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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그림책의 세계를 연 작가, 토미 웅게러

그런데,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과 뱀의 우정의 평화를 깨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어른들로부터 전해져 오는 ‘한갓 미물도 은혜를 갚을 줄 안다‘는 우리말이 떠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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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뱀이였어요?

많은 사람들은 어린이들이 보는 책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쉽게 동일시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대신 아직 세상에 대한 이해력과 정서의 안정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이 그림책에서 다루어야 하는 소재는 어린이들과 친숙한 것이어야 하고, 이야기는 밝고 희망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토미 웅게러는 이런 의견이야말로 어린이 세계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이며 아이들이 무엇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감정은 사회 속에서 행해지는 학습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예로 어른들은 실제로 뱀을 만나 구체적인 해를 입은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뱀은 무조건 사악한 존재이고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어른들의 선입견으로 백지와 같이 천진무구한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호불호를 주입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한 것이라고 토미 웅게러는 주장합니다.

『크릭터』의 이야기는 뤼즈 보도 할머니가 어느 날 아프리카에서 파충류를 연구하는 아들로부터 생일 선물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독자들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선물 꾸러미 속에는 똬리 틀은 커다란 보아 뱀이 들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할머니도 기겁을 했지만, 동물원에서 독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정성껏 기르기 시작합니다. 뱀에게 젖병을 물려 우유를 먹이기도 하고, 뱀의 길고 날씬한 몸에 맞을 긴 털옷을 짜주기도 하지요. 그 뿐이 아닙니다. 할머니는 당신이 일하는 학교에까지 보아 뱀을 데리고 와서 아이들과 함께 알파벳 공부며 숫자 놀이를 하도록 하죠. 그때마다 유연한 뱀의 몸이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좋은 교구 노릇을 합니다. 남자 아이들은 보아 뱀을 미끄럼틀 삼아 함께 놀고, 여자아이들은 줄넘기 삼아 함께 즐깁니다.

그런데,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과 뱀의 우정의 평화를 깨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어른들로부터 전해져 오는 ‘한갓 미물도 은혜를 갚을 줄 안다‘는 우리말이 떠오르더군요. 바로 할머니의 집에 강도가 침입하였고, 그 때 몸을 아끼지 않고 보아 뱀이 강도를 잡는데 앞장을 섭니다. 그림을 보면 어딘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따듯한 느낌이 드는 인물들의 표정 뒤로 단순한 선이 돋보입니다. 사실 처음 『크릭터』를 펼쳤을 때는 검정 펜화에 녹색과 빨강만 사용한 삽화에서 단조로움을 느꼈지만, 몇 장을 넘기면서 다가오는 유연한 느낌의 선과 적절한 여백은 오히려 우리의 뇌리에 깊숙하게 박혀있는 ’뱀은 위협적이다’는 인식을 ‘뱀은 해롭지 않다’는 새로운 인식으로 바꿔주었습니다.

익살과 유머는 토미 웅게러의 재산

2003년 2월 28일, 73세의 토미 웅게러는 독일의 어린이 책 작가상인 에리히 케스트너 상을 받았습니다. 알사스 출신의 프랑스 인인 토미 웅게러가 독일의 문학상을 받은 일은 마침 2003년이 알사스 지방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화해한 지 40년 되던 해인만큼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 웅게러는 수상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습니다.

「“케스트너가 글에 담은 것을 나는 그림으로 그렸다. 케스트너와 나는 세상의 악,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를 무기로 사용하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같은 피를 가진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엇인가는 해야만 한다. 특히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은 사회의 선을 위해 재능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재능을 부여받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선한 의지에서 나온 유머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서 세상 여기저기의 고통을 줄일 수는 있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긴 하지만, 그리고 점점 나빠지고 있지만, 때때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는 곳이다.”」
-『그림책의 이해』(현은자, 김세희 지음)에서 재인용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에서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스트라스부르크는 독일과 프랑스가 번갈아가며 통치한 비운의 땅입니다. 지금은 유럽 의회가 자리 잡고 있지만, 1,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독일의 점령지였습니다. 토미 웅게러는 1931년에 이곳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역사가이면서 대성당에 시계를 설치하는 예술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패혈증으로 사망하자 웅게러는 어머니와 함께 조부모님 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포화 중에서도 그는 어머니가 들려주시는 독일 여러 지방의 전설을 듣고, 근처의 미술관에 들러 많은 그림을 접하게 되었지만, 전쟁이란 것은 어느 한 사람의 삶에서 얌전하게 비켜갈 수 없는 고약한 것인가 봅니다.

웅게러는 자신의 그림책에 무서운 강도, 어린이를 잡아먹는 거인, 뱀 등을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어린 시절 중 폭격을 피해 지하실에 살았던 기억 때문이라고 회상한 바 있습니다. 나치 독일의 체제 하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프랑스인의 압제 상황에서 그가 느꼈던 가치관의 혼란은 “나 역시 아돌프 히틀러 초상화 밑에서 공부했으며 전쟁 중에는 독일어를 못해서, 전후에는 프랑스어를 못한다고 해서 가혹한 벌을 받아 기가 막혔습니다”란 그의 고백에서도 압축적으로 전달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한 채 여기저기를 떠돌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60달러를 손에 쥐고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여기 저기 출판사를 찾아가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고 결국 우슐라 노드스톰이란 편집인을 만나는 것을 계기로 1957년 그의 첫 그림책 『멜롭스 하늘을 날다 Mellops Go Flying』을 출판하게 되고 『뉴요커』등의 다양한 잡지에 그림을 그리면서 재능을 인정받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한 때 베트남 반전 포스터를 그렸다는 이유로 미국 내에서 그의 작품의 출판 금지 처분된 사건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작품 속에서 전쟁이나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소년 시절에 겪었던 경직된 흑백논리의 폐해로부터 배운 바가 크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고향인 스트라스부르크에 들어선 유럽 의회의 슬로건인 “모두 다르지만, 모두 평등하다”를 몸소 실천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는 노장의 예술가입니다. 그의 현재를 가능하게 했던 어린 시절의 고향 마을에는 그가 지금까지 제작한 6천여 점의 미술 작품과 수집한 5천여 점의 희귀한 장난감을 기증한 ‘토미 웅게러 박물관’이 건립되었다고 하는군요.

예사롭지 않은 비범한 상상력은 특이한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앞서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토미 웅게러는 어른들의 시각으로 아이들에게 주어질 그림책의 소재를 한정하는 것에 반대했던 그림책 작가입니다. 1967년 작품인 『제랄다와 거인』과 1969년 작품인 『세 강도』의 등장 인물이나 소재와 사건을 보면 그가 형식적인 반대에서 자신의 주장을 그친 것이 아닌 실천하는 활동가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잡아먹는 식인 거인이 등장하고 사람을 위협하는 강도가 주인공이라고 하면 많은 어른들은 ‘절대로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그림책’의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으려고 서두르실 겁니다. 그런데 잠시 그림 동화의 본래 이야기를 떠올려 보세요.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설 공주’ 이야기나 ‘라푼첼’ 이야기,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는 근래 들어 어른들이 검열을 한 이야기로, 19세기 독일에 살고 있던 그림 형제가 수집했던 민담보다는 꽤 점잖아졌지만 동시에 밋밋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혹자는 여전히 강력히 “아이들에게 ‘잔혹 동화’는 위험하다”고 목청 높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의 정서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하며 유연성이 있어서 어두운 것도 각자의 필터로 정화해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웅게러는 이러한 아이들의 다양성과 유연한 감각에 확신을 갖고 새로운 그림책의 장을 열기 위해 기성 사회에 만연한 이분법적 사고에 도전을 했습니다. 그는 비록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속내에는 작은 일에 감동을 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교화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지요.

아침 식사로 아이들 대여섯 명을 잡아먹는다는 거인은 요즈음 들어 귀리?과 양배추, 찬 감자 요리로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한편 멀리 떨어진 숲 속 마을에 사는 한 농부의 어린 딸인 제랄다는 음식 만들기가 취미인데다 효심까지 깊은 착한 소녀입니다. 아픈 아버지는 아직 거인에 관한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는 어린 딸을 혼자 읍내 장터로 보냅니다. 장터로 가는 길에서 배고픈 거인을 만났지만 거인은 지나치게 허둥대다 그만 바위에서 미끄러지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천진한 제랄다는 다쳐 누운 거인을 위해 즉석에서 장에 내다 팔기 위해 자신의 수레에 담아 온 재료를 절반이나 써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보도 듣도 못한 놀라운 음식의 맛에 거인은 넋을 잃을 정도가 되었고 제랄다를 성으로 초대해 매일 매일 맛난 음식을 먹고 싶어 하게 되었지요. 이렇듯 『제랄다와 거인』의 간추린 줄거리는 전래 동화의 서사와 매우 흡사하지만, 웅게러는 식인 거인을 상대하는 인물을 영웅으로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요리를 잘 할 뿐인 어린 소녀 제랄다를 설정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옛 이야기에 익숙한 어른들에게마저도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위에서 줄거리를 소개하면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이야기의 끝에 거인을 감화시킨 제랄다는 그를 남편으로 맞이하게 되는데요, 보통의 전래 동화의 서사의 종장에서 보여주는 “거인이 제랄다의 요리를 먹고 난 후, 더 이상 아이들을 잡아먹지 않았다“로 그림책의 이야기를 끝마치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을 결혼으로 맺어줌으로써 흑과 백, 동과 서, 빨강과 파랑이 모두 어울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까지 확장시키는 점이 그만의 심각한 유머처럼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요?

“옛날 옛날에 무시무시한 강도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강도들은 커다란 검정 망토와 높다란 검정 모자로 온몸을 가리고 돌아다녔죠.” 여기까지가 첫 페이지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책을 골라줄까 이 책 저 책의 표지와 첫 페이지를 넘겨본 엄마들은 기겁을 하실 겁니다. “안돼.”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딘지 검은 색으로 휘감은 강도들의 모습에서 호기심을 느끼고 다음 페이지로 책장을 넘깁니다. “첫번째 강도는 나팔총을 가지고 다녔어. 두 번째 강도는 후춧가루 발사기를 가지고 다녔고, 세 번째 강도는 커다랗고 빨간 도끼를 들고 다녔지.” 검은 배경위에 빨간 색이 주조를 이루는 일반적이지 않은 무기들은 섬뜩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안된다고 했쟎아. 다른 책 봐.” 엄마들은 단호하게 이 책만은 안 된다고 심각한 표정을 지을 겁니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를 기어이 넘기고 마는 아이들이 읽고 있는 것을 좀 보세요. 강도들은 말의 눈에 후춧가루를 뿌려 마차를 세우고, 도끼로 마차 바퀴를 부수고, 나팔총으로 경적을 울려 사람들을 위협합니다. 다행스럽게도 토미 웅게러 역시 폭력에 대한 완강한 저항주의자이니, 자신의 독자들이 어린 아이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자체 검열을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강도라고 무조건 사악한 영혼만 갖고 있을까요? 그들의 마음속에 아이들을 돌보고 누군가를 위해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순박한 영혼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책의 독자들과 눈높이가 같은 책 속의 어린이들입니다. 아이들로 인해 차차 새로운 삶에 발을 들여놓은 강도들은 비록 자신들이 모은 금은보화가 부당한 방법을 통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불행한 아이들을 위해 성을 짓고, 어린이 세상을 만드는데 쓰이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우리 어른들이 우려했던 폭력성은 사라지고, 어른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코믹하면서도 따듯한 반전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그림책을 가능하게 한 것은 토미 웅게러가 어린이에 대해 갖고 있던 절대적인 믿음 때문이라는 것이 다음의 그의 말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어린이는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어린이들은 바보가 아니며, 어린이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이 자발적인 천성에 따라 방해 없이 자기를 표현하며 아무 억압 없이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합니다.” 웅게러가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억압적이고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에 겪은 흑백 논리에 대한 반론이고, 그것은 기존 그림책에 담겨 있던 사람들의 선악에 대한 보편적 이분법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는 새로운 모색입니다.

별똥별 꼬리를 잡고 지구로 온 달 사람

우주여행을 다룬 대부분의 책 속에서는 사람이 환상의 세계로 갔다 지구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데 반해, 『달 사람』에서는, 지구를 동경한 달에 사는 우주인이 별똥별 꼬리를 잡고 지구에 온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별똥별이 쿵하고 떨어지자 지구를 지키기 위해 소방대가 불을 끄러 나오고, 경찰도 나타나고, 대소동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달에서는 볼 수 없는 꽃과 새와 나비를 보게 된 달 사람은 흥분에 들떠 가면무도회에 갔지만,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리지요. 도망자 신세의 달 사람의 몸은 초승달 모양처럼 홀쭉해졌다가 만월의 뚱뚱이가 되기를 반복하는데요, 우연히 만난 박사의 도움으로 다시 자신의 고향인 달로 돌아가게 됩니다.

존 버닝햄이 현실에서 달아나고 싶은 어린이들의 욕구를 잘 대변하고 있는 그림책으로 유명한 작가이듯이, 토미 웅게러는 자신의 그림책 『달 사람』에서 이와 유사한 모습을 달 사람이란 주인공을 통해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통의 소재를 통해 보건데, 현실 세계와 상상 세계 사이에서의 그네 타기는 모든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보이는 고유한 증상 같은 것 아닐까요?


한국어린이문학교육연구회에서 펴낸 『환상그림책으로의 여행』에 따르면, 만 5세의 어린이들은 대부분 달이 차고 기움에 따라, 달 사람도 차고 이지러지는 모습의 연관성을 깨닫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달의 크기 변화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가진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이 그림책의 내용과 연관시켜 작가가 나타내고자 했던 환상성을 이해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세의 유아들은 달 사람이라는 등장인물에 몰입하여, 달 사람이 엮는 에피소드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토미 웅게러를 무척이나 아끼고 지지하는 모리스 센닥은 “『달 사람』이야말로 달 사람의 독창성과 독특함이 녹아든 그림책으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살아남은 곰 인형의 슬픔

삽화가 장천석님과 한참을 전화를 붙잡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토미 웅게러가 혹시 유태인이 아닐까하고 말이죠. 인물화를 오래 그리다 보니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 강원도 사람 정도는 느낌으로 구분이 된다고 너스레를 늘어놓지만, 장천석님의 말씀이 정말 맞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바로 『곰 인형 오토』를 읽고 나서입니다. 스트라스부르크의 어린 시절 추억 중에는 작가에게 뼈에 사무치도록 잊혀지지 않는 중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웅게러도 폭격을 피해 지하실에 대피해 있어야만 했고 작가는 그 때의 아픈 기억을 조심스레 칠순이 넘어서야 그림책으로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곰 인형 오토를 화자로 내세워 전쟁의 포화가 남긴 상처와 이산의 슬픔과 전쟁의 비참함을 폭로한 그림책이지만,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곰 인형의 시점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그 비극성은 다소 순화되어 아이들이 전쟁에 대한 공포감에 시달리는 것으로부터 안전장치를 걸어둔 셈이라고 할까요?

게다가 그림책의 그림도 무척이나 따듯합니다. 전후의 이산가족의 문제를 다룬 수많은 영화를 통해 세계 대전이 남기고 간 인류의 만행과 그럼으로써 깃들게 된 반전사상을 생각해 볼 때, 비단 어린이들만이 독자로 이 그림책을 접하기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게 됩니다. 그만큼 이 책은 작가가 몸소 체험한 전쟁의 상처를 그가 노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풀어내고 있기에 진정성이 담겨있습니다.

이야기는 독일의 작은 봉제 공장에서 태어난 곰 인형을 다비드가 생일 선물로 받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다비드는 그의 단짝인 옆집 사는 오스카와 함께 새로운 오토를 갖고 장난거리를 생각해내며 곰 인형 오토에게 글도 가르치고, 욾래층 아주머니를 깜짝 놀래키는데 오토도 한 몫을 담당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유다의 별을 다비드가 왼쪽 가슴에 단 이후부터 그들의 생에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옵니다.


오스카의 아빠도 군인으로 전쟁터에 나가게 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폭격이 시작되자 오스카와 나(곰 인형 오토)는 지하 대피소로 피신하지만 폭격을 맞은 대피소가 폭파되면서 그만 정신을 잃게 됩니다. 이제부터 곰 인형 오토의 인생 유전이 시작되는 것이죠. 흑인 미군 부상병과 함께 후송병원으로 실려 가고 그와 함께 미국에까지 가게 되지만, 못된 아이들 때문에 이리 저리 시달리다 한쪽 눈을 잃고 상처투성이가 된 채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어느 거지 아주머니에게 발견되어 골동품 가게에 팔려가게 되지요. 진열장에 전시된 처량한 신세인 오토 앞에 이제 노인이 된 옛 친구 오스카가 나타납니다. 오스카와 오토의 재회는 신문에 실리고 이 사연을 접한 다비드가 그들을 찾아가서 마침내 함께 하게 되지만, 슬프게도 오토는 다비드와 오스카의 가족이 모두 전쟁 중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세월의 무상함과 전쟁의 폐해에 대한 가슴 절절한 마지막 장면을 통해 작가는 나름대로 자신의 옛 시절을 회상하면서 동시에 전쟁의 무시무시함에 대해 고발하고 있습니다.

파랑 구름을 보았니?

전쟁의 상처와 이산가족(친구라는 편이 더 적절하겠지만!)의 상봉을 다룬 『곰 인형 오토』가 세상에 나온 바로 다음 해인 2000년에 토미 웅게러는 『꼬마 구름 파랑이』를 통해 인간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랑 구름이라는 독특함 때문에 다른 구름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으며 하늘 위를 두둥실 떠다니던 오만한 꼬마 구름 파랑이는 이곳 저곳에서 그를 좋아하는 팬클럽을 갖고 있을 정도로 점점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둥실둥실 하늘을 떠다니는 그의 눈에 어느 도시에서부터 커다란 버섯 모양의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이 목격되었지요. 파랑이는 도시에 조금 더 가까이 날아가서 도시를 내려다 봅니다.

「거리거리마다
서로를 죽이려는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하얀 사람들은 검은 사람들을 때려 눕혔어요,
검은 사람들은 노란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어요.
빨간 사람들은 하얀 사람들을 뒤쫓았고,
노란 사람들은 빨간 사람들을 뒤쫓아갔어요.」
-『꼬마 구름 파랑이』

파랑이의 눈에 비친 도시는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나 봅니다.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을 하는 모습은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지구촌의 전쟁을, 하얀 사람, 검은 사람, 빨간 사람, 노란 사람들은 바로 그 지구촌의 여러 인종들을 상징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겠지요. 시대가 변해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반목이 새로운 전쟁을 야기하는 이 땅에 파란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파랑이는 온 힘을 쏟아 파란 비를 내립니다. 마침내 파랑이의 노력으로 세상에는 파란 평화가 깃들고 사람들은 파랑 세상에서 서로를 아끼며 이해하며 살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같은 색일 때만 서로 싸우지 않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요?”라는 의문을 남긴 채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어딘지 허전합니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 그대로도 서로를 인정하고 다양함을 유지하는 지구촌의 모습이 새로운 글로벌 시대의 ‘시대 정신’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단 한 가지, 토미 웅게러가 이 그림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다시는 이 지구촌에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바로 그것입니다.

새로운 그림책의 세계를 연 작가

지금까지 무려 100여 권의 책의 삽화 작업을 한 정열적인 이 작가는 1998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곳에서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지만,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으로는 흑백 데생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엄마 뽀뽀는 딱 한 번만!』과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웃음으로 풀어내고 있는 『개와 고양이의 영웅 플릭스』,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모자』 등이 있지요. 최근 우리나라의 창작 그림책 장르에서도 독특한 화법을 개발하고 다양한 화풍으로 새 장을 개척하려는 훌륭한 그림책 작품들이 많이 나옴으로써 기존의 정형화되고 교훈적인 내용 일변도에서 많이 다양화되고 예술적 가치도 고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동 문학에서 금기의 대상이었던 소재를 과감하게 끌어들이고 아이들의 역량을 믿고 대범함을 보이는 토미 웅게러와 같은 뚝심 있는 우리 작가도 등장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으로 이번 호를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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