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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한 열린 사고

- 클린턴 행정부의 노동부 장관을 지낸 사회사상가, 로버트 라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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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클린턴 행정부 집권 1기 내각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미국의 국내정책 부서의 수장임에도 장관 재임시절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의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그렇다 손쳐도, 일개 노동부 장관이 우리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일례로 라이시에 이어 클린턴 행정부 집권 2기 노동부를 이끈 알렉시스 허만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한국인은 드물 것이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 집권 1기 내각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미국의 국내정책 부서의 수장임에도 장관 재임시절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의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그렇다 손쳐도, 일개 노동부 장관이 우리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일례로 라이시에 이어 클린턴 행정부 집권 2기 노동부를 이끈 알렉시스 허만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한국인은 드물 것이다.

 라이시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까닭은 다음 몇 가지로 짐작된다. 우선, 클린턴 대통령과 로즈 장학생 동창생인 라이시는 클린턴의 신임이 두터운 실세 장관이었다. 또한, 집권 2기 내각에서도 중용이 유력시됐던 라이시가 장관을 그만둔 사유가 그의 이름값을 높여주었다. 국내의 한 신문은 클린턴 재선 후 각료의 절반이 사의를 표명한 상황을 이렇게 전한 바 있다.

"미국 정가에 '가정 우선' 바람이 불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장관 고사' 사례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 이후 지금까지 '사의표명'을 한 장관은 각료 14명의 절반인 7명. 사임 이유는 대부분 '가정문제'였다.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노년에 손자와 편히 지내겠다고 사의를 표명했으며 라이시 노동장관도 곧 18살이 돼 집을 떠날 아들과 더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갖기 위해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경향신문』1996년 12월 14일자

여기에다 미 하버드 대학 정치경제학 교수 출신인 라이시의 학자적 면모가 그의 명성을 더욱 드높였던 것이 사실이다. 라이시는 저서를 통해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번역된 라이시의 저서는 모두 네 권. 이중 절판된 『제3의 선택』(한국노동연구원, 1993년)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느슨하게나마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라이시의 시야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국부론』'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는『국가의 일』(까치, 1994년)은 1990년대 초반 새롭게 부상한 세계경제와 사회현상을 설명해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라이시의 관심사는 경제보다는 사회에 더 쏠려 있다. 그것도 "문제의 핵심은 미국경제가 아니고 미국사회에 관한 것이다. 즉, 전지구적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는 대다수 미국국민의 운명이 문제이다." 라이시는 이런 운명이 미국민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이러한 문제는 경제에서의 국경이 사라지고 있는 다른 모든 나라들도 공통적으로 당면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미국인의 경쟁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직업 분류 방식이 필요하다고 라이시는 말한다. 라이시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난다는 직업의 세 가지 범주를 제안하는데 단순생산직, 대인 서비스직, 창조적 전문직이 그것이다. 이것은 라이시가 예측하는 미래의 세 가지 직업군이기도 하다.

단순생산직은 대량생산 기업에서 일선 노동자가 맡았던 형태의 단순 반복 작업을 가리킨다. "이 직종은 전통적인 블루 칼라들의 일이라고 생각되나, 중하위 관리층의 일상적인 감독업무도 여기에 포함된다. 따라서 단순생산직 종사자가 문맹이어서는 곤란하고 간단한 셈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신뢰성, 충성심, 작업지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따위이기에 기초 교육만 받아도 문제가 없다.

대인 서비스직 또한 단순 반복적인 일을 포함한다. 단순생산직과 마찬가지로 작업시간 또는 작업량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대인 서비스직 종사자는 상관의 엄격한 통제 아래 있으며 교육은 많이 받을 필요가 없다. 고등학교 정도의 교육과 약간의 직업교육을 받으면 충분하다. 대인 서비스직이 단순생산직과 구별되는 점은 개인 대 개인으로 서비스가 이뤄지고 전세계적인 판매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창조적 전문직에는 문제의 인식, 문제의 해결 및 전략적 중개가 포함된다. 창조적 전문 서비스업은 단순생산직처럼 전세계적으로 거래될 수 있다. 그렇다고 표준화된 상품으로 세계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자료, 단어, 언어적 표현, 시각적 표현 같은 상징조작을 통해 거래된다. 그래서 창조적 전문직 종사자를 통틀어 상징분석가라 일컫기도 한다. 라이시는 창조적 전문직 혹은 상징분석가의 세목을 다음같이 열거했다.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는 리서치 학자들, 설계 엔지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토목공학과, 사운드 엔지니어, 생물공학가, 홍보관계 이사, 투자은행가, 법률가, 부동산 개발업자, 일부 창조적인 회계사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경영 컨설턴트, 금융?재정 전문가, 조세 자문가, 에너지 자문가, 농업 자문가, 군비문제 전문가, 건축 자문가, 경영정보 전문가, 조직개발 전문가, 전략 수립가, 기업의 인력 스카우트 담당자, 시스템 분석가 등이 하는 일의 상당부분이 포함된다. 나아가 광고 이사와 마케팅 전략가, 건축가, 영화의 아트 디렉터, 영화 촬영기사, 영화 편집인, 제품 디자이너, 출판업자, 작가 및 편집인, 언론인, 음악가, TV 및 영화제작자, 그리고 대학교수들의 일도 포함된다."

이 창조적 전문직/상징분석가의 목록은 제레미 리프킨의『노동의 종말』(민음사, 1996년)에 인용되기도 했다.

 『부유한 노예』(김영사, 2001년)는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과 삶을 영위하는 것에 대한 책이다. 아울러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의 어려움의 다루고 있다. 라이시는 생계와 삶을 동시에 제대로 꾸려가는 일이 왜 자꾸만 그렇게 어려워지는지 그 까닭을 이렇게 분석한다.

"구매자로서의 우리가 더 좋은 조건으로 쉽게 바꿀 수 있게 되면 될수록 판매자로서의 우리는 모든 고객을 유지하고, 기회를 포착하고,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더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은 더욱더 필사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이 책에서 라이시는 경제에서의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메시지는 혁신의 두 가지 핵심적 성격인 기크와 슈링크의 대비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크(geeks)는 "특정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러한 가능성을 찾고 개발하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예술가, 발명가, 디자이너, 엔지니어, 금융 전문가, 과학자, 음악가 등이 이런 성격을 갖는다.

정신과 의사를 뜻하는 슈링크(shrinks)는 "사람들이 시장에서 가지고 보고 경험하고 싶어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그 기회를 어떻게 하면 잘 살릴지 아는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마케팅 전문가, 재능을 발굴해내는 사람, 비를 오게 하는 주술사, 유행에 민감한 사람, 제작자,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사람, 컨설턴트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혁신을 이뤄내자면 기크와 슈링크의 어느 한 쪽만 갖고서는 곤란하다. 둘을 겸비해야 한다. "모든 위대한 기업가는 기크이면서 동시에 슈링크다." 위대한 기업가는 아래 같은 기크와 슈링크의 성격을 고루 지녔기 때문이다.

"기크는 기술, 과학, 시각 예술, 문학, 기호 체계와 같은 분야 나름의 규칙 및 상황에 끊임없는 매력을 느낀다. 반면에 슈링크는 사람들이 원하고 두려워하는 것, 갈망하고 필요로 하는 것, 아직 검증이 안 된 여러 가설 등에 끊임없는 매력을 느낀다. 슈링크가 다른 사람과의 교류 쪽이라면, 기크는 스스로 행하는 분석 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크가 한 분야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고 있다면, 슈링크는 사람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최근작『미래를 위한 약속』(김영사, 2003년)에서 라이시는 정부와 기업의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을 환기한다. "취업을 하는 조건으로 복지 혜택을 주는 제도는 일자리가 많을 때에는 효과적인 제도이다. 그러나 일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더 이상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은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 이 대목은 역사적 소임을 다한 국민의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인 생산복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듯하다. 라이시는 미국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존속한 사회계약의 첫번째 약속을 상기시키기도 하는데 그것은 기업과 관련된 사회계약이다.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점을 전제로 종업원과 지역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잃어버린 공동체 회복과 함께 잘 사는 내일을 위해' 국가가 할 일은 거창한 마스터 플랜을 작성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범위를 넓혀야 할 것이다. 국민 일반의 '불안전 불감증'과 관료사회의 '책임 불감증'부터 극복해나가는 것이 선결과제다. 발등의 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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