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고전적 혁명가 또는 ‘독립’ 마르크스주의자
타리크 알리
이 책에서 타리크 알리는 트로츠키의 삶과 생각에 절제된 친근감을 보인다. 아울러 트로츠키의 이론을 명료하게 전달한다.
트로츠키주의자?
지난 여름, 한나라당 소속의 최아무개 의원이 약간 색다른 색깔론을 지펴 입길에 오르내린 일이 있다. 공안검사 출신의 이 의원은 한나라당 헌법?정체성수호 대책위원회에서 “노무현 정권의 국정 운영이 러시아 혁명시대 이론가인 레온 트로츠키의 원칙을 답습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러시아 혁명이 언젯적 일이고, 소련이 망한지가 언젠데 웬 트로츠키 타령이랴 마는 최의원의 주장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조선일보〉(2004년 8월 18일자)에 따르면, 최의원은 “트로츠키 혁명론은 첫째 적을 만들라, 둘째 적과 동지를 구별하라, 셋째 보수 언론을 공격하라, 넷째 법과 원칙은 공론(空論)으로 치부하라, 다섯째 우군을 철저히 보호하고 적은 무자비하게 멸망할 때까지 공격하라 등 5가지”라며, 노무현 정권의 행태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트로츠키의 저서 『대영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트로츠키 혁명론의 출전으로 밝혔다고 한다.
이런 식의 피상적인 논리라면, 『만화로 보는 트로츠키』(필 에반스 그림, 정연복 옮김, 책벌레, 2002)의 글을 쓴 타리크 알리(Tariq Ali, 1943- )는 트로츠키의 원칙을 답습한다는 혐의를 넘어 트로츠키주의자로 찍혀도 옴짝달싹 못할 판이다. 그런데 타리크 알리는 트로츠키주의자라는 꼬리표에 크게 개의치 않을 것 같다. 이 책에서 타리크 알리는 트로츠키의 삶과 생각에 절제된 친근감을 보인다. 아울러 트로츠키의 이론을 명료하게 전달한다.
트로츠키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영구혁명론만 해도 그렇다. 타리크 알리는 트로츠키의 정치적 맞수인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과 곧잘 대비되는 「영구혁명에 관한 트로츠키의 테제들」에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다고 전제한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 정지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과 ‘혁명의 영원성’에 대한 마르크스와 칼 카우츠키의 토론을 언급한다. 그리고 나서 『성과와 전망』(1906)에 피력한, 트로츠키가 평생을 바쳐 옹호한 사상의 골자를 요약한다.
“부르주아 혁명은 즉각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돼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 같은 후진국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독자적으로 완성될 수 없다. 가령 민주주의 혁명의 결과로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잡았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사회주의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사회주의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것은 최종적으로 러시아의 생산력에 의존하지 않고 국제적 사회주의 혁명의 발전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영구혁명론의 이론적 정합성은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관료 사회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의 경고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우리는 관료주의의 길을 따라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해서는 안 된다. 행정적 질서로 사회주의 사회를 창출하려 해서도 안 된다. 관료화는 사회주의의 치명적인 적이다.” 또한 타리크 알리는 트로츠키를 뛰어난 군사 전략가로 평가한다. 최아무개 의원이 제시한 트로츠키 혁명론의 원천도 『영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거론되는데 타리크 알리는 “그것은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대한 신랄한 공격이었다”고 평한다.
유물론자?무신론자
『근본주의의 충돌- 아메리코필리아와 옥시덴털리즘을 넘어』(정철수 옮김, 미토, 2003)는 정말 대단한 책이다. 이는 출간 직후 훑어본 한국어판 서문에서 당시 이라크 임시정부 수반 후보자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아마드 찰라비 이라크국민회의 의장의 정체를 확인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번역서 출간 2년 만에 통독한 결과는 예상치를 크게 웃돈다. 한마디로 엄청나다. 에필로그 성격의 글에서 마주치는 “이 작은 책”이라는 표현은 저자의 겸손한 태도를 말해줄 따름이다.
나도 마찬가지만 우리 독자들은 첫 대면에서 이 책을 오해한 걸로 보인다. 제목이 그런 역할을 했겠지만 한국어판에 붙여진 부제목은 오해를 더욱 ?중시켰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숭배증과 반미주의는 이 책을 이끌어 가는 두 축이 아니다. 물론 책에 담긴 다양한 측면 가운데 두 요소가 들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이 책의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타리크 알리가 「감사의 말」에서 밝힌 원래 생각했던 제목이 더 적절하게 책의 내용을 반영한다.
‘이슬람 율법학자와 이교도’라는 제목도 좀 미흡하기는 하다. 현재로선 이슬람 근본주의의 생성과 현황,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이 책만큼 풍부한 사례와 통찰을 담은 책은 없는 것 같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사우디아라비아의 현대사에 대한 생생한 서술은 특히 질감이 높다. 또한 3년 간격을 두고 발생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1981)과 인디라 간디 인도 수상(1984)의 암살 배경을 폭넓게 다룬 점이 돋보인다.
자전적 요소가 가미된 『근본주의의 충돌』의 일부 대목은 타리크 알리의 신상에 관한 충실한 정보원이기도 하다. 그는 1943년 영국 식민지였던, 지금은 파키스탄 북동부 펀자브 주의 주도인 라호르에서 태어났다. 학생운동에 몰입하던 1960년대 중반 영국으로 추방돼 이후 줄곧 거기서 살고 있다. 이슬람인에게 본국보다 유럽 도시의 거주 여건이 더 낫다는 현실을 실감하면서.
그런데 타리크 알리는 트로츠키주의자가 맞는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사실상 남아시아에는 그다지 널리 소개되지 않았던 트로츠키주의 제4인터내셔널의 투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본문의 첫 문장이 말해 주듯 그는 초지일관 무신론자다. “나는 결코 신을 믿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유물론자다. “사상가들은 물질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는데, 왜냐하면 자신들이 찾고 있는 것이 다른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주의의 충돌』은 내게 크게 세 가지의 교훈을 줬다. 그것은 이스라엘, 이란, 그리고 이중잣대와 관련이 있는데 우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을 용납해선 안 된다는 것을 새삼스레 절감했다. 백년 전 유대 사상가 애셔 긴즈버그의 예언적 자기비판이 와 닿았다. “이 작은 국가는” “오로지 외교적인 음모와 지배적이 된 권력에 대한 영구적인 굴종을 통해서만 생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민족들에게 등불이 됐던 고대의 민족’이 그런 최종 목표에 도달하느니 차라리 역사에서 사라지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보루라고 해서 이슬람 신성국가의 야만적인 행태를 용인해선 안 된다는 점도 깨달았다. 이중잣대에 대한 타리크 알리의 비판의식은 9?11을 보는 냉철한 시선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9월 11일에 일어난 사태는 엄청난 미디어의 과장을 낳았지만, 이 사태가 새로운 시대나 역사적인 전환점을 나타낸다는 통념은 선전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는 (기껏해야) O.J. 심슨 재판이나 다이애나 황태자비 사망 정도의 중요성을 지닌 사건이었다.”
필자가 괄호 쳐 끼워 넣은 낱말에 유감 있는 독자는 타리크 알리의 부연 설명을 참고하시라! “미국에서 발생한 3천여 명의 섬뜩한 죽음이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산산이 파괴한 푸틴에 의해 죽어간 2만 명의 생명이나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죽음보다 도덕적으로 더 끔찍하다는 생각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아쉬움이라면, 한국어판에 오탈자가 꽤 있다는 것 정도다. 적잖은 오탈자의 발생 원인은 번역자가 본문 편집도 맡은 때문이라 여겨진다. 역시 중이 제 머리는 잘 못 깎는 법인가 보다. 참, 색인이 없어 주요 항목을 다시 찾아보기가 불편하다. 때문에 고유명사에도 밑줄을 쳐야 했다. 각주로 소개된 파키스탄을 다룬 타리크 알리의 저서 두 권도 읽고 싶기는 하나, 『파키스탄- 군사통치인가 민중권력인가?(Pakistan: Military Rule or People's Power?)』(1971)와 『파키스탄은 살아남을 수 있는가?(Can Pakistan Survive?)』(1983)의 번역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소설가
『술탄 살라딘』(정영목 옮김, 미래M&B, 2005)은 우리말로 처음 옮겨진 타리크 알리 소설로 ‘이슬람 5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책의 한국어판 후기에서 타리크 알리는 ‘이슬람 5부작’을 쓰게 된 사연을 밝히고 있는데 걸프 전쟁이 발발한 1990년 BBC 방송에 출연한 어느 논평자의 “아랍인에게는 문화가 없다”는 발언이 소설 집필의 계기가 되었다. 타리크 알리는 “멍청한” 논평자의 망발에 분노하는 한편으로 아랍 세계에 대한 서구의 뿌리깊은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니까 ‘이슬람 5부작’은 승화된 기획의 소산이다. 여기에다 스스로에게 던진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왜 이슬람은 기독교의 종교개혁 같은 개혁을 겪지 않았으며, 계몽주의의 영향도 받지 않았을까?” 한국어판 후기에서 타리크 알리는 다시금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밝힌다. “나는 이슬람 문화가 지배하는 무슬림 국가에서 자랐지만 이슬람 신자였던 적은 없으며 과거에나 지금이나 확고한 무신론자이다.”
살라딘은 쿠르드족 출신의 전사 살라흐 앗 딘의 서양식 발음. 살라흐 앗 딘도 ‘알 말리크 앗 나시르 살라흐 앗 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라는 긴 이름의 일부다. 살라흐 앗 딘은 십자군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1187년에 탈환해 일약 중세 이슬람의 영웅이 되었다. 살라흐 앗 딘은 적에게까지 신의와 관대함을 베푼 덕장이기도 했다.
아무튼 살라딘으로 먼저 알려진 살라흐 앗 딘의 생애를 다룬 책이 번역된 것은 근자의 일이다. 타리크 알리의 장편소설에 1년 남짓 앞서 나온 스탠리 레인 풀의 『살라딘- 십자군에 맞선 이슬람의 위대한 술탄』(이순호 옮김, 갈라파고스, 2003)은 1898년 영국에서 출간된 최초의 살라흐 앗 딘 전기다. 이 책의 권말부록인 「문학작품 속의 살라딘」은 14세기에서 19세기까지 서양문학에 나타난 살라딘의 흔적을 간추린 글이다.
타리크 알리의 『술탄 살라딘』은 스탠리 레인 풀이 거명한 작품과는 최소한 1세기의 간격이 있다. 뿐만 아니라 소설의 내용과 형식도 사뭇 다를 듯 싶다. “작가 타리크 알리는 살라흐 앗 딘을 중심에 놓고 정확히 겨냥하는 듯하다가도 부러 슬쩍 비껴가곤 한다”는 옮긴이의 귀띔이 말해 주듯이. ‘이슬람 5부작’의 첫째 권인 『석류나무 그늘 아래(Shadows of the Pomegranate Tree)』와 19세기 터키 무슬림 집안의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그린 『돌기둥 여인(The Stone Woman)』도 나올 예정이다.
68세대
타리크 알리는 1960년대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질풍노도의 학생운동을 이끈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68년의 국면에서도 영국 런던에서 발간된 〈블랙 드워프(Black Dwarf)〉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해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 “〈블랙 드워프〉는 반체제 운동의 의미 있는 표현 수단이자 신좌파의 발언대였다.”
68세대의 육성이 담긴 로널드 프레이저의 『1968년의 목소리-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안효상 옮김, 박종철출판사, 2002) 같은 책은 타리크 알리를 “독립 맑스주의자”라 일컫기도 한다. 타리크 알리와 수잔 왓킨스가 함께 지은 『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안찬수?강정석 옮김, 삼인, 2001)은 또다른 방식으로 1968년을 되짚는다. ‘연도기(年度記)’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책은 1968년의 주요 사건을 날짜별로 담담하게 되새긴다.
타리크의 알리의 표현을 빌면, “이 책은 1968년의 정치적 달력이다. 이 책은 1968년에 일어났던 사건을 보고하고 설명하려는 책이다. 그해의 어느 달 세계의 어느 곳에선가 일어났던 폭발적인 사건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타리크 알리는 1968년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시도였으며, 정치와 문화 그리고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출발점이었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진작에 『1968년과 그 이후(1968 and After: Inside the Revolution)』(1978)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잡지 편집자
타리크 알리 책의 한국어판 책날개 저자 소개란에는 그가 하는 일이 최소한 서넛은 적혀 있다. 그 가운데 공통적인 것이 잡지 편집자다. 타리크 알리는 여러 해 동안 〈뉴 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의 편집자로 일해 왔다. 그런데 타리크 알리가 대표 저자로 등재된 『전쟁이 끝난 후- 코소보를 둘러싼 나토의 발칸 전쟁이 남긴 것들』(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옮김, 이후, 2000)에서는 달랑 〈뉴 레프트 리뷰〉 편집장이라고만 했다.
다른 필자 또한 직함이 한 줄로 그치기는 하지만 타리크 알리처럼 ‘겸업’을 하는 이는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런데 필자의 면면이 화려하기 짝이 없다. 지오반니 아리기, 알렉스 캘리니코스, 엘렌 메익신즈 우드, 미셸 초수도프스키, 레지 드브레, 에드워드 사이드, 로빈 블랙번, 노암 촘스키 등등.
이렇듯 화려한 인물을 제치고 타리크 알리가 한국어판의 대표 저자로 등재된 것은 원서의 엮은이가 누려야 하는 마땅한 권리로되, 그 권리가 침해받지 않은 것은 우리 독서계에서 타리크 알리의 지명도가 만만찮다는 방증일 것이다. 한편, 영국 에섹스 대학 사회학 교수이자 〈뉴 레프트 리뷰〉의 주간을 지냈으며, 『몰락 이후- 공산권의 패배와 사회주의의 미래』(김영희 외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4)의 편저자로 우리에게 알려진 로빈 블랙번은 타리크 알리의 정치적 동지이기도 하다. 타리크 알리는 『술탄 살라딘』을 “로빈 블랙번에게” 헌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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