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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일처제를 폐하라? - 『아내가 결혼했다』 & 『일부일처제의 신화』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어떨까? 단연 후자에 속한다. 그럼 내용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제목은 일단 일처이부제를 상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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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한 제목으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직설적인 제목으로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 소설이 있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어떨까? 단연 후자에 속한다. 그럼 내용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제목은 일단 일처이부제를 상상케 한다. 그렇다.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갖고 찾아온 이 소설은 일부일처제를 공격하는 도발적인 발칙함으로 가득 차 있다.

남편이 아내의 결혼을 막지 못한 이유는?

『아내가 결혼했다』의 ‘나’는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심정으로 연애를 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애인에게 푹 빠진 나와 달리, 애인은 나도 좋아하지만 세상의 다른 남자도 좋아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귈 때 조건이, 고상한 말로 하면 사생활을 건드리지 말자는 것이고 까놓고 말하면 누구랑 섹스를 하든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연애란 상대를 독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애인이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것을 ‘쿨’하게 볼 여력이 없다. 그러나 버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죽는 로미오처럼 애틋하지는 않더라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만고에 길이 남을 정도로 애인을 사랑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쿨’ 타령을 하며 참기로 한다. 하지만 도저히 미래까지도 버틸 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결혼이다.

나에게 충고한 바람둥이 친구의 말처럼, 자유를 찾던 여자들이 결혼하면 조숙한 아내가 된다는 말이 있다. 드라마에서도 몇 번 등장했던 여인상인 만큼 친숙하다면 친숙한데 나는 순진하게 그것을 믿고 결혼하자고 조른다. 애인은 거절하지만 끈질긴 구애에 결국에는 아내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조건은 있다. 사생활은 건드리지 말자는 것!

대다수가 결혼하면 과거를 감추고 지우느라 난리를 피운다. 그러나 아내는 다르다. 여전히 자유를 원한다. 이런 아내의 모습은 상식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아내의 상식에서는 다르다. 결혼했다고 해서 평생 남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 혹은 남편만 좋아하고 남편하고만 데이트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불륜으로 흐를 수는 없는 터. 그러니 아예 대놓고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자는 논리다. 물론 아내의 결혼도 그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다.

말이 안 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포장을 벗겨보면 아내가 그리 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공식’적으로 선포해서 그랬을 뿐이지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보면, 한해 농민들의 생산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성매매산업을 부흥시키는 남자들의 ‘바람’이나 불륜처럼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고려해보면 아내의 말이 그렇게까지 틀린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남편도 딱히 대응할 말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아내의 결혼을 허락한다. 아주 씁쓸하게.

인간에게 일부일처제는 확고한 것이었나?

일부일처제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웬만한 한국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다. 우리 집도 그렇고, 옆집도 그렇고, 앞집도 그렇고 친구들 집도 그러니 자라면서 보고 들은 건 일부일처제다. 그런 탓에 누구도 그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오늘날 인간의 일부일처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부일처제의 신화』에 따르면 동물들의 세계에서 일부일처제만큼 ‘특이한’ 일도 없다. 인간의 역사에서는 어떤가? 인간들이 사유재산을 갖기 시작하고 주인과 노예의 개념이 나타나던 시기를 생각해보자. 이때도 일부일처제였을까? 일부다처제가 맞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추측해본다면 힘 있는 한 명의 남자가 10명의 여자와 관계를 맺고 하층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9명의 남자는 홀로 있었을 것이다.

권력의 집중화가 심해질수록 이같은 현상은 더욱 심해졌을 것이라고까지 추측해본다면, 또한 동물적으로 남자는 씨를 퍼뜨리기 위해 많은 여자를 만날 수도 있고 여자는 좋은 씨를 구하기 위해 더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고려해본다면 생뚱맞지만 진지한 의문이 생겨난다. 그런 상황에서 도대체 일부일처제는 어떻게 등장한 것인가?

일부일처제가 맞다? 왜?

『일부일처제의 신화』는 명확한 답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확실한 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황적인 몇 가지 근거들을 토대로 살펴보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평등화’에 따른 것이다. 무슨 뜻일까?

혼자 지내는 9명의 남자가 10명의 부인을 둔 지도자를 좋게 볼 리가 없다. 여차하면 전쟁이라도 일으킬지 모른다. 이 논리에 따르면, 지도자는 그들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일부일처제란 것이다. 독특함을 넘어선, 이색적으로 여겨지는 평등화의 논리인데 속내를 보면 그렇게까지 이색적인 것도 아니다. 소수에서 다수로 권력이 넘어오는 과정은 거의 대부분이 이와 같았으니까.

다른 이유를 찾아보자면 일단 종교가 떠오른다. 종교는 어떤가? 많은 종교가 일부일처제를 옹호한다. 하지만 그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되레 그 종교 안에는 여러 아내를 둔 일부다처제의 주인공들이 등장하건만 그것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그저 ‘계시’적인 수준으로 하지 말라고 말한다. 세계의 성인들은 어떤가? 인간 ‘본성’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성인의 대열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비슷하다. 일부일처제가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정당성의 근거까지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작해야 다독이 정신병이라고 주장한 중세 유럽의 황당한 말과 같은 수준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어떤가? 차라리 이색적인 평등화의 논리가 더 타당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이유가 무엇인가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이렇듯 확실하지도 않은 그것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믿는가? 다수는 이에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의심하라, 그대가 있는 곳을

『아내가 결혼했다』『일부일처제의 신화』는 소수의 목소리다. 요즘에 일부일처제를 비판하는 말을 했다가는 돌 세례 당하기 십상이니, 아니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시당할 테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가? 의심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남자와 여자가 평생 서로만을 사랑했다”는 아름답지만 그렇게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래야만 옳다고 주장한다. 말과는 정반대인 행동들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아내가 결혼했다』『일부일처제의 신화』는 솔직하다. 너무 솔직해서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가식보다야 그것이 백배 낫다.

그렇다고 하여 이 책들을 “그럼 일부일처제를 버리자는 것이냐?”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분법을 위한 도구로 삼지는 말자. 두 권의 책은 생각하게 하는 소수의 목소리다. 생각하자. 그리고 의심해보자. 생각 한번 해보지 않고 무조건 절대적이라고 우기는 오만적인 모습을 거두기 위해서라도 생각하고 의심해보자. 이 두 권의 책은 그것을 위한 도구다. 뒤로 물러날 줄 아는 우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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