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세계에서의 1960년대는 현대 세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히는 시대입니다. 1945년의 2차 대전 종전 이후, 전세계가 미국과 소련을 양대 축으로 한 냉전 체제로 빠르게 이원화되면서 양 체제는 모두 효율을 위한 권위주의, 관료체제 구축에 힘을 기울였고, 냉전이라는 극한의 적대상황은 미국의 매카시즘과 같은 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냉전의 깊은 골은 결국 베트남 내전에 미국이 참전하면서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 모든 2차 대전 후의 변화 상황에 크게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였습니다.
대전 이후 급속도로 이루어진 경제 성장 속에서 풍부한 교육의 혜택을 누리며 자라온 60년대의 대학생/지식인이 주축이 되어 이끌어간 제1세계의 60년대는 이른바 反문화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기성 세대에 대한 반항 수준이 아니라 기존의 가치들이 가진 맹점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새로운 가치를 세우기 위한 열렬한 토론이 이루어졌고, 미국의 베트남 참전에 적극적 반대 의사를 보였으며, 구 가치에 대한 반항이 히피와 같은 형태로 표현되기도 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60년대의 거대한 변화는 프랑스 파리의 68혁명, 일본의 전학련 안보투쟁과 같은 거대한 움직임으로 귀결되는데, 오늘 채널포커스에서 소개할 저자는 이 새로운 시대를 위한 첫 선언을 던진 주자쯤이 될 듯 합니다. 바로 『해석에 반대한다』의 저자, 수전 손택입니다.
| ’행동하는 지성’ 수전 손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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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해석에 반대한다』는 수전 손택이 1966년에 발표한 문학, 예술에 관한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수록된 글 중에서도
『해석에 반대한다』라는 첫 글이 가장 크게 이슈가 되며, 또한 수록된 전체 글이 포함하는 모든 뉘앙스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 결론은 매우 간단명료하게 압축할 수 있습니다. 예술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예술을 죽이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손택의 주장은 오늘날에 와서는 사실 식상하기까지 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당장 넘치는 영화평론과 쏟아지는 미술평론서 속에 우리는 일상에서도 자주 “평론가가 영화를 더 망쳐!”라는 짜증 섞인 푸념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중/고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더욱 명백합니다. 우리는 국어 시간에 서정주의 시를 읽고 정철의 관동별곡을 읽지만, 밑줄 긋고 동그라미 쳐가며 낱말이 가진 함의를 외우고, 글의 성격을 ‘XX적’, ‘XX적’으로 규정한 참고서의 말을 따릅니다. “시는 시로 읽어야지..”라는 갑갑함을 토로하는 몇몇 국어 교사와 학생들의 한숨, 손택의 주장은 이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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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은 쉽게 말해 예술작품에 대한 비평이 오히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전달하기 어렵게 만들며,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어려운 이론과 개념을 공부해야만 하는 상황 자체를 지적합니다.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덧붙는 여러 가지 추가적 지식을 통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자체를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른바 예술의 에로틱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예술작품을 대중이 만나기 위해 필요한 에로틱스란, 말 그대로 예술에 대단히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감각을 동원해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분석이 아닌 총체로서의 예술 접근을 말합니다. 좋은 예로 그리스 신화를 다루는 유럽의 회화들에 대한 접근을 들 수 있습니다. 이른바 미술평론서들은 작품 하나를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해 그림에 출연하는 등장 인물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각각의 아이콘을 들어 설명해 주고, 신화 속에서 이 이야기가 어느 장면이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가 저랬고, 특정 인물이 특정 동작을 취하는 것은 이러이러한 의미라고 설명을 붙여 줍니다. 손택은 이러한 해석을 반대합니다. 굳이 그런 부연지식으로 예술작품을 부분부분 찢어 보고, 작가가 담았던 것 이상의 복잡한 의미를 붙이다가는 작가가 예술적 영감을 통해 그려낸 찰나의 느낌을 총체적으로 받아 예술적 감흥으로 가져갈 수 있는 예술 수용자의 권리를 날려버린다는 것입니다.
작품을 일일이 분석하지 않고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손택은 해석과 분석 대신 ‘스타일’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작품 접근을 제안합니다. 이 스타일이란 작품 자체가 스스로 갖는 열정과 생명력, 작가의 의도와 본능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두루 뭉쳐 표현해 내는 작품만의 고유함이며, 이를 수용자는 자기 자신의 경험과 감성에 의존해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방식이 진정 예술을 수용자의 삶에 진정성 넘치는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기존의 해석과 비평들은 그러한 수용자의 인식에 방해만 될 따름이라는 것이 손택의 주장입니다.
사실 이러한 논리는 당장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겐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정도로 진부해졌습니다. 위에서도 간략히 언급했지만 기존 비평의 방식에 대해서는 모두가 손택의 주장과 동일하게 감상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예술을 예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이제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해석에 반대한다』는 단지 그러한 주장의 첫 단추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 기존 가치에 대한 거부, 파리 68혁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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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받아들인다면 정말 그러하겠지만, 손택의 선언이 나온 시대적 배경과 그 이전, 이후의 흐름을 볼 때는 단지 첫 선언으로서 만의 의미로 책을 매겨둔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 많이 남습니다. 비록 문화예술의 영역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풀었지만, 그 흐름은 60년대 제1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제반 분야에서 일어난 흐름과 일치하며, 그 시기로 볼 때 선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존의 획일화된 질서에 대해 반기를 들고, 고도의 자본주의 성장에 의해 일방적 소비자/수용자가 된 대중의 자립적 역할을 강조했던 60년대의 새로운 흐름에서 손택의 비평은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해석에 반대한다』는 그래서 단순 문화비평의 분야에만 머무를 책은 아닙니다. 60년대라는 새로운 변혁시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책이며, 20세기 말 인류 사회의 전반적 변화가 가진 근본적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책으로도 그 의미는 남다릅니다.
그러나 손택의 주장이 과연 21세기 오늘날까지도 의미가 있는지는 되새겨 볼 일입니다. 해석에 반대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흐름이 된 시대에 누군가가 똑같은 요지의 선언을 다시 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이제 해석에 반대한 스타일 중심의 문화 비평은 오히려 대세가 되면서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무런 기반 없이 개개인의 상대적 경험에만 맞추어 작품을 인식하다 보면 작가와 수용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해석이 중심이 되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전달 불일치가 발생합니다. 작가가 인식한 시대와 수용자가 인식한 시대가 다르고, 그에 따라 작품이 발산하는 아우라가 수용자의 인식 범위와 다른 영역을 점유할 때, 작품은 작가와 수용자 사이의 다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부유해버립니다. 특히 오늘날 예술 분야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보편화되면서 과거 손택의 선언이 오히려 공격 대상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 이젠 오히려 스타일이 모든 것을 잠식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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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의 대변혁이 오늘날 대세가 되면서 사실 많은 부분에서 당시의 흐름들에 대한 비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이키의 제3세계 착취에 반대하는 흐름 속에 급부상한 컨버스 운동화는 이제 한국 같은 주변부에서 또 하나의 거대자본 상품이 되어 팔리고, 60년대 혁명의 우상이었던 체 게바라는 티셔츠에나 프린트되어 팔리는 “꽃미남 전사”가 되었습니다. 손택의 주장 또한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내세웠던 스타일에 대한 주장은 이제 스타일이 모든 것을 잠식하는 시대가 되면서 스타일이 오히려 예술에 대한 이해를 막아버리고 있다는 비판 앞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모든 문화 비평이 그렇듯이, 다음 세대의 패러다임과 맞서게 된 손택의 선언은 이제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요. 고도 자본주의 시대가 만든 새로운 문화사회의 도래, 그 사회와 문화에 도전장을 던졌던
『해석에 반대한다』, 그리고 그 흐름이 대세가 된 21세기에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또 다른 흐름의 도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는 비로소 제 의미를 가지며,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스스로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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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수전 손택
1933년 1월 28일 뉴욕에서 태어난 수전 손택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이자 뛰어난 소설가이며 예술평론가다. 1966년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라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담은 평론모음집
『해석에 반대한다』를 내놓아 서구 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을 재기 발랄하게 비판해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 뒤로 현재까지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 등으로 끊임없이 변신해 나아가며 새로운 문화의 스타일과 감수성의 도래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녀는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숱한 별명과 명성을 얻었다.
『해석에 반대한다』는 어떤 책?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 평론가 중의 한 사람인 수잔 손택의 비평집. '해석에 반대한다' 등 대표적인 논문을 비롯하여 문학, 영화, 연극, 인물, 문화일반 등 여러 현상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을 보여준다. 손택의 대표적인 비평집이라 볼 수 있으며 미학이나 문학비평 영역에 시사하는 바가 많은 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