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내 인생의 특별한 책
고민하는 내 삶에 위로가 되어준 책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인생이 고달파진다. 나와 사회의 관계, 바람직한 국가는 어떤 모습인가, 나는 누구인가 등의 고민은 그래,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인생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타인과의 원만한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고민은 나를 풍요롭게 해준다.
'내 인생의 특별한 책' 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는 한 통의 전화. 이런 부탁 전화라면 전화를 받고 기뻐해야 마땅하겠지만 난 너무나도 무덤덤하게 전화를 받은 듯 하다. 쓰시겠냐는 물음에 네 라는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짧게 답하며 마무리를 지었으니 말이다. 머릿속에 한 권의 책이 스쳐지나갔지만 전화를 끊고 난 뒤 그간 읽어온 책들 중에 읽고 감명 깊었던 책들을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내 인생의 특별한 책'으로 꼽기엔 그 책들이 나의 인생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그저 좋은 한 명의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점,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면 참 좋겠다는 점, 관련된 주제의 다른 책들에 관심을 더 쏟게 되었다는 점 정도랄까. 아무래도 '내 인생의 특별한 책'이라면 내게 좀더 의미 있고 갚진 그런 책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몇몇 책들을 후보에서 탈락시켰다. 그리고 결국 끝까지 남은 책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이라는 책이다. 둘 중 어느 한 가지를 가릴 필요도 없었으며 가릴 수도 없었다.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이 책은 전화를 받고 제일 먼저 떠오른 책이면서 몇몇 책들을 제치고 끝까지 남은 책이기도 하다. 이 책과 관련해 가능한 한 가지 오해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미국인이기는 하지만 어쨌건 스님이 쓴 책이니 이 책을 추천한 나는 독실한 불교신자일 테고, 이 글을 통해 포교활동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리 오해를 막고자 밝히자면 필자는 불교신자인 어머니를 두고 있지만 절에 한번도 다녀오지 않은 괘씸(?)한 아들이며, 그러니 당연 불교신자도 아니다. 나는 대외적으로는 모든 종교에 대해 마음을 열어놓고 있다는 말을 내세우며, 대내적으로는 종교의 필요를 못 느낀다는 이유로 어느 한 가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어릴 적 친구 따라 교회도 가봤고, 성당도 가봤으며, 군대에서는 훈련소에서는 절에, 군 생활 중에는 교회를 다니기도 했다. 이는 맛보기 정도 혹은 편의상 이라는 이유를 달면 좋겠다)
이 글을 쓰기 이전에 몇 차례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좀처럼 쉽게 밝히기 어려운 나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 적이 있다. 아직도 나는 조심스럽다. 더군다나 이렇게 많은 이들이 보는 인터넷 공간에 나를 드러낸다는 사실은 더더욱 나를 부담스럽게 한다. 오랜만에 만난 어릴 적 친구로부터도 예상치 못했던 언어 테러를 당한 적이 있으며 진보적이라 자처하는 이들조차(내가 진보적인지는 의문이다) 이 문제에서만큼은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기 위함이 아닌 '내 인생의 책'을 소개하는 것이니 만큼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에라도 나의 견해에 대한 딴지는 사양하련다.
2001년의 12월 4일 나는 뒤늦은 군 입대를 했다. 그리고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읽은 것은 2001년의 11월 말경. 군 입대를 앞에 두고 몇 달 동안 심한 가슴앓이를 했다. 남들 쉽게 쉽게 가는 군대였지만 내겐 너무나 힘든 결정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나는 남들이 쉽게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을 행함에 있어 매우 신중했고 고민과 고민을 거듭해 길을 돌아가거나 스트레스 받으며 속병을 했다. 나는 결국 군대를 다녀왔지만 당시 군 입대를 앞두고 주변인들에게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했더랬다. 물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술자리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은 선후배, 친구들은 모두 나를 말렸고, 나와 논쟁을 하기도 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처음으로 나에게 크게 화를 냈고, 어머니는 내 의사를 존중하고 따르겠지만 좀더 심각하게 고민해보고 결정하라 하셨다. 말로는 그러셨지만 내심 절대 순순히 입대를 했으면 하는 바램인거 알고 있었다. 동생 나중에 취직할 때 결혼할 때 다 문제된다. 또 없는 형편에 엄마, 아빠 모두 마음고생, 몸 고생할 테고, 출소 후의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걱정을 많이 하셨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나의 양심을 저버리고 군대를 갔으며, 그곳에서 여전히 나의 양심과 싸우며, 또 부대원들과 간부와 군대와 싸우며 힘겨운 2년 2개월을 마쳤다.
나의 지난 인생사의 한 편을 잘라내어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이유는 결국 말을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지만 내 인생의 가장 힘겨운 고민을 하던 그때 읽었던 책이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였기 때문이다. 잡소리를 하느라 책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조차 하지 못했다.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는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이다. 그리고 지인의 말에 의하면 출판사에서도 재판을 찍을 생각이 없다고 한다. 이전에도 다른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이 책을 소개하려다 절판되어 포기한 적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 책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책의 저자인 현각 스님은 1964년의 미국의 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미국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원 재학 시절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결정, 92년 한국으로 건너와 화계사에서 수행정진하고 있다.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 신부나 수도사가 되겠다는 어릴 적 열망을 간직한 그가 불가의 스님이 되었으며, 미국을 버리고 낯선 나라인 한국으로 왔다. 어쩌면 한참 군 입대를 놓고 고민하던 나는 그와 나를 동일시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경제학과로 입학했으나 전과하며 철학을 전공하였고, 아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문제를 가지고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고민을 했다. 그는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였고, 사회에 대해 고민하였으며, 과거의 철학자들에 빠져 그들이 제기한 물음에 빠져 지냈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불교를 만났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내 맘대로 하지 못하겠다. 신에게 시도하는 것은 더 이상 쓸모없는 일이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에머슨, 쇼펜하우어 모두, 신은 우리가 만든 것이며 우리 마음이 신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신이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면 도대체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1권 P139)
그리고 현각은 이후 숭산 스님을 만난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제 이름은 폴입니다."
"그건 당신의 몸의 이름입니다. 누군가, 즉 부모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진짜 이름을 알고 싶은 겁니다."
"올해 몇 살이에요?"
"스물여섯 살입니다."
"당신의 몸은 당신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진짜 나이를 알고 싶어요."
"아니 학생은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데 당신 자신을 모른단 말이에요? 그거야말로 큰일이군요."
숭산 스님과의 대화는 현각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해주었고, 그는 더 혼란스러워했다. "에머슨, 쇼펜하우어, 플라톤, 카뮈, 키에르케고르, 소크라테스를 모두 공부했고 철학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정작 '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진짜 나이는 몇 살인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중고등학교를 나와 취직을 하거나 대학을 가고,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하길 바라며, 그것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함이다. 돈을 많이 벌어 조건 좋은 예쁜 여자 혹은 멋진 남자와 결혼해 큰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영재로 키우며 살아간다. 값비싼 옷을 사 입고 맛난 음식을 먹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고 이것저것 누리며 인생을 보낸다. 그들의 고민이란 어떻게 하면 더 큰 집을 얻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 정도 밖에 되지 않을 터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날마다 고민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현각은 그러했고, 나도 그러했다. 그렇다고 나와 현각 스님을 같은 선상에 놓고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며, 현각 스님과 떼어 생각하더라도 나를 남들보다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별종인 것은 인정해야겠다.
두 권의 책을 통해 서술하고 있는 현각 스님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고민은 나의 그것과 닮아있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힘든 세월을 보낸 이의 마음 속 이야기는 나를 위로해주었다. 모두가 나의 결정을 철회하기를 바랐으며, 나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이는 없었다. 내 생각을 말하면서 나는 그들 중 누군가가 나의 의견을 들어주고 동의해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현각 스님은 만난 적은 없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나는 실제로 만나 서로의 인생사와 고민거리를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2001년의 가을과 겨울에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2001년의 어느 밤 나는 방안에 혼자 누워 매일 같이 고민을 하며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마음이 맑아지며 혼란을 벗어나 결심에 다가가고 있었다.
너 같은 놈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군대가 안돌아가, 다들 그렇게 결정하면 나라는 누가 지켜, 당장 북한군보고 쳐들어오라고 하지 그래, 등등 이런 단순 흑백 논리에 의한 공격은 내게 너무나 상처가 되었다. 모든 주변 나라 상황과 우리나라의 현실과 그 밖의 모든 사항을 다 제거한 채 순수하게 나의 양심에 의거하여 병역거부를 하는 이들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그 누구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을, 또 나와 달리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긴 그들을 순수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한참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이 이슈화되어 (이슈화된다는 자체로 긍정적이다. 그전엔 오직 한겨레신문에서만 간혹 다루었을 뿐이다) 떠들썩하더니 이제 또 다시 잠잠하다. 더 이상 기사거리가 안된다는 걸까. 지금도 많은 이들이, 한해 뒤에 한해에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2년, 3년 수감이라는 형벌을 받으면서 까지도 말이다. 여호와의 증인이니 어쩌니 하는 이들이 아닌 그들의 말에 따라 정통 기독교 신자와 불교신자, 천주교 신자 등 종교를 가리지 않고, 또 종교가 없는 이들까지도 양심에 의거해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 그들의 양심을 순수하게 바라봐주지 않는가. 실형을 감수하며 자신의 양심을 따르는 이들을 왜 순수하게 바라봐주지 않는가. 나는 지금도 이들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사회가, 국가가, 세상이 당연하다 여기는 것에 의문을 갖고 처음부터 생각하면 안 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매우 편리하고 간편한 인생살이법이다. 하지만,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인생이 고달파진다. 나와 사회의 관계, 국가와의 관계, 바람직한 국가는 어떤 모습인가, 나는 누구인가 등의 고민은 그래,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인생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타인과의 원만한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고민은 나를 풍요롭게 해준다. 나를 알차게 해준다. 당연하다 여기는 것들에 의문을 갖는 삶을 살고 싶다. 이를 위해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더불어 두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하나는 이 책이 꼭 반드시 재출판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며, 하나는 이 책을 보실 분들은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도 함께 봤으면 한다는 점이다. 앞의 것의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이런 좋은 책은 묻혀버리기엔 너무나 아깝다. 많은 이들이 읽고 고민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는 것이며, 뒤의 것의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감옥에서 오랜 세월 살아왔던 그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책읽기와 사색뿐이었으며, 그러한 사색은 고민하는 삶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일상에 대해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걷고 이야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과 만나고 시장에 가는 모든 것,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시끄러운 자동차소리를 듣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수행이며 만행이다.
순간 순간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 -
이것이 바로 만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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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자 학생이다. 가르치며 학교를 다니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 학교를 다닌다. 책과 음악과 영화에 관심이 매우 많으며, 이 모든 것에 대한 관심과 꾸준한 일상의 글쓰기를 통해 언젠가 알랭 드 보통, 김용석과 같은 철학자 겸 작가가 되길 막연하게 꿈꿔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며 나의 내면과 대화 하고 있다. 철학자 겸 작가라는 꿈은 이러한 나의 고민의 하나의 결과물로서 생각해볼 뿐이다. 블로그 <숨어있기 좋은 방>(//blog.yes24.com/drums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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