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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보다 위대한 실패

최후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을 다룬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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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책과 독서에 관한 에세이 모음인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지호)에는 책꽂이의 자투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룬 글이 나오는데, 「나의 자투리 책꽂이」에서 그녀는 "나의 자투리 책꽂이에는 극지방 탐험에 대한 책 64권이 꽂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탐험 이야기, 정기간행물, 사진집, 자연사, 해군 교본 등속으로 구성돼 있다고 덧붙인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책과 독서에 관한 에세이 모음인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지호)에는 책꽂이의 자투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룬 글이 나오는데, 「나의 자투리 책꽂이」에서 그녀는 "나의 자투리 책꽂이에는 극지방 탐험에 대한 책 64권이 꽂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탐험 이야기, 정기간행물, 사진집, 자연사, 해군 교본 등속으로 구성돼 있다고 덧붙인다.

또 "이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다운 발데르에 대한 내 호감은 로스, 프랭클린, 나르스, 섀클턴, 오츠, 스콧에 대한 호감으로 바뀌어 갔다"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앤 패디먼의 자투리 책꽂이에 꽂혀 있는 극지탐험 이야기에는 어니스트 섀클턴의 모험담이 들어 있을 것이다. 

섀클턴은 아문젠보다 한 발 늦게 남극점에 도달하고 귀환 도중 탐험대가 전멸한 스콧 대령과 마찬가지로 비운의 탐험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섀클턴과 스콧을 무능한 탐험가로 낙인 찍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두 사람은 나름대로 남극 탐험에서 뚜렷한 이정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20세기 내내 스콧의 이름은 비운의 탐험가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던 데 비해 섀클턴의 명성은 거의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섀클턴의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알프레드 랜싱의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살아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뜨인돌, 2000년)가 번역되면서부터다. 이 책은 수백 권에 이르는 섀클턴 관련서 가운데 단연 첫손 꼽히는 책으로 출간 당시(1959년) 생존해 있던 탐험대원의 생생한 증언을 참고해 현실감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의 내용이 실화이기는 하나, 극적 요소로 인해 마치 장대한 모험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을 자아낸다. 

이 책은 남극의 얼음 바다에서 좌초한 난파선의 표류기이자 극지라는 한계상황을 극복한 탐험대원의 생환기다. 1914년 8월 5일 섀클턴의 탐험대는 인듀어런스호에 몸을 싣고 영국의 플리머스에서 출발해 남극으로 향한다. 섀클턴으로서는 세 번째의 남극 탐험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극점 도달이 목표였던 지난 두 번의 탐험과 달리 남극 대륙 횡단이 목적이었다. 북극점과 남극점이 차례로 사람의 발길을 허락했기에 "대륙을 횡단하지 않는다면 이제 어떤 탐험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듀어런스호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1914년 11월 2일 사우스조지아 섬의 그리트비켄 포경기지에 도착한다. 하지만 탐험대에게는 우울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극 대륙, 파머 반도, 사우스 샌드위치 군도 등 세 개의 육지로 둘러싸인 웨들 해의 얼음 상태가 사상 최악이라는 소식이었다. 섀클턴은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렸으나 마냥 지체할 형편도 아니었다. 남극 횡단 탐험은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출발 직전에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해 섀클턴은 탐험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해군성 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의 격려로 탐험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1915년 1월 18일 남극 대륙 코우츠 랜드의 커드 해안에서 인듀어런스호는 부빙(바다에 떠 다니는 얼음)에 갇혀 표류하다가 1915년 11월 21일 끝내 침몰하고 만다. 배의 침몰에 앞서 10월 17일 인듀어런스 호를 탈출한 섀클턴과 그의 탐험대원들은 부빙에서 캠프 생활을 하다 천신만고 끝에 1916년 4월 24일 엘리펀트 섬에 상륙한다. 이윽고 섀클턴과 다섯 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구조 요청대는 인듀어런스호의 구명정이었던 보트를 타고 사우스조지아 섬으로 향한다. 1916년 8월 30일 앨리펀트 섬에 남아 있던 22명의 탐험대원들도 모두 구조되는데 인듀어런스 호가 부빙에 갇힌 지 634일만의 극적인 전원 생환이었다. 이것은 섀클턴의 탁월한 리더십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프레드 랜싱은 증언을 토대로 섀클턴의 사람됨을 이렇게 묘사했다.

"섀클턴은 늘 대원들에게 친근하게 보이고 싶어했다. 똑같은 대우에 똑같은 음식 그리고 똑같은 옷을 입겠다고 고집하며 애써 노력했다. 때론 식사시간에 텐트까지 쟁반을 나르는 따위의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따금 그가 '대장'이란 이유로 주방장의 특별 대우를 받았다는 걸 알면 몹시 싫어했다."

탐험대원 세 명의 도움을 받아 인듀어런스호에 잠입한 밀항자를 발견하고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 결국에는 대원으로 받아들이는 장면도 섀클턴의 인품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 누구도 섀클턴만큼 화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블랙보로를 정면으로 마주보며 그의 널찍한 어깨를 떠다밀었다. 그리고는 그를 호되게 다그쳤다. 블랙보로는 겁에 질려 있었고, 베이크웰과 하우와 맥리오드는 예기치 못한 상황 앞에서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긴 열변을 토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춘 섀클턴은 블랙보로의 얼굴에 바짝 들이대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것은 만약 식량이 바닥 나 굶어죽을 지경이 되면 제일 먼저 블랙보로를 잡아먹겠다는 자못 섬뜩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내 섀클턴은 화를 풀고 블랙보로를 주방 보조로 임명했다. 이러한 인간적 리더십을 필두로 섀클턴의 도전정신과 긍정적 사고, 그리고 탐험대원의 팀워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데니스 N. T. 퍼킨스의 『섀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십』 (뜨인돌, 2001년)은 섀클턴의 역경 극복의 의지를 리더십 이론으로 풀어낸 책이다. 데니스 퍼킨스는 책의 서문에서 섀클턴의 인듀어런스호 항해와 비슷한 시기 북극해 탐사에 나선 캐나다 탐험대의 항해를 대비시킨다. 1913년 8월 3일 빌흐잘무르 스테팬슨이 이끄는 탐험대는 캐나다 최북단 해안과 북극점 사이의 얼어붙은 지역에 대한 탐사를 시작한다. 스테팬슨의 탐험선 칼럭 호 역시 부빙에 갇히게 되는데 결과는 인듀어런스호와 판이했다.

"칼럭 호 승무원들은 고립되었던 수 개월 만에 완전히 이기적인 전혀 딴 사람들로 변해 버렸다. 거짓말하고, 속이고, 도둑질하는 일들이 일상적 행위가 되어 버렸다. 팀의 붕괴는 결국 비극적 결과를 초래해, 11명의 승무원들이 북극의 황무지에서 죽음을 맞고 말았다."

더 엄혹한 환경에 처했으면서도 모든 대원을 무사히 귀환시킨 섀클턴에게서 데니스 퍼킨스는 극한 상황에서의 리더십을 위한 열 가지 전략을 추출한다. 그 첫째가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않되 단기적 목표 달성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퍼킨스는 상황 변화에 적극 대응한 섀클턴의 능동성을 높게 평가한다. "혹독한 시련에 직면한 섀클턴은 자신의 장기적 목표를 남극대륙의 횡단에서 대원들 전원을 살아서 데리고 돌아간다는 목표로 신속하게 전환했다"것이다. 

마이클 H. 로소브의 『영웅들이여 말하라』(시아출판사, 2002년)는 제임스 쿡 선장부터 섀클턴에 이르까지 남극대륙 탐험에 나선 이들의 모험담을 정리한 책이다. 23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섀클턴의 이야기에 3장을 할애한다. 그런데 섀클턴이 남극 탐험에 나선 것은 모두 네 번이었다. 스콧의 디스커버리 호 탐험대에 3등 항해사로 참여한 것이 첫번째였다. 섀클턴은 스콧 그리고 다른 대원과 함께 남쪽 원정팀의 일원이 된다. 스콧과는 기질적으로 달랐던 섀클턴은 갈등을 겪지만 이를 잘 극복하고 스콧과 우정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병에 걸린 섀클턴은 중도에 귀국한다.

두 번째이자 실질적으로 처음이었던 1907년∼1909년의 탐험에서 섀클턴은 남극점을 목전에 두고 발길을 돌리는데 이것은 섀클턴이 공명심에 사로잡힌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1921년 섀클턴은 인듀어런스호의 대원들을 주축으로 탐험대를 조직해 네 번째이자 마지막이 된 남극 탐험에 나선다. 이번에는 이렇다 할 목적이 없었다. 결국 섀클턴은 1922년 사우스조지아 섬에서 숨을 거둔다. 

섀클텀은 탐험시대를 마감한 최후의 탐험가다. 섀클턴에게는 현대적인 탐험가의 면모도 있었는데 사진가를 대동했다는 점이 그렇다. 호주의 사진가 프랭크 헐리가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남극 횡단탐험에 동참했다. 『인듀어런스』(뜨인돌, 2002년)는 헐리가 찍은 사진들에다 캐롤라인 알렉산더가 글로 살을 붙여 탐험대의 역경과 생환을 재현했다. 

『우린 꼭 살아 돌아간다』(뜨인돌, 2003년)와 『탐험대장 섀클턴』(두산동아, 2003년)은 섀클턴 이야기의 어린이 버전이다. 앞의 책은 일부 내용을 만화로 표현한 점이 특징이고, 나중 책은 책을 읽으며 유념할 점을 밝힌 것이 눈에 띈다. 그러나 탐험에서 "새로운 영토를 찾고 식민지를 개척해 큰 이익을 보려는 서구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욕심이 바탕에 깔린 것"을 염두에 두라거나, "탐험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섀클턴의 욕심이었"다는 지적은 지나친 면이 있다. 적어도 섀클턴의 탐험에서는 제국주의의 야욕과 일신을 영달하려는 욕망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그는 남극이 거기에 있기에 자주 발길을 그리로 돌린 듯하다.

오히려 섀클턴 남극 탐험대의 문제점(?)은 『인듀어런스』에서 살짝 드러난다. 역경 중에는 대원들이 의식주 면에서 평등하게 생활했지만 무사귀환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는 그들의 계급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온 1916년에 과학자들과 고급 선원들은 다들 여객선을 타고 먼저 돌아갔지만, 그는(=요리사 그린) 다른 하급 선원들과 마찬가지로 고향에 돌아갈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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