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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화시킨 한 여성의 이야기, <노스 컨츄리>
하지만 <노스 컨트리>가 갖고 있는 호소력의 출발점은 바로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스 컨츄리>는 미국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집단 소송을 걸어 승리한 북부 미네소타의 여성 광부들의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화시킨 한 여성의 이야기
금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스 컨츄리>가 후보에 오른 부분은 딱 2 개 부분이다. 여우주연상(샤를리즈 테론)과 여우조연상(프란시스 맥도먼드). 당연히 아카데미상이 작품의 척도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노스 컨츄리>는 이 두 여배우의 연기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이미 <몬스터>와 <파고>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 두 여배우 외에도 또 다른 오스카 수상자 씨시 스페이섹 그리고 우디 해럴슨, 숀 빈, 리처드 젠킨스 등으로 구성된 탄탄한 연기진으로 짜여져 있으며 <웨일 라이더>를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뉴질랜드의 여성 감독 니키 카로의 연출력 역시 뛰어나다.
하지만 <노스 컨트리>가 갖고 있는 호소력의 출발점은 바로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스 컨츄리>는 미국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집단 소송을 걸어 승리한 북부 미네소타의 여성 광부들의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 물론 영화는 실제 이야기와 많이 달라져 있는데, 일례로 집단 소송이 출발되는 시점만을 다루고 있는 영화와 달리 실제 소송은 1984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되었으며 사건의 주체 역시 여러 명의 여성이었던 것. (DVD의 서플먼트에 수록된 다큐멘터리에서 실제 사건의 주인공들은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달라‘라고 당부한다.)
이미 전작 <웨일 라이더>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선보인 바 있는 니키 카로는 영화의 주인공을 분산시키기보다는 조시 에임스(샤를리즈 테론)에 여성들의 보편적인 고통을 담아내는 쪽을 택했고 보다 인물 내면의 심리적 갈등을 묘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일종의 법정 스릴러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노스 컨츄리>는 사실 ‘성장 영화’에 가까운 영화다. 이 영화 안의 인물들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한다. ‘매맞는 아내’라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던 조시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는 ‘당당한 여성’으로 변화하며, ‘남성들의 직장’인 ‘탄광’에 자신의 딸이 발을 들여놓은 것을 부끄러워하던 아버지(리처드 젠킨스)는 딸의 입장을 이해하고 딸의 편에 서게 되고, ‘순종적인 아내’였던 어머니 역시 딸로 인해 ‘저항하는 아내’가 된다. 심지어 성추행의 가장 적극적인 가해자였던 남성 노동자조차 심리적 변화의 징후를 보인다.
카로는 두 여성(조시와 글로리)에게 각각의 캐릭터를 부여하는 동시에 두 여성을 대비시키며 심리적으로 이어놓는다. 조시가 성희롱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남성과 여성 동료들 양쪽으로부터 외면을 받으며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한 정신력을 소유한 여성인 글로리(프란시스 맥도먼드)는 파킨스씨병에 의해 육체가 파괴되어 간다. 즉 이 영화에서 ‘성희롱’은 여성에게 있어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되는 병’인 ‘파킨스씨병’과 같은 것으로 묘사된다. ‘성희롱’은 조시의 영혼을 파괴한다. 조시가 저항하기로 마음먹자 그의 인간관계도 끝장난다. 성희롱 가해자의 아내는 공개 장소에서 조시에게 ‘남편을 유혹하지 말라’고 선언하고 아들마저 그를 ‘창녀’라 비난한다. 그렇게 그녀는 파괴되어 간다.
<노스 컨트리>의 미덕은 영화를 성 대결과 같은 단순한 구도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가해자’인 회사의 변호사는 여성(린다 이몬드)인 반면 조시의 변호인은 고교 아이스하키 스타 출신의 남성(우디 해럴슨)이다. 또 조시를 비난하는 것은 관성에 젖은 ‘마초’ 남성 동료들만이 아니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성희롱을 당하면서도 참는 여성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침묵의 카르텔’을 강요하는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다. 조시가 남편의 폭력을 피해 친정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버지(리처드 젠킨스)는 ‘바람피우다 남편에게 맞았느냐 ?’고 묻고 그 장면은 ‘아버지를 실망시킨 것이 그게 처음이 아니죠 ?’라는 상대편 변호사의 대사가 떨어지는 법정 장면으로 이어지고, 다시 ‘품행방정’과 거리가 먼 그녀의 고등학생 시절 회상 장면으로 이어진다. 물론 조시가 겪는 성차별은 다른 여성 캐릭터들에게도 동일하게 전이된다. 심지어 회사 측의 변호인조차 경영주에게 ‘당신이 여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변호사이기 때문에 선택되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세상은 그녀를 전사로 뒤바꿔 놓는다. <노스 컨트리>가 다른 할리우드 영화와 특히 다른 점은 그녀가 결코 남성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남성 변호사의 존재는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변호사는 연애의 대상도 절대적으로 의존할 만한 대상도 아니다. 그가 선택된 것은 조시가 아는 변호사가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 뛰어난 변호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노스 컨츄리>는 온통 남성적 기호로 가득한 세계(즉 영화의 배경이 된 탄광촌의 풍경)를 뚫고 나서는 역동적인 여성 캐릭터의 힘이 매력적인 영화다. 조시는 고통에 치를 떨지만 혼자의 힘으로 버텨내고 가족들과 동료들을 설득해 나간다. 영화는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무너져가는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강인한 정신력을 유지하는 글로리의 모습은 점점 강인해져가는 조시의 모습을 반영한다. 샤를리즈 테론은 그 화려한 외모에 상응하는 인물 해석과 연기력을 선보인다. 서두에 말했듯 <노스 컨트리>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지만,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감상자를 행복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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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과 갈색 등 무채색 계열의 영상을 선보이고 있기에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노스 컨츄리> DVD의 영상 역시 평균 이상을 구현한다. 샤를리즈 테론의 하얀 얼굴 윤곽선이 뚜렷하게 표현되며 있다. 광산 노조의 회의 장면 등 실내 장면에서 표현력이 조금 부족해 보이기는 하지만 감상 자체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정통 드라마 장르의 최신작으로는 우수한 수준. ★★★☆
법정 장면 등 대화 장면 중심의 드라마 장르이므로 음향 표현에 있어 강한 임팩트를 느끼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오스카 첫 노미네이션과 첫 수상을 이루어낸 구스타보 산타오렐라의 스코어가 부드럽게 재생되며 앰비언트 사운드(배경 효과음)의 표현력 역시 근사한 편이다. 특히 산타오렐라의 스코어는 '자아의 성장'이라는 영화의 주제와 내면을 응시하는 듯한 매력적인 표현력을 전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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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ies From The North Country (16:05)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답게, 로이스 젠슨을 비롯한 실제 사건의 주역들을 만나볼 수 있는 메뉴다. 왜 그녀들이 고단한 탄광에 취업하게 되었는지, 이 사건이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사건은 1984년에 시작되어 1998년에 마무리될 정도로 당사자들에게도 꽤 고단한 일이었는데 당당한 목소리로 사건의 전개 과정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모습이 인상 깊다.
추가 장면 Additional Scenes (11:06)
레터 박스 포맷으로 수록된, 말 그대로의 확장 장면이다. 영화에 꼭 필요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들어가도 별 문제가 없는 장면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변호사인 빌 화이트(우디 해럴슨)가 자신은 사건을 맡은 경험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 등 본편에서 별다른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빌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소개를 많이 담고 있다. 그 외에도 조시가 글로리를 병문안 가는 장면, 조시가 아들 새미를 야단치는 장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노스 컨츄리> DVD의 서플먼트는 양적으로 그리 풍부한 편이 못된다. 위에 설명된 메뉴 외에는 극장용 예고편만을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Stories From The North Country>는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건의 실체를 함축하여 잘 담고 있어 어느 정도 만족감을 주며 <추가 장면> 역시 꼭 필요한 메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메이킹 필름의 부재, 감독 및 배우들의 인터뷰 부재 등은 아무래도 아쉽다는 생각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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