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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과 함께 춤을! <유령 신부>
우리에게 연상되는 '죽음'의 이미지는 대개 '공포'다. 영화에서 '죽는다'라는 사건은 주인공을 변화시키거나 성장시키며 이야기의 전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건 우리가 '죽음'이라는 '사실'의 뒷면의 진실을 도통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령과 함께 춤을...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에 한 명인 아난의 이야기다. 미남인 아난이 아랫 마을로 탁발을 나가자 동네 처녀가 하나가 아난에게 반해 부끄러움도 잊은 채 아난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고 한다. 잠시 처녀를 바라보던 아난이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는지요 ?"라고 묻자 처녀는 "아닙니다. 스님 눈이 너무도 예뻐서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아난은 주저 없이 자신의 손가락으로 눈을 후벼 내서 처녀에게 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처녀의 손바닥에 놓인 그 눈은 처녀에게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꽤 끔찍하게 느껴지는 이 이야기는 결국 예쁜 것과 징그러운 것은 사실 하나이며, 사랑과 미움도 하나라는 불교의 깨달음 즉 '중도(中道)'를 설명하는 일화다. (김교빈 저 『한국 철학 에세이』 , 동녘, pp.36~37>
우리에게 연상되는 '죽음'의 이미지는 대개 '공포'다. 영화에서 '죽는다'라는 사건은 주인공을 변화시키거나 성장시키며 이야기의 전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건 우리가 '죽음'이라는 '사실'의 뒷면의 진실을 도통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의 호러 영화들은 '죽음' 자체가 지닌 '엽기성'의 이미지를 극대화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팀 버튼의 영화들은 독특하다. 그는 늘 '죽음'이라는 소재를 즐겨 다룬다. 하지만 그의 영화 속에서 죽음이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며 때로는 유쾌한 유희에 다름 아니다. 어떤 점에서 팀 버튼의 영화 속에서 '죽음'이란 '삶과 죽음이 맞닿아있는' 불교의 사고 방식과 닮아 있다.
■ 더 경쾌한 사후 세계
러시아 민담에서 출발한 <유령 신부>의 원제는 <Corpse Bride>다. 직역하면 <시체 신부>라는 다소 엽기적인(?) 제목이 되기 때문에 <유령 신부>라는 한글 제목이 된 듯. 하지만 'Corpse'라는 단어는 '영혼' 보다는 '육체'적인 의미가 더욱 강한 편이라 원제의 느낌이 잘 살아있는 편은 아니다. 즉 팀 버튼과 그의 애니메이션 팀이 다룬 <유령 신부>의 세계는 아름다운 '영혼의 세계'라기 보다는 썩어가는 '시체들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령 신부>의 시체들에게서 좀비 영화의 끈적 끈적하고 음침한 고통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엄밀히 말해 우리들의 히로인 유령 신부(헬레나 본햄 카터의 목소리)는 몸의 절반이 백골인 상태지만 여느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처럼, 꿈 많고 사랑에 들뜬 처녀일 뿐이다.
유령 신부뿐 아니라 '시체들의 세계' 속의 시체들은 하나같이 단순한 낙천가들이다. 그들은 백골만 남거나 심지어 부서져 가는 자신들의 비참한 육체에 대해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처녀인 '유령 신부'를 제외하면...) 재즈를 부르며 춤을 추고 한없이 명랑한 그들의 모습은 영락 없이 선술집(Pub)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노동자들이며 하층민들이고 이들의 모습은 팀 버튼의 다른 작품인 <크리스마스의 악몽> 속의 할로윈 유령들과 <비틀쥬스>의 유령 세계와 맞닿아 있다. 찰스 디킨즈의 소설에 담겨진 하층민들의 삶에서 어두움만 싹 거둬낸 듯한 순진한 활력이 넘친다. 이런 이들의 모습은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채색톤의 인간들의 세계와 대비되면서 경쾌한 즐거움을 전해 준다.
■ 적역의 캐스팅
<유령 신부>의 <유령 신부>의 시각적인 스타일은 밝은 지상(地上)과 어두운 지하(地下)라는 고정 관념을 배반한다. 흑적색과 은색을 중심으로 설계된 인간들의 세계는 삶의 활력을 찾아보기 힘든 고답적인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연상시킨다. 반면 죽음의 세계는 창백한 청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채색의 인간 세계보다 훨씬 풍부한 색채감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런 대비는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청년인 빅터(조니 뎁의 목소리)와 몰락한 귀족 가문의 처녀인 빅토리아(에밀리 왓슨의 목소리)의 결혼이 거래되는(!) 지상 세계와 순수한 사랑에 들뜬 유령 신부가 주인공인 지하 세계라는 설정에서도 드러난다. 즉 이 영화 속에서 죽은 자의 세계는 산 자의 세계에 비해 훨씬 인간다운 활력이 넘치며, 이는 팀 버튼이 창조해 낸 이 영화의 세계관이 주는 최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적인 연출의 우수성만큼이나 <유령 신부>의 매력은 자신들의 분신들과 완벽하게 조응하는 최고의 캐스팅에 있을 것이다. 주인공 빅터는 (팀 버튼의 페르소나로서의) <가위손>(1990)과 <슬리피 할로우>(1999)에서 뛰어난 능력을 소지했음에도 내성적인 성품으로 예민한 내면에 상처를 입는 인물들을 연기한 바 있는 조니 뎁은 이 작품 속에서도 섬세하며 우유부단한 인물을 연기한다. 오히려 빅터는 그가 이전에 연기한 다른 인물들에 비해 조금 더 평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지만, 여전히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특유의 매력을 뿜어낸다. '순수함'과 '역동성'을 겸비한 유령 신부역의 헬레나 본햄 카터, 빅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마지막에 용기를 내는 빅토리아 역의 에밀리 왓슨 그리고 목사의 목소리에 종교적 권위를 넘어선 광기의 감정을 심어낸 크리스토퍼 리 등 <유령 신부>의 주요 캐릭터들을 연기한 배우들은 생명이 없는 인형들에게 완벽한 생기와 개성을 불어 넣었다.
■ 캐릭터들의 놀라운 표정
팀 버튼의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늘 진심을 알 수 없는 흐린 미소를 짓는다. 반기계 반인간 이었던 가위손이 그랬으며 <찰리와 초콜렛 공장>의 윌리 욘카 역시 50년대의 광고에서나 볼 것 같은 가식적인 웃음만을 흘릴 뿐이었다. 팀 버튼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짓는 미소는 행복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자의 미소다. 즉 자신의 눈 앞에서 펼쳐지는 일들은 분명 '행복'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심약한 팀 버냆의 주인공들은 그 행복에 불안감을 느끼며 그런 미소를 짓는다. <유령 신부>가 팀 버튼의 이전 애니메이션보다 더욱 진보한 점은 팀 버튼 영화 특유의 표정이 살아있다는 점에 있다. <크리스마스의 유령>이나 <제임스와 커다란 복숭아>의 캐릭터들은 독특한 매력이 있기는 했지만 <유령 신부>의 주요 캐릭터들이 선보이는 다양한 얼굴 표정을 선보일 수는 없었다. <유령 신부>의 제작진은 실리콘 피부로 만들어진 인형의 얼굴 속에 전동 장치를 설치해 캐릭터들에게 다양한 표정을 부여했고 그 환상적인 결과는 영화 속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유령 신부>는 캐논의 디지털 SLR 스틸 카메라(EOS-1 Mark 2)로 만들어진 최초의 장편 영화이며 그것이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임에도 이 작품이 3D CG 애니메이션에 필적할 만한 깔끔한 영상을 선보이게 된 주요한 요인이다. 팀 버튼은 애니메이션이 수공업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을 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조금씩 움직여 만들어내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Stop-Motion Animation)의 제작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팀 버튼'이라는 사람만이 선보일 수 있는 독특한 비주얼과 이야기의 매력이 있음은 물론이다.
<유령 신부>는 팀 버튼 표 애니메이션만이 지닌 독창적인 매력을 그대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물론 첫번째 작품이었던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선보였던 그 독창적인 화려함에 필적할 만큼 감동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두운 표현주의 양식이 주조를 이루는 비주얼 위에 펼쳐지는 음울하면서도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는 오직 팀 버튼의 작품들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팀 버튼의 단짝인 대니 엘프만의 음울하면서도 경쾌한 스코어가 한몫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
메뉴 화면
빠른 편집과 경쾌한 음악으로 구성된 주요 장면이 선보이며 진행되는 메뉴 화면
디지털 소스로 작업한 작품답게 최상급의 화질을 선보인다. 전반적으로 짙은 색감이 강조된 영상이지만 디테일의 묘사 역시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다. DVI 출력 등의 고해상도에서는 디테일 묘사에 있어 약간의 지글거림이 나타나지만 일반적인 대형 화면에서는 인형들의 질감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부분 부분 환상적인 효과를 위해 필터를 활용해 약간 뿌연 느낌이 들지만 의도된 것이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당연히 잡티는 찾아보기 힘들며 DVD 매체로서는 거의 최상 수준의 영상 퀄리티를 선보이고 있다. ★★★★☆
돌비 디지털 5.1 채널 EX를 지원하는 음향 역시 매우 훌륭하다. 대니 엘프먼의 음악은 단순히 스코어 수준을 넘어 반(半) 뮤지컬인 이 작품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생생한 음향 표현력을 통해 더욱 생기를 얻고 있다. 놀랄 만한 임팩트를 선보이는 편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사운드의 표현이 깔끔하며 말끔하다. ★★★★
스페셜 피쳐 메뉴
Inside the Two Worlds (04:03)
작품의 세계관에 대해 인터뷰 클립들을 잘게 편집하여 설명하는 메뉴다. 작가인 존 어거스트, 감독 팀 버튼과 마이크 존스, 인형 제작자 피터 손더스 등이 등장해 딱딱하고 강압적인 현실 세계와 생기 있는 사후 세계에 대해 설명한다.
Danny Elfman Interprets the two Worlds (04:56)
팀 버튼의 전담 음악가이며 이 작품에서도 음악을 맡은 대니 엘프만과 팀 버튼이 영화 속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메뉴다. 관현악단의 녹음 장면도 잠시나마 담겨 있다.
The Animator : the Breath of Life (06:38)
애니메이션 작업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메뉴. 스톱 모션 에니메이션 작업의 어려움에 대해 많은 에니메이터들이 등장해 설명하고 있다. 빅터와 빅토리아의 피아노 장면은 한 장면을 위해 14주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며 영화 속에는 85개의 캐릭터가 필요했다고...
Tim Burton : Dark vs. Light (03:39)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팀 버튼의 작품 세계에 대한 간단한 인터뷰 클립들. 특히 조니 뎁이 팀 버튼의 작업 방식이 캔버스를 맞이한 화가처럼 작업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Voices from the Underworld (05:58)
팀 버튼이 많지 않은 제작비에 훌륭한 캐스팅이 이루어져 감사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로 끝이 나는 캐스팅에 관한 메뉴. 간단하게나마 배우들의 작업 과정을 볼 수 있으며 간단한 인터뷰들이 수록되어 있다.
Making Puppets Tick (06:33)
영화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인형 제작에 관한 메뉴로 영화와 관련된 주요 애니메이터들이 등장해 인형의 제작과 표현력을 향상하기 위한 시도들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 20년간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들의 대부분의 인형을 제작했다는 이언 맥키논과 피터 손더스가 맨체스터에서 대부분의 인형들을 제작했으며 스페인 출신의 카를로스 그란젤이 합류해 팀 버튼의 디자인을 현실적인 인형으로 변형시키기 위한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팀 버튼의 디자인은 안정감이 별로 없는 편이라 디자인에 많은 공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속의 여러 효과들을 위한 장치들의 모습 등도 볼 수 있다.
The Voice behind the Voice (07:35)
배우들의 녹음 장면과 영화 속 장면을 같이 보여주는 메뉴.
The Corpes Bride Pre-Production Galleries (13:27)
영화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의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테스트 영상들이 배경 음악과 함께 수록되어 있는 메뉴. 별다른 설명 없이 영상과 음악만이 수록되어 있어 조금 아쉬운 메뉴이기도 하다. 그 외 영화의 대사 없이 배경 음악만 들으며 감상할 수 있는 Music Only Track 메뉴와 예고편만이 감상되어 있다.
한 장으로 구성된 <유령 신부> DVD의 서플먼트는 짧은 영상 클립이 여러개 담겨 있어 양적으로는 풍성해 보인다. 하지만 질적으로 그리 만족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완성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작품으로서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령신부>는 오히려 팀 버튼의 극영화보다 그의 비주얼적인 측면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이라고는 하지만, 팀 버튼 특유의 기괴함과 유머가 녹아들어 있어 어른들에게 더욱 적합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급사도 그런 점을 생각했는지 한글 더빙을수록하지 않아 조금 아쉽고 서플먼트가 수량에 비해 질적으로 우수하다고 할 수 없어 역시 아쉽지만 뛰어난 비주얼 표현력과 음향 표현력은 적어도 DVD 감상자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 한편으로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독특한 개성으로 풀어내는 <유령 신부>는 '공포'로 먼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비록 그것이 그다지 진지하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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