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월터 형제의 끝나지 않은 모험
정금 탐험 게임 판 『주만지』를 팔에 끼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대니의 모습으로 마지막 모습을 장식한 책 『주만지』에서의 모험이 되살아난다면, 여러분은 기꺼이 그 모험에 동참하시겠습니까? 아, 어떤 모험인지 힌트는 드려야겠네요. 대니와 월터 형제는 정글 탐험 게임판인 『주만지』밑에 또 다른 게임판인
『자수라』를 발견했습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별동별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더니 지붕에 구명이 뚫리고, 또 다시 주사위를 굴리자 이번에는 월터가 천장에 철썩 붙어버렸습니다. 중력이 사라져버린거죠. 그렇다면 대니와 월터 형제의 집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었을까요? 네, 바로 우주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대니와 월터 형제는 위험에 빠지는군요. 그들의 집을 공격하는 우주 해적선이 나타나 광자포를 공격하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블랙홀에 빠져버릴 위험에 빠져버릴 듯한데, 그들은 지구로 무사귀환을 할 수 있을까요? 2002년도에 발간된
『자수라』에서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1981년 정글 속에서의 모험을 다룬 『주만지』의 기발한 상상력을 우주 공간으로 옮겨왔습니다. 또한 이 모험은 영화로도 제작 중에 있습니다. 아마도 2006년 2월에 우리나라에서도 상영을 할 예정인 듯합니다.
『주만지』에서 체스 게임을 하던 대니와 월터는
『자수라』에서도 그대로 등장하는데요, 그렇다면, 『주만지』와
『자수라』의 차이점은 무엇일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만지』에서의 사건이 독립적이었던 데 비해
『자수라』의 사건들은 교차되어 있습니다. 즉 새로운 사건이 이전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는 것인데요, 한 가지 예로 중력을 너무 많이 받아 공처럼 뚱뚱하고 무거워진 대니의 몸은 로봇을 물리치는 멋진 무기가 되어 주고, 고장 난 로봇은 뒤이어 나타난 조르곤 해적을 물리치는 놀라운 일을 해냅니다. 하지만 가장 압권은 블랙홀을 이용한 결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만지』가 단순히 게임의 종료와 함께 마무리된 것에 비하면 작가의 이야기 구성 능력이 『주만지』를 창작했던 20년 전보다 훨씬 성장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밀화 속에 환타지를 담는 작가
크리스는 1949년 미국 미시건 주의 시골 마을인 그랜드래피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 고장에서 버터, 크림, 치즈, 아이스크림 등을 생산하는 '이스트 엔드 크리머리'란 이름의 유제품 생산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크리스가 태어났을 때 식구들은 이 공장 옆의 낡은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가 세 살이 되던 해 그랜드래피즈의 끄트머리에 있는 고풍스러운 튜더식 벽돌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집은 그의 책
『폴라 익스프레스』의 표지에 나온 거리와 비슷했습니다. 가로수들 사이로는 거대한 느릅나무들이 서 있고, 나뭇가지들은 긴 팔을 뻗어 창틀에 닿을 듯 했지요. 크리스는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고양이 파트너와 엘로이즈와 함께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지냈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도 크리스는 미술 과목을 수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수학과 과학에 발굴의 실력을 보이던 영재 소년이었습니다. 당시의 크리스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우수한 학생이 많았기 때문에, 미시건 대학교에서 입학 담당자가 아예 학교에 대학 입학 지원서를 들고 찾아오곤 했습니다. 몇몇 학생들과 면담을 하고, 즉석에서 입학을 허용해주곤 했습니다. 크리스는 대학에서 파견을 나온 입학 담당자와 면담을 했던 그 운명적인 날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파견된 입학 담당자는 제가 제출한 원서를 살펴보더니 <미시간 대학 지원 학부란>에 기입해 놓은 것이 없다며 어느 학부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저는
가 무엇인지 질문을 했지요. 그 분은 그것은 <건축 디자인 학부>로서 미술 학부도 포함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단 한 번도 미술과목을 수강해 본 적이 없었지만, 미술 공부는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았지요. 그래서 저는 그 학부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 분은 제 고등학교 성적표를 보시더니 미술 과목을 수강한 것이 없으니 미술 학부에는 입학이 허용되지 않을 것 같다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 때 제 나이는 다른 대학 입시를 보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17살이었고, 저는 어떻게 해서라도 입학 허가를 받고 싶었지요. 그래서 잔꾀를 생각해내었죠. 즉, 제 미술 재능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토요일마다 개인 교습을 오랫동안 받고 있었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런데 그럴싸한 제 거짓말에 그 분은 속으셨던지 유명한 미국인 삽화가인 노만 락웰에 대한 견해를 물으셨습니다. 평소 노만 락웰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저는 유명 삽화가나 화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얼굴 표정을 보니 실망한 기색이 영력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로만 락웰은 감상적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 의해 부당하게 평가받는 것 같다고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로만 락웰은 미국인의 꿈과 바람을 위대한 극작가와 같은 감수성을 가지고 드라마처럼 미국인의 일상을 진솔하게 표출한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은 책상을 주먹 쥔 손으로 내리치시더니, '오, 그렇지. 학생 말대로야.'라고 반색하시더군요. 그렇게 해서 제 미술대학 입학은 허락되었습니다."
크리스는 1967년 가을에 미시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초기에는 주변에 놀라운 실력을 갖춘 학생들에 둘러싸여 주눅이 들어버립니다. 또한 엄청난 수업량에 점점 의기소침했지만, 그는 어렸을 때 모형 차와 보트를 만들던 자신의 실력을 믿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 곳에서 청동주조, 목각, 조소 등등을 배운 그는 유명한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서 조각을 더 공부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석사 학위를 딴 이후에, 그는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자신의 대학 시절에 만난 리자 모리슨과 결혼도 합니다. 같은 미술학도였던 리자의 후원으로 그는 낮에는 스튜디오에서 조각을 하고, 저녁에는 집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그의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발견한 그의 아내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친구를 소개해 주고 그것이 연줄이 되어, 1979년 『압둘 가사지의 정원』을 세상에 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그의 첫 작품에게 칼데콧 아너 상이 주어집니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회화나 드로잉이 아닌 조각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첫 그림책에 주어진 명예로운 수상에 대해 크리스는 겸손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조각을 할 때면 그림으로 밑 작업을 그렸던 것이고,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목탄 드로잉밖에 없어서 목탄 드로잉으로 그림을 그린 것뿐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첫 작품에 대한 겸손한 수상 소감을 밝힌 크리스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칼데콧 메달을 수상한 『주만지』와
『폴라 익스프레스』를 포함하여 모두 열다섯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좀 늦었지만, 크리스와 리자 부부는 1991년에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첫 딸 크리스가 태어난 지 4년이 지나 둘째 딸 애나도 태어났습니다. 아이들이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에게서 창의성을 배운다는 크리스의 그림책들은 환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책에서의 묘사는 그 어느 누구의 그림책보다 세밀하고 정밀한 묘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환타
지의 세계는 몽환적이고 어딘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림을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으나, 그의 환타지는 현실 속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물들을 낯설도록 과장해서 보이도록 한다거나, 정밀하게 묘사되어 모호한 대상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는 평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든 나무가 어느 날 밤 갑자기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면서, 꿈틀대고 다가오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평상시의 모습과 똑 같되, 엉뚱한 성질을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갑작스레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이 비밀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려야 오히려 일상이 왜곡되어 보여 지고 그 틈에서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진짜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신뢰감을 높여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는 비록 벌어지는 사건은 허구적이라고 하지만, 인물들은 진짜 사람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림 속의 장소들이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원근법과 빛의 법칙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개미의 눈으로 바라본 이 멋진 세상
크리스는 어느 날 아침 부엌에서 개미 두 마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개미들이 어떻게 그 곳까지 들어왔을지 생각하면서 개미 두 마리의 원정을 살핍니다. 개미란 본래 무리를 지어 사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침에 본 개미는 무리에서 일탈을 했군요. 하지만 본래 일탈을 하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랍니다. 사람들의 집에 있는 설탕 통 속으로 들어갔던 주인공 개미들은 크리스탈 결정같이 단단한 각설탕을 몸에 지고서 "영차 영차" 여왕개미님께 실어 날랐습니다. "냠냠" 여왕개미는 일개들이 가져온 맛있는 각설탕을 꿀꺽 해치웁니다. "아, 정말 정말 맛있는 건가봐." 그렇게 일개미들은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여왕개미님이 좋아하는 각설탕을 찾아 일개미들은 수풀을 해치고 높다란 담장을 열심히 오릅니다. "음, 이곳에서 달달한 냄새가 솔솔 퍼져 나오는군! 맞아. 여기 이 집이였어." 그리고는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어느 집의 창틀 사이로 기어 들어갑니다. 그런데 욕심 많은 어린 개미 두 마리는 "설탕"이라고 쓰인 통 속에서 슬그머니 심술이 났습니다. 개미 한 마리가 다른 친구에게 말합니다. "여기는 천국이야. 우리가 원한다면 얼마든 여기에서 맛있는 이것들을 먹으면서 평생 살수 있을거야." "꿀꺽꿀꺽" 배부른 어린 개미 둘은 그만 "쿨쿨" 코를 골면서 잠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왠 삽이 공격해 왔습니다. "일어나봐. 이봐. 이곳이 심하게 흔들리쟎아. 어서 피해." 개미 두 마리는 잠자다말고, 공격해오는 커다란 삽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피했지만, 설탕 속에 묻힌 채로 삽에 실렸습니다. "어, 바다다. 뜨거운 바다야." 그들이 빠진 곳은 커피 잔 속입니다. "어서 이곳에서 빠져나가자. 가장 자리 쪽으로 헤엄쳐. 힘내서 앞발을 힘껏 저으란 말이야." 커피 잔이 커다란 구멍(사람의 입)쪽으로 기울어지고 물살들이 그쪽으로 세게 흘러가는 와중에 간신히 피할 수 있었던 두 마리는 점점 두려워집니다. 이처럼 개미의 시선에서 커다란 아파트의 부엌으로의 원정을 담은
『장난꾸러기 개미 두 마리』의 이야기는 이처럼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서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개미의 시선에서 인간들의 세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거대할까요? 우리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작은 일개미 두 마리가 방바닥을 기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살고 있는 공간이 얼마나 커다란 곳일지 개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은 있나요? "졸졸졸"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도 개미들에게는 엄청난 수압을 지닌 폭포수같은 것이고, 콘센트의 납작한 구멍은 그들을 기절시킬 수 있을 만큼 무시무시한 전기가 흐르는 곳이지요.
『장난꾸러기 개미 두 마리』는 사람의 시각이 아닌 개미의 시각에서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손아귀에 잡히는 잔이 거대한 물탱크처럼 묘사되어 있기에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은 새삼스럽게 주변의 친숙한 사물들이 낯설게 보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답니다.
개에 관한 재미있는 두 가지 상상
크리스 반 알스버그가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왜 책마다 하얀 개가 나와요?" 라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이유가 있다는군요.
『압둘 가사지의 정원』에 나오는 프리츠는 그의 매제의 개인데 크리스는 소피아와 애나가 있기 전까지 자신의 조카처럼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매제는 뜻밖의 사고로 그 개를 잃게 되었죠. 그 때 이후로 크리스는 아주 작게라도 개들을 책 속에 등장시키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심지어 『북극으로 가슴 급행 열차』에서 조차도 침대에 끼워져 있는 헝겊 인형의 모습으로 개를 등장시키고 『벤의 꿈』에서는 액자 속에 등장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떤 책에서는 개가 전면에 등장한 경우도 있습니다. 고약한 성격의 치과 의사인 비보 선생 집의 개 마르셀과 무엇이든 물기를 좋아하던 헤스터 아줌마의 개 프리츠가 그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였는지, 간단히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마르셀은
『세상에서 맛있는 무화과』에서 사랑을 못 받는 개로 등장합니다. 치과 의사 비보는 결벽증이 있는 까다로운 독신 치과의사인데 마르셀이 마음껏 짖지도 못하게 합니다. 어느 날 가난한 할머니의 어금니를 뽑아준 대가로 무화과 두 개를 치료비 대신 받게 되는데요, 할머니는 그 무화과가 꿈을 이루게 하는 신비한 효력이 있다고 일러둡니다. 비보는 할머니의 엉터리 같은 말을 믿지 않았지만,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가 자신의 꿈에서처럼 에펠 타워가 구부러져 있는 것을 보고 할머니의 말을 믿게 됩니다. 그 날 이후로 비보는 꿈을 마음대로 꾸는 책을 읽으며 꿈꾸는 것을 훈련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먹은 대로 꿈을 꿀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 날 마르셀이 하나 남은 무화과를 먹어치웁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비보는 "내일,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 이 일을 절대 잊지 못하게"라며 씩씩 대며 잠을 잤는데 다음날 아침, 마르셀을 힘껏 소리쳐 불렀지만, 자신의 입에서는 개 짖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편
『압둘 가사지의 정원』에서 등장하는 프리츠는 헤스터 아줌마의 개입니다. 헤스터 아줌마가 외출을 하면서 주인공 소년 앨런에게 개를 돌보라고 부탁을 합니다. 착한 앨런은 개구쟁이 프리츠를 돌보다 지쳐 깜빡 낮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프리츠는 잠을 자는 앨런을 내버려두지 못하고 그의 코를 깨물며 산책을 나가자고 졸라댑니다. 그리고 쏜살같이 달려 은퇴한 마법사의 압둘 가시지 정원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불행하게도 그 정원 앞에는 절대 개는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경고문이 붙어있는데, 앨런은 프리츠가 자꾸만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정원 안은 정말 신기합니다. 잘 다듬어진 영국 정원식의 나무들과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오리들, 마법사의 정원은 기묘하면서도 몽환적이지만, 크리스의 그림은 너무나도 정교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마법사가 프리츠를 오리로 바꿔 놓는 바람에 앨런은 풀이 죽은 채 프리츠로 생각되는 오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나마 자신의 모자가 날아가는 바람에 오리마져 놓쳐버립니다. 프리츠를 잃어버린 앨런은 과연 헤스터 아줌마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이 책은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첫 번째 책이며, 크리스 반 알스버그가 한 때 수학 영재이고 조각을 전공한 사람임을 여지없이 증명해주듯 다분히 구조적인 건축미를 자랑하는 정교한 목탄의 단색 삽화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도 참 이상하죠. 마치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 앨런이 꿈속에서 겪은 이야기인지, 실제로 앨런이 겪은 이야기인지 결론도 몽롱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앨런이 꿈을 깬 것은 언제일까, 그 궁금증의 답은 풀리지 않는답니다.
산타를 믿는 아이들에게만 들리는 북극의 종소리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그런데 산타클로스가 실재하고 저 먼 북극 어딘가에서는 착한 어린이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준비하고 포장하는 산타의 마을이 있다고 믿고 있다고 고백한다면 사람들은 다 큰 어른인 저를 비웃겠지요? 그래요. 저는 아직도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그림책
『폴라 익스프레스』의 영화를 손꼽아 기다린 기억이 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유명한 헐리우드 배우인 톰 행크스 역시
『폴라 익스프레스』에 매료되었다는군요. 그래서 톰 행크스는
『폴라 익스프레스』의 판권을 구입하고 영화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를 졸라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얼굴에만 150여 개, 몸에는 60여 개의 장치를 매달아 주인공 소년을 비롯하여 차장아저씨, 소년의 아버지, 산타클로스, 떠돌이 등의 1인 5역을 해냈다고 합니다.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를 본 저는 솔직히 조금 실망했습니다. 예전부터 간직하고 있었던 따듯한 질감의 그림책
『폴라 익스프레스』에서의 포근한 느낌까지는 영화가 담아내고 있지 못한 듯 했거든요.
그림책을 펼치면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는 파자마 바람의 소년이 등장해요. 크리스마스 자정이 되기 5분 전,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유년 시절의 동네와 흡사하다는 소년의 집 앞에서 "철컬철컥" 철도를 달리는 기차 소리가 들려옵니다. 소년은 하얗게 눈이 내리는 창밖을 내다봅니다. 설마하는 마음이었겠지요. 하지만, 멀리서부터 솜사탕 같은 연기를 흩날리며 기적 소리와 함께 기차가 미끄러져 들어왔습니다. 털실내화를 신은 채로, 살금살금 아래층으로 내려가 현관문을 열고 소년은 기차 앞에서 기다리는 차장 아저씨의 환대를 받습니다. "승차해라. 북극 행 열차란다." 기차에 올라타기를 망설였지만 소년을 결국 기차에 오릅니다. 자신과 같이 파자마 바람인 꼬마 신사숙녀가 가득한 객차에서 한바탕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기차는 대설원을 지나 꼬불꼬불한 빙산을 올라 북극으로 다가갑니다. 화려한 불빛으로 장식된 산타의 마을에서 기차에 탔던 소년 소녀들은 산타할아버지가 순록이 이끄는 선물 마차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한 해 한 명의 어린이에게만 돌아가는 행운을 잡은 소년은 산타의 마차를 타게 되는데, 산타가 준 은종을 그만 떨어뜨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게 됩니다.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고 소년과 그의 여동생 사라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둘러싸고 있는 선물포장들을 뜯어봅니다. 그런데 작은 포장을 뜯어보니, 어젯밤 산타 클로스가 준 은종이 쪽지와 함께 담겨있었습니다. 은종을 흔들자, 천사들의 낭낭한 소리마냥 은종이 은은하게 울립니다. 소년과 여동생 사라에게만... 그러나 세월이 지나 여동생 사라는 더 이상 은종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어린 시절 산타가 준 은종의 소리는 소년한테만 들리지요.
여러분, 산타가 남긴 쪽지의 사연과 은종의 소리가 궁금하지 않나요? 정말 정말 따듯한 책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톰 행크스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몇 번씩이나
『폴라 익스프레스』를 읽어준다고 합니다. 저는 빨간 양말을 걸어두고 산타 할아버지가 언제 오려나 마냥 기다렸던 어린 시절을 향수하면서, 이 책을 크리스마스 시즌이 오면 꼭 읽곤 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옆에 서있고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붉은 온기를 품어내는 벽난로, 그리고 하나 정도 있을 흔들 의자를 상상하면서 꾸벅 졸다보면, 어느새 저도 소년처럼 딸랑딸랑 귓가에 울리는 은종의 소리를 듣게 되곤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