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무슨 제목이 이 모양이야?’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날 자리를 함께 했던 분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겁니다.
‘무슨 제목이 이 모양이야?’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날 자리를 함께 했던 분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공지영 작가가 보면 ‘그 사람, 참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며 혀를 찰 듯도 합니다. 아무튼 제 생각엔 그 날의 분위기를 전하는데 이보다 더 맞춤한 제목은 없을 듯합니다. 물론 공지영 님의 넓은 이해심에 기댄 것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지난 주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의 작문 강의가 1학기 종강을 맞았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변변한 강의 한번 못했는데, 그새 종강을 맞고 보니 뒤늦게 후회스런 일들이 떠오릅니다. 그걸 만회해보겠다고 준비한 게 작가 공지영 님의 특강이었습니다.
독자칼럼 첫 회를 통해 알렸던 대로 그간 예스클럽 <책 나누는 사람들>과 함께 노숙인 선생님들에게 책을 지원해왔습니다. 그렇게 지원한 책이 현재까지 3권씩(『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전태일 평전』,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이고, 첫 번째 책이 바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이었습니다.
애초 특강은 어느 노숙인 선생님의 ‘말하자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감동적인 감상문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첫 칼럼에서 감상문 일부를 소개했었는데, 부지런하고 눈 밝은 독자 공지영 님이 그걸 읽고 제게 연락해 왔습니다. ‘채널예스에 올린 노숙인의 감상문을 퍼가고 싶은데 허락해 주겠느냐’고. 순간 ‘기회다!’ 싶었습니다. 내친김에 호기롭게 특강을 제의했고, 작가 역시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공지영 님의 특강에 대한 선생님들의 기대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기대와 설렘이 충만한 가운데 시쳇말로 몇 주 동안 특강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정도입니다. 드디어 특강일, 학장님(임영인 신부님)도 청강을 자청하셨고, 대학 운영에 도움을 주고 있는 (주)삼성코닝의 조연백 선생님, 지원 센터의 임현철 실장님, 김자옥 간사님도 강의실로 속속 집결했습니다. 또한 소중한 분들, 예스클럽 <책 나누는 사람들> 회원인 온리원 님, 마리에띠 님, 트리나나 님, 인식의 힘 님, 파란장미 님도 제 시간에 맞춰 강의실로 들어섰습니다.
그 날은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강의실 밖에서 작가를 기다리던 저는 긴장과 추위 탓에 금세 콧등이 시뻘게졌고, 발치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 때문에 몸을 한껏 움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시간이 다 됐는데도 작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닙니까.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해봤더니, 아뿔싸. 저희는 덕수궁 옆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작가는 부천에 있는 성공회대학교로 가고 있다지 뭡니까.
순간 당황했습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선생님들 앞에서 그만 썰렁 개그를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역시 작가는 대단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작품을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그냥 특강만 하면 될 텐데, 그것만으론 서운했던 모양입니다. 공지영 님은 지금 도로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답니다. 그러나 제발. 오늘 쓰는 작품은 단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천 쪽에서 다시 서울로 오려면 아무래도 장편이 될 듯해 불안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다행히 그 날의 작품은 단편도, 장편도 아닌 중편이었습니다. 한 시간 여에 걸쳐 거리의 중편소설이 완성되는 동안 우린 우리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역시 작가의 구상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었을지 모릅니다만. 어쨌든 작가의 지각 덕분에 우린 왕년에 음악 활동을 했던 노숙인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교가를 연습하기도 했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작가가 도착하자마자 강의실을 비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간사님이 예약해둔 식당이 오히려 강의실보다 더 강의실다운 곳이었습니다. 평소 시국 관련 기자 회견이 자주 열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던 세실레스토랑에 강의하기에 맞춤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마이크 시설이 갖춰져 있는 게 반가웠습니다.(그간 마이크 없는 강의실에서 두 시간 강의하고 나면 목이 쉬곤 했습니다. 전 노래는 못하지만 마이크는 좋아합니다.)
늦었던 탓인지, 작가는 미안함을 표하는 것으로 운을 떼었습니다. “평소 참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게 실은 잘 모르는 것인 경우가 있다”면서 “‘성공회’라는 말만 듣고 잘 아는 곳이라고 믿었던 게 오늘과 같은 실수를 하게 만들었다”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주로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집필하면서 보고 느끼고 만나고 겪었던 새로운 것들, ‘말하자면’ 사형수와 사형제도 등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예의 작가는 정연한 논리와 풍부한 감성으로 종래 잔잔하면서도 뜻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작품을 위해 사형수들을 만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취재 도중 저 역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과 나는 다른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거기 분명하게 드러나는 여백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체온, 인간 사이에 주고받게 마련인 온정, 사랑이라는 이름의 온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덩그러니 비어 있었던 거죠. 그게 그네들의 삶이었다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태어나 단 한번도 인간의 체온과 온정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 그 사람들을 무조건 욕하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표현도 내용도 상당부분 왜곡했습니다. 그러나 의미는 대체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감동적인 특강을 듣고 난 뒤, 사회를 보던 저는 강의 내용을 정리한다는 게 그만, 다시 한번 썰렁 개그를 재연하고 말았습니다.
“초반부 몇 번 듣다가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세어보게 되었습니다. 전반부에 8번, 후반부에 가면 좀 뜸해서 5번 총 13번이나 ‘말하자면’이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일동, 웃음)
저 마다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은 뒤 곧바로 열띤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실제 교도소 생활을 경험했음직한 노숙인 선생님들의 현장성(?) 물씬 풍기는 질문들이 쏟아질 땐, 1년 이상 교도소와 사형수에 대한 꼼꼼한 취재를 했다고 자부하던 작가도 한발 물러서지 않을 수 없는 듯했습니다. 누가 더 많이 알고, 조금 알고를 측량하는 자리가 아니었으니, 아는 게 부족하다고 시인했던 작가도, 그 곳 생활을 많이 안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노숙인 선생님도 모두 그 정도면 됐다 싶은 표정이었습니다. 딱히 시간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 됐다싶은 표정이 포착되었을 때,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갔고, 특강에 이어진 질의응답 끝 무렵, 참말로, 간만에, 뜻밖에, 덕분에, 황송하게, 다소 느끼하게, 우아하게, 폼 나게, 맛있게, 감격스럽게도 칼과 포크를 이용한 식사, 즉 양식으로 그날의 저녁식사를 해결했습니다.
노숙인 선생님들이 돌아가신 다음, 공지영 님과 클럽 회원들, 그리고 학장님을 비롯한 지원센터 직원들이 함께 간단한 뒤풀이도 했습니다. 거기서 임 신부님(학장님)은 작가나 클럽회원들이 갖고 있던 근본적인 의문, 즉 ‘노숙인에게 인문학 강의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명쾌하게 답변해주셨습니다.
“애초 그분들은 타인의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물론 고마움 따위를 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문학 강의를 듣고 난 뒤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그네들의 얼굴에서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발견했을 때, 바로 저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 그게 바로 자활의 의지로 변화하리라고 저희들은 믿고 있습니다.”
클럽 회원들과는 별도로 3차, 4차까지 함께 했습니다. 회원 대부분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저마다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노숙인들을 직접 만나보니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옷차림부터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했다. 너무 말끔하게 입으셨고 말씀들도 잘하시더라. 특히 임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 이 분들에게 책 몇 권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했던 의문이 말끔히 해소된 듯하다. 작은 힘이나마 계속 보태고 싶다.”
늦은 시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던 길 택시 안에서,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까지 종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말이 있었습니다. 끝까지 자리를 함께 했던 클럽의 맏형 온리원님이 맥주를 들이키며 하셨던 말씀이었습니다.
“예전에 읽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보면 ‘줌으로써 받는다.’는 말이 나와요. 주는 사랑이 곧 받는 사랑이라는 뜻이겠죠. 오늘 새삼 그 말을 곱씹게 됩니다. 오늘 치과 문까지 닫고 왔는데, 그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줌으로써 받는다.’는 말, 그 흔하디흔한 말이 그토록 절절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공명을 일으켰던 때가 있었던가 싶습니다. 공지영 님의 말마따나 우린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거나 혹은 알고 있다고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녕 알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