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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실천 윤리학자 피터 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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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 (한길사)은 경계를 뛰어넘어 지식 분야의 첨단을 넘나든 76명의 선구적 사상가와 예술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혁명적 발상으로 세상을 바꾸는 프런티어의 가장 극적인 사례로 백남준과 피터 싱어를 꼽을 수 있다. 이 책에 포함된 유일한 한국인인 백남준은 전화에 대한 통찰-전화의 역사는 1백년이 넘었건만 전화에 대한 논서는 단 네 편에 불과하다는-만으로도 거인의 풍모를 실감하게 한다.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 (한길사)은 경계를 뛰어넘어 지식 분야의 첨단을 넘나든 76명의 선구적 사상가와 예술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혁명적 발상으로 세상을 바꾸는 프런티어의 가장 극적인 사례로 백남준과 피터 싱어를 꼽을 수 있다. 이 책에 포함된 유일한 한국인인 백남준은 전화에 대한 통찰-전화의 역사는 1백년이 넘었건만 전화에 대한 논서는 단 네 편에 불과하다는-만으로도 거인의 풍모를 실감하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을 계기로 백남준과 피터 싱어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은 친절한 길라잡이 구실을 하지 못한다. 외국어로 된 참고문헌만을 제시하고 있어서다. 이런 불친절함은 예술 작품으로 직접 대면이 가능한 백남준보다는 책을 매개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피터 싱어의 탐구에 더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피터 싱어의 한글판은 무려 다섯 권에 이른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피터 싱어의 책들이 '윤리'라는 고리타분해 보이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아주 강한 흡인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정연교 옮김, 세종서적, 1996)의 서문에 소개된 뉴욕의 어느 출판인의 견해가 지배적인 의견일 것이다.

"이 책의 초고를 읽은 뉴욕의 출판인은 자신이 있는 빌딩 아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제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되라는 듯이 빨간 불인데도 지나쳐 버린다.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에, 이런 류의 책이 도대체 무슨 변화를 가져오겠오?" 

그렇지만 나는 이어지는 피터 싱어의 답변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세상이 정말로 다른 사람의 생명은커녕 자기 자신의 생명마저도 개의치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어떤 사람도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책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시도에 시큰둥해 한다. 하지만 '책은 그저 책일 뿐'이라는 평소 생각은 책에 내가 바라는 기대치가 충족되지 못한 반작용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분명히 깨달았다.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는 내가 원했던 바로 그런 책이다.

피터 싱어의 말을 차용해 표현하면, 나는 책을 통해 "아름다움, 지식, 자율 혹은 행복과 같은 여러 다른 가치들을 장려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고통과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 무엇인가 화급하게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전히 책의 소임을 강조하는 것은 아직도 이성(理性)적 사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은 이성적?비판적 사유의 장이어야 하고, 이런 과정을 통한 깨달음이 삶의 현장에서 실천될 때 비로소 책읽기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의 주제는 원제(How Are We To Live? Ethics in an age of self-interest)가 말해 주듯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이기적인 시대의 윤리학'이라는 원서의 부제목은 책의 논지를 보다 명확히 일러준다. 그런데 이 책에는 옮긴이의 말대로 "무어라 꼬집어 말하기 힘든 '모호한'" 성격이 있다.

책을 읽는 중에 사례의 제시를 통해 세계화의 참상을 일깨운 『세계화의 덫』(영림카디널)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싱어가 자신의 철학을 풀어놓은 일부 대목은 사변적이어서 다소 딱딱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싱어의 논지는 대체로 평이하다. 게다가 그는 구름 위에서 고담준론을 늘어놓는 철학자가 아니다. 그의 윤리학은 실생활에 밀착해 있으며 민감한 주제를 회피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이 살 수 없다." 피터 싱어의 현실 인식이 집약된 말이다. 이런 그인지라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인생에 전적으로 만족한다든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고 확신한다면, 더 이상 이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다." 30쪽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피터 싱어의 현실 인식은 비판적이지만 그의 전망은 다분히 낙관적이다. "우리에게는 보다 나은 삶이 열려 있다. 물론 이때 '보다 나은 삶'이란 취득이나 이득을 좋은 것의 평가 기준으로 선전하는 소비주의적 사회에서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대한 편협한 물질적 이해 방식을 거부하다면, 보다 넓고 보다 중요한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하면서 서로의 신뢰감을 형성할 수도 있다고 본다.

또한, 그는 윤리적인 삶과 인간으로서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 중 많은 것을 만족시키는 방식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데 "자기 이익의 진정한 본질"에 충실하면 "많은 윤리적 행위들이 자신의 이익을 돌보는 행위와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다. 허면, 피터 싱어가 말하는 윤리란 과연 무얼일까? 다음은 윤리와 윤리적으로 사는 것에 대한 그의 언급들이다.

"윤리는 '거짓말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지 말라' 등과 같은 규칙들의 집합으로 환원될 수 없다."

"윤리적인 삶은 적극적으로 목적을 선택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을 궁구하는 삶이다."

"윤리적으로 사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이익을 초월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윤리적으로 사는 것은 세계를 보다 총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실천 윤리학(개정판)』(황경식?김성동 옮김, 철학과현실사, 1997)은 개론서라고 할 수 있지만 여느 윤리학 개론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소수민족, 남녀평등, 동물학대, 환경보존, 임신중절, 안락사, 빈민구제 등의 문제를 거침없이 논의하고 있다. 제3장 「동물에게 평등을」에서 이익을 측정할 때 이익을 단순히 이익일반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이익 평등고려의 원칙'이,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동물들과의 관계에서도 타당한 도덕적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인간을 다른 동물 종과 구별하는 '종족주의'는 '인종주의'만큼이나 비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지은이의 실천윤리학은 아주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진술은 곱씹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물론 이는 동물에게 실험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만약 실험이 어쨌든 행해져야 한다면, 정상적인 성인보다는 동물을 이용해야 할 종족주의적이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와 같은 논변이 정상적인 성인보다는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어린이들, 아마도 고아들을 실험에 사용할 이유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주목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어린이나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또한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피터 싱어의 윤리관은 '쾌락은 증진하고 고통은 경감한다'는 공리주의의 기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1장 「윤리에 대하여」에서 그는 자신의 윤리학이 공리주의에 기반해 있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이제까지 약술해 온 사고방식이 공리주의의 한 형태이다. 이러한 공리주의는 고전적인 공리주의와는 어떤 점에서는 다르다. 즉, 여기서는 '최선의 결과'라는 말이 단지 즐거움을 증가시키고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영향받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증진키기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해방(개정판)』(김성한 옮김, 인간사랑, 1999)은 피터 싱어의 대표 저서로 그의 명성이 전세계에 자자하게 만든 책이다. 그는 이 책의 목적이 "당신의 태도와 실천을 전환하여 매우 큰 존재 집단, 즉 우리 종이 아닌 다른 종의 구성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싱어는 동물 실험과 공장식 동물 사육에 주의를 집중한다. 그것만으로도 '이익 평등고려의 원칙'의 전제가 되는 동물의 '고통과 즐거움'을 향유하는 능력의 발현을, 특히 고통을 느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사냥과 덫놓기?모피 산업?애완 동물 학대?로데오?동물원?서커스에 관한 논의를 배제한 이유"가 그러한 것들이 덜 중요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실험과 식품 생산의 사례만으로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장식 동물 사육 방식의 잔인성에 대한 보고는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시공사)의 선행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피터 싱어의 노력에 힘입어 이 책은 "명쾌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 큰 장점이다. 피터 싱어의 책을 읽으면 느끼는 즐거움의 하나는 그의 진술이 아주 명징하다는 점이다. 자신이 취한 입장에 대해 제기될 비판을 예상하고 제시한 반비판에서는 경쾌함마저 느껴진다.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라는 반박에 대한 답변을 보자.

싱어는 고통을 느끼는 징후가 포착되지 않고, 중앙 신경 체계가 없다는 점을 들어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싱어의 논리가 빛나는 것은 식물도 고통을 느낄지 모른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발견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때문만은 아니다. 식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증거의 발견을 가정했을 때 그의 논리는 더욱 빛난다.

"만약 고통이나 굶주림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면, 그 때 우리는 상대적으로 적은 악이 산출되는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식물이 동물에 비해 고통을 덜 느낀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일 것이고, 따라서 동물을 먹는 것보다 식물을 먹는 것이 나을 것이다." 또한 "간접적이라고 해도 육식을 하는 자들은 채식주의자들에 비해 식물을 훨씬 크게(최소한 10배)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육식이 채식보다 식물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은 육고기의 재료가 되는 동물 사육에 곡물이 많이 소비되기 때문이다) 

『사회생물학과 윤리』(김성한 옮김, 인간사랑, 1999)는 사회생물학적 접근을 통해 윤리적 현안을 검토한 책이고, 『헤겔』(연효숙 옮김, 시공사, 2000)은 싱어의 다른 면모를 보여 주는 책이다. 싱어는 윤리학 외에 헤겔과 마르크스 같은 독일 철학자도 연구했다. 싱어는 헤겔 사유에서 핵심적인 것, 일반 독자들에게 이해될 만한 것, 20세기 후반 사람들에게 흥미롭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중심으로 헤겔 사상을 약술했다. 싱어는 헤겔의 사상이 백 여년 이상 전세계에서 일어난 혁명 운동에 영감을 준 공산주의 사회의 비전이 되었다는 사실 알게 된다면 헤겔은 누구보다 깜짝 놀랄 거라고 말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번역서가 나온 지 한참 뒤에 피터 싱어의 책을 읽었다. 이것은 필자가 그 동안 오갈데 없는 종차별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제라도 종차별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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