외모 지상주의는 좋지 않죠. 우리 모두 사람의 외모에 넘어가지 않고 그들의 내면을 바라본다면 세상은 아름다워지겠죠. 하지만 여러분은 그럴 수 있나요? 여러분은 아름다운 사람의 외모를 소비하지 않으며 하루라도 버틸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한나와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제니와 같은 사람을 보았을 때와 같은 비율로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이 ‘외모 지상주의는 안 돼’라고 생각 없이 말할 때 실제로 그런 선입견과 편견의 희생자가 되는 사람에게 뭐라도 돌아갑니까?

그러고 보니 <여섯 개의 시선>을 보면서 성형수술의 압박에 시달리는 실업고 아이들의 건강한 사랑스러움을 예찬했던 어떤 지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전 그분이 진심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걸 알고 그런 이야기가 그분의 일관된 생각과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때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순 없었더라고요. ‘하지만 ***님은 예쁘시잖아요. 그 아이들의 고민을 어떻게 아세요? 아신다고 해도 그런 말이 그 아이들에게 위로가 될까요?’

전 여러 가지 면에서 <미녀는 괴로워>가 습관적으로 ‘외모지상주의는 나빠!’를 외치는 교과서 문구보다 유익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훨씬 하는 일이 많지요. 왜곡 없이 많은 사람이 몸소 겪는 현실을 보여주고, 적당한 판타지로 관객을 위로할 줄도 알며, 결론을 맺는 데에도 어느 정도 융통성을 보여주죠.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에 대해 훨씬 많이 알고 그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외모지상주의는 나빠! 나빠!’만을 외치는 사람들은 사실 여기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죠. 깊이 생각해 봤다면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알고 처음부터 입 닥치고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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