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찬, 강현민, 고찬용, 유희열, 심현보, 이한철, 나원주, 정지찬, 양해중, 박경환….
이 굵직굵직한 뮤지션들은 모두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배출한 인재들이다. 지난 1987년 가수 유재하가 25살이라는 푸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그로부터 2년 뒤 그를 추억하고 음악 장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음악경연대회가 열렸다. 16차례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싱어 송 라이터를 발굴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그러나 지난해에는 (서글프게도) 재정적인 이유로 열리지 못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부활시키기 위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여러 뮤지션들이 모였다. 환상의 하모니로 무대를 연 Sweet Sorrow(<유재하 음악경연대회> 16회 대상)를 비롯해 2년 만에 귀국한 안-트리오, 정원영 밴드, 자우림(전날은 박정현), 토이의 유희열, 김광민, 기타 세션들까지. 제각각 이름을 내걸고 공연을 열어도 웬만한 체육관 하나는 너끈히 채울 이들이 유재하를 기억하기 위해 한 무대에 오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콘서트문화의 특징 하나를 짚고 넘어가자면 지나치게 ‘가수’ 위주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국내 공연산업의 구조적인 특성이나 국내외 공연문화를 비교분석할 입장과 그릇은 못 된다). 가수의 인기(물론 음악성은 기본)에 부합해 무대가 마련되고, 공연장에서는 오로지 한 가수의 노래와 율동, 말과 몸짓이 서너 시간을 장악한다. 물론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일 테니 마음껏 환호할 수 있는 꿈 같은 시간이겠지만, 만만찮은 티켓 값과 대다수 사람에게 공연장을 찾는 일이 특별행사임을 고려하면 역시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안타까운 현상이다.
때문에 이번 공연은 한 공간에서 장르를 초월한 여러 뮤지션의 다채로운 무대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뜻 깊은 자리다. 실제로 Sweet Sorrow는 드라마 <연애시대> 주제곡인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등으로 환상의 화음변주를 들려줬고, 실험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연주를 자랑하는 안-트리오는 수지 서와 함께 새 앨범에 수록된 ‘All I Want’를 선사했다.
무대는 멤버 가운데 2명(키보드의 박혜리, 기타의 임헌일)이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인 정원영 밴드로 이어지면서 깊이를 더해간다. 보컬 최금비의 무대매너가 돋보이는 ‘Somebody to love’를 비롯해, ‘선물’, ‘붕붕붕’, 그리고 유재하 작품의 ‘비애’가 정원영 밴드만의 독특한 느낌으로 울린다.
이어서 준비한 팀은 자우림. 평소 발랄하면서도 광기 어린 무대를 펼쳐보이는 자우림도 이번 무대에서는 다소 숙연한 모습을 보였다.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의자에 앉은 김윤아는 새롭게 편곡한 ‘새’, ‘파애’, ‘마왕’ 등을 선보였고, 유재하 노래로는 ‘우울한 편지’를 들려줬다.
유희열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의 환호가 뜨겁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4회 대상 출신인 그는 정원영 씨와 김광민 씨가 당시 심사위원이었다며, 세월이 흘러 이렇게 한 무대에 서게 됐다고 감회에 젖었다. 토이 객원가수 김연우와 김형중도 오랜만에 무대에 올라 ‘여전히 아름다운지’와 ‘좋은 사람’,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등을 노래했다.
마지막 무대는 김광민. 유재하가 떠난 뒤 작곡했다는 ‘지구에서 온 편지’를 전달한 김광민은 세션들과 함께 ‘사랑하기 때문에’를 편곡해 장장 10여 분에 걸쳐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했다. 평소 말과 몸짓이 조용하고 소박하기만 한 그인지라 뮤지션으로서의 열정과 힘, 그리고 앞서간 뮤지션을 기리는 뜨거운 마음이 돋보였던 무대였다.
이렇듯 음악을 사랑하는 여러 뮤지션들의 열정으로 올해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다시 열릴 전망이다. 덕분에 객석을 채웠던 이들도 감흥과 함께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게 됐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비록 공연의 취지가 기금 마련을 위한 것이었다지만 공연장을 찾은 이들이 가장 기대했던 것은 분명 유재하의 음악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음반으로밖에 접할 수 없는 그의 음악을 공연장의 큰 울림으로 느끼고, 그 아름다운 선율과 깊이 있는 가사를 함께 호흡하고 싶었을 텐데…. 사실 각 팀이 한 곡씩 이어간 노래로는 ‘유재하의 음악’을 되뇌려던 이들의 묵은 갈증을 해소하기엔 다소 모자란 감이 있었다.
무대에 오른 팀들은 저마다 유재하의 노래가 자신의 음악에, 국내 대중가요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이른바 ‘유재하 효과’란 무엇일까? 무릇 ‘순화(純化)’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지친 마음을 쉬게 하는 그 무엇, 쫓기는 일상에서 잠시 멈춰 서 들여다보는 맑고 깊은 그 무엇,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해가는 젊은 날의 아련함을 돌아보게 하는 그 무엇. 유재하의 음악에는 바로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이 유재하를, 그의 음악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이유가 아닐까.
날마다 수많은 새로운 노래가 쏟아져 나오지만 오래 기억되는 곡은 그리 많지 않다. 다시 개최될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통해 재능 있는 뮤지션들이 다양한 음악세계를 펼칠 수 있는 활로를 모색할 수 있길 바란다. 더불어 유재하를 비롯해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뮤지션들의 음악을 함께 기억하고 나눌 수 있는 무대가 더욱 풍성하게 열리는 그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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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
하 노래 | T-Entertainment | 2001년 12월
사람이 너무 힘들고 마음이 많이 아플때가 많다. 그리고 어느정도의 선을 넘어서면 나락으로 침전해가곤 한다. 그런 아픔을, 생채기난 가슴의 상처를, 보듬는 목소리로 난 김광석을 꼽곤 했다. 박찬욱감독의 "김광석이 있었기에 우리는 80년대를 버텨냈는지 모른다."는 말에 나는 "그리고 지금을 버티는지도 모른다."를 덧붙이곤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김광석님과 함께 유재하님을 주저없이 꼽고 싶다. - 상후니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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