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계에 여풍이 부는 것일까? 아니면 사극 바람이 부는 것일까? <에비타>와 <황진이>에 이어 <명성황후>도 무대에 올랐다. 사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올해로 11년째 무대에 오르는 데다,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지난 199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만큼 작품성과 관객 만족도는 일정 수준 이상 입증됐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얼마나 치밀해졌는가, 얼마나 세련돼졌는가 하는 것이다.
웅장한 음악과 긴박한 구성 돋보여
뮤지컬 <명성황후>의 가장 큰 매력은 세미 오페라 형식의 웅장한 음악과 지루할 새 없이 긴박하게 진행되는 치밀한 구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명성황후 역의 이태원과 이상은을 비롯해 고종의 윤영석, 대원군의 이희정 등 대부분의 배우가 성악을 전공했다. 따라서 성량은 물론 음색의 깊이와 느낌이 다른 뮤지컬과는 사뭇 다른데, 궁중의 위엄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한 듯하다. 특히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나서 ‘백성이여 일어나라’라는 곡을 합창하는 마지막 무대에서는 그 효과가 더욱 극대화돼, 아마 관객 대부분이 소름 돋는 감동을 했을 것이다. 물론 스케일 큰 무대에 어울리게 장중한 연주도 시종일관 가슴을 쿵쿵 울린다.
| 고종과 명성황후의 화려한 궁중의상 |
|
전체 줄거리는 명성황후가 왕실에 들어오고 나서 시해되기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스토리는 매우 긴박하게 진행돼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용상 외국무대에서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국내에서야 학교 국사 시간을 통해, 또는 TV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레 축적된 지식이 있어 긴박한 스토리 전개가 오히려 효과를 거두지만, 외국인이 극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마치 우리가 아르헨티나의 시대사인 뮤지컬 <에비타>를 보고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화려한 궁중 의상, 그러나 빈약한 무대
조선시대 왕실을 다룬 작품인 만큼 의상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의상은 물론이고, 대원군과 대신들, 궁녀, 무인들의 의상도 TV 드라마에서 본 것과는 또 다른, 궁중의 기품과 위엄을 표현한다. 또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러시아와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온 사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매우 코믹하기까지 하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독특한 의상에 서양 사신은 키를 1.5배 수준으로 키웠다. 게다가 중국 사신은 경극에서처럼 쟁쟁거리는 고음으로 말한다든가, 프랑스 사신은 콧소리를 넣는 등 코믹함을 더해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중 턴-테이블 구조의 무대도 눈에 띈다. 회전식 무대가 이중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여러 장면에서 유용하게 이용된다. 예를 들어 명성황후를 시해하려고 일본 낭인들이 궐 안에 침입한 장면에서는 명성황후에 앞서 궁녀들이 살해되는데, 쓰러진 궁녀들이 그대로 무대 위에 있지 않고 회전식 무대에 의해 자연스레 퇴장하게 된다. 또 고종이나 명성황후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무대가 사선으로 기울어져 있을 때가 많은데, 사선의 위쪽에 있는 그들이 상대적으로 위엄 있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 무과시험 장면 - 무인들의 의상도 화려하다 |
|
그러나 화려한 의상과 전체적인 스케일에 비해 무대장치는 상당히 빈약하다. 궁궐을 상징하는 설치물은 제쳐놓고, 중전의 방 안 장면은 책상 하나가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조선의 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전통의식이 살아 숨 쉬는가? 그 상징적인 아름다움은 바로 우리의 전통미로 연결되는 것인데 너무 소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감동! 그러나 더욱 큰 감동 기대
뮤지컬 <명성황후>는 규모 면에서나 흥행 면에서 분명 국내 창작뮤지컬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또한 앞서 말했듯 우리의 민족사인 만큼 내재한 사전지식과 ‘모두가 한겨레’라는 ‘민족혼’이 그 어떤 무대장치보다 뛰어난 특수효과로 작용한다. 축구에 관심이 전혀 없으면서도 월드컵 무대에서 뛰는 한국선수들을 보며 뭉클한 뚸음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객석에서 받는 감동 또한 남다르다.
그렇기에 뮤지컬 <명성황후>에 거는 기대는 더욱 크다. 내년 2월 예술의 전당 공연은 물론, 앞으로도 더 길고 넓게 뻗어갈 우리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 명성황후 시해 뒤 합창하는 장면 - 웅장함에 소름이 돋는다 |
|
먼저 무대장치가 스케일에 맞게 풍성해지길 기대해본다. 이 정도 규모의 뮤지컬이라면 무대연출도 관객의 기대수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또한 성악을 기본으로 한 세미 오페라 형식은 좋지만 가사는 제대로 전달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분명 우리의 역사인 만큼 우리의 전통미가 가장 돋보여야 한다. 성악뿐만 아니라 창을 통한 표현도 있을 것이고, 서양악기 일색인 음악도 전통악기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명성황후 시해’ 장면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객석에서 느끼는 감동도, 울분도 극대화될 것이다.
뮤지컬 <명성황후>
2006년 12월 2일 ~ 12월 2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