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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준다는 것, 그 비밀을 찾아서- 『책 읽어주는 여자』 & 『책 읽어주는 남자』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는 각각 독특한 방식으로 그에 대한 답을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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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어른들을 볼 때가 있다. 그들은 왜 책을 읽어주는 것일까? 아이가 글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왠지 석연치 않다. 그럴 바에는 수고스러움이 덜한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른은 굳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아니라도 그렇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 서로에게 책을 읽어줄 때가 있다. 또는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책을 읽어주는 친구도 있다. 그 중에는 자신이 왜 책을 읽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책을 읽고 또한 읽어준다. 왜 그럴까?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는 각각 독특한 방식으로 그에 대한 답을 풀어나가고 있다. 직업으로 책을 읽어주는 여자와 사랑하는 연상녀의 부탁으로 책을 읽어주는 남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나름대로 이유를 찾아본 것인데 이들의 목소리는 진리는 아닐지라도 하나의 진실로 봐줄 만하다. 자, 그 진실은 무엇일까? 지금부터 길을 찾아 떠나보자.

매혹적인 목소리의 그녀, 사람들을 선동하다

이름은 마리 꽁스땅스. 남편이 있으며 나이는 서른넷이다. 현재 백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스스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래서 우연히 들은, 목소리를 이용해 일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아들이고 광고를 낸다. 신문에 ‘당신의 댁에서 책을 읽어 드립니다’라고 광고를 내는데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워낙에 ‘특이한’ 일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뜻밖에도 꽁스땅스에게는 일을 해달라는 요청이 계속해서 들어온다. 몸이 아픈 남자아이,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여자아이, 완고한 장군부인, 고독한 사업가 등이 꽁스땅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꽁스땅스는 긴장하면서도 마침내 일을 시작한다. 집을 찾아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책을 읽어주는 여자와 듣는 고객들 사이에 전류가 흐르는 것이다.

전류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또래에 비해 연약한 남자아이의 어머니는 과도할 정도로 아이를 보호하려 한다. 때문에 꽁스땅스가 읽어주는 책들도 무난한 것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꽁스땅스가 선택한 책은 사랑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모파상의 것이었다. 집 안에서 어머니의 보호를 받던 아이는 이제 사랑의 속삭임을 듣게 된다.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모두를 차츰차츰 알게 되는 것이며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서서히 이성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다른 경우를 보자. 집에만 있어야 하는 여자 아이에게 꽁스땅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주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다. 꽁스땅스가 읽어주는 책이 아이를 흥분시킨 것이다. 아이는 앨리스처럼 돌아다니고, 접하지 못했던 세상 속으로 떠나고 싶어하고 그로 인해 꽁스땅스는 난처한 상황에 빠져든다. 책 하나 잘못 읽어서 위험한 상황에 빠진 셈이다. 장군 부인은 어떨까? 꽁스땅스는 요청대로 마르크스와 레닌의 것들을 읽어주는데 기막힌 일이 생긴다. 장군 부인이 데모에 나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전류가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꽁스땅스는 책을 읽어주고 그 내용을 들은 사람들은 행동을 한다. 때문에 형사는 꽁스땅스에게 ‘선동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무엇을 선동한다는 것일까? 꽁스땅스는 책을 읽어주는 행위로서 듣는 이의 잠재된 욕구를 자극한다. 이것은 일종의 주문이기도 하다. 나가고, 움직이고, 떠들고, 폭발하기를 바라는 주문! 바로 그것이다.

‘책 읽어주는 여자’는 위험하다. 주위에서 기대하던 대로 행동하던 수동적인 인물을 능동적으로 바꿔버리니까. 그럼에도 매력적이다. 인간의 깊은 곳을 흔들어버리니까.

소년이여, 이유는 묻지 말고 책을 읽어라

그에 비하면 『책 읽어주는 남자』의 ‘나’는 이유가 좀 다르다. 열다섯 살에 만난 서른여섯의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이유는 불문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책을 읽어달라는데 이유가 무어 그리 중요할까? 소년은 책을 읽어주고 사랑을 나누고, 다시 책을 읽어주고 사랑을 나눈다.

소년이야 사랑에 빠져서 그렇다 치지만 밖에서 이 광경을 본다면 의아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책을 왜 읽어주는 것인가? 꽁스땅스처럼 잠재된 욕구를 자극하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애틋한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서로 키득키득 거리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도무지 추측할 수가 없다. 그런 때에 한나가 떠나버린다. 그것 역시 이유는 불문이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다. ‘나’는 다시 한나를 만나게 되는데 그곳은 공교롭게도 법정에서다. 한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남들의 죄까지 뒤집어쓴 채 법정에서 모욕을 당한다. 불쌍한 한나, 격분하는 나. 하지만 나는 감히 움직일 수 없다. 한나가 나치를 도와준 일로 벌을 받는데 그 상황에서 누가 과연 나설 수 있겠는가.

이때까지만 해도 『책 읽어주는 남자』는 내용이 제목을 배신한 것처럼 보인다. 책을 읽어주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주 뜻밖에도 나는 법정에서 한나가 ‘왜’ 책을 읽어달라고 했는지를 알게 된다. 사연이 너무 예측 불가능했던 것인지라 구경하던 이들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그 사이 내용은 제목을 향해 다가서고 한나는 감옥에 들어간다.

불쌍한 한나, 안타까워하는 나. 나는 한나를 도와주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그래서 책을 읽어주기로 한다. 다만 감옥인지라, 테이프에 녹음해서 보내주는 방법으로 책을 읽어주고 이때부터 전류가 흐른다. 이 전류의 정체는 무엇일까? 감옥에서 테이프를 듣는 한나의 심정을 생각해보라. 그것은 외로움을 달래주고, 상처를 보듬어주고, 누군가 나를 위해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게 하는 안도감을 준다. 더불어 내일을 기다리게 하며 미래를 준비하게 만든다.

테이프를 듣는 한나는 불쌍하지 않다. 그녀는 나의 책 읽기로 인하여 치유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류의 정체도? 그렇다. 책을 읽어주는 것, 그것은 마음에 바르는 ‘빨간 약’이 된다.

읽어주는 행위의 비밀, 읽는 행위의 비밀까지 잡아주지 않을까?

『책 읽어주는 여자』『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책을 읽어주는 행위는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다. 『책 읽어주는 여자』가 욕구를 자극하며 그것을 분출시켜주는 것이라면 『책 읽어주는 남자』는 치유해주는 것이다. ‘경쾌함’과 ‘진지함’으로 비교되는 책의 분위기만큼이나 탐구한 이유가 다르다는 것이 확실히 눈에 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책은 왜 읽는가? 참으로 오랫동안 인간의 머리를 괴롭혀온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답을 위에서 살펴본 두 권의 책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과 자신을 위해 책을 읽는 것이 분명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공통점이 있으리라 믿는다.

책 읽는다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책은 왜 읽는가? 책 읽어주는 사람들이라면 명쾌하게 답을 해주리라. 그러니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골칫거리를 덜어낼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한 가지 더! 당장 나에게, 그리고 내 옆의 사람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은 흥미까지 생겨날 테다. 그러니 어찌 망설이랴. 남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눈을 감고, 꿈을 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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