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눈을 감는다. 그 사람이 자살하겠다는 결심을 할 때 그리고 목숨을 끊는 순간에 얼마나 두려웠을까를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물어본다. 다들 혀를 차며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런데 개중에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며 의지의 나약함을 탓하는 이가 있다.
어떤 종교는 말한다. 자살은 죄악이라고. 그 종교의 영향 탓인가. 아니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인가. 자살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이 뭉쳤다!
화려하고도 큼지막한 버스가 있다. 쌩쌩 잘도 달려간다. 궁금증에 버스의 꽁무니를 놓치지 않는다. 저런 버스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가져본다. 그런데 아뿔싸! 버스는 벼랑길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물가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죽으려고 작정한 것인가?
그렇다. 뒤도 안 돌아보고 ‘막’ 달리는 버스, 아르토 파실린나의 『기발한 자살 여행』의 그 버스는 집단적으로 동반자살을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의 꿈(?)이자 희망(?)을 현실로 옮겨줄 버스다. 동반자살을 위한 버스? 듣는 순간, 가슴이 콱 답답해진다. 기가 막히기도 한다.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그렇게도 할 일들이 없는가 하는 아주 차가운 반응도 생긴다.
버스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쫄딱 망한 사업가 럴로넨은 축제날 자살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럴로넨은 자살하기에 적당한 창고를 찾아내고 비장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려 한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자살하려는, 아니 자살하고 있는 군인 컴파이넨이 있다. 럴로넨은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본능적으로 컴파이넨을 살린다. 그런데 살리고 보니 우습다. 서로 입장이 피장파장이니 그럴 수밖에.
죽는 건 내일 죽어도 되니 답답한 심정이나 이야기해보자며 둘은 서로에게 가슴 속 상처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대화의 힘을 깨닫는다. 죽겠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일단 답답한 마음이 풀리고 기분도 좋아진 것이다. 그 기분 속에서 불현듯 둘은 궁금해진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들은 자살하려는 핀란드 국민을 모아보고자 한다. 죽을 때 같이 죽으면 덜 외롭겠지 하는 생각에 신문에 광고(?)를 낸다.
「당신은 자살을 하려는가?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자살 생각을 품고 있을뿐더러, 더욱이 실제 경험도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다.
당신과 당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편지를 써라 (…) 모험가여, 고민하지 말라.
헬싱키 중앙 우체국 앞으로 우정 어린 편지를 보내라.
암호는, “공동의 시도.”」
-『기발한 자살 여행』 속에서
암호를 이용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일을 벌인 사업가와 군인조차 놀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답신이 온다. 핀란드 전역에서 정확히 612개가 단 일주일 만에 온 것이다! 이때부터 일이 벌어진다. 같이 죽기 위한 계획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버스도? 그렇다. 핀란드의 죽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벌인 계획의 일환인 것이다. 아, 이쯤 되면 뭔가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국가적인 차원의 진지하고도 심각한 문제가 담긴….
사람의 삶에는 다양한 색깔이 있다!
『기발한 자살 여행』은 자살을 집단의 문제로 부각시키는데 반해 에토 모리의
『컬러풀』은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컬러풀』이 열리면서 등장한 영혼, 그 영혼은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때 프라프라라는 천사가 나타나 엉뚱한 말을 한다. 죄 많은 영혼이니 지상에 내려가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윤회 사이클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한다.
쉬고 싶은 마음에 영혼은 거절한다. 하지만 천사의 협박 아닌 협박, 즉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코, 결코 하와이 같은 낙원이 아니랍니다”라는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지상으로 돌아간다. 이때부터
『컬러풀』은 짧지만 강렬한, ‘인간 구하기’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천사의 제안을 받은 영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사흘 전에 음독자살을 기도한 마코토라는 소년의 몸에 들어가 다시 살라는 것이다. 그것이 무어 그리 어려운 일인가 싶은 영혼은 대충대충 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아뿔싸! 마코토의 처지가 참으로 가엽다.
어머니는 불륜의 주인공이며, 아버지는 동료가 망해도 자신만 잘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남자이며, 형은 쌀쌀맞기 그지없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왕따이며, 좋아하는 여학생이, 거의 유일하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던 그녀가 원조교제한다는 사실을 이제 막 알아차린 상태다. 영혼은 혀를 찬다. 마코토의 삶은 하수구를 가득 메운 더러운 물의 시커먼 색과도 같은, 암울하고도 우울한 인생이 아닌가! 죽을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어쨌든 영혼은 수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큰 의욕은 없다. 억지로 하루하루를 채워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영혼은 문득 마코토가 가엾다는 생각을 한다. 우울한 환경 때문이 아니다. 마코토가 자신의 인생 빛 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시커먼 색만 보고 섣부르게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영혼은 어느 순간부터 마코토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과 사랑하는 여학생, 학교친구들에게도 다른 면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마코토의 삶에도 보랏빛이 있고 장밋빛이 있고 파란빛이 있다는 것도 깨닫고 있었다. 영혼은 간절한 마음으로 프라프라에게 말한다. 마코토가 이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자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다
『컬러풀』의 메시지는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무채색의 지리멸렬한 삶이 아닌, 어둠에 가려진 오색찬란한 삶을 보고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순전히 당사자의 몫으로 돌리지는 않는다. 프라프라로 상징되는 타인, 멘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도움을 주고 관심을 갖는 ‘주변인’들의 소중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기발한 자살 여행』은 어떨까? 마찬가지다. 다만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 생명력을 주는 일을 개인이나 작은 공동체에게만 맡겨 둘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점이 다르다. 자살을 ‘집단’의 문제로 풀려고 한 것인데 이 의견은 진지하게 경청할 만하다. 특히나 지금처럼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세태를 돌이켜본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소리들만 난무한다는 걸 떠올려본다면 더욱 그렇다.
자살하려는 사람, 아니 굳이 자살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떠올릴 정도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화려한 버스 티켓을 주자. 아니면 프라프라를 만나게 해주자. 갑자기 무슨 얼토당토하지 않은 소리냐고? No! 전혀 생뚱맞은 말이 아니다.
『컬러풀』과
『기발한 자살 여행』의 끝자락에 달린 여운이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어떤 방법으로? 바로 당신의 ‘관심’이 자살 여행 버스이자 프라프라와 같은 천사가 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어떤가? 내 생명력으로 타인의 고통을 치유해준다는 것,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은가?
『컬러풀』과
『기발한 자살 여행』, 두 권의 책이 그것을 알려준다. 당신을 시작으로 한 세상의 관심이 상처 받은 누군가에게 빨간약이 될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