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것, 문득 ‘40대’라는 것.
새삼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특히 제 나이가 그 언저리여서 그런지 마흔이라는 나이가 갖는 의미를 고민하게 됩니다. 공맹자 찾고, 『논어』가 어쩌고, ‘불혹不惑’이 어떻고, 하는 식어빠진 소리를 하자는 건 아닙니다.
“내 엉덩이가 얼마나 빵빵한데. 나 따라오려면 넌 아직 멀었어.”
“엉덩이 타령 그만 좀 해. 지겨워 죽겠어.”
<하트브레이커스>(Heartbreakers, 2001)에 나오는 대화 한 토막입니다. 토요일 오후, 소파에 누워 하릴없이 리모컨을 누르다 잠시 감상했던 영화였습니다. 사기꾼 모녀로 나온 시고니 위버와 제니퍼 러브 휴잇의 좌충우돌이 시종 웃음을 자아냈지만 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보면 볼수록 <에일리언>(Alien, 1979)에 나왔던 시고니 위버의 과거 모습이 그립기만 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는 당시의 카리스마 넘치는 강렬한 눈빛과 근육질의 건강미는 온데간데없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모습만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녀 역시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새삼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특히 제 나이가 그 언저리여서 그런지 마흔이라는 나이가 갖는 의미를 고민하게 됩니다. 공∙맹자 찾고, 『논어』가 어쩌고, ‘불혹不惑’이 어떻고, 하는 식어빠진 소리를 하자는 건 아닙니다.
올해 ‘마침내, 아니 결국’ 40대에 접어들고만 친구가 있습니다. 실은 작년부터 마흔이었는데, 죽어도 만으론 ‘아직’이라고 우기던, 미혼인 여자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마흔이라는 거, 난 실감 안 나는데 주변 시선이 확 달라진 것 같아. 심심찮게 들어오던 중매도 끊기고, 집에서도 더 이상 시집가라는 소릴 안 하네? 아참, 이따금 중매제의가 들어오긴 해, 상대가 주로 자식 딸린 이혼남이라는 게 문제지. 그게 마흔의 위력(?)인가 싶어.”
재작년에 마흔이 된 친구도 있습니다. 소주 한 잔 생각날 때 부담 없이 만나는 술친군데, 어느 날 오후 흐린 주점에 마주앉아 그 친구가 했던 말이 여태 뇌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마흔 넘으니까, 마누라가 먼저 달라지더라. 그전에는 술 마신다고 하면 일단 짜증부터 내고 난리였거든. 수시로 전화해서 누구와 마시느냐, 언제 들어올 거냐, 어떤 술집이냐를 따지던 마누라가 요즘은 통 전화도 안 해. 믿는다는 건지, 아예 내놨다는 건지, 참나. 이게 마흔인가 싶어. 혹시 마누라한테 애인이 생긴 건 아닐까?”
또 어떤 이는 독특한 ‘40대론’을 펴기도 합니다. 정치권의 40대기수론하곤 전혀 다른 40대론입니다.
“내 생각엔 말이야. 마흔은 돼야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게 되는 것 같아. 그전에는 전부 누구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일 뿐이거든. 특히 시골 가면 그게 심해. 나도 마흔 넘으니까 그때서야 동네 어른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더라고.”
지난주 목요일, 민방위 훈련을 받기 위해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딸아이 초등학교 운동장(훈련소집장소)으로 나갔습니다. 걸어가면서 통지서를 확인해 보니 어느덧 제가 민방위 8년차에 접어들었네요. 한동안은 나이 많은 게 무슨 자랑인 듯 위세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예비군을 마치고 민방위에 편입되었을 땐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기도 했습니다. 후배들에겐 “너 여태 예비군훈련 받니(그거 참 안됐다)?” 하고 놀리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한심하고 우스운 일들입니다. 나이 든 게 무슨 자랑이겠습니까. 그저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일 뿐. 지난주 8년차 민방위교육을 받으면서 생각을 달리 갖기로 했습니다. 훈련소집을 지겨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하자고. 아직껏 조국의 부름을 받고 있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하면서 말입니다.
예비군 8년·민방위 8년, 도합 16년을 훈련(정신교육 포함)받은 끝에 ‘마침내, 아니 고작’ 깨달은 게 그것입니다. ‘난 아직 젊은 거야. 새벽같이 일어나서 훈련을 받고 나라와 이웃을 지켜야할 만큼….’
전혀 개연성 없는 얘기 하나가 갑자기 머릿속으로 파고듭니다.
“청와대 비서관, 부부싸움 끝에 아내 목 졸라 살해”
그 비서관은 한때 저의 친구였습니다. 딱히 연락하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친구가 국회의원 비서관을 거쳐, 청와대 행정관이 되었다는 얘기는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한때의 친구’로 기억하고 있는 그 친구, 그렇게 차분하고 과묵하며 신중한 성격을 가졌던 그 친구가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다니,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둔기로 얻어맞은 듯 멍한 기분이었습니다.
기사는 그 친구를 ‘운동권 출신 386’이라고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386입니다. 한때 그 말이 기분 좋게 들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현실에서 나름의 소명과 역할을 부여받은 듯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그저 거추장스런 꼬리표일 뿐입니다.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 때문이기도 하고, 시대적 소임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386의 감성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감성은 결코 간단치가 않습니다. 혼란과 방황의 20대를 보내고 30대의 찌들대로 찌든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네 40대 초반 386들의 일그러진 모습, 그 속에는 실로 다양한 속성들이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저조차 놀랍고 황당한 건 그 복잡한 우리 세대의 감성 어딘가에 제어하기 힘들만큼의 가공할 광기가 담겨있음을 새삼 확인한 것입니다.
막연하고 맹목적이었던 열정의 끝엔 으레 허무와 절망, 불안이 달려 있게 마련입니다. 일찍이 마틴 스콜세지가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게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제어되지 않는 광기.
전쟁이라는 가공할 공포와 혼돈의 지뢰밭에서 느닷없이 일상에 내팽개쳐진 트래비스(로버트 드니로 분)는 참을 수 없는 권태와 소외감에 찌들어, 결국 엽기행각과 극한적 강박증이라는 토사물을 세상에 게워냅니다. 트래비스가 세상을 향해 내뱉은 냉소와 모멸의 징표가 바로 이 한마디 대사 속에 응축돼 있습니다.
“나한테 지껄이는 거야?”(You talkin' to me?)
저에게는, 아니 대부분의 386에게는 일종의 광기와 강박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슬프기도 하고, 때론 그래서 극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기도 합니다. 그런 40대가 새삼 세인들의 관심권에, 그것도 주요 관심권에 놓이게 되었다니 한편 반갑고, 한편 부담스럽습니다. 근래 출판가에 등장한 새로운 트렌드가 40대라고 하니 말입니다. 40대를 모토로 한 책들은 저에게 커다란 위안입니다.
18세기 40세이던 인간의 평균수명이, 1900년에는 47.3세, 1993년에는 75.5세로 급속히 신장됐으며, 바야흐로 ‘인생 80’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정년을 65세로, 또 독일에서 은퇴를 65세로 못 박았을 때만 해도 인간의 평균수명이 그 정도였고 연금수령이 가능한 사람은 모두 65세 이전에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윌리엄 새들러의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에 나오는 얘깁니다. 새삼 자본주의의 치사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윌리엄 새들러는 인생의 끝부분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만들기 위해서 인생의 각 시기에 대한 세밀한 점검을 통해 그때그때 목표를 세우고 충실히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40~70세에 해당하는 ‘서드 에이지(Third Age)’, 즉 ‘제2의 성장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좌우한다고 말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서드 에이지’는 재앙이 될 수 있다”라고도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의 경고가 귀에 와 닿고, 그래서 삶의 방향과 의미를 새롭게 모색하는 계기로 작용하려면, 아무래도 제대로 된 역할모델이 필요할 듯합니다. 마침 작년에 읽었던 『남자의 후반생』(모리야 히로시/ 푸른숲)에 ‘서드 에이지’를 의미 있게 보냈던 중국 역사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생의 후반기에 꽃을 피운 사람들’(공자 등), ‘좌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소진, 사마천 등), ‘승부수를 던져 성공한 사람들’(유방 등), ‘늘 도전하며 살아간 사람들’(조조 등) 등 귀감으로 삼을만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중 특히 저의 관심을 끈 사람은 역설적으로 전반생에서 뛰어난 지략을 발휘하며 살았고, 후반에 들어서는 그런 예리한 지략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던 ‘진평’이라는 사람입니다. 한고조 유방의 작전 참모였던 진평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진평은 처음도 좋았고, 그 끝도 좋았다. 뛰어난 지략이 없었다면 어찌 그런 삶이 가능했겠는가.”(87쪽)
진평처럼 처음도 끝도 무조건 화려하게 살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능력을 과신하지 않고 나설 때와 물러설 때, 지략을 발휘하여야 할 때와 묵묵하게 참고 때를 기다려야 할 순간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 진평을 본받고 싶을 따름입니다.
아직도 저에겐 3년치의 민방위 훈련이 남아 있습니다. 20대의 치기와 섣부른 열정을 다스릴 신중함은 독서와 사색을 통해 익혀나가고 있습니다. 착한 아내와 건강한 어머니, 귀엽고 예쁜 딸들이 있어 고통스러웠던 30대를 흉터 없이 치유할 수 있었으며, 40대 이후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야겠다는 의무감과 책임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됐습니다, 저의 40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