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희망이 없다’고 거듭 되뇌었다가 한 참석자에게 “왜 그렇게 비관적이냐?”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몹시 언짢고 짜증이 일어 당신이 내 삶에 대해 뭘 얼마나 아느냐며 맞받아쳤지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게 사실이다.
아마도 그와 나는 인생관이 다르리라. 나는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生老病死)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행복보다는 불행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많다. 나라 안팎의 사정도 그렇지 않은가. 나라 안의 보수와 진보의 지루한 논란에 한마디 보탤 뜻은 터럭만큼도 없다. 나라 밖 형편을 보자.
이제 하나뿐인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은 여전하다. 일본은 여태껏 제국주의 시대의 몹쓸 짓을 진정으로 반성할 줄 모른다. 이스라엘은 아직도 호전적인 침략 근성을 못 버리고 있다.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또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라는 걸 웬만한 한국인은 다 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대해선, 무관심해 그런지 몰라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정치학자 노먼 핀켈슈타인(Norman Finkelstein, 1953- )의 책 두 권은 우리가 잘 모르는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실체를 알려준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김병화 옮김, 돌베개, 2004)은 미국과 세계의 주류언론이 은폐하는 이스라엘의 실상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시오니즘 지식 권력은 어떻게 진실을 왜곡했나?건국 무렵부터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은 주변 나라들에 해도 너무 한다. 국제 깡패가 따로 없다. 특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억압은 가공할 수준이다. 이스라엘의 잔인성은 미뤄 짐작하는 정도를 크게 뛰어넘는다. 100배로 되갚기는 예사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평화 공세’를 짓밟기 위해 이스라엘은 1981년 9월 레바논 침공계획을 세운다.
이스라엘은 PLO의 공격을 여러 차례 유도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자 무리수를 띄운 남부 레바논 공습으로 200명의 민간인을 죽인다. 여기에는 팔레스타인 어린이 병원의 환자 60명이 포함돼 있다. 보복에 나선 PLO가 이스라엘인 한 명을 죽이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 이스라엘은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1982년 6월에서 9월 사이에만 2만 명가량의 팔레스타인인과 레바논인이 죽었고 그 대부분이 민간인이었다. 이는 2002년 5월을 기준으로 이스라엘이 공식 집계한 ‘유대인 국가의 건설과 안전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대인들, 즉 120년 전 시오니즘 운동의 초창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전투나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죽은 유대인의 전체 숫자인 2만 1,182명과 견줄 만한 수치이다.”
이른바 테러 보복 작전에서 이스라엘 정규군의 잔혹성은 80월 5월 광주 진압군을 뺨친다. 다음은 2002년 4월 초의 제닌 난민수용소 포위 작전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른 만행이다.
“가족들이 신체가 마비된 37세의 한 남자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도록 기다려달라고 부탁했지만 IDF(이스라엘방위군)는 아랑곳 않고 집을 불도저로 깔아뭉갰고, 그 바람에 남자는 죽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던 57세의 한 남자가…수용소 바깥의 큰 도로에서 총에 맞고 탱크에 깔려 숨졌다. 그는 휠체어에 백기를 매달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헬리콥터 전투가 한창 벌어지던 중이었는데 IDF 군인들은 자기들 교전 위치 바로 앞에 있는 집 지붕 위에 65세의 한 노파를 강제로 올라가게 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접수하는 방식은 미국의 서부개척을 빼닮았다. 1948년 유대인 정착자들은 아랍인들을 그들의 고향에서 내쫓는 구실로 아랍인들이 먼저 총을 쏜 점을 내세웠다. 시오니즘(유대민족주의) 노동당의 ‘양심’으로 알려진 베를 카츠넬슨은 이런 주장을 했다. “이스라엘의 땅에서 우리가 해낸 것만큼 타인에 대한 공정한 배려와 정직성을 특징으로 하는 식민지 건설의 사례는 이제껏 없었다.”
이를 미국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발언과 비교해보자. “다른 어떤 정복 국가도 토지 소유자이던 야만인들을 미국만큼 관대하게 다룬 적이 없었다.” 그나마 이 책에는 위안거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팔레스타인의 ‘두 개의 국가’ 해결책을 지지하는 UN의 각종 표결에서 우리나라가 이스라엘을 편드는 “미국의 속국”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책을 지은 핀켈슈타인이 유대계 미국인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핀켈슈타인의 부모는 나치 유대인수용소의 생존자다.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바르샤바 게토와 나치 강제수용소의 생존자였다. 내 부모님을 제외하고 양가의 모든 가족들은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홀로코스트 산업』)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에서 핀켈슈타인은 몇 사람의 견해를 빌려 이스라엘 사람들의 군사주의 성향을 드러낸다. 약간 길지만 그 대목을 전부 인용한다.
“통찰력 있는 이스라엘의 저술가 보아스 에브론(Boas Evron)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이스라엘의 정책과 국민들의 기본 성향은 문제들을 무력으로 해결하고, 외교적?정치적 해결책보다는 무력을 만능의 열쇠로 여기’며, 인근 아랍 국가들과의 국경을 ‘힘의 상관관계로밖에는’ 보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브 스터넬은 ‘더 우월한 힘으로 강제하지 않는 한 절대로 어떤 입장이나 영토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시오니스트의 교리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반 크레벨드가 말한, 이스라엘 사회에서 군대와 전쟁의 가치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것과 비견될 수 있는 것은 오직 1871년에서 1945년까지 독일에서 군대가 가졌던 지위뿐이다.’(‘어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그가 '전사'였다는 평가’이며, ‘어떤 대상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그것이 마치 '군사 작전처럼' 이루어졌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누가 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들었나? 『홀로코스트 산업』(신현승 옮김, 한겨레신문사, 2004)은 “홀로코스트 산업의 해부이자 고발장이다.” 그럼, ‘홀로코스트 산업’은 무얼 말하는가? 그것은 “홀로코스트를 이용하여 돈과 ‘윤리적 자본’을 획득하고 있는 유대인 엘리트 중심의 여러 단체와 기관들”(박노자, ‘추천의 글’)을 말한다.
핀켈슈타인은 “‘홀로코스트’가 나치 홀로코스트의 이데올로기적 재현임을 주장”한다. 나치 홀로코스트가 2차 대전 시 자행된 유대인 대량학살을 말한다면, 홀로코스트(The Holocaust)는 이데올로기적 표현이다. 미국은 홀로코스트 산업의 본사나 다름없고, <뉴욕 타임스>는 홀로코스트 산업의 주요한 선전 매체다.
하지만 나치 홀로코스트가 미국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것이 핀켈슈타인의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유대인들 또한 나치 홀로코스트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나치 인종말살에 관한 대중적 침묵의 실질적인 이유는 유대계 미국인 리더십의 순응 정책과 전후 미국의 정치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냉전 시기 서독이 미국의 든든한 우방이 되자 미국의 유대인 엘리트들은 나치 홀로코스트를 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1967년 6월 ‘6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돌변한다.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무력행사에 깊은 인상을 받은 미국은 이스라엘을 주요한 전략적 자산에 포함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덩달아 미국의 유대인 엘리트들도 자신들의 전략적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기억에서’ 되살린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가 나타난 후에 비로소 출현했으며, 극단적인 이스라엘 승리주의가 판을 치는 와중에 성공의 궤도에 오른다. 핀켈슈타인은 “상식적인 해석의 틀로는 이런 이례적인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불리한 처지에 놓였을 때 이스라엘을 멀리하고 이스라엘이 정치적 자산이 되었므 때 새로운 시온주의자로 다시 태어났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불리한 처지에 놓였을 때는 자신들의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멀리하다가 정치적 자산이 되었을 때 새로운 유대인으로 거듭 태어났다.”
홀로코스트의 구조에는 두 가지 핵심교리가 자리한다. 홀로코스트가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과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에 대한 비이성적인 이교도의 끊임없는 증오의 절정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홀로코스트의 유일성 주장은 지적으로 무익하고, 윤리적으로 진실성이 없다.”
그런데 홀로코스트의 유일성 주장은 유대인의 유일성 주장과 통한다. “홀로코스트가 특별한 것은 유대인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스위스와 독일을 갈취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등쳐먹기까지 한다. 이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엘리 위셀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위셀은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위셀의 탁월함은 이데올로기를 능수능란하게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유대인이 겪은 고통의 유일성과 유대인의 유일성, 언제나 죄를 범하는 비유대인과 언제나 순결한 유대인, 이스라엘의 무조건적인 방어와 유대인의 이해관계의 무조건적인 방어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엘리 위셀이 곧 홀로코스트였다.”
홀로코스트 산업에서 미국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미국에는 홀로코스트 관련 단체들이 100개가 넘으며, 일곱 개의 대형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미 전역에 흩어져 있다. 그 중심은 워싱턴에 있는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이다.
“첫 번째 의문은 왜 국회에서 홀로코스트 박물관 건립을 요구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하느냐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역사에서 진행되었던 범죄를 기념하는 박물관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워싱턴 몰에 그런 박물관의 등장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독일에서 나치 대량학살이 아니라 미국 흑인 노예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멸망을 기념하는 국립 박물관을 베를린 한복판에 건설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야말로 위선이 아닌가.”
퇴임하고 나서 오히려 세계 평화의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시절, 베트남의 전쟁 배상 요구를 거부하면서 “쌍방이 모두 피해를 입었다”는 변명을 했다. 한편, 부유한 스위스 은행을 동정하는 여론은 거의 없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스위스 은행들이 미국의 경제적 압력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노먼 핀켈슈타인의 결론은 이렇다.
“나치 홀로코스트의 비정상적인 상태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성장한 착취적인 산업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이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일찌감치 활동을 접었어야 했다. 사망한 자들을 위한 가장 고결한 태도는 그들의 기억을 간직하고 그들의 고통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며, 마지막으로 그들을 편히 잠들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천의 글’을 통해 박노자 교수는 범죄적인 인종주의적 국가 이스라엘이 ‘희생자 집단’의 탈을 쓰고, 미국이 불평등 무역과 친미 독재 권력들을 방조하며, 다국적 기업의 착취와 환경 파괴에 의해 제3세계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곳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계임을 상기시킨다. 그러면, 이를 어찌할 것인가?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인류 문명이 환경 파괴의 홀로코스트나 미국에 의한 핵 공격의 홀로코스트로 멸망당하기 전에 자본주의적 세계 체제를 본격적으로 해체하는 것이다.” 또한, “‘홀로코스트 신화’와 같은 허구적인 담론을 통해 이념적으로 뒷받침되는 이 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준비 작업은, 바로 중심부의 패권주의자들이 여태까지 만들어낸 온갖 신화들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홀로코스트 신화’의 허상을 들춰내고 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든 자들의 추태를 만천하에 보여 준”
『홀로코스트 산업』을, 박노자 교수는 “착취와 기만이 없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로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