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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 한 컷이 그대로 작품! , 에릭 바튀

에릭 바튀의 그림책에는 절제된 언어와 풍부한 은유가 가득합니다. 유화의 맛을 잘 살려낸 그의 그림은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한 컷 한 컷이 그대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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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서정 그림책 작가 에릭 바튀

빨간 고양이 마투


프랑스의 그림책 작가 에릭 바튀는 2000년 알퐁스 도데 어린이 문학상(2000 Prix des enfants de Daudet)을 받은 『빨간 고양이 마투』(문학동네어린이)로 우리에게 알려졌습니다. 알퐁스 도데 어린이 문학상은 프랑스의 아카데미 콩쿠르에서 선정하는 상으로, 콩쿠르의 종신회원이자 소설가인 미셸 투르니에가 심사위원으로 있습니다. 그런데 ‘마투’가 프랑스어로 무슨 뜻일까요? 프랑스어를 모르는 저로서는 아무래도 궁금합니다. 빨간 고양이답게 ‘마투’란 이름이라고 했는데, 마투라는 이름 속에는 본디 강렬한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어떤 뜻이 숨어있을 것만 같습니다.


조금은 거만하고 도도해 보이는 빨간 고양이 마투가 화면 가득한 첫 번째 그림을 한참 들여다봅니다. 지그시 눈을 감은 빨간 고양이 마투는 꼬리 끝만 제외하면 온통 빨간색입니다. 바람 부는 대로,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걷는 걸 좋아하는 마투가 하루는 산책 중에 새알을 발견했습니다. 한입에 꿀꺽 먹어버리고 싶었지만, 마투는 알에서 새가 깨어날 때까지 참기로 합니다. 조심스레 새알을 품고 한쪽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새알을 지켜보는 마투가 마냥 귀엽기만 합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마침내 아기 새가 알의 껍데기을 깨고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막 태어난 새를 본 마투는 군침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 키워서 잡아먹기로 한 거죠. 이번에도 마투는 어린 새에게 지극정성을 다합니다. 해바라기씨와 밀알을 먹여주고, 아기 새가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어른 새가 되도록 도와줍니다. 세월은 또 얼마만큼 흘렀겠죠. 또 그만큼 아기 새도 어른 새가 되었을 거고요. 그런데 이 일을 어쩌죠? 마투의 인내와 정성에도, 다 커버린 새는 휘리릭 제 갈 길을 찾아 하늘 높이 날아가 버린 걸요.


마투는 상심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고양이는 하늘을 날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새가 마투를 찾아왔습니다. 잡아먹힐지도 모르는데, 당장 배고픔을 참을 줄 아는, 인내심 많고 한편으론 엉큼하기까지 한 빨간 고양이 마투에게 돌아왔단 말입니다. 둘은 한동안 마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휴우, 빨간 고양이 마투는 배고픔보다는 이제 친구가 절실했던가 봅니다. 자신이 다른 고양이와는 달리 눈에 도드라지는 빨간 털을 갖고 있음에 도도했던 마투도 외로웠던 것이 분명합니다. 둘은 산책도 하고 장난을 치며 사이좋은 친구가 되어갑니다. 하지만 여름이 오면 새는 마투를 떠나 따듯한 남쪽 나라로 날아가야만 했습니다. 친구가 떠나자 외톨이가 된 마투는 눈밭을 서성입니다. 많은 새 발자국을 보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친구 새의 것이 아닙니다. 마투의 표정이 무척 쓸쓸하고 외로워 보입니다. 마투의 마음은 봄바람이 살살 불 때에도 너무나 외로웠습니다. 친구 새는 남쪽 나라에서 마투를 잊은 것만 같았죠.

그러던 어느 날 귀에 익은 노랫소리에 마투는 눈을 떴습니다. 마투를 잊지 않고 찾아온 새는 어느새 가족을 만들어 이제 아내도 있고 아기 새들과 함께입니다. 마투는 한꺼번에 여러 친구를 얻게 된 셈입니다. 신이 난 마투는 어린 새들을 등에 태우고 봄바람에 수염을 휘날리며 마음 닿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산책을 떠납니다. 온화한 미소를 짓는 마투의 얼굴에서 이제는 도도한 표정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마투의 등 위에서 짹짹거리는 작은 새들도 마냥 편안해 보입니다. 마투의 귀에 앉은 마투가 키운 친구와 그의 부인이 마투의 앞길을 찾아주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듯 보이네요.


헇판 위에 붉은 물감을 풀어 거친 바탕의 마티에르가 고스란히 느껴지도록 하고, 그 앞에 화면 한가득 빨간 마투를 그린 에릭 바튀의 그림은 아주 직설적입니다. 군더더기는 아예 없습니다. 인물(고양이와 새가 전부이지만)의 동작도 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런데도 약간의 선과 점의 변화를 통해 표현한 고양이 마투의 표정에서, 우리는 금세 마투의 감정 변화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도도한 고양이 마투의 오만한 눈빛이 점점 온화하게 변해가는 것을 단순히 선과 점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그나저나 에릭 바튀는 마투와 새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관계 맺음과 관계의 지속을 위한 노력의 필요성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삶의 진실 아닐까요? 친구를 남쪽 나라로 보내고 외로움을 경험하게 된 마투에게 다시 새가 날아왔을 때, 그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봅니다. 이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우정이나 사랑은 상대에게 특별한 것, 자신의 요구에 따라 변하길 강요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지금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말은 쉽지만 얼마나 어렵습니까?

작가 소개


에릭 바튀는 1968년 8월 30일에 프랑스의 클레르 몽페랑 근교에 있는 샤말리에르(Chamalieres)에서 태어났습니다. 클레르 몽페랑에 있는 대학에서 3년 동안 법과 경제를 공부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망으로 학교를 포기하고 그림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1993년부터 3년 동안 리옹에 있는 에밀 콜 대학에서 드로잉과 미술 전반을 공부하면서 색채 감각과 사물의 형상화에 남다른 감각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술 학교를 졸업한 후, 파리에 있는 몇몇 출판사에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고 1997년에 그의 첫 번째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작품을 그림책으로 살려낸 『스갱 아저씨의 염소』를 1996년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에 전시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2002년 볼로냐 국제 도서전에서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29권의 책 작업을 했는데 그중에는 그림책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번에 여기에서 소개하지 못했지만 국내에도 번역된 그의 책으로는 『내 나무 아래에서』, 『색깔 낚시꾼들』, 『마음을 움직이는 모래』, 『눈이 만약 빨간색이라면』 등이 있습니다. 한편, 그의 그림책은 세계적인 관심과 인기 속에, 일본, 대만, 독일, 스위스 등지의 미술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에릭 바튀의 그림책에는 절제된 언어와 풍부한 은유가 가득합니다. 유화의 맛을 잘 살려낸 그의 그림은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한 컷 한 컷이 그대로 작품입니다. 그의 그림은 검정, 빨강, 파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에게 파랑은 차가운 색이며 매우 드라마틱한 이미지이고 빨강은 사랑스러운 색입니다. 기본적으로 그는 색을 겹쳐 쓰지 않으며 부분 부분에 공간을 두고 있습니다. 그림만큼이나 독특한 개성을 띄는 그의 글은, 그림책엔 산문보다는 운문이 더 어울리는 장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제된 언어로 표현된 생명과 자유에 대한 예찬은 삶을 사랑하고 자연을 동경하는 그의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는 작품구상은 밤에 하고 구체적인 스케치는 낮에 한다고 하는데요, 드로잉 역시 수십 번을 반복하면서 어떻게 그려야 할지 결정하는 신중한 성격이라고 합니다. 에릭 바튀와 오랫동안 함께 작업을 한 프랑스 보헴프레스의 편집장은 작가와의 시간에 그를 소개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아주 수줍어했어요. 몸도 가냘프고 목소리도 작았고요. 의외였어요. 저는 그림만 보고 크고 우람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처음 그의 작품을 봤을 때 도서전에 나간다면 반드시 수상을 하리라 생각했어요. 그는 아직도 부끄러움도 많이 타고 항상 질문에 긴장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언제나 신중하며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합니다.” ([산그림] 홈페이지(www.picturebook-illust.com에서 일부 인용)

에릭 바튀의 그림책은 이야기에 있어서나 화풍에 있어서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소재에 따라 변주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럼 우리나라에 제법 많이 소개되어 이제 서서히 고정팬을 확보하기 시작한 프랑스인 서정 그림책 작가 에릭 바튀의 그림책을 좀 더 감상해 보실까요?

숲의 요정 실베스트르 이야기


"도시는 온통 회색이었어. 나무도 없고, 풀도 없었지.” 나무의 정령이자 숲의 요정인 실베스트르가 도시의 삭막한 회색을 보고 실망하며 한 말입니다. 실베스트르는 ‘숲의’, ‘숲에서 서식하는’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형용사입니다. 씨앗을 심어 금세 나무로 자라게 하는 재주를 지닌 숲의 요정 실베스트르의 일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입니다. 실베스트르가 씨앗만 뿌려도 튼실한 나무가 쑥쑥 자라나 세상을 푸르게 채워줍니다. 어느 날 정원 끝 전나무 꼭대기에 앉아 석양의 아름다운 황혼을 지켜보려 했던 실베스트르는 저 멀리 지평선에서 빌딩과 집으로 가득한 도시를 보았습니다. 자신이 할 일이 있을 거란 마음으로 도시에 온 실베스트르는 깜짝 놀랐습니다. 온통 회색인 도시에는 피뢰침과 안테나만이 잎이 다 떨어진 나무처럼 솟아 있을 뿐이었거든요. 실베스트르는 자기가 할 일을 깨닫고, 밤새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씨앗을 뿌렸습니다. 다음날 도시가 푸른 나무로 가득 차자, 사람들은 감탄하며 실베스트르에게 이제라도 나무를 심고 가꾸겠노라고 약속합니다.


시간이 흘러 가을이 되고 도시도 갈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커다란 광장에 홀로 산책 나온 실베스트르는 또다시 크게 실망했습니다. 나무를 심을 공간은 많았지만, 아주 작은 싹조차도 없었으니까요.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죠. 그날 밤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쌓여 하얗게 변한 도시의 광장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한가운데 키 큰 전나무가 우뚝 자라 있었던 겁니다. 순진한 실베스트르는 반색을 하며 속삭입니다. “사람들이 약속을 지켰잖아.” 실베스트르는 기뻐하며 자신의 정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실베스트르는 정원에 심었던 전나무가 사라진 것을 목격했습니다. 덩그러니 그루터기만 남아 있는 키 큰 전나무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저 멀리 도시에 우뚝 솟은 전나무 꼭대기에서 금빛 별 하나를 발견했으니까요.

『실베스트르』의 우리말 번역은 소설가 함정임 씨가 맡았습니다. 에릭 바튀의 그림책을 늘 곁에 두고 아홉 살 난 아들과 함께 읽는다는 그는 ‘생명의 자연, 생명의 마음이 시처럼 흐르는 책’이라고 이 작품을 소개합니다. 그래서 어른이든 아이든 영혼이 맑아지고 그래서 행복해지는 책이라고 합니다. 에릭 바튀의 서정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문체를 이미지 포착에 뛰어난 소설가가 번역을 해서인지 맛깔스럽습니다. 이 그림책에서도 에뤽 바튀의 그림들은 강렬한 색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있는 자연의 숲은 푸름 그 자체로 가득하지요. 반면 회색의 콘크리트 숲인 인공의 도시는 짙은 무채색이고요. 그림 한 장 한 장이 서로 다른 색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 같습니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의 그림이지만 차갑지만은 않네요. 따듯한 표정의 주인공과 익살스러운 도시인의 모습 속에서 해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에릭 바튀는 과감하게 주변을 생략하고 꼭 보여줘야 할 것만을 간결하면서도 유머로 압축해 보여주는 시적인 묘미를 잘 아는 그림책 작가인 듯싶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숲의 향기가 바람에 묻어오는 것 같고, 눈 쌓인 숲 사이로 하얀 눈가루들이 검은 밤을 배경으로 소복이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네요. 그림부터 시적인 영상미로 아름다운데 글까지 더없이 깔끔하다니…. 넋 놓고 그의 그림책을 보는 동안, 그림책은 산문보다 운문의 미학을 보여줘야 한다는 막연했던 생각을 굳히게 됩니다.

자유를 찾은 아이 미나


긴부리 영감은 새장을 끌고 다니며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다닙니다. 그가 나타나면 세상의 새들은 모두 벌벌 떨며 저만큼 달아나버립니다. 동전 몇 푼을 건네고 사람들은 긴부리 영감의 새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자연 속에 사는 새 소리보다 긴부리 영감이 길들인 새의 노랫소리를 더 재미있어했습니다. 어느 날 긴부리 영감은 미나라는 아주 귀엽고 앙증맞은 아이를 만났어요. 날은 춥고 몹시도 배가 고팠던 미나는 그만 긴부리 영감의 꼬임에 넘어가 새장에 갇혔습니다. 그날 이후 미나는 새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죠. 새와 미나의 공연을 구경한 궁정 대신이 긴부리 영감에게 궁궐로 가서 왕 앞에서 공연하자며 제안을 합니다. 궁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데 긴부리 영감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날 밤 긴부리 영감은 밤새도록 성과 황금 마차를 꿈꾸었고, 궁정 대신은 왕이 자신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미나는 새장 속에 갇혀 마른 빵 한 조각과 물 조금으로 허기를 달래며 울고 있었습니다. 긴부리 영감과 궁정 대신은 공연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지요. 이윽고 왕이 도착하여 새와 미나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긴부리 영감과 궁정 대신의 기대와는 달리, 왕은 정원에서 들리는 새의 노랫소리가 더 좋다며 호통을 쳤습니다. 그 틈을 타 새들은 미나를 등에 태우고 멀리 달아나버렸지요.

궁정에서 쫓겨난 궁정 대신은 이제 사람들 앞에서 긴부리 영감에게 노래를 시킵니다. 그 예전에 긴부리 영감이 새들에게 노래를 시키고 미나에게 춤을 추게 했던 그대로 말입니다. 긴부리 영감은 빵 한 조각과 물을 얻으려고 휘파람을 불고 미나가 췄던 춤을 흉내 냅니다. 그들의 공연을 본 사람들을 코웃음을 쳤지만, 두 사람은 밤이면 밤마다 근심에 싸여 소리없이 걸어다녔지요. 궁정 대신은 긴부리 영감을 끈으로 묶고 끌고 다녔고요. 그러는 동안 미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나는 마음껏 숲속을 거닐며 새들의 노랫소리에 맞춰 마음껏 춤을 추었습니다.


이야기의 반전이 너무나도 재미있습니다. 궁정에 당도한 이후의 일행을 맞이하는 왕이, 안데르센의 『나이팅게일』처럼 반색하며 미나의 춤과 새들의 노래를 신기하게 생각했더라면 그냥 평범한 이야기로 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릭 바튀는 누구나 아는 ‘나이팅게일’의 이야기를 꼬아서 색다르게 접근하여 반전의 유쾌함을 만들어 냈습니다. 누군들 왕이 “이딴 게 뭐가 신기하다고 호들갑이냐?”라며 대뜸 화를 낼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런 왕의 거침없는 태도에 독자들은 속이 다 후련해집니다. 힘없고 불쌍한 미나와 새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고 있던 어린이 독자들이라면 더욱 그 통쾌한 감정이 클 것입니다.

이 그림책은 검정과 흰색, 파랑과 흰색, 빨강과 흰색 등 색의 대조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에릭 바튀의 다른 그림책에서처럼 한결같이 강렬한 색상을 선보이고 있지만, 구도는 여전히 단순하면서도 클로즈업으로 주인공들을 가까이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붓질의 방향이 느껴지는 배경 처리 또한 한결같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에릭 바튀가 이 그림책의 배경 처리에 고심했단 것을 알게 됩니다. 끌개로 긁었을지도 모르고, 빳빳한 붓으로 결을 하나하나 살려내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여백의 공간에도 표정을 주고자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긁어 역동성을 표현한 배경의 대표색은 각기 다른 심리적 느낌이 들게 합니다.

배경색이 분위기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면 이야기의 전개는 여러 각도와 구도에서 잡은 주인공들의 위치와 크기, 상하수평의 관계 속에서도 펼쳐집니다. 새장 문이 열린 동안 하늘로 날아가는 새와 미나의 모습은 사선으로 놓인 세 마리의 새의 위치 속에서 긴박감을 느끼게 합니다. 거래를 하는 궁정 대신과 긴부리 영감의 옆모습이 화면 전면의 좌우를 꽉 채우고 힘없는 존재인 새와 미나가 가운데에 작게 있는 그림에서는 그 거래가 궁정 대신과 긴부리 영감 사이에서 서로 밑질 것이 없음을 상징합니다. 또한, 작게 표현된 새와 미나가 거래 밑천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자기 권리를 행사할 입장이 아님은 가운데 놓여있지만 작게 처리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색의 다양한 변주를 보는 것도 『새들의 아이 미나』를 감상하는 포인트이지만, 인물의 크기와 위치를 통해 스토리의 변화를 구성해보슴 것도 또 다른 재미난 감상 포인트가 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두 권의 그림책보다 다양한 원색이 많이 쓰였고, 구도도 복잡해졌습니다만 여전히 그림을 보면 ‘에릭 바튀표’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작가 정체성을 지닌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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