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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환상이 아닌 거지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혼이라는 건 도통 헷갈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단순히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더불어 ‘정답이 없다’는 말 정도가 가능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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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세상에 하고많은 이성(異性)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게 그렇다는 말입니다. 때로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하고 의문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일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축복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오로지 나만‘을’ 사랑해줄 사람, 오로지 나만‘이’ 사랑할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는 건 분명 행운이자 축복입니다. 역시 남녀 모두에게 그렇습니다.

‘결혼’이라는 게 그렇다는 말입니다. 특히 일부일처제의 가치가 엄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늘 야누스적 사유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짐짓 점잖게 ‘시기별로 생각이 달라질 수 있으니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 살아보고 나서 판단해야 한다면 이보다 맥 빠지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혼이라는 건 도통 헷갈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단순히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더불어 ‘정답이 없다’는 말 정도가 가능할 뿐이지요.

어쨌든 사람들 대부분은 결혼제도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결혼제도란 곧 일부일처제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때때로 심사가 뒤틀리면 ‘이따위 결혼, 뭐 하러 해서 이 고생인가’ 하고 푸념하다가도 ‘어차피 특별할 것도 없는 삶, 남들 사는 대로 살면 그만이지’ 하며 감정을 억누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입니까. 저 자신도 그렇게 믿고 살았고, 더불어 대다수가 그렇게 믿고 있으려니 싶었는데, 최근 신문기사나 소설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 이상한 징후가 엿보입니다.

얼마 전 신문기사를 봤더니 향후 35년 내 사라질 가치 혹은 제도 중에 ‘일부일처제’가 포함돼 있더라고 합니다. 외국의 모 잡지사에서 35년 내에 사라질 사상, 제도, 가치 등을 조사했는데, 그중 ‘일부일처제’가 상위에 올라있더라는 겁니다. 웃긴 건 하필 ‘일부일처제’를 제목으로 뽑아 올린 편집자의 심사입니다. 하긴 웃긴 게 하나 더 있습니다. 기사를 꼼꼼히 읽었던 저 역시 지금 ‘일부일처제’ 외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특히, 문학은 결혼과 일부일처제에 대해 곧잘 시비를 걸곤 합니다. 은희경, 정이현 등의 소설에서 심심찮게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고요. 문제는 저 자신도 그러한 문학적 도발 혹은 시비 걸기에 오롯이 넘어가버리곤 한다는 겁니다.

소설은 언제나 상식을 뒤엎거나 앞질러갑니다. 그게 소설의 맛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만교의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때까지만 해도 리얼리티보다는 문학적 상상 쪽에 무게중심을 뒀던 덕분에 그다지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설이 영화로, 즉 글자가 영상으로 표현되었을 때, 그때는 살짝 마음의 동요가 일기도 했습니다. 철딱서니 없는 남녀의 위험한 장난 같아 보이던 감우성과 엄정화의 소꿉 동거가 문득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던 겁니다.

그리고 지금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고는 하마 망연해집니다. 책을 덮고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상념의 구두점만 연거푸 찍게 됩니다. 멀쩡한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아내, 그 앞에서 낡아빠진 도덕과 보편가치를 역설하며 혹은 발버둥치거나 혹은 신음하며 투정부리고 있는 남편의 초라한 모습은 이미 마모될 대로 마모된 저의 상상체계 속에 쉽사리 유입되지 않는 너무 낯선 풍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빌어먹을. ‘웬 놈의 소설이 그리도 재미있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럴듯하게 그리고 있는 그놈의 허구적 망상이 그토록 순식간에 읽히고, 그토록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게 도리어 어이없을 따름입니다.

읽는 도중 뒤로 넘어갈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가공할 유머감각이 내뿜는 메가톤급 재미는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진 ‘나’는 문병 온 아내의 두 번째 남편 ‘그’와 대화하다가 말고 “당신, 목발로 맞아본 적 있어요?” 하고 묻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저는 웃음보가 터지는 바람에 한참 동안을 미친 사람처럼 껄껄거리기도 했습니다.

펠레의 저주 편은 또 어떻고요. 펠레가 2002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를 우승후보로 꼽았다거나 우리나라의 첫 골을 성사시킨 황선홍에게 월드컵 이후 유럽 유수의 클럽들이 천문학적 액수를 짊어지고 찾아와 영입제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대목에서는 그야말로 기절초풍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황선홍은 월드컵 후 팀에서 방출돼 은퇴했고, 프랑스는 예선 탈락의 수모를 당했습니다.

웃다가 화내다가, 또 웃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기를 반복하다가 책을 내려놓았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 하나가 튀어 오릅니다.

“나하고‘만’ 살고 있는 내 아내는 지금 행복할까?”

진화심리학자인 로버트 라이트는 “모든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참아낼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남편들은 아내의 외도를 참지 못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라고 말합니다. “대개의 남자들은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실은 자신의 유전자 번식을 위해) 엄청난 ‘부양투자’를 하게 마련이고, 그로 인한 보상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배우자의 일탈을 견뎌내지 못하게 된다”라는 것이지요.(『도덕적 동물(The Moral Animal)』에서)

또한 라이트는 “섹스든 권력이든 어떤 목적에 타성이 생기면 이것은 사실상 중독이 되는 과정으로, 이런 것들을 기분 좋은 것으로 만드는 생물학적 화학약품에 점점 더 의지하게끔 한다”라면서 “권력은 더 많이 가질수록 더 필요해지고 현재보다 조금만 그 정도가 줄어들어도 기분이 나빠진다”라고 꼬집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결혼에 대한 남녀 간의 생각의 차이를 말하고 싶은 겁니다. 남성은 대개 결혼을 신기루와도 같은 ‘권력 혹은 섹스’로 인식하는 반면, 여성은 그것을 ‘생활 혹은 삶’으로 여긴다는 겁니다. 그렇게 따져보면 남성이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성이 마음먹기에 따라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는 말이 모두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아내가 결혼했다』의 설정과 논리는 지극히 상식적이며 타당한 근거를 가진 셈입니다. 문제는 우리네 정서가 그걸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이겠죠. 그 정서가 바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도록 하는 남성 중심적 사고의 병폐이자 폐단이겠고요.

결혼, 환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현실은 끊임없이 개선이 필요하며, 새로운 충전을 요구합니다. 이제라도 - 남성들 -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말이지요. 아까는 정답이 없다며 한껏 엄살을 떨더니 이쯤에선 제법 그럴싸하게 결론짓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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