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의 최고봉을 노린다! - 라임 VS 스카페타
이것만 본다면 스카페타와 라임은 특이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연약한 여성과 장애인, 추리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캐릭터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두고두고 그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광고 중에 ‘골라먹는 재미’를 말하는 것이 있다. 광고는 골라먹을 수 있는 것을 무려 서른 가지 이상이나 언급한다. 하지만 여기 두 가지 경우로도 충분한 재미를 보장하는 것이 있다. ‘골라보는 재미’라고 말할 수 있는 그것은, 추리소설의 최고봉을 노리고 있는 <스카페타 시리즈>와 <링컨 라임 시리즈>다.
주인공이 인간적으로 여겨진다?
추리소설의 주인공들은 완벽했다. 셜록 홈즈를 떠올려보자. 김전일은 어떤가? 때로는 제갈공명을, 때로는 관운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백 점 만 점짜리 인간으로 여겨진다. 그들에게는 ‘위기’라는 것도 우습게 여겨진다. 그런데 한 여성은 위기를 정말 위기답게 만든다. 주인공은 바로 버지니아 주의 법의국장 케이 스카페타다.
그녀는 싸움도 못하고 냉철하지도 않다. 외로움도 잘 타고 변덕도 심하다. 동화 작가인 동생한테는 ‘비정상’이라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한테는 ‘불효녀’로 단단히 찍혔다. 사랑하는 조카에게도 감정 표현을 제대로 못해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스카페타, 일은 프로지만 인간관계는 ‘꽝’이다. 법의학자로서는 매력적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대표적인 인간형이다.
라임은 또 어떤가? 스스로 제 몸을 보호할 힘이 없다. 사고를 당해서 컴퓨터와 보조원의 도움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처지다. 추리소설의 주인공치고는 굉장히 독특하게도 장애인이다. 그런데 링컨은 본래 자존심이 셌다. 그런 그가 장애인이 됐으니 성격이 삐뚤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라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력하고도 울퉁불퉁한 자아를 지녔다. 변덕도 스카페타만큼 심각하다. 게다가 감정표현도 서툴다. 상대방 기분 상하게 하는 재주의 탁월함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
이것만 본다면 스카페타와 라임은 특이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연약한 여성과 장애인, 추리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캐릭터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두고두고 그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범인이 무섭다고 오들오들 떠는 스카페타, 몸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죽고 싶어 하는 라임….
불현듯 ‘인간’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렇다. 불완전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성격과 꼭 빼닮았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내 자신’의 어떤 것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을 만날 때면 완벽한 주인공들을 만날 때는 갖기 힘들었던 애틋한 감정이 뭉클거린다. 약점을 감싸주고 싶은 미묘한 그것이….
아기자기한 스머프 마을 vs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
주인공이 불완전한 까닭에 시리즈는 사람을 부른다. 왓슨처럼 홈즈의 활약을 전해주는 동료가 아니다. 주인공과 인간적인 애정을 주고받는 조연들의 활약이 요구되는 것으로 여기에서 ‘드라마’가 탄생된다. <스카페타 시리즈>와 <링컨 라임 시리즈> 모두 예외는 아닌데 여기에서 두 시리즈의 색깔이 나뉜다.
<스카페타 시리즈>를 보자. 시리즈에서 스카페타와 마리노, 웨즐리, 루시와 같은 주변 사람들이 만드는 관계 지도는 하나의 스머프 마을을 연상케 한다. 가지각색의 스머프들이 등장해서 아기자기한 맛을 보여주듯 스카페타와 사람들이 성격차이나 오해, 질투와 사랑 때문에 서로 지지고 볶는 이야기는 <스카페타 시리즈>의 독특한 재미라고 할 수 있다. 구경하는 재미가 어찌나 쏠쏠한지 그것 때문에 시리즈를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다.
반면에 <링컨 라임 시리즈>의 관계 지도는 간단하다. <스카페타 시리즈>는 삼각관계나 냉랭한 가족상을 보여줄 정도로 다수의 중심인물이 등장하는데 반해 <링컨 라임 시리즈>는 중심인물로 ‘매력’적인 여경관 아멜리아 색스만이 등장한다. 자, 매력을 강조한 데서 눈치 챌 수 있듯이 <링컨 라임 시리즈>의 드라마의 핵심은 라임과 색스의 사랑 이야기다.
조합으로 본다면 단조로워 보인다. 하지만 섣부른 추측은 금물. 둘의 만남은 어느 추리소설의 콤비보다 매력적이고 흥미롭다. 둘은 일을 할 때는 환상의 콤비다. 라임은 머리를, 색스는 몸을 사용한다. 시리즈에서 라임이 지시하고 색스가 현장을 중계하며 행동하는 장면들 하나하나는 진정한 파트너십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애정 전선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색스를 사랑하지만 장애를 안고 있는 몸 때문에 마음을 숨겨야 하는 라임, 라임을 도와주고 싶지만 역시나 강한 자존심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색스가 만드는 사랑이야기는 <링컨 라임 시리즈>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데 이 모양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슷하다. 그런 탓에 <스카페타 시리즈>에서는 맛보기 힘들었던, 화려하고도 화끈한 맛을 기대해도 좋다.
시리즈 하나쯤 챙겨두는 센스는 기본!
시리즈를 가슴에 품어둔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 괴로워서 한숨도 쉬지만 그럼에도 미소는 여전하다. 왜 그럴까?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시리즈를 기다리는 것은 인생에 낙이 될 정도로 독특한 즐거움이 있다. 언제 나올까 기다리고, 찾아온다는 소식에 아침부터 서점 주변을 배회하는 경험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리즈를 품은 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가끔 기다리는 괴로움이 싫어서 완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예의가 아니다. 함께 걷는 것이 시리즈에 대한 예의 중의 예의다. 사실 괴로움이야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다보면 금방 치유된다. 게다가 훗날 희열의 원천이 되니 억지로 피할 이유는 없다.
자, 시리즈를 한번 품어보자. 여기 기다리다가 숨넘어가지 않게 자주 나오면서도 놀라운 법의학의 세계를 생생하게 담아냈고 추리소설다운 확실한 반전도 보장하고 있으며 지루하지 않은 드라마까지 곁들여져 있는 두 개가 있으니 주저 말고 골라보자.
어떤 것을 고르겠는가? 남성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연약한 여성 법의학자 케이 스카페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단서를 찾아내는 링컨 라임? 어쨌든 골라보시라. 어느 것이든 순도 100%의 즐거움은 확실히 보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