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연세대 노천극장. 계단식 원형극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비도 오지 않는데 모두들 흰색 비옷을 입고 상기된 표정을 보이고 있다. 데뷔부터 참으로 독특한 음악세계만을 펼쳐 보이고 있는 가수 싸이가 여름을 제대로 즐기게 해주겠다며 벼른 콘서트! 인생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즐기고 싶은, 즐겨야 하는 이들이여 자, 다들 준비 됐는가? 본인의 표현을 빌려 ‘거룩한 싸이 콘서트’ 막을 연다. 잠깐! 꽃정장, 꽃단장은 사양. 빨리 비옷 챙겨 입자!
관객에게 명령하는 오만방자한 싸이!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시작된 무대. 한여름 공연 가뭄에 숨은 열정을 발산하지 못하고 바삭바삭 말라가던 팬들 그대로 불붙었다. 스프링클러 바로 테스트 들어가면서 물 뿜어준다. 싸이 여세를 몰아 불멸의 히트 곡 ‘새’로 분위기 하늘 높이 올려준 다음, ‘사노라면’으로 반전. 한껏 뛰놀던 팬들도 잠시 주춤. 그러나 싸이 대번에 눈 부릅뜨고 질타한다. “2층, 3층 안 보일 줄 알아? 조용한 곡 나오니까 바로 앉는데 오늘 한 명이라도 앉으면 나 노래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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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새됐어~ (사진 제공: 좋은 콘서트) | |
어디 그뿐인가? ‘일어나’ ‘손들어’ ‘뛰어’.. 싸이는 계속해서 명령하고, 그 반응이 조금이라도 못마땅하면 노래를 부르다가도 멈추고 춤을 추다가도 눈을 부라린다. 싸이가 즐기는 ‘성별가르기, 구역가르기’ 놀이를 보자. “싸이의 형제만 소리 질러봐” “싸이의 자매만 소리 질러봐”로 관객들의 함성을 강요하며, 싸이의 가생이, 싸이의 모서리, 싸이의 센터로 구역을 정해 함성 체크를 한 뒤, 함성 파도타기를 시킨다. 더군다나 가장 열등한 구역은 공연 내 외면당한다. 그야말로 스파르타식 관객 길들이기다. 그런데 이게 마조히즘인가? 다들 좋아 죽는다.
관객 괴롭히는 싸이!이번 공연의 가장 중요한 소품 비옷! 입장할 때 비옷을 나눠주긴 했지만, 거대한 살수차를 보긴 했지만, 설마 2층 중간에 위치한 내 자리까지 물줄기가 오겠어? 제대로 왔네~ 스프링클러가 360도 설치되어 있을 줄이야! 게다가 수압이 아주 좋다. 멀리 멀리 세차게도 뿜어준다. 중간에 시리즈로 여름 노래를 부를 때는 아예 장맛비다. 싸이는 씩 웃으며 앞에서 호스까지 대동해 물을 뿌린다. 괴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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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로 물 뿌리는 싸이, 뱃살 부담 (사진 제공: 좋은콘서트) | |
그런데 이게 또 애들 물장난하는 것 마냥 즐겁다. 쫄딱 젖어서들 뭐가 좋다고 다들 웃고 있다. 노래에 맞춰 첨벙첨벙 가열한 점프까지!(물론 집에 돌아올 때는 무릎까지 젖은 바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불편했다. ‘싸이 콘서트 다녀오는 길’이라고 이마에 써 붙일 수도 없고..) 이미 몇 번의 물세례에 노천극장은 홍수다. 앉고 싶어도 앉을 수가 없다. 강요된 스탠딩! 가만히 서 있으면 다리 더 아프니까 까짓 춤이라도 춘다.
싸이, 역시 준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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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콘서트 - 현란한 춤과 의상, 볼거리 (사진 제공: 좋은 콘서트) | |
끊임없이 눈을 즐겁게 하는 공연이 있다. ‘인생 즐겨’가 목표인 싸이의 공연은 오죽하겠는가? 일단 무대연출이 압권이다. 무대 뒤에는 둥글게 화면이 설치돼 있는데 살짝살짝 각이 졌다. 그래서 객석을 비출 때는 같은 장면이 5개로 나눠지면서 훨씬 더 열광하는 듯, 훨씬 더 많은 인파가 몰린 듯 효과를 높인다. 무대 양쪽으로 날개처럼 뻗은 통로도 포인트다. 싸이가 한번씩 달려주면 왠지 모를 역동성이 느껴짐과 동시에,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2, 3층 팬들과의 접근성도 높인다.
수많은 소품도 볼거리다. 솔직히 싸이의 공연은 노래만으로는 지탱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 따라서 ‘댄스가수 싸이’가 갖는 취약한 부분을 무마할 다양한 볼거리들이 제공된다. 누가 디자인했을까 몹시 궁금한 독특하면서도 창조적인 의상, 영화 <브링 잇 온>에서 봤던 하늘을 나는 점프와 헤드스핀까지 선보이는 현란한 춤꾼들, 하늘에서 떨어지는 풍선과 색종이, 멋진 영상에 불꽃놀이까지. 실제로 객석에서는 공연 내 ‘우와~’하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또한 다양한 장르의 각기 다른 분위기를 가진 게스트들도 일품이다. 이하늘, 이재훈, 리쌍이 초대돼 공연을 한껏 풍성하게 만든다.
싸이 공연의 백미, 패러디 무대!공연 때마다 관심을 더해가고 있는 패러디 무대! 2003년 박지윤, 2004년 보아, 2005년 아이비 패러디로 요염함과 발랄함, 섹시함의 이면(?)을 보여줬던 싸이. 이번 공연에서는 특별 보너스로 일단 이들 3가수의 무대를 짧게 요약해준다. 기본 옷차림은 ‘성인식’을 노래하던 박지윤의 무대의상이다. 깊게 찢어진 치맛자락 사이로 육중한 두 다리가 고개를 내밀 때마다, 과도하게 튀어나온 배와 엉덩이가 심하게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알 수 없는 전율이 느껴진다.
대망의 2006년 패러디는.. 이효리의 ‘Get ya'! 특수 제작한 의상에, 특별 전수받은 댄스로 이른바 시계태엽 춤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싸이의 자매들 웃느라 자지러지고, 싸이의 형제들 괴로움에 머리를 쥐어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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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썸머스탠드 2006 | |
인생 즐기는 멋진 싸이!무대는 지난 7월에 발매된 <싸집> 수록곡 ‘연예인’과 ‘We are the one'으로 끝이 났다. 한바탕 쏟아진 소나기처럼 속까지 뻥 뚫리는 시원스런 공연이었다. 가수 싸이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창력이나 춤(세븐이나 비와는 다르지 않은가..), 꽃미남 외모, 8등신 몸매와는 거리가 먼 그가 가수로서 굵은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역으로 그런 그가 지닌 당당함 때문이 아닐까? 삶의 중심은 ‘나’라는 지극히 B형다운 자신감! 또한 그 당당함은 시간이든 돈이든 숱한 기술이든, 그가 인생을 즐기기 위해 기울이고 있는 피나는 노력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해가 갈수록 재미를 더하는 그의 공연이 바로 그 결과물이 아니겠는가?!
소리 질러, 음악에 미쳐, 인생 즐겨! 진정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의 멋진 연예인도 될 수 있다. 싸이처럼!
싸이 썸머스탠드 2006 2006년 8월 19일 ~ 20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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