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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매력적인 그녀들! - 기리노 나쓰오의 『아임 소리 마마』 & 테스 게리친의 『외과의사』

‘명석한 두뇌’만 갖고 무대에 오른 것이 아니라 권력과 재력, 또는 미모와 같은 ‘특별한 것’을 가져야만 남성과 동일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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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애들러’라는 여성이 있다. 남성 주인공과 남성 범인이 서로 잘났다고 머리싸움을 하던 추리소설의 세계에서 여성도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여자다. 등장 무대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의 모험』에 수록된 ‘보헤미아 왕국 스캔들’이다. 그녀는 여성에게는 얕은 잔재주밖에 없다고 평가하던 대단한 홈즈를 혼쭐내는 맹활약을 펼친다. 비록 엑스트라였을지라도.

그런데 이 신호탄은 문제가 있었다. ‘명석한 두뇌’만 갖고 무대에 오른 것이 아니라 권력과 재력, 또는 미모와 같은 ‘특별한 것’을 가져야만 남성과 동일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한 것이다. 사실일까? 천천히 추리소설에 등장해 놀라운 활약을 남겼던 여성들을 되짚어보자. 알렉산드라 마리니나의 ‘아나스타샤’? 남자들이 침을 흘리며 따라온다. 제프리 디버의 ‘아멜리아 색슨’? 영화에서 그녀의 역할을 누가 맡았는지 생각해보자.

패트리샤 콘웰의 ‘케이 스카페타’는 어떤가? 남자를 부르는 미모를 지녔고 또한 권력가다. 그 외에 또 누가 있을까? 모든 작품을 다 보지 못했으니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두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첫째, 형사 역의 그녀들은 참 예쁘다는 것. 둘째, 형사뿐만 아니라 범인 역도 예쁘다는 것.

아!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할 것이 있다. 무자비한 분노를 지닌 범인 중에 여성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렇다. 왜 악명 높은 여자 범인은 없는 것일까? 또한 나오려면 왜 꼭 예쁘거나 권력이 있어야만 하는가? 왜 여자들은 아주 특별하지 않으면 엑스트라로, 그것도 연쇄살인범의 희생양으로 나와야 하는가?

‘왜!’, ‘왜?’의 행렬이 지루하게 추리소설들 사이를 넘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뿔싸! 최근에 이 단어를 무자비하게 뭉개고 등장한 그녀들이 있었으니 기리노 나쓰오의 『아임 소리 마마』의 무시무시한 연쇄살인범 ‘아이코’와 테스 게리친의 『외과의사』에 등장한 못생긴 여형사 ‘리졸리’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그녀들의 등장은 파격적이다. 먼저 아이코를 보자. 그녀는 연쇄살인범이다. 아니, 걸어 다니는 ‘괴물’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게다. 『반지의 제왕』에서 인간을 공격하던 오크들의 분노가 무색해질 정도로 그녀의 핏속에는 분노가 가득하다. 그래서 누가 건들기라도 하면 죽인다. 더욱 파격적인 것은 추리소설의 여자 주인공하면 헬레네처럼 아리따운 나머지 ‘적’마저 유혹할 것 같지만 아이코는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코의 외모는 평범하다.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기분 나쁜 중년 아줌마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기리노 나쓰오가 몇 차례에 걸쳐 강조하듯이 눈빛도 참 불길하다. 그러니 괴물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보면 기분 나빠지고 건드리면 죽게 되니 뭘 어찌하겠는가?

더 흥미로운 사실은 아이코의 살해방법이다. 여자가 살인을 하면 어떻게 할까? 일단 아이코의 경우 너무나 뻔한 미인계는 일단 제쳐 둬야하니 유혹해서 침실에서 죽이는 상투적인 방법은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임 소리 마마』의 강렬한 첫 장면을 보자. 아이코는 죽이고자 하는 사람이 사는 아파트에 찾아가 아주 자연스럽게 벨을 누른다. 그러자 상대방이 문을 열고 범행의 순간이 만들어진다.

이 상황에서 아이코는 어떻게 행동할까? 이러쿵저러쿵하며 전후사정을 정말 상세하게 설명한 끝에 “이래서 널 죽여야겠다!”고 할 법도 한데 그것도 아니다. 간단하게 휘발유를 들이 붓는다. 그리고 불을 붙인다. 그것으로 끝. 이렇게 화끈한 살인범이 있나 싶을 정도로 간단명료하면서도 잔혹하다. 확실히 ‘여성 범인’에 관한 상식을 깬다.

아이코도 그렇지만 리졸리도 ‘깨는 것’에 관해서 만큼은 그 수준이 만만치 않다. 이유는? 못 생겼기 때문이다. 리졸리 스스로가 그것에 강박관념을 갖고 있을 정도. 그래서 더 독한 척 한다. 능력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증명하려 애쓴다.

그런데 대다수의 남자 동료들은 리졸리를 희롱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여자라서 그렇고 속내는 못생긴 여자라서 그렇다.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리졸리가 예뻤다면? 아마 같이 파트너하자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희롱도 안 했을 것이다. 오히려 잘해주는데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희롱이란 “오늘 외로워 보이는데?”, “엉덩이랑 권총이 잘 어울려!”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녀의 음료수 안에 XX 따위를 넣는, 가장 지저분한 수준이다)

그래서 리졸리의 분투는 눈물겹다. 동시에 쓸쓸하다. 그녀 또한 여자인지라 동료 경찰에게 호감을 갖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당연하다는 듯이 남자는 매력적인 피해 여성에게 눈 주기에 바쁘다. 리졸리는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 그 결과 내가 못 생겨서, 못 생겨서,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속상한 마음에 실수까지 연발하게 된다. ‘능력으로 인정받겠다.’는 신념까지 무너뜨리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리졸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남자 형사들이 얼빠져 있는 사이, 주인공 남자가 매력적인 여자를 그리워하느라 애간장을 태우는 사이, 돌아온 리졸리는 미모 따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능력’으로 맹활약한다. 그 모습이 아주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소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생소하게 여겨질 까닭이 없지만, 워낙에 아리따운 여성들만 만난 탓에 그런 것일 테다. 그래서 리졸리도 괴물 같다고 할 수 있다. 여전사하면 으레 미모를 떠올리던 생각에 돌을 던졌으니까!

아! 괴물이라는 단어를 보고 ‘팜므 파탈’을 생각했다면, 혹은 구역질나게 하는 괴 생물체를 떠올렸다면 유감이다. 여기서 괴물이란 편견이 만든 구조를 깨부수고 짓밟아버리는 역할을 의미한다. 그래서 괴물이라고 부를지언정 매력적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매력적인 그녀들! 추리소설 본연의 즐거움을 떠나서 신선한 감동까지 주니 어찌 그렇게 말하지 않으랴.

자, 영화관에서만 괴물 잡지 말고, 책에서도 괴물을 잡아보자. 선녀들 사이에서 꿈꿀 때는 죽었다 깨어나도 맛볼 수 없었던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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