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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 쇼리스’와 함께 시작한 성프란시스대학 2학기 강좌

이번 주 드디어 성프란시스대학의 2학기가 시작됐습니다. 개강과 더불어 주초에 노숙인 선생님들 전원(취업에 성공한 한 분은 제외, 역시 택시기사로 취업한 한 분은 직접 택시를 끌고 참석)과 교수진, 그리고 지원센터의 실무자 등 모든 구성원이 함께 MT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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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일주일에 한 번씩 책과 관련된 의미 있는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그쪽 방면 전문지식이 부족한 저에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매번 이곳에 글을 올릴 때면 안절부절 못하게 됩니다. 연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책 한 권 달랑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이라면 그런대로 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글이라면 굳이 이곳에 올릴 이유가 없는 것이겠죠. 적어도 이 칼럼은 관성적 리뷰하고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딴엔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더욱 버겁고 부담스럽긴 하지만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런저런 부담 때문에 지난 한 주 독자칼럼을 거르고 말았습니다. 관심 있게 봐주시는 분들에겐 죄송한 일이고, YES24 편집실에는 실망과 우려를 끼친 셈이어서 민망할 따름입니다. 이번 주 역시 애초 쓰기로 마음먹었던 글을 올릴 형편이 못 됩니다. 아직 관련 책을 다 읽지 못했고, 채 생각을 정리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오늘은 지난 2주 동안 저의 정신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성프란시스대학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난주 매우 소중한 외국인 한 분이 우리나라를, 그리고 저희 성프란시스대학을 방문해주셨습니다. ‘얼 쇼리스’라는 분입니다. 얼 쇼리스는 ‘클레멘트 코스(가난한 자를 위한 인문학 과정)’의 창시자입니다. 그리고 성프란스시대학 인문학강좌는 ‘클레멘트 코스’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것입니다.

얼 쇼리스가 클레멘트 코스를 개설하게 된 데는 특별한 동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1995년, 그러니까 꼭 11년 전 빈곤문제와 관련한 글을 쓰기 위해 뉴욕의 한 교도소에서 수감자를 취재하던 그는 살인사건에 연루돼 8년째 복역 중인 여죄수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가난하다고 생각하느냐”하고. 쇼리스의 질문에 20대의 여죄수는 의미심장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건 정신적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의외의 대답에 놀란 쇼리스는 “정신적 삶이 대체 무엇이냐?”고 되묻게 됩니다. 그러자 여죄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저기 저 곳에 있는 극장과 연주회, 박물관, 강연 같은 거죠.”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얼 쇼리스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가난문제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물질적 충족일 것’이라고 생각해오던 그에게 여죄수의 엉뚱한 대답은 뜻밖의 가르침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빵과 잠자리가 필요한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가난이 극복되는 건 아니지요. 가난에 찌들어 가장 먼저 망가지는 건 물론 몸입니다. 그러나 표 나지 않게 더욱 황폐해지는 건 바로 정신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황폐해진 정신을 추스를 수 있는 게 과연 뭘까?’ 그런 물음에서 출발해 얼 쇼리스가 내린 결론이 바로 ‘인문학 교육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의 신념에 의해 탄생한 게 바로 ‘클레멘트 코스’입니다.

1995년부터 뉴욕 인근의 노숙인, 마약중독자, 죄수 등을 대상으로 윤리철학, 예술, 역사, 논리학 등을 강의해 왔던 클레멘트 코스는 현재 전 4대륙에서 53개 코스가 개설돼, 한 해 신입생이 1200명에 이르는 규모로 커졌습니다. 거기에 성프란시스대학이 추가되었으니 이제 54개 코스가 된 셈입니다.

(재)경기문화재단 등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이번 ‘얼 쇼리스 초청 국제세미나 및 워크숍’은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꽤 의미 있는 일정으로 채워졌습니다. 무엇보다 말기 암 환자인데다 70세의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성프란시스대학의 노숙인 학생들을 격려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꺼이 초청에 응해준 얼 쇼리스 선생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또한 국내에 머무는 동안 시종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모습과 실제의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다양한 조언들은 두고두고 가슴에 새겨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간에 그가 강조했던 것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가난한 이들의 정신이 메말랐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창의적이며 맑은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둘째, 가난 극복은 성찰적 사고로부터 온다는 신념을 역설했습니다. 빵과 잠자리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성찰적 사고는 미래를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교육의 효용을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겠습니다만 소크라테스의 교육철학만은 발전적으로 이어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합니다.

얼 쇼리스가 준 선물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성프란시스대학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지난 1학기를 반성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갖게 해 준 것이 큰 의미였습니다. 그런 반성적 평가를 통해 보다 나은 2학기를 계획하고 실천할 전기를 마련해주었으니까요.

이번 주 드디어 성프란시스대학의 2학기가 시작됐습니다. 개강과 더불어 주초에 노숙인 선생님들 전원(취업에 성공한 한 분은 제외, 역시 택시기사로 취업한 한 분은 직접 택시를 끌고 참석)과 교수진, 그리고 지원센터의 실무자 등 모든 구성원이 함께 MT를 다녀왔습니다.

운동 삼아 양평의 수종사에 오르고, 1학기 때 ‘책 나누는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함께 읽었던 『전태일 평전』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모란공원 내에 있는 전태일 열사의 묘소를 참배하는 등 빡빡한 일정으로 채워졌던 MT였습니다. 물론 첫날 저녁시간에는 질펀하게 음주가무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MT를 다녀온 뒤 곧바로 2학기 강의가 시작됐습니다. 2학기에는 철학과 예술사 대신 역사와 문학 강좌가 진행됩니다. 제가 맡은 작문강의는 여전히 계속 되고요. 2학기 개강 첫 테이프를 끊은 ‘역사’ 강의에서 교수님과 선생님들은 ‘단군신화’에 대한 새롭고도 깊이 있는 해석을 시도하며 토론과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단군신화’는 우리민족의 가장 깊은 뿌리를 이루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인식할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게 첫 강의의 취지였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습니다. 2학기는 단순히 1학기 다음에 오는 기간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성프란시스대학의 2학기 강좌를 통해 우리 선생님들이 부디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게 바로 얼 쇼리스 선생이 클레멘트 코스를 만든 취지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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