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참 어정쩡할 때가 있다. ‘그리움’을 예로 들어보자. 그리움은 사랑이 불꽃처럼 타오를 때나, 가슴 시린 이별에 술과 눈물로 밤을 지새울 때는 잘 떠오르지 않는 단어다. 헤어지고 나서도 한참은 지나, 이제 누굴 붙잡고 하소연하거나 소리 내 울기도 민망할 즈음 슬그머니 가슴 속에 피어나는 게 그리움이다. 그러니 얼마나 어정쩡한가? 마음껏 사랑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돌아선 것도 아닌,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서 어쩌지도 못하는 마음..
이 어정쩡한 마음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밴드가 있다.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그들의 재주는 비상하다. 게다가 참으로 시린 가사는 모순 되게도 흥겨운 리듬에 실린다. 또한 보컬은 자신의 음역처럼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게, 그야말로 딴 사람 얘기인 양 무덤덤하게 불러 재낀다. 그들의 표현을 빌려 ‘흔해 빠진 사랑 이야기’를 노래하는 롤러코스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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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콘서트 - Listen 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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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모든 곡이 타이틀곡이라 해도 무방할 5집 앨범으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던 롤러코스터가 5월에 이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석 달 만에? 이례적이다. 그런데 공연장이 석연찮다. 아무나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LG아트센터. 물론 롤러코스터가 ‘아무나’는 아니지만 왠지 정장 입고 공연하는 듯한 어색함. 분명 쌍방과실(^^)일 거라는 생각으로 공연장을 찾는다. ‘Close To You'로 무대를 연 그들도 첫 인사 뒤에 바로 공연장 얘기를 꺼낸다. 8년 전 데뷔할 때는 2백석 규모의 공연장이었는데, 이렇게 크고 좋은 무대는 처음이라고(정말 좋은지는 더 두고 보자).
1부는 ‘님의 노래’, ‘다시 월요일’ 등 5집 수록곡이 주를 이룬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만 하겠다던 그들의 다짐은 이번 5집 앨범에서 응축된 멋을 제대로 들려준다. 밴드가 하고 싶은 음악과 팬들이 듣고 싶은 음악이 접점을 이뤘다고나 할까?! 특별한 건 없다. 리듬이 흥겹기는 한데 아주 신나는 건 아니고, 가사가 슬프기는 한데 목 놓아 울 수도 없다. 여전하다. 그들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변함없는 미디움 템포에, 몽롱하면서도 조금은 우울한 음색으로 표현해낸다. 앞서 표현을 빌리자면, 1집부터 5집까지 일관된 이 어정쩡한 분위기!
공연장에서는 어떨까? 대부분 스탠딩 공연이지만 막상 일어서서는 이른바 미친 듯이 달릴 수도 없다. 현란한 쇼맨십을 보이는 뮤지션도 없고, 절규하며 노래하지도 않는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그러니 객석의 몸짓마저도 어정쩡해진다. 그런데 이게 매력이다(요즘 유행하는 그루브-groove한 맛인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흐느적거림..). 어쩐지 편하고, 충분히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어쩌면 특별하지 않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이 빠져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엔 항상 ‘중독’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니나 보다.
이 흐느적거림마저도 찾기 힘들었던 1부 무대가 끝나고 그룹 ‘베이시스’의 멤버로 더 알려져 있는(아마 처절한 노래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정재형이 무대에 올랐다. 가슴을 후벼 파는 것과는 다른, 세상 끝에 서 있는 듯한 아득한 노래로 골수팬들의 울증을 증폭시키는 그는 의외로 활기차다. 파리에서 공부 중인 그는 오랜만에 노래를 부르게 돼서 긴장된다며 건반 앞에 앉아 몇 번이고 헛기침을 해댄다. 솔로 앨범에 실린 ‘시련’과 베이시스 시절 ‘내가 날 버린 이유’로 몇 명의 눈에서 참지 못할 눈물을 뽑아낸 그는 중요한 정보를 건넨다. 이상순이 유학 간다고. 아아 석 달 만에 다시 콘서트를 연 이유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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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이상순, 보컬 조원선, 베이스 지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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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렁임 속에 2부가 열린다. 의자도 편하고, 냉방시설도 잘 돼 있고, 노래도 좋고, 사운드도 좋고, 조명도 좋고.. 좋긴 좋은데 뭔가 욾쉬운 이 극장 같은 분위기.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는지 멤버들이 모두를 일으켜 세운다. 기다렸다는 듯 의자를 박차고 일어선 팬들은 리듬에 몸을 맡긴다. ‘두 사람’, ‘내게로 와’, ‘Last Scene'이 흐르면서 조금씩 땀이 맺힌다. 말이 많지 않은 밴드인지라 ‘내 손을 잡아줘’, ‘무지개’ 등 1집에서 5집을 쉼 없이 오가며 그들의 노래만 원 없이 듣는다.
마지막 곡은 5집 타이틀 곡 ‘숨길 수 없어요’. 중간에 나오는 ‘아아 아아아아아’를 조원선만큼 제대로 읊조릴 사람이 있을까? 조원선의 음색이 갖는 매력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 무덤덤한 호소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앵콜 무대는 ‘습관’으로 이어진다. 1집에 발표된 노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손색이 없다. 이것이 롤러코스터의 음악이 갖는 또 다른 멋이다. 대부분의 뮤지션은 음반이 늘수록 처음과는 다른 느낌(음악적 발전을 포함해)이 생기고, 그래서 초창기에 수록된 곡들이 다소 촌스러운 맛이 나게 돼 있는데, 그들의 음악은 시차를 느낄 수가 없다. 물론 처음의 어쿠스틱한 면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어차피 팬들의 귀도 전자음에 익숙해져가니 자연스럽다 하겠다.
앵콜 무대에서는 처음으로 발매한 digital single에 수록된 곡도 소개했다. 2집 수록곡을 편곡한 ‘어느 하루’와 신곡 ‘유행가’. 특히 ‘유행가’는 그들로서는 굉장히 빠른 템포에 속하는 곡으로 가사나 멜로디가 신선하다. 그러고 보니 이게 앵콜 무대인지 3부인지 모르겠다. 멤버들도 팬들도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고, 공연은 어느덧 3시간을 넘어간다. 아마도 이상순을 보내고, 모두들 언제 다시 공연장에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롤러코스터의 공연장에서는 항상 맥주 생각이 간절하다. 한 병 들고 흐느적거리면 ‘딱’이지 싶다. 그러나 옆에서 깔끔한 유니폼 차림의 진행요원들이 사진촬영도 못하게 하고 있으니(앵콜 무대까지 철저 감시!) 느낌이 ‘싹’ 가신다. 공연장의 질과 공연의 만족도가 꼭 비례하지는 않나보다. 다소 좁고 사운드가 왜곡돼 들리더라도, 좀 어정쩡하더라도 땀 좀 제대로 흘릴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그립다.
롤러코스터 라이브 콘서트 Listen Up!
2006년 8월 10일 ~ 12일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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