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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9/11 이후의 공포 <나이트 플라이트>
그렇다고 <나이트 플라이트>가 대충 만든 영화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숨가쁘게 진행되는 내러티브는 후반부에서 긴장감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꽤 몰입도가 높다.
비행, 9/11 이후의 공포
최근 영화들의 상영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반지의 제왕>같은 거대한 영화들 뿐 아니라 가벼운 오락 영화들의 상영 시간도 2시간에 육박하거나 2시간을 넘어서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어서 작년에 개봉한 <배트맨 비긴즈>는 2시간 19분이었고 재작년의 <스파이더맨 2>는 2시간 6분 심지어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156분의 상영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건 국내 영화도 별다를 것이 없어서 <왕의 남자>는 119분, <청춘만화>는 116분, <웰컴 투 동막골>은 136분의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극장에 개봉되는 상업 영화에 적절한 시간은 100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물론 과거부터 간간히 대형 서사극들은 간단하게 3시간을 넘어서기는 했지만, 대개의 장르 영화들은 100분 전후의 길이를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의 장르 영화들은 가볍게 그 기준을 넘어서고 있다. 그런 최근의 경향과 달리 <나이트 플라이트>는 매우 짧은 편에 속한다. 오프닝과 엔딩 크레디트까지 포함된 전체 상영시간이 85분 정도이며 엔딩 크레디트를 제외한 실제 본편의 상영 시간은 75분 정도에 불과하다.
■ 호러의 제왕의 첫 번째 스릴러
<나이트 메어>와 <스크림>시리즈로 '악명' 높은 웨스 크레이븐이 호러 장르를 벗어나 첫 번째로 도전한 스릴러인 <나이트 플라이트>는 그다지 야심이 많은 영화가 아니다. 예산도 2500만불 정도로, 일반 헐리우드의 중급 영화 예산에 미치지 못하고 레이첼 맥아담스(<노트 북>,<퀸카로 살아가는 법>)와 킬리언 머피(<배트맨 비긴즈>, <28일후>)라는 신인급 연기자들이 영화를 거의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보듯 캐스팅에서 중량감을 느끼기도 어렵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이트 플라이트>는 호러 장르에서만큼은 확실한 명성을 지녔던 웨스 크레이븐의 메이저 실험작같은 작품이다.(웨스 크레이븐은 99년 <뮤직 오브 하트>로 비교적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바 있기는 하다) 그래서 그런지 플롯은 단순하고 명쾌한 편이며 연출은 매우 교과서적이다.
그렇다고 <나이트 플라이트>가 대충 만든 영화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숨가쁘게 진행되는 내러티브는 후반부에서 긴장감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꽤 몰입도가 높다. 이 영화는 초반부 20분 이내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필요한 캐릭터와 복선 그리고 맥거핀 등이 거의 제시되며 초반부의 요소들은 후반부에 문제를 풀어가는 여러 가지 모티브나 힌트가 된다. 가령 오프닝에서 주인공 리사(레이첼 맥아담스)의 고향집이 비춰지면 리사가 하키 선수였음을 알 수 있고 하키 스틱은 후반부 리사의 생명을 구하는 한가지 이유가 된다. 영화의 초반부는 할머니상을 치르고 텍사스의 공항에서 마이애미의 직장과 집으로 돌아오려는 리사가 비행기를 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리사는 잭슨(킬리언 머피)을 만나게 되고 호감을 느끼던 중 바로 옆 자리에 앉게된다. 이런 영화 속의 촘촘한 정보의 배치는 후반부 반전에만 매달리며 불친절한 정보를 제공해 놓고 스스로의 반전에 탄복하는 최근 영화들의 다소 엉성한 태도와는 달리 다소 고전적이기는 해도 영화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한다. 웨스 크레이븐은 관객과 꽤 정직퇇 게임을 하고 있는 것.
■ 비행, 9/11 이후의 공포
<나이트 플라이트>의 원제는
<나이트 플라이트>는 은유적으로 9/11을 상기시킨다. 비록 하이재킹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바로 전까지 칵테일을 마시며 호감을 느꼈던 남자는 비행기에 타자마자 정체를 드러내고 돌변한 태도로 협박을 가한다. 이건 영락없이 미국인들이 9/11 이후 느꼈을 만한 공포를 은유한다.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뉴욕 쌍둥이 빌딩의 붕괴처럼, 자신도 테러라는 무시무시한 사건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이트 플라이트>에 한층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 영리하게도 <나이트 플라이트>는 비행기에 폭탄이 설치되었다거나 테러리스트가 떼로 등장하는 등의 직접적으로 9/11을 연상시키는 소재를 살짝 비껴간다. 하지만 분명히 9/11이라는 사건과 항공기라는 소재 자체가 이 영화에 한층 긴장감을 불어 넣었음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대부분의 사건은 항공기 안, 그것도 두 좌석 안에서 몇 번 벗어나지 않음에도 영화가 긴장감을 잃지 않는 것은 감독의 연출력 외에도 9/11이라는 사건이 전해준 시청각적 충격의 생생함 때문일 것이다.
■ 트라우마 극복하기
<나이트 플라이트>에서 잭슨은 고위공직자를 암살하기 위해 호텔 매니저인 리사에게 접근하지만, 뚜렷한 목적이 제시되지 않는 인물이다. 더욱이 그가 지닌 정치적 배경 역시 영화 안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또 리사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전형적인 커리어 우먼인 리사에 대한 호감과 지배 욕망 사이에 서 있는 듯 하다. 대강 유럽인 테러리스트 집단들(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요트의 테러팀, 본래 아일랜드인인 킬리언 머피가 연기하는 잭슨, BMW 안에서 대기하는 리사 아버지의 감시원)로 보이는 이들은 사실 피상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그러니까 <나이트 플라이트>의 관심은 미국의 일반 대중들이 지닌 테러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가에 있으며 이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슬래셔 영화의 요소들을 제시해 놓고 규칙을 어겨가는 <스크림>시리즈처럼 <나이트 플라이트>는 심리적 스릴러로서의 쾌감에 천착한다. 주인공 리사에게는 그동안 극복 못한 트라우마가 담겨 있고, 테러리스트 잭슨은 둔감하게 그녀의 심리적 외상을 자극한다. 이는 결국 잭슨이 압도하던 게임의 전세를 단번에 뒤집어 놓게 되는데 자신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잭슨이 가족의 생명과 고객의 생명을 저울질하고 자신의 탈출 시도를 모두 봉쇄되면서 밀리던 리사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며 게임의 주도권을 얻게된다. 크레이븐은 그렇게 제시된 리사의 트라우마를 영화의 후반부의 추격전으로 연결시킨다. 하지만 이렇게 장르의 게임으로 몰아가는 후반부는 왠지 맥이 빠진다. 마치 <스크림>의 미숙한 살인마들과 용감한 시드니의 좌충우돌 추격전같은 후반부는 탄탄히 구축되었던 중반부까지의 심리적 긴장감을 너무 쉽게 마무리하는 느낌을 주는 것. 아무래도 <나이트 플라이트>의 결말은 9/11로 구체화 된 '비행'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미국인들의 희망 사항을 담고 있는 듯 하다. ★★★
메뉴 화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메뉴 화면은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디자인.
2.40:1 아나몰픽 화면비를 지닌 <나이트 플라이트> DVD는 최신작 다운 깔끔한 영상을 선보인다. 어두운 야간 비행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이니 만큼, 두 주인공을 제외한 비행기 속의 배경 묘사는 뚜렷함이 덜하지만 이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포커스를 한쪽으로 주고 있는 감독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날카로운 묘사력의 블록버스터에는 미치지 못해도 잡티 하나 없는 깔끔한 표현력은 별다른 흠을 잡기 어렵다. 평균 해상도 7.64Mbps의 비트레이트 수치는 기대 이상의 고해상도를 지원하는 영상 퀄리티를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
영어 돌비 디지털 5.1 채널과 스테레오를 지원하는 음향 역시 만족스럽다. 비행기 이륙 장면에서는 비행의 공포를 상징하는 듯 우퍼가 잘 활용되고 있으며 후반부 액션씬의 표현력 역시 꽤 파괴력을 전해준다. 심리적인 긴장감이 영화의 주요한 포인트이기는 하지만 임팩트감이 뛰어난 소수의 액션 장면의 표현력이 만족스러우며 훌륭한 대사 표현력과 적절히 표현되는 음악 등 완성도 있는 음향 퀄리티를 전해준다. ★★★☆
음성 해설
감독 웨스 크레이븐, <영혼의 목걸이>(89)시절 부터 웨스 크레이븐이 연출한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마리안 마들레나 그리고 크레이븐이 제작한 <드라큘라 2000>의 연출자이자 <뉴 나이트메어>(94) 등의 크레이븐 영화의 편집을 맡았던 패트릭 러시어 등이 진행하는 음성 해설은 매우 편안하게 진행된다. 개개의 장면들을 분석하기 보다는 영화에서 연출자가 의도했던 바를 설명하고 있다.
스페셜 피쳐 메뉴
Making of (11:37)
감독, 배우, 스탭 등의 짧은 인터뷰와 제작 과정 장면 등이 빠른 편집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메이킹 피쳐렛이다. 다른 타이틀들처럼 조금 짧은 느낌인데, 웨스 크레이븐은 호러 영화 <커스드>를 완성한 후 1년 정도 쉴 마음이 있었으나 칼 엘스워스의 각본에 매료되어 바로 연출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의 절반 이상에 등장하는 기내 장면은 보잉 767의 내부 구조를 본따 만들었으며 세트 상단에 이동 크레인을 설치하여 내부 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또 이륙 장면과 난기류에 휘말리는 장면을 위해 세트 하단에 특수 장치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Wes Craven : A New Kind Of Thriller (10:49)
호러 영화의 명장으로 알려진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변을 들어볼 수 있는 메뉴. 두 인물에 집중하는 영화로 대사에 집중을 많이한 편이라고 한다. 캐스팅에 대한 만족감을 전해주며 배우와 스탭들의 감독에 대한 평가도 들어볼 수 있다. 살벌한(?)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꽤 부드러운 현장의 분위기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다.
Gag Reel (06:29)
영화의 NG 장면을 모아 놓은 메뉴. 경쾌한 현장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그 외 배급사에서 출시될 작품으로 보이는 <저스트 라이크 헤븐>의 예고편이 담겨 있다. <나이트 플라이트>의 서플먼트는 부담이 많지 않은 본편 만큼이나 별 부담이 없는 메뉴. 소박한 기획의 영화답게 조금은 단촐하게 구성되어 있다. 조금 아쉽다면, 웨스 크레이븐 감독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개나 본격적인 제작 과정이 담겨 있지 않다는 점. ★★★
<나이트 플라이트>는 가볍게 즐길 만한 스릴러 영화다. 웨스 크레이븐은 그다지 욕심을 내지 않고 날렵한 스릴러를 만들어 냈다. 짧은 러닝 타임의 영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하지만 <나이트 플라이트>는 '야간 비행'이라는 소재가 피해갈 수 없는 9/11 이후 미국인들이 느끼는 공포감이 잘 나타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최신작치고는 별로 풍부하지 못한 서플먼트의 분량에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영상과 음향 퀄리티 역시 우수한 편으로 오래간만에 군더더기 없는 스릴러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작품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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