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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들의 친구를 찾습니다 - 미하엘 엔데의 『모모』 &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하기는 녀석이 원하는 게 뭔지 안다. 녀석은 ‘지금’에 대한 이야기를 ‘여유’있게 나누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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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누구야?

문을 열고 들어온 녀석은 누더기 옷을 입은 모모다. 녀석, 보자마자 놀자고 난리다. 뭐하고 놀 건데?, 하고 물었더니 이야기를 하잔다. 무슨 이야기?, 하고 물었더니, 녀석, 방긋 웃는다. 다 알면서 왜 물어?, 하는 표정이다. 하기는 녀석이 원하는 게 뭔지 안다. 녀석은 ‘지금’에 대한 이야기를 ‘여유’있게 나누고 싶어 한다.

쿵, 쿵!
또 누구야?

문을 박차고 들어온 녀석은 열 살인지 열 네 살인지, 언제나 헷갈리게 말하는 모모다. 녀석, 보자마자 사는 게 어쩌고저쩌고 투정부린다. 뭐가 그렇게 문젠데? 하고 물었더니 로자 아줌마와 함께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러더니 고통스럽다고 난리다. 뭐가 그렇게 고통스러운데?, 하고 물었더니, 나이도 어린 녀석이 담배를 물며 말한다. “빌어먹을 생이.”라고.

둘 다 이름이 ‘모모’다. 물론 만나게 된 장소가 다른데 첫 번째 모모는 미하엘 엔데 덕분에 만날 수 있었다. 책 이름이 외우기 쉬우면서도 절대 잊기 어려울 것 같은데, 바로 『모모』다. 두 번째 모모를 만난 곳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을 써서 내놓았던 『자기 앞의 생』이다. 원래 이 녀석 이름은 모하메드인데 다들 어리다고 해서 모모라고 부른다.

그렇게 해서 둘 다 모모인데 헷갈릴 수 있으니 『모모』의 순둥이 모모를 모모1이라고 하고 『자기 앞의 생』의 애늙은이 모모를 모모2라고 부르곤 한다. 물론 나 혼자만 그렇다.

모모1이 현재를 좋아하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여튼 언젠가, 녀석은 세상에서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이상한 놈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로 회색 신사! 그들은 시간을 저축하게 해준다는 헛소리를 하고 다녔다.

뭐였더라? 20년간 한 시간씩만 저축하면 2,628만 초의 재산을 갖게 된다는 뭐 그런 거였다. 참 쓸데없는 소리였는데 신기하게도 모모1이 사는 곳의 사람들이 다들 깜빡 넘어가버렸다. 모두가 도장을 찍은 것이다.

그러나 모모1은 아니었다. 모모1은 시간을 저축한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을 아낀다고 친구를 안 만나고, 시간을 아낀다고 꽃을 키우지 않거나 심지어 시간을 아낀다고 밥도 먹지 않을 뿐더러 잠도 안자고 일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홀로 도장을 찍지 않았고 결국엔 왕따가 됐다. 사람들이란 자기와 다른 소수는 왕따시키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모모1은 참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무도 놀아주지 않으니까.

하여튼, 기구한 팔자야. 그때의 모모1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아아, 생각해보면 모모2의 팔자도 만만치 않다. 나이도 어린 것이 담배를 피우는 꼬락서니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녀석은 정말 막 자랐다. 남의 가정사 들추는 것 같아서 좀 민망하지만, 그래도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어머니는 창녀고 아버지는 살인자인데… 그만! 아무래도 쓰기가 거북하다. 어쨌든 결론만 말하자면 모모2는 로자 아줌마 밑에서 자라났다.

아아! 이거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겠지만, 그래도 로자 아줌마에 대해 간략히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로자 아줌마 팔자도 참 기구하다. 나치의 수용소에 다녀왔던 경험이 있는 이 유대인 아줌마는 젊어서는 창녀 일을 했고 늙어서는 창녀들의 아이들을 키워주며 얼마간의 돈을 받았다.

모모2를 키우게 된 것도 그런 연유인데 어쨌든 여기서 다시 결론을 말하자면, 로자 아줌마나 모모2나 인생 이야기 쓰면 책 몇 권은 나올 것이라는 것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지지리 복도 없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모모2가 담배를 피워도 할 말이 없고 도둑질을 해도 할 말쳀 없다.

어라? 모모1이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난 녀석의 노래가 좋다. 이 노래는 모모1이 회색신사를 물리친 다음에 부른 건데, 이 노래를 들으면 시간을 저축하기 위해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야겠다고 투지를 불사르던 마음이 봄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아아,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사실은 나도 회색신사와 계약을 맺었었다. 그래서 시간을 저축하기 위해 참 바쁘게 살았다. 엄밀히 말하면, 바쁘지는 않았다. 마음만 바빴다. 이렇게 수다 떨어도 되나?, 잠을 너무 오래 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들이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나를 괴롭혔다. 하도 불안해서 이틀에 한번 자는 괴상망측한 짓까지 감행했는데, 바로 그때 나를 구해준 게 모모1이었다. 그렇게 살아서 행복해?, 하는 질문을 가득 담은 그 표정.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모모2의 그때 표정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때란 로자 아줌마가 죽은 지 얼마 안 된 때를 말한다. 당시에 모모2는 시체를 아파트 지하실에 숨겨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모모2는 여전히 빌어먹을 생, 타령을 하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도 얼른 달려가 빌어먹을 생, 타령에 맞장구를 쳐줬다. 불쌍해서 그랬다.

그때 문득, 보고야 말았다. 모모2의 얼굴에는 ‘빌어먹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종의 환희랄까. 뭔가를 넘어선 것 같은 그런 게 있었다. 그게 뭐야?, 하고 대놓고 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생은 참 지독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결국에는 죽게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태어나게 하는 것도 생인 것 같다고 떠들어댔다. 그래서 얼굴 표정이 그랬군. 박수를 쳐주고 싶었지만 분위기상 그건 어려워서 그냥 껴안아버렸다. ‘생’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기쁘게 다가온 건 그때가 처음인지라, 그게 고마워서 그랬다.

난 모모들이 좋다. 그래서 지금도 같이 놀고 있다. 그런데 요즘, 물론 나만의 추측이기는 한데, 이 녀석들이 나를 지루해하는 것 같다. 다른 친구를 찾는 것 같기는 한데, 어쩌지? 아무래도 새로운 친구를 찾아줘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묻는다.

혹시, 모모들과 놀고 싶은 사람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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