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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갖고 노는 소설, 누가 더 재밌을까? -『헤르메스의 기둥』 &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송대방의 『헤르메스의 기둥』과 라헐 판 코헤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소설과 진짜 그림이 만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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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방의 『헤르메스의 기둥』과 라헐 판 코헤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소설과 진짜 그림이 만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서 ‘진짜’란, 소설 속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유명한 그림을 말한다. 이렇게 소설과 그림이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설마 명작을 훔치기 위한 도둑들의 미션 임파서블 스토리? 만약 그렇다면 책을 펼칠 필요는 없다. 그런 건 너무, 식상하다.

다행히 두 작품은 그런 식상함을 뛰어넘었다. 그렇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첫인상부터 밝혀보자.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성모>를 모티프로 삼은 『헤르메스의 기둥』은 ‘환상적’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주요 모티프가 된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감동적’이다. 너무 과장된 말일까?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요즘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것이 어디 흔한가? 하지만, 드물어도, 그런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두 작품은 그 범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

두 작품은 그림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접근 방법은 정반대다. 『헤르메스의 기둥』은 그림에서 이야기가 시작하는 반면에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이야기가 그림을 향해 치닫는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헤르메스의 기둥』은 주인공들이 그림의 비밀을 풀려하는 것이 소설의 발단이 된다.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성모>
옆의 그림을 자세히 보자. 특히 관심을 갖고 볼 부분은, 오른쪽에 있는 기둥이다. 기둥의 하단을 보자. 여러 개다. 그런데 위를 본다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과연 저 기둥은 하나인가, 여러 개인가? 보면 볼수록 모호한데, 주인공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저 지점이다. 주인공들은 화가가 왜 저렇게 그렸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자료를 수집한다. 그런데, 아뿔싸! 화가가 실수로 그렇게 그렸다고 하면 좋으련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저 그림은 연금술의 비밀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연금술의 비밀이란 무엇일까? 흔히 연금술은 돌을 금으로 바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화된 사실이다. 상징성으로 본다면 해석은 넓어진다. 성분을 무시하고 존재를 감쪽같이 바꿔버리겠다는 발상이니 그렇지 않겠는가?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연금술에 매료되었다. 단순히 부자가 된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것만큼이나 ‘둘이면서 하나가 될 수 있고, 하나면서 두개가 될 수 있는’ 신비로운 영역을 체험하고 싶었던 탓도 있다.

연금술이 등장하면서 소설은 중세 미술사를 향해 걸어간다. 그림이 그림을 부르고, 이야기가 이야기를 부른다. 책장 사이사이를 가득 메운 풍부한 그림들을 보며 그림들에 대한 해석을 듣는 것은 이 책이 소설인지 미술 해설 책인지 의심스럽게 만들 정도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중요한 것은 『헤르메스의 기둥』의 그런 요소들이, 지루할 수 있는 미술 강의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고 이러한 지적 재미가 ‘환상적’이라는 느낌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신화에 이윤기가 있다면? 적어도 이 책만 놓고 본다면, 송대방은 미술에 있어 이윤기 뺨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

『헤르메스의 기둥』과 달리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그림에 대한 일절의 언급 없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주인공은 어린 소년으로 난쟁이다. 흉측한 외모, 볼품없는 몸…… 악마 같다는 소리를 듣는 소년은 가족에게 버림 당하고 궁궐에서 장난감 취급 받는다. 그 시대의 높으신 분들은 독특하게도 난쟁이를 갖고 놀았던 것이다.

이 독특한 분들 아래에는, 어디서나 그렇듯, 자신만이 총애 받아야 한다고 믿는 무리들이 있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척 하는 그들이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공주가 소년을 갖고 노는 일이 많아지자 격렬한 질투심을 느낀다. 그리하여 마침내 소년을 죽이려는 시도까지 한다. 질투심에 두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이 불쌍한 소년은 어찌 해야 하나? 난쟁이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받고 사람들에게 위협받는 이 불쌍한 아이를 어찌 해야 할까? 여기서 그림에 흥미를 보인 소년과 당시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던 벨라스케스가 만난다. 그들은 만나서 무엇을 하는가? 벨라스케스도 그 시대 인물인지라 갑자기 소년을 수제자로 받아들인다거나 하는 작위적인 이야기는 없다. 다만, 벨라스케스는 자신의 처지에도 굴하지 않고 그림이라는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는 소년의 눈에서 ‘밝은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림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을 자세히 보자. 두말할 나위 없이 주인공은 가운데 있는 공주다. 그 옆으로 소년을 괴롭히던 아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소년은 어디에 있는가? 공주가 원하면 개 흉내를 내야 했던 그는 오른쪽 하단에 있다. 개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개가 불쌍해 보이는가? 혹시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지는 않는가? 좀 더 자세히 보자. 한 건방진 녀석이 소년을 약 올리고 있다. 까불지 말라는 태도다. 그러나 개는 버틴다. 아주 잘 버티고 있다. 왜 그런가?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에서 벨라스케스는 개에게서, 아니 소년에게서 발견한 ‘밝은 것’을 버리지 않았다. 흉측한 외모와 비극적인 운명에도 굴하지 않는 그 소년의 의지를, 분장한 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즉, 개가 “이봐, 네가 그래봤자, 난 쓰러지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린 것이다. 감동적이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개가 되어도, 포기하지 않는 그 모습이 그림과 함께 살아나고 있으니까.

물론, 이 해석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감동의 정도가 다르다. 이야기가 그림과 매치가 안 된다면, 소설의 여운을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것이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의 치명적인 약점이지만, 만약 그것이 채워진다면? 반대로 약점이 없다는 말이 아닐까?

반면에 『헤르메스의 기둥』은 약점이 많다. 지적인 요소는 환상적인데 소설의 서사가 약간은 당황스럽다. 무궁무진한 것을 집어넣으려는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그럼에도 이 책이 환상적이라는 말을 거두고 싶지는 않다. 그림 하나로 이렇게까지 뚝심 있게 이야기를 끄집어낸 소설도 드물거니와 그 안에서 연금술과 신화 등 서양의 중요한 문화들을 알려주는 책도 흔치 않은 것이다.

아!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인상을 넘어서는 것을 빼놓았다. 그것은 바로, 기막힌 상상력의 질주! 생각해보면, 놀랍지 않은가? 그림?서 뜀박질을 하거나, 그림을 향해 뜀박질 해 오는 그것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상’과 ‘감동’을 넘어서, 두 작품 모두 ‘경이’롭다는 말을 덧붙여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무슨 심보인지, 달리는 것들을 보면 꼭 경쟁을 시켜보고 싶다. 누가 더 잘 달릴까? 국내선수? 외국선수? 파르미자니노? 벨라스케스? 자, 자리 잡고 이들의 뜀박질을 지켜보자. 누가 이기든, 모두가 즐거운 멋진 게임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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