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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아 그림책의 대가, 고미 타로

일본의 그림책의 역사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오래되었습니다. 1680년대 이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 출판이 시작되었고, 1716년에는 어린이용 도서의 표지를 빨갛게 칠해 이를 ‘아카혼(빨간책이란 뜻의 일본어)’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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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 타로를 소개하기에 앞서

일본의 그림책의 역사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오래되었습니다. 1680년대 이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 출판이 시작되었고, 1716년에는 어린이용 도서의 표지를 빨갛게 칠해 이를 ‘아카혼(빨간책이란 뜻의 일본어)’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그림책의 기원은 12세기 헤이안 시대의 ‘겐지 모노가타리 에마키’에 두고 있습니다. 설화나 전기, 사찰에 관한 이야기를 옆으로 길게 펼쳐지는 종이에 왼쪽과 오른쪽에 번갈아가며 그림과 글을 써넣은 것으로, 그림만으로도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서사성이 풍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무구한 역사를 지닌 일본의 그림책이 본격적인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 계기는 이와나미쇼텐 출판사가 1953년 ‘이와나미 어린이책’을 통해 서구의 고전 명작 이야기 그림책을 번역, 소개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그림책의 출판 부수도 비약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연간 무려 1,000여권을 넘게 출판하였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새롭게 빛을 발한 장르는 일본 창작 그림책 작가들이 주축이 된 아기 그림책, 민화풍의 창작 그림책을 들 수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바로 아기 그림책으로 유명한 고미 타로의 작품을 통해 우리 그림책 문화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일본 그림책의 영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어나고 자라는 것은 아이의 의지

1945년 생으로, 작년에 환갑이었던 고미 타로는 도쿄에서 태어나 구와자와 디자인 연구소에서 공업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산업 디자이너로 일하다 그림책이 좋아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어 인간을 보다 근원적인 데까지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고미 타로씨는 고단샤와의 인터뷰에서 “합리적으로 살자고 하는 것이 문화이지만, 그 뿌리에는 근원적이고 원시적인 본능이 가장 큰 에너지로 움직이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먹는다’고 하는 일도, ‘어떻게 먹을까’가 아니고 우선 ‘배가 고파지고 있다’가 근원이고 엄청 배가 고프기 때문에 밥을 찾아 먹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보다 더 멋지게 먹는 방법에 대한 인류의 탐구가 시작되어, 식문화라는 것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의 한 예입니다. 그런데 문화에 가린 근본적 근원은 잘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그림책 속에서라도 문화 속에 가려진 원시적인 것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것은 어른의 의지가 아니라, 아이의 의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것도, 기르는 것도 아니며, 엄마의 자궁 밖 세상으로 나오는 것과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모두 아이의 의지라는 뜻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서포트할까’의 도구로서 그림책을 바라보는 시각보다는 아이가 어떻게 그림책이라는 작은 세상에 반응하면서 스스로 체득하는지, 그 근원적인 것을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제시해주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겠죠!

단순하고도 간결한 그림

고미 타로의 그림책은 선을 최소로 줄인 예쁘고 간결한 그림이 특징입니다. 공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의류와 문구류의 디자이너로 활동한 경력이 보여주듯이 그의 그림들은 팬시용품처럼 한 눈에 쏙 들어오는 매력이 있지요. 또한 그는 오리고 가리는 기법을 써서 전체와 부분으로 보이는 그림들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사물의 형태를 바꾸거나 숨김으로서 우리들의 고정 관념이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를 확인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누가 숨겼지?』『누가 먹었지?』에서는 왼쪽 편에 숨긴 그림을 제시하고 “누가 숨겼지?” 혹은 “누가 먹었지?”라고 어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유심히 오른쪽 그림을 살펴본 아이들은 같은 여러 마리의 젖소 속에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젖소가 왼쪽 그림과 같은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식이지요.


그림만큼 간결한 글

고미 타로의 그림책들에서 글은 그림들만큼이나 간결하고 산뜻합니다. 『저리 비켜』를 보면, “비켜, 뱀아”가 장면마다 되풀이 되는데, 그래도 뱀이 비켜주지 않으니까, 주인공의 화가 점점 더 커진 것처럼 글자도 커지면서 “비켜”가 되풀이되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켜주지 않는 뱀에 화가 난 아이는 결국 어떻게 했을까요? “비키지 마…”입니다. 무릇 그림책이 『저리 비켜』, 『나하고 놀자』에서처럼 글을 제대로 깨우치기 이전의 말을 배우는 유아를 대상으로 할 때는 일상생활에서 그네들의 언어 패턴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 보다 진정성이 있겠지요. 더불어 글을 진행하는 방법이 그림과 같이 단순한 패턴으로 계속 반복되어 서서히 확장되다 보면 부수적으로 학습의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미 타로의 그림책이 교육적이라고 말하지만, 책 요리하는 마녀인 저는 머리 복잡해질 필요 없이 간결해서 좋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책이 간결함에서 끝났다면 저처럼 섬세한 마녀가 그의 책들에 후한 점수를 주었을 리가 없겠지요. 그의 작품 속에는 간결함에서 배어나는 재치와 명랑한 기분이 있는데, 이는 “이제는 할아버지예요”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손자들을 통해 아이의 눈높이가 어디인지 알고 그것을 맞추려고 하는 노력에 다름 아님을 잘 알고 때문이지요. 한편, 고미 타로는 다작의 작가로도 너무나 유명한데, 일본에서 출판된 것만 3백 종이 넘는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지요.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상’과 일본 산케이 아동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이제는 명실상부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그림책 작가임에 분명하네요.

몸, 몸부터 이야기 해봐요

“아이 야하고 민망해라”라고 말씀하신 분? “이런, 내숭.” 아이들을 가만히 보세요. 저도 제 조카가 이제 23개월이라 기저귀를 떼고 용변을 스스로 보는 훈련을 시작해서 그런지 이제부터 말씀드릴 고미 타로의 몸을 다룬 그림책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과연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몸을 인식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일까요? 먼저 몸을 깨끗하고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목욕을 해야 하고, 목욕은 내 몸을 깨끗하게 해서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좋은 것임을 알려주는 책, 『저런, 벌거숭이네!』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내용은 간단해요. 옷을 제대로 벗지 못하는 용이라는 어린 아이가 사자 옷을 걸치고 놀다가 목욕 시간이 되자 엄마의 지시대로 옷을 벗기 시작합니다. 아직 혼자 벗긴 힘겹지만, 용이는 조끼도 벗고, 셔츠의 단추도 푸르고, 바지도 내리고, 양말도 벗지만, 우후후… 저 마녀는 옷을 다 벗은 주인공 용이가 곰인 줄 알았지 뭐예요. 그런데 ‘짠’ 곰의 탈을 벗으니 용이는 남자 아이군요. 거품 목욕을 하고 있는 용이의 모습은 마녀 고모가 세수라도 할라치면 옆에 와서 자기 손에 비누칠을 하고 또 하여 거품을 내면서 까르르 웃는 제 조카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요. 아이들은 24개월 전후해서 옷을 입고 벗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다는데요, 이 나이의 아이들이 보기에는 안성맞춤인 그림책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마처럼 서서 누는 똥’, ‘사슴처럼 걸으면서 누는 똥’, ‘토끼처럼 여기저기에 누는 똥’ 그리고 ‘어른도 응가’, ‘어린이도 응가’, ‘아가는 아기 변기에 응가’, ‘갓난아기는 기저귀에 응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냐고요? 바로 『누구나 눈다』의 일부예요. 초식 동물이든 육식 동물이든 사람이든 소화되지 않고 남은 것은 몸 밖으로 배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똥’ 혹은 ‘똥을 눈다’라는 표현에 무척이나 인색하여 눈살을 찌푸리지요. 정말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말이에요. 다시 제 조카 이야기를 하자면, 저희 집에 자주 놀러오는 조카의 용변 훈련을 위해 얼마 전에 작고 예쁜 용변기를 사주었어요. 사실 몇 번 옷에 실례를 한 적도 있지만, 예쁜 용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이 즐거운지 이제는 응가가 마렵다거나 쉬가 마려운 것이 아닌데도 가끔 옷을 내리고 용변기에 편안한 모습으로 스스로 앉더군요. 기저귀를 떼어야하는 아이들이 저희 조카처럼 용변기에 앉는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그림책이지요.

마녀의 조카가 요즘은 인터넷에 폭 빠졌어요. “꾸러기 꾸러기”하면서 인터넷 동요 방송을 틀어달라고 하고, 한 번 보기 시작하면 한 시간은 후딱이고 두 시간도 지루해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꾸러기 덕분에 조카는 엄청난 양의 노래를 배우게 되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머리 무릎 팔 무릎 팔’이랍니다. “코 어딨니?”하면 자신의 코를 만지고, “발가락?”하면 발가락을 만지면서 신체의 주요 부위의 명칭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더군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마녀 고모한테 고민이 생겼어요. ‘차츰 차츰 각 신체 부위가 하는 일을 단어로 표현하도록 가르쳐주어야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했죠. 그러다 『몸의 구석구석이 말하기를』을 함께 보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단순한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니까 까르르거리면서 웃으며 “손, 발, 머리”하면서 자신의 손가락으로 그림을 짚으며 따라 하고, 그림에서처럼 마실 물을 컵에 달라고 하기도 하고, 신발장에서 신발을 들고 오기도 하는데, 정말 문제는 사탕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는 거죠. 단 것을 가능하면 멀리하도록 신경쓰고 있는데, 그림책의 영향은 정말 지대하더군요.

“놀아줘“라고 말하는 아이들

오늘따라 제 조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게 되지만, 고미 타로의 많은 그림책들은 바로 제 조카처럼 24개월을 전후한 아이들이 보기에 더 없이 좋기 때문에 자꾸 조카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어느 날, 조카가 제 방문을 똑똑 노크해서 제가 문을 열어주자 “고모, 놀아줘”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어찌나 귀엽고도 불쌍하던지요. 늘 바쁜 올케 대신 한가한 제가 사슴이 나오는 고미 타로의 책 『나하고 놀자』를 펼치고 조카를 제 무릎 위에 앉혔어요. 새가 한 마리 나오는데 “놀자~”라고 기린에게 말합니다. 기린이 대답하죠. “안 놀아.” 그럼 새가 간곡한 목소리로 “놀자~”라고 다시 부탁을 하고, 기린은 더 귀찮다는 듯, “안 놀아”라고 반복합니다. 이러기를 계속하다, 기린은 자신의 긴 목을 나뭇가지 뒤로 숨겨버렸어요. 기린과 놀기를 포기한 새는 코끼리에게 “놀자~”라고 제안해보지만, 코끼리도 “안 놀아”라고 거절합니다. 조카는 자신의 감정을 작은 새에 대입해서 “놀자~”라고 ‘자’자를 질질 길게 빼면서 따라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기린이나 코끼리를 대신해서 “안 놀아”라고 말하면 마치 자신에게라도 말한 냥, 더 애달픈 음성으로 “놀자~”라고 하더군요, 어찌나 귀엽고도 안쓰러운지요, 꼭 안아줄 수밖에요! 그나저나 너무나도 활동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저희 조카가 문득 문득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콘센트에 젓가락 등을 넣어보는 것은 아닌지…, 벽장 속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몰래 들어갔다가 그만 그 속에서 잠이 드는 것은 아닌지…. 『혼자서는 위험해』에서는 쥐돌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혼자 있어 불안해지고 그 불안이 점점 더 커져 실수를 연발하게 되는 아기 쥐돌이가, 아빠와 함께 함으로써 결국 안도하게 된다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미 타로는 이 책에서, 유아기의 애착 관계 형성의 시기에 중요한 심리적 요소인 ’분꺸불안‘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연을 통해, 세상을 통해 배워요

『송아지의 봄』은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태풍이 몰아치고, 가을의 논은 고요하고, 겨울에는 눈이 오는 자연의 이치를 간결한 그림과 군더더기 없는 글로 보여주고 있는 그림책입니다. 또한 『모두가 가르쳐 주었어요』는 고양이에게서는 걷는 법을 배우고, 원숭이에게서는 기어오르는 법을 배우고, 올빼미에게서는 밤에 관한 것을 배우지요. 이름을 알 수 없는 예쁜 여자애는 학교 선생님들과 많은 친구들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하나하나 배우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을 어린 아이들이 무연히 지나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사물들, 동물들, 식물들을 통해 조금씩 배워나가듯이 말이죠. 이 책은 그의 책 『누가 숨겼지』와 함께 미국 스칼라스틱 출판사의 영어 교과 과정인 ‘Literacy Place’에서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상상의 세상 속으로 빠져보세요

아이들은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꿈에 본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자신이 상상한 것을 진짜라고 믿고 하는 것인지, 어른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꺼내는 이야기는 황당하기만 하고, 심지어 걱정스럽기까지 합니다. 어른들은 그런 이야기를 처음에는 들어주는 척하지만, 이내 무시해버리지요. 그런데 고미 타로의 『신기한 텔레비전』을 보면 이런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마음을 전적으로 수용해주는 어른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꼬마는 들판에 놀러갔다가 낯선 아저씨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는데 그 아저씨의 텔레비전은 지금껏 꼬마가 봐온 텔레비전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 있던 사자가 ‘어흥’하고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 꼬마를 괴롭히기도 하고, 살랑거리며 놀던 물고기들이 화면 밖에서 헤엄쳐 다닙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갑자기 타잔이 나타나고 코끼리 떼가 달려 나와 꼬마와 아저씨는 ‘쿵!’하고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죠. 어느새 신기한 텔레비전 보기에 폭 빠져버린 꼬마에게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자, 엄마가 텔레비전에 등장해서 꼬마를 찾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듯, 꼬마는 식탁에서 자신이 경험한(혹은 상상한, 혹은 꿈꾼) 이야기를 신명나게 떠들어댑니다. 보통의 어른들 같으면 “그만해. 그건 꿈이잖아. 그럴 시간 있으면 공부해야지!”라고 했을 텐데, 고미 타로의 책 속의 어른들은 “여보, 우리도 그런 텔레비전으로 바꿔요”라고 반응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은 매우 친숙한 친구와도 같습니다. 무작정 텔레비전을 보지 않도록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이가 보고 싶은 대로 다 보도록 방치해 둘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렇다면, 시간을 정해 놓고 아이가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 엄마와 아빠에게 자신의 말로 전달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고미 타로의 다른 책 『할아버지, 바다가 넓어요』 또한 상상의 세계에 빠진 어린 꼬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할아버지와 바다에 놀러간 꼬마는 할아버지가 독서에 빠져 놀아주지 않자, 자신만의 상상을 이야기하며 할아버지의 독서를 방해합니다. 꼬마가 할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책 그만 보시고 저와 놀아주세요”였을 겁니다. 꼬마가 할아버지에게 말로 전하는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 속에서는, 저 멀리 바다에서부터 문어처럼 생긴 낯선 외계인이 인사를 해오고, 코끼리처럼 형태를 바꿔 꼬마를 등에 태워주기도 합니다. 그 외계인이 뱀으로 바뀌었을 때, 꼬마는 할아버지를 놀래킬 요량으로 “할아버지, 뱀이에요”라? 말을 걸지만 할아버지는 무심하게 “조용히 해다오, 어려운 책을 읽고 있단 말이다”라고 꼬마에게 무안을 줍니다. 그러나 꼬마가 여기에서 멋진 재치를 발휘해서 “우아, 예쁜 누나다!”라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뒤를 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되지요. 이 장면에서 말쑥해진 할아버지는 별사탕을 먹고 갑자기 상상의 세계를 인정하게 되는 모습으로 바뀌는데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어둑한 시간이 다가오자, 할아버지는 비치파라솔을 뽑아 거꾸로 뉘어 놓고, 꼬마에게 “빨리 타라, 이걸 타고 돌아갈 거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꼬마의 상상의 세계를 수용하는 어른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는 이 책은, 반전 부분에서 고미 타로의 재치가 반짝입니다.

더 미루고 싶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곳 - 치과

「이빨이 들쑥날쑥한 악어도 더 놀고 싶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조립에 넋이 빠진 의사선생님도 더 놀고 싶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악어를 환자로 맞이한 의사선생님도 깜짝,
손에 드릴을 들고 있는 의사선생님을 본 악어도 깜짝.
그러나 둘은 한번 해 보기로 각오합니다.
악어의 깊숙한 이에 손을 넣은 의사 선생님은 악어가 그만 놀라, 입을 다무는 바람에,
“아, 아파!”
악어는 가뜩이나 긴장하던 차에 의사 선생님의 손이 충치에 닿자 그만 찌릿해서,
“아, 아파!”
서로 화가 나도
어쩔 수 없지요.
후유, 결국 해냈습니다.
“싫어, 싫어.” 악어가 이야기 합니다.
악어는 굳은 결심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를 닦자, 이를 닦아.”」

-『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



고미 타로는 굳이 이러쿵저러쿵 설명조로 말을 늘어뜨리지 않습니다. 그 대신 악어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치과 의사 선생님이 반복하도록 하는 상황을 기막히도록 기발하게 설정함으로써, 악어와 치과 의사 선생님 모두 놀고 싶은 심정이란 점에서 일치하고, 누구나 병원 가는 것은 귀찮고 무시무시한 일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왼쪽 페이지는 악어의 심리 상태를 표출해주는 표정과 말이, 오른쪽에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과 말이 똑같지만, 다른 느낌으로 전달이 되도록 말입니다. 특히 치과에 가기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 병원의 공포심을 잊을 수 있도록 악어의 이를 치료하는 의사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안심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 마녀도 걱정입니다. 치과 가기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시던 아버지가 오늘 낮에 치과에 다녀오셨다가 치과비용을 이야기하셨는데… 띠옹, 눈이 튀어나올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이를 닦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제때 제때 치과에 가야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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