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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민주적인가?

박 대표 피습사건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지만 향후 선거 판세에 미칠 파문, 즉 또 다른 선거폭력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걱정스럽고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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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해방 직후부터 최근까지 정치인에 대한 테러가 끊이지는 않았지만 이번처럼 선거 국면에서 벌어진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그래서 더욱 충격적일지도 모릅니다.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졌다고나 할까요.

선거폭력이 사라진 주된 원인은 결코 선거문화가 발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폭력의 부당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특히 선거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은 뿌리가 깊습니다. 부정선거와 선거폭력은 자칫 혁명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건 역사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박 대표 피습사건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지만 향후 선거 판세에 미칠 파문, 즉 또 다른 선거폭력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걱정스럽고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후속 폭력사태가 벌어졌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부산의 모 정당 구의원 후보가 유세 중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네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 일각에서 서서히 언어폭력이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한 폭로정치, 폭언정치야말로 이번 불상사의 주된 원인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검․경 합동수사팀이 구성돼 수사에 매진하겠다고 하니, 정치권이든 국민이든 당분간 수사의 흐름을 관찰하는 쪽으로 관심의 방향을 틀었으면 좋겠습니다. 근거도 없이 배후니, 공작이니, 어떤 목적을 지닌 특정 집단의 고의적 책동이니, 하는 따위의 무책임한 폭로전이 제발 자제되었으면 합니다. 국민들만 혼란스럽습니다.

각설하고, 선거는 선거고 폭력은 폭력입니다. 그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 만난 결과는 이토록 참담하고 충격적입니다. 그래서 서둘러 상처를 봉합하고, 서둘러 폭력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려는 노력이 우리 모두의 과제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새삼 선거에 대해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집니다. 마침 버나드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가 눈에 띕니다.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에서부터 근대의 대의 민주주의, 그리고 현대의 정당 민주주의까지를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특히 선거제도의 변화과정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됩니다.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비해 결코 발달한 제도라고 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대의민주주의라는 말 속에 담긴 다양한 함의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거기엔 ‘민주정’과 ‘과두정(귀족정)’이라는 두 마리의 속성이 동시에 담겨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과두정의 의미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민주정의 정신을 배가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대의 선거는 보통선거의 원칙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인 요소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언제나 선거권자보다 우월한 위치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들만이 선거에 나서게 된다는 점에서 과두정의 요소 또한 내포한 것이다.

또한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 진출한 지배자에게 정책 명령권과 직위 해임권을 직접적으로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이며, 선거를 통해 대표를 주기적으로 교체, 심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다.

한편, 과거엔 선거보다 추첨에 의한 대의제가 실시돼 귀족정의 폐해를 차단하기도 했다. 누구나 일정 자격(시민권)만 갖추고 있으면 언제든지 추첨에 의해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는 공직에 진출할 수 있고, 또한 때가 되면 자리를 물려주어야 함은 물론 평가를 받기 때문에 책임행정을 구현하게 된다는 것. 현재 추첨식 대의제는 사법부의 배심원제도를 통해 명맥을 잇고 있다.

끝으로, 역자인 곽준혁은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변화를 제도화하는 힘에 달려있다”라는 주장을 곁들인다. 그가 말하는 변화의 제도화란 주어진 정치제도의 틀 안에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변화의 요구들이 합의된 제도화의 방법까지도 바꾸어버릴 수 있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다.」

한편, 『피에르 부르디외와 한국사회』의 저자 홍성민이 소개하는 부르디외의 선거분석은 매우 독특합니다. 부르디외는 문화분석의 사례를 정치적 영역에 적용해,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적 기반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 예컨대 노동자들이 보수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경우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고 합니다.

“부르디외는 노동자들이나 민중계급들이 자신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소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그들의 정치적 투표권의 행사가 왜곡되고 있다고 본다. 이론적으로 보면 이는 마르크스의 허위의식이나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실증적인 자료 분석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개인들의 의사결정과 정치적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은 물질적 조건이 가장 큰 변수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상징자본과 물적 자본의 비율이 어떻게 배분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살림지식총서 076, 홍성민 저, 『피에르 부르디외와 한국사회』, 20쪽)

이런저런 뛰어난 이론이나 의미 있는 설명들과 대면하면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거전의 양상입니다. 일천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는 아직 풀뿌리 민주주의의 취지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지방자치의 현실은 지방 토호세력과 결탁한 특정 정치집단의 권력과 이권 독점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5∙31 지방선거는 지방권력의 비리와 부정부패, 무책임행정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가진 선거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유권자들은 지방권력에 대한 심판보다 중앙권력에 대한 불평불만을 해소하려는 데 더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방권력의 온갖 부정사례가 속속 정체를 드러내고, 심지어 공천과정에서 추악한 돈의 냄새가 진동을 했는데도, 여전히 지방권력에는 우호적인 시선을, 중앙권력에 대해서는 확고한 반대의사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지요.

전국의 유세장을 돌며 새삼 유권자들의 정서를 확인한 여당의 대표는 “참여정부가 국민들에게 이토록 큰 실망감을 안겨줬단 말인가”라며 개탄했다고 합니다. 이후 여당 선거 캠페인의 내용도 ‘자성론’으로 전환되었다고 하고 말입니다.

현장에서 국민들의 정서를 확인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며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뒤늦은 감이 있습니다. 좀더 일찍 각계의 비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5·31 지방선거의 판세가 이토록 한쪽 방향으로 쏠리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최장집 교수의 충고를 새삼 되새기게 됩니다. 최 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개정판 후기’를 통해 참여정부에 대해 다양한 비판을 쏟아냅니다. 그 중 핵심은 역시 참여정부의 방향과 목표 상실, 그리고 의제 왜곡의 사례들입니다.

최 교수에 의하면 노 대통령은 이미 정당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렸으며, 대통령 스스로 대표와 책임의 고리를 끊고 ‘역사’라는 막연하고 모호한 내용의 말에 의존해 거기에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극히 초현실적이고 군왕적 사고를 정치행위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러한 왜곡된 현실인식과 사고가 곧 실제의 중심문제를 회피하는 기제로 활용돼 실제의 현실을 전치(轉置)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에서 가장 파괴적인 것은 ‘있는 갈등’을 ‘다른 갈등’으로 전치시켜 정의할 때”라는 정치학자 샤츠 쉬나이더의 말은 이 대목에서 매우 적절한 인용일 듯합니다.

그러나 종래 희망을 놓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끝으로, 민주 진영 전체에 대한 최 교수의 절절한 당부의 말로 ‘선거에 대한, 그리고 정치 전반에 대한’ 저의 고민과 탐색을 마치려고 합니다.

“민주주의를 희구하고 투쟁했던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실망하고, 이를 비판하는 ‘소극적 시민’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민주주의를 만드는 과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적극적 시민’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영역을 구축하는 데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함께 민주파로서의 집합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일이 절실하다. (중략)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를 말해야 하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실질적인 내용을 갖고 발전할 수 있는 경로를 찾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캹주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

5∙31 지방선거일이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나친 좌고우면은 오히려 본질을 흐릴 수 있습니다. 다시금 지방선거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기며, 소신과 원칙으로 투표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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