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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과 (연대) 동문들의 전성시대

언론에선 요즘 우리 문단을 일러 ‘공지영 일인천하’라고 부릅니다. 작가 공지영이 작년부터 내놓기 시작한 두 권의 소설과 산문집 한 권이 연거푸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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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선 요즘 우리 문단을 일러 ‘공지영 일인천하’라고 부릅니다. 작가 공지영이 작년부터 내놓기 시작한 두 권의 소설과 산문집 한 권이 연거푸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선배․동료가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이겠습니다만 지금 그 말의 적실성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시비하는 건 무의미한 일일 겁니다. 오랫동안 외국 작가들이 우리 독서계를 장악해 왔던 걸 생각해 보면 공지영의 선전이 그저 반갑고 반길 만한 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우리 독서시장은 몇몇 외국작가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조앤. K. 롤링, 파울로 코엘료, 댄 브라운 등 - 의 각축장이다시피 했고, 우리 작가들이 그들의 견고한 아성을 무너뜨리는 건 요원한 일처럼 여겨졌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공지영은 딱 세 번의 공성전 끝에 그들의 견고한 성벽을 허물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기쁜 일입니다. 문학의 국적을 따져 뭣하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도 있을 테지만 우리 영화 보호를 위해 스크린쿼터를 사수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만큼 독서시장의 사수 또한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어쨌든 공지영의 선전은 오랜 기간 지속되던 문학적 식민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과 같은 쾌감을 느끼게 합니다.

재작년, 오랜만에 소설집 『별들의 들판』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의 더욱 진지해진 문학적 태도와 예의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차원 높은 감수성에 대해서는 호평했지만, 그렇기로 종래 독자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작년 4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나왔을 때 평단과 독자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습니다. 뭔가 대형 사고를 칠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했다고 할까요? 아닌 게 아니라, 소설은 자칫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이야기, 즉 사회적 이슈(사형제도)와 정신적 사랑을 동시에 담고 있어 오히려 평단과 독자들의 관심을 묶어두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각에선 ‘신파’라 비아냥대기도 했습니다만, 오히려 그런 대별적 서사와 지극히 평범한 소재가 더 많은 독자들을 불러 모으는 힘이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특별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이야기인 것 같지만 실은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봤을 사랑과 용서의 문제를 담담하게 풀어놓고, 신파조의 이야기면서도 절대 서둘러 책장을 넘길 수 없도록 글자 한 자 한 자가 차진 흡인력을 발휘해준 덕분에 책은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사형수의 일대기를 담담하게 그린 ‘블루노트’는 많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습니다.

이후 실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양자의 시각에서 동등하게 풀어가는 형식으로 흥미와 감동을 유발한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역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진정한 공지영의 힘(?)은 예의 솔직담백함과 당당하게 삶을 마주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부박한 현실을 비켜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받은 정신적 외상과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인고의 시간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는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는 ‘역시, 공지영이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공지영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워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통해 새삼 확인하는 건 용서의 힘입니다. 작가는 진정 미워하고 원망해야 할 사람, 고통을 안겨줬던, 그래서 때로 ‘울컥증’을 유발하게 했던 지난날의 연인에게 진정한 화해와 용서의 손길을 내밉니다. 한 사람을 진정 용서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종래 작가가 믿고 의지쿇는 종교의 본령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예수 혹은 성모)을 극진히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랑을 끌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지 않겠습니까. 공지영은 어느덧 그러한 종교적, 영적 사랑의 의미를 깨우치고 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문득 작가나 독자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저는 허가(?) 낸 문학평론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공지영 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비평에 나설 능력도 없고, 수준도 못됩니다. 지금까지 쓴 것은 그저 저 혼자만의 치기 어린 감상일 뿐입니다. 그러니 혹여 이 글을 통해 공지영 문학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생각일랑은 아예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저는 그렇다는 말일 뿐입니다.

아무튼, 모처럼 우리 작가가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게 반갑고 즐겁습니다. 그러나 왠지 불안합니다.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일인천하보다는 이인, 삼인, 아니 십인천하가 되어 마침내 국내 작가들이 기존 독서계를 평정함은 물론 독서시장의 외연을 넓혀주길 바랄 따름입니다. 그동안 오랜 세월 외국작가들에 시장을 내어주었으니 그 기간을 보상받으려면 최소한 몇 년, 최소한 십여 명 이상의 작가가 꾸준히 활약해 줘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공지영의 뒤를 받쳐줄 그 누군가의 출현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마침 공지영을 중심으로 그 전후좌우에 그녀의 대학동문들이 만만치 않은 진용을 구축하고 있어 다행스럽습니다. 일단 미덥고, 기대도 큽니다. 그 중 이미 한두 작가는 툭 치고 올라와 독자들로부터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세계문학상을 연거푸 거머쥔 김별아(『미실』)와 박현욱(『아내가 결혼했다』)이 그들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상상력에 탄탄한 서사까지 갖춰 일찍이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데다 평단의 주목까지 받고 있는 김영하(『오빠가 돌아왔다』, 『검은 꽃』 등)와 김인숙(『바다와 나비』, 『그 여자의 자서전』 등) 역시 연대 출신 작가들입니다. 대를 이어 소설을 쓰고 있고, 대를 이어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몽고반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기대되는 작가고 말입니다.

그들의 뒤를 받쳐주는 든든한 선배들도 있습니다. 중견 이상의 관록을 가진 작가 중 황석영과 더불어, ‘유이’하게 정력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그런 만큼 독자들의 사랑도 꾸준히 받고 있는 최인호(『제4의 제국』, 『유림』 등)는 연대 출신의 맏형 격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작고한 고 기형도(『입 속의 검은 잎』) 시인의 시집이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으며, 농익은 재담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동인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고 있는 성석제(『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소풍』 등) 역시 연대 출신의 대표적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이름 석 자 더 얹을 만한 일이 근래 또 일어났습니다.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해마다 걸출한 작가를 배출하고 있는 문학동네작가상의 올해 당선자 이상운(『내 머릿속의 개들』) 또한 연대 국문과 출신이라고 합니다.

이 글의 앞선 단락에서 ‘문학의 국적이 무슨 소용이냐’라는 문제제기를 애써 외면했던 걸 생각해 보면 ‘작가의 출신학교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담담해져야 하건만, 사실 그게 바로 논리적 맥락을 중시하는 전문 평자가 아닌 저 같은 아마추어의 한계이자 자유로움입니다. 그럼에도 역시 출신대학과 문학은 별 관계가 없다는 데 흔쾌히 동의합니다. 그러나 우리 문단의 흐름 가운데 놓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특정 대탇출신들이 특정 시기에 무더기로 등장해 문단을 휘저었던 전례가 심심찮게 있었다는 것.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되, 술자리의 안줏거리 정도는 될 것 같아서 꾸역꾸역 언급해 봤습니다.

더 바라건대, 『삼국지』와 TV로의 외도를 끝낸 장정일, 문단 잡무와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김종광, 정도상, 안도현, 유학 가신 황석영, 살림(?) 차린 양귀자, ‘외출’했던 김형경, 신문연재로 기지개를 켠 신경숙, 한 텀(term) 정리하고 돌아올 채비중인 은희경, 『황진이』에 빠졌다 차분한 산문집으로 돌아온 전경린, 노익장 박완서 등등, 그런 분들이 다시금 풍성한 이야기판을 벌여 달아난 독자들을 다시 불러줘야 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독서시장이 다시금 우리 작가들의 신명나는 춤판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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