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퍼진 노골적 인종 차별 인식
말하기 부끄럽지만, 정말 우리에겐 이런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인식이 퍼져 있죠. 유럽계 외국인은 우월한 존재로 취급되고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가 야만인 취급을 받는 건 흔한 풍경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네 번째 작품인 <세 번째 시선>이 곧 개봉합니다. 이 작품이 속한 ‘시선’ 시리즈는 형식과 목표만 따진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 감수성을 살리고자 제작된 공익 영화이지만 현재 활동 중인 비중 있는 영화감독들의 단편을 극장에서 접할 기회라 나름대로 인기가 많죠.
<세 번째 시선>에는 두 편의 인종차별 에피소드가 들어 있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잠수왕 무하마드」는 고향에서 잠수왕으로 대접받던 무하마드가 한국에서 불법 노동자로 일하면서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어요. 네 번째 에피소드인 「험난한 인생」은 중상층 가족들이 끼리끼리 모여 사는 고급 아파트가 무대인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남자애가 영어학원 강사의 딸을 자기 생일 파티에 데리고 오는데, 글쎄, 그 아이가 흑인이었던 거죠. 예쁜 백인 소녀를 기대하고 있던 엄마는 기절초풍하고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그 소녀를 괴롭힙니다. 그나마 소녀에게 동정적인 친구의 개입은 그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고요.
말하기 부끄럽지만, 정말 우리에겐 이런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인식이 퍼져 있죠. 유럽계 외국인은 우월한 존재로 취급되고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가 야만인 취급을 받는 건 흔한 풍경입니다. 그런 차별이 너무나도 속이 보일 정도로 노골적이라 낯 뜨겁기까지 하죠.
그렇다면 「험난한 인생」이 다루는 흑인의 위치는 어떨까요? 글쎄요. 그게 좀 까다롭긴 합니다. 고정관념에 따르면 피부색에 따라 차별의 정도가 심해야 할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 오는 흑인은 대부분 ‘미국인’이죠. 아프리카인이나 유럽인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 불법 노동을 하러 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온 사람이라면 오히려 일반적인 한국인보다 더 코스모폴리탄일 거고요. 그걸 고려해보면 한국 땅에서 흑인은 오히려 동남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보다는 나은 취급을 받을 겁니다. 물론 그게 한국인이 거주하는 미국의 어떤 지역이라면 사정은 또 달라지겠지만요. 다시 말해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직접 몸을 비비며 같이 살지 않는 한, 흑인에 대한 우리의 인종차별적 관념은 비교적 추상적입니다.
그에 비하면 동남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아주 현실적이죠. 전 아직도 가끔 동남아 이주민을 공격하는, 굉장히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인 메일을 가끔 받는데, 이게 자생적인 인종차별의 시작을 암시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나쁜 일만도 아닌 것 같아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그걸 밖으로 끌어내어야 하죠. 인종차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현실적인 상황 안에서 그들의 주장을 토론하고 반박되어야 문제를 고칠 수가 있죠. 하여간 「잠수왕 무하마드」의 일상화된 인종차별적 시선은 그 때문에 무척 사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인종차별이 무서운 건 그게 어떤 악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편견이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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