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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감독판 : 인간보다 인간답게
내년이면 <블레이드 러너>가 공개된지 어느덧 25년이 된다. 25주년을 맞아 2007년, 리들리 스코트는 직접 편집에 참여하는 ‘최종판(Final Cut)’을 공개한다고 한다.
인간보다 인간답게
내년이면 <블레이드 러너>가 공개된지 어느덧 25년이 된다. 25주년을 맞아 2007년, 리들리 스코트는 직접 편집에 참여하는 ‘최종판(Final Cut)’을 공개한다고 한다. 그리고 곧 이어 발매될 이 ‘최종판 DVD’에는 지금까지 알려졌던 <블레이드 러너>의 여러 버전 즉 82년 극장 개봉판(스코트의 버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영화사가 얼토당토않은 해피 엔딩을 삽입한...), 인터내셔널 버전 그리고 1992년 공개된 감독판이 모두 담기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다룰 <블레이드 러너 : 감독판>이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최종판‘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
리들리 스코트는 92년 당시 영화 작업으로 매우 바쁜 상태라 온전히 <블레이드 러너 : 감독판>의 편집에 집중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내년 9월 공개될 ‘최종판’은 리들리 스코트가 원하던 장면들이 새롭게 추가되고 결말도 변경즵 것이라고 한다. 그 때까지 우리는 ‘최종판’에 가장 근접한 현재의 ‘감독판’을 보아야할 듯하다. 레터박스 포맷에 (초창기 타이틀이 다 그렇듯) 열악한 화질 그리고 영화를 보다가 뒤집어 재생시켜야 하는 다소 불편한 양면 디스크였지만 <블레이드 러너 : 감독판> DVD는 오리지널 사이즈의 영상 포맷에 (비디오에 비하면) 월등한 영상과 음향을 갖추고 있어 매니아들 사이에 꽤 인기를 끌었던 아이템이었으나 절판되어 이 영화를 아끼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블레이드 러너 : 감독판>은 최근 출시된 열악한 영상과 음향 부분을 개선한 새로운 리마스터링 버전이다.
2014년의 로스앤젤리스의 마천루를 뒤덮고 있는 것은 일본의 이미지다.
<블레이드 러너>의 비주얼은 현재의 관점에서도 매우 탁월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블레이드 러너>는 <이티>가 공개된 1982년에 공개되어 흥행에 대참패하고 만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는 곧 상당한 매니아층을 확보했다. 이 영화의 진가는 천천히 그리고 깊숙히 드러났다. 처음에는 '컬트'가 되었던 이 영화는 곧 매니아들과 평론가들 그리고 철학자들에 의해 ‘고전’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곧 80년대의 걸작 리스트와 SF 영화의 걸작 리스트에서 <블레이드 러너>는 늘 상위권의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고 <에이리언, 1979>, <블랙 레인, 1989>, <델마와 루이스, 1991>, <글라디에이터, 2000>, <블랙 호크 다운, 2001>, <킹덤 오브 헤븐, 2005> 등으로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거장’으로 대우받게 된 리들리 스코트의 비교적 긴 필모그래피 중에도 <블레이드 러너>는 늘 첫 손가락에 뽑히는 작품이 되었다.
레이첼은 자신의 기억을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내밀지만 그것은 조작된 것이다.
아버지와 돌아온 탕아와의 만남.
필립 K 딕의 단편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의 꿈을 꾸는가?>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블레이드 러너>는 현재의 기준으로도 매우 독창적인 비주얼 스타일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미 <결투자, 1977>와 <에이리언, 1979>을 통해 당대 최고의 ‘비주얼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았던 리들리 스코트는 2014년의 로스앤젤리스의 디스토피아 비전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오프닝에 제시되는,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드높게 치솟은 빌딩숲의 풍경이 압도적인 미래의 로스앤젤리스는 끊임없이 산성비가 쏟아지고 세계 각국의 인종들이 거리를 메운다. 치솟은 빌딩과 대비되는 비루한 거리의 사람들의 모습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자본주의의 우울한 초상화를 보는 듯 하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탁월한 영화의 내용만큼이나 비주얼 효과가 뛰어난 영화다. 빌딩의 마천루에는 코카 콜라나 TDK, 팬암(지금은 사라진...)같은 거대 자본의 대형 광고판이 점유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것은 대형 비행선과 가장 커다란 광고판을 차지하고 있는 교태스런 일본 여인의 이미지다. (일본 자본이 점유하고 있는 로스앤젤리스 !) 리들리 스코트가 구현한 미래의 로스앤젤리스는 로스앤젤라스라는 지명 말고는 현재의 로스앤젤리스를 상기시키는 구석이 없다. 선탠에 그을린 백인들을 대신한 동양인들로 메워진 거리의 풍경, 햇볕이 쨍쨍한 캘리포니아 고유의 날씨와는 거리가 먼 을씨년스러운 기후, 많은 일조량에 따른 밝은 분위기 대신에 어둡고 지저분한 거리. <블레이드 러너>에는 백인들이 지니는 미래 미국에 대한 공포 - 즉 이방인들이 자신을 대체할 것이라는 - 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레플리컨트(복제인간)를 뒤쫓는 데커드(해리슨 포드)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영국의 펑크족, 라마승 집단, 일본인 상인 집단 같은 이질적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일본어나 스페인어, 중국어 그리고 아랍어와 같은 이방인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 속에서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레이몬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와 그의 후예들처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탈출한 레플리컨트를 찾아 거리를 해맨다. 하지만 그는 이 도시에서 완벽하게 고립된 존재이며 그가 뒤쫓는 레플리컨트만큼이나 '도시의 이방인'이다.
레플리컨트 로이 : 북유럽 신화의 주인공 같은 로이는 이 영화의 진정한 영웅이다. .
리들리 스코트 초기작 특유의 빛을 이용한 이미지들은 <블레이드 러너>를 강렬하게 하는 주요 요소다.
역설적이게도 영화 속의 레플리컨트를 제조(!)하는 회사인 타이렐의 모토는 ‘인간보다 인간답게’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 대 비인간(레플리컨트)을 계속 대립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인간/비인간의 경계는 영화가 진행될 수록 모호하다는 점이 드러나며 둘은 사실 닮아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인간/비인간 혹은 진짜/가짜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모호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인간을 모방한 레플리컨트는 인간의 닮지 않아야 할 부분까지 닮아간다. 영화의 절정부를 이루는 데커드와 '레플리컨트' 로이(룻거 하우어)와의 대결 장면에서, 로이는 자신의 연인인 파리스(다릴 한나)를 살해한 데커드에게 '무기도 지니지 않은 여자를 살해했나?'라고 비난한다. 뿐만 아니라 이 장면에서 둘은 동일인 또는 도플갱어처럼 그려진다. 두 인물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로이에 의해) 손가락이 꺾여진 데커드의 모습은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자신의 손을 손상시키는 로이의 모습과 겹쳐진다. 이 장면에서 인간/비인간 또는 데커드/로이의 관계는 역전당하며 동시에 데커드의 정체를 암시하기도 한다. 로이는 데커드를 육체적으로 압도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압도한다. 그리고 자신을 구하고 죽어가는 로이를 바라보며 데커드는 빗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이 영화에서 데커드와 로이의 만남은 단 한 번 뿐이지만 그 감흥은 절대적이다. 사실 둘은 매우 닮아 있고 비슷한 길을 찾아나선다. 필연적으로 로이의 궤적을 뒤쫓을 수밖에 없는 데커드의 여정은, 창조자/신을 찾아나서는 로이의 필연적 회귀만큼이나 자신의 근원에 대한 질문으로 맺어져 있다. 둘의 만남은 데커드의 여정의 종착인 동시에 로이의 죽음 또는 해탈을 의미한다. 인터뷰에서 리들리 스코트 스스로 ‘데커드는 레플리컨트’라고 밝혀 김이 빠지기는 했지만(그건 밝히지 않는 것이 좋았다!), 레플리컨트를 뒤쫓는 데커드와 쫓기는 레플리컨트 로이 또는 또 다른 레플리컨트 레이첼 중 누가 더 나은 ‘인간’인가의 구분은 모호하다. 데커드는 레플리컨트의 창조자 타이렐을 만나 최신형 레플리컨트인 레이첼의 테스트를 해보지만 무려 100여개의 질문을 던진 후에야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증명하는 방식은 로이처럼 '죽음'을 맞이하거나 데커드처럼 '사랑'을 얻는 것이다.
빗 속의 눈물 : '영웅' 로이는 자신의 적인 데커드를 구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데커드가 꾸는 꿈에 등장한 유니콘의 이미지는 영화의 결말부에 다시 등장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데커드의 관점으로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끌고가지만, 데커드의 선택 또는 직업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또 '반역자' 로이의 근원으로의 회귀 과정에서 벌이는 살인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할 이유도 찾기 어렵다. 그건 일종의 계급적/신화적 반역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전략은 주제의 의도를 모호하게 남겨두는 것이다. 이 영화는 초기에 인간/비인간의 경계가 '기억'에 의해 구분된다고 말한다. 가령 첫 장면에서 레플리컨트의 구분법은 '기억'에 대한 반응에 의한 것이다. 첫 번째 등장한 레플리컨트인 V.K가 그러했고 스트리퍼로 일하는 또 다른 레플리컨트인 조라 역시 '기억'에 대한 질문을 맞닥뜨리자 당황한다. 하지만 영화의 절정부에서 로이는 '난 엄청난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그것은 레플리컨트의 기억 역시 찬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는 우주 전쟁을 경험했고 우주의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했다. 그는 '죽음의 공포'의 본질 즉 '기억의 사멸'을 깨닫고 있는 보기 드문 '인간'이며 그렇기에 자신의 죽음을 '빗 속의 눈물'이라고 표현한다.
레플리컨트들은 4년이라는 한정된 수명과 한정된 역할을 벗어날 수 없다는 금기를 모두 거부하고 지구로 귀환한다. 그들은 ‘감정’을 이식받은 적이 없지만 ‘감정’을 스스로 학습한다. 로이가 금기된 지구의 귀환을 실현하고 자신의 창조자/신을 찾아나서는 이유는 또 다른 레플리컨트인 프리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창조자/신인 타이렐을 찾아가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타이렐은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라’며 ‘삶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고 로이는 타이렐의 눈을 찔러 죽인다.(오이디푸스 신화의 패러디) 이 장면에 대해 철학자 이진경은 들뢰즈/가타리의 이론을 빌어 ‘안티 - 오이디푸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가 예찬하고 있는 것은 '유한한 것의 아름다움'이다. 상영시간 내내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를 질문하는 <블레이드 러너>는 미래를 빌어 인간 존재의 모든 것에 대해 성찰하는 영화다.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유한성? 사랑? 기억? <블레이드 러너>가 '위대한 영화'로 기억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블레이드러너 감독판> 리마스터링 버전의 디스크 메뉴
<블레이드 러너> 초기 버전의 '썰렁한' 디스크 메뉴
(상) 리마스터링 버전, (하) 초기 버전. 색감의 개선이 두드러져 보이며 음영 표현이 잘 되어 있다.
(상) 리마스터링 버전, (하) 초기 버전 정확하게 같은 장면은 아니지만 색감의 차이는 보인다.
앞으로 최종판이 나올 예정이므로 <블레이드 러너 감독판>의 영상은 최상의 수준을 선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감독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최종 버전에서 좀 더 많은 영상 퀄리티의 개선이 보일 듯 하다. 하지만 좀 더 탁한 느낌의 초기 버전에 비하면 영상의 정보량이 많고 화사한 색감이 살아있는 리마스터링 버전의 영상 퀄리티가 한층 돗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경이 표현된 밤 장면에서는 지글거림이 드러나고 최신작에 비하면 세밀한 표현력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 ★★★☆
<블레이드러너 감독판> 리마스터링 버전의 언어 메뉴
영어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1982년작임을 감안한다면 무리없는 수준의 사운드 퀄리티를 들려준다. 우퍼나 서라운드의 강력함이 돋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있다는 느낌을 준다. 반젤리스의 오묘한 사운드트랙과 음향 효과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다만 미세한 사운드의 표현이 약간 부족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최종판에서 좀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아무리 최종판이 등장한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서플먼트가 수록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 영화가 엄청난 팬층을 지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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