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궁극적 힘의 원천이다
- 실천하는 역사가 하워드 진의 책들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이름이 우리 독자에게 익숙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 노(老) 역사가의 면모는 촘스키와 여러모로 비슷하지만, 하워드 진의 책이 국내 독자의 시야에 확실히 들어온 것은 2001년 초 『오만한 제국』(당대)이 번역돼 널리 읽히면서부터다. 그런데 하워드 진 책의 초역은 의외로 이른 편이다. 하워드 진 책의 초역 시기는 현대 언어학의 태두로 통하며 연배와 성향이 진과 겹치는 촘스키의 사회비평서가 처음 번역된 때와 엇비슷하다.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이름이 우리 독자에게 익숙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 노(老) 역사가의 면모는 촘스키와 여러모로 비슷하지만, 하워드 진의 책이 국내 독자의 시야에 확실히 들어온 것은 2001년 초 『오만한 제국』(당대)이 번역돼 널리 읽히면서부터다. 그런데 하워드 진 책의 초역은 의외로 이른 편이다. 하워드 진 책의 초역 시기는 현대 언어학의 태두로 통하며 연배와 성향이 진과 겹치는 촘스키의 사회비평서가 처음 번역된 때와 엇비슷하다.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저항사』(일월서각, 1986년)는 1980년대 중반 촘스키가 에드워드 허만과 함께 지은 『미국의 제3세계 침략정책』(일월서각, 1985년)보다 한 해 늦게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때만 해도 하워드 진의 지명도는 촘스키에 비해 크게 떨어졌으나, 책의 내용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미국민중저항사』는 도입부에서부터 매우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신대륙의 발견자로 추앙 받아온 모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악행에 관한 것이다.
하워드 진은 미국의 어린이들이 배우는 역사책에 그저 영웅적인 모험이라 기술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친다. 역사적 진실의 규명은 콜럼버스가 작성한 항해일지에 근거했는데 "50명만 있다면 그들(=북미 원주민) 모두를 정복하여 마음껏 부릴 수 있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시사하듯이, 콜럼버스는 정복자를 자처했다. 또 실제로도 콜럼버스와 그의 탐험대는 원주민의 아픔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정복자의 위세를 마음껏 누렸다.
대규모 약탈은 1495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2년 동안 살육, 수족절단, 자살로 인해 아이티의 2십 5만 명에 가까운 인디언의 반이 죽어갔다." 이윽고 "1515년까지 남은 인디언의 수는 5만 명 정도"에 불과하게 된다. "1550년에 이르면 500명밖에 남지 않게 된다. 1650년의 한 보고서는 그 섬에 순수한 아라워크 족과 그 후예들이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콜럼버스는 신대륙의 발견자라기보다는 제노사이드(대량살육)의 선구자라고 불러야 마땅할 터이다. 하워드 진은 다른 책의 각주를 통해 단지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콜럼버스를 기리는 유태인들의 자가당착을 환기시키시기도 한다.
"1989년 10월 5일, 보스턴의 『유태인 신문』에 밀러의 기사가 실렸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왜 미국의 유태인들이 콜럼버스를 기리기 위해 스페인에 있는 한 성당으로 몰려들곤 할까? 그것은 다름아니라 콜럼버스가 유태계 혈통이었기 때문이다.' 유태인 대학살을 기억하고 있는 유태인들이 몇 세기 앞서서 같은 짓을 저지른 학살자를 기념하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얘기인가? 추측컨대 기자는 아마도 다른 대부분의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콜럼버스가 인디언에게 저지른 잔악행위를 몰랐을 것이다."(『오만한 제국』에서)
이렇게 말하는 하워드 진에게도 유태인의 피가 섞여 있다. 그런데 시중에 나와 있는 미국사 서적들과 『미국민중저항사』를 겹쳐 읽는 것도 흥미로울 듯싶다. 어떻게 다른지. 케네스 데이비스의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미국의 역사』(고려원미디어, 1992년)는 콜럼버스가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지나가듯 그것을 언급할 뿐 콜럼버스의 당초 목적지와 선행 탐험가로서의 면모 따위에 더 주목하고 있다. 콜럼버스의 잔학상을 제대로 다루지 않기는 하워드 진과 '동류'인 촘스키의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이후, 2000년)도 마찬가지다.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저항사』가 가장 적나라하다. 그런 점에서 하워드 진은 어쩌면 촘스키보다 우리나라의 리영희 교수와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워드 진과 리영희, 이 두 사람은 어려운 청년기를 거쳤고, 장교 신분으로 참전한 경험이 있으며, 운동권 교수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두 사람의 일부 저작은 공통점이 많다.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 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창작과비평사, 1974년)와 같은 책이고, 진의 자전적 에세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이후, 2002년, 이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리교수의 자서전 『역정』(창작과비평사, 1988년)에 비견된다.
그런데 『역정』과 『전환시대의 논리』는 펴낸 곳이 같을 뿐, 전혀 다른 내용의 책이지만 『오만한 제국』과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중복되는 내용이 더러 있다. 그렇다고 이따금 나오는 겹치는 내용이 크게 흠이 되진 않는다. 어느 책에 소략된 내용이 다른 책에서 자세히 설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두 책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폭격수 하워드 진이 다른 병사들과 함께 전쟁에 징발된 호화여객선 퀸 메리호를 타고 미국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장면에서는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가 『오만한 제국』의 부족한 면을 채워준다. 선내에서의 인종차별을, 『오만한 제국』은 그저 "흑인은 배 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가장 어둡고 더러운 엔진실 근처 구역에 따로 수용되었다"거나 "흑인은 백인 3개 조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정도로 묘사하고 있으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는 좀더 생생한 사례가 등장한다.
"바다에서 5일째 되던 날 작은 소동이 있었다. 앞선 조가 식사를 끝내기 전에 마지막 조가 식당에 들어섰다. 4천 명의 흑인이 식당에 쏟아져 들어와 다른 병사들이 식사를 끝내고 비운 자리마다 들어찼다. 우발적인 상황이었지만 인종이 통합된 식당이 되어버렸다. "소위님!" 흑인 옆에 앉아 있던 한 백인 병장이 나를 불렀다. '제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저 친구를 밖에 있게 해주십시오.' 이 말에 화가 난 나는 군대 경력에서 처음으로 계급을 들이밀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네 식사를 다 끝내기 싫으면 나가도 좋다. 이 전쟁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이라고 생각하나, 병장?' 다음 식사시간까지는 오래 남아 있었고 병장은 그대로 앉아 마저 먹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의 제목에 대해서는 『오만한 제국』이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기차에 가만히 타고 있는 사람도 이미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인데, 가만히 있다는 것은 곧 그 방향을 받아들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우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책의 도움이 필요하다. 폭압적 권력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이 언뜻 무기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비타협적인 것임을 상징하는 우화가 하워드 진의 책에는 요약돼 있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의 연작 장편(掌篇) 「코이너 씨의 얘기」의 하나인 '폭력에 대한 조치'의 내용은 이렇다. 코이너 씨가 여러 사람 앞에서 폭력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는 청중이 슬금슬금 뒷걸음쳐 도망치는 기미를 알아챈다. 그의 등 뒤에는 폭력이 떡허니 서 있었다. "너 지금 무슨 애길 했지?" 폭력이 물었다. "난 폭력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코이너 씨가 대답했다. 폭력이 물러가자 사람들이 코이너 씨에게 그의 용기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얻어 터질 용기는 없어. 나는 폭력보다 오래 살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러고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싫다고 말하는 것을 배운 에게 씨의 집에 불법의 시대에 한 폭력의 사자가 찾아왔다. 그는 그 도시를 지배하는 자들의 이름으로 발행된 증명서를 내보였다. 그런데 그 증서에는 그가 발을 들여 놓은 모든 집은 그의 것이 된다고 적혀 있었다. 또한 그가 요구하는 모든 음식은 그의 것이었고, 그의 눈에 띄는 모든 사람은 그의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 사자는 의자에 앉아 먹을 것을 요구하고 세수를 한 다음 드러누워 얼굴을 벽으로 향한 채 잠들기 전에 물었다. '자네 내 시중을 좀 들어 주겠나?' 에게 씨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파리를 쫓아 주고, 그가 잠자는 것을 보살펴 주었다. 그리고 이 날과 마찬가지로 그는 7년 동안 그에게 복종했다. 그러나 그를 위해 온갖 일을 다 해주었지만, 꼭 한 가지만은 하지 않았다. 그건 말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7년이 지나가자 그 폭력의 사자는 너무 많이 먹고, 자고, 명령만 하다가 뚱뚱해져서, 죽고 말았다. 그러자 에게 씨는 그를 썩은 이불에 말아 집 밖으로 끌어내고, 침대를 닦아내고, 벽에 흰 칠을 한 다음,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싫다.'"(브레히트의 『상어가 사람이라면)(한마당, 1986년)에서)
하워드 진은 미국의 무정부의자 엠마 골드만을 소재로 한 희곡 『엠마』를 써서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기도 했는데 『오만한 제국』에서는 엠마 골드만이 쓴 논설을 인용하기도 한다. 하워드 진이 인용한 엠마 골드만의 「아나키즘」은 한글판을 통해 전문을 읽을 수 있는데 이 글은 『저주받은 아나키즘』 (우물이있는집, 2001년)에 실려 있다.
이밖에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와 『오만한 제국』에는 교수 신분으로 흑인민권운동과 반전평화운동 동참한 하워드 진의 활약상이 잘 나타나 있다. 아울러 민중지향적인 하워드 진의 역사관을 엿보게도 한다. 하워드 진의 민중지향적 역사의식은 『오만한 제국』에서 국가안보, 국방, 민주주의, 애국주의 같은 개념을 재정립하는 데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를테면 안정보장은 "사람들의 건강과 복지를 뜻하는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국방은 "전쟁을 수행하고 무기를 비축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창조적인 비폭력 저항방법으로 폭정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단합된 행동을 의미하는 용어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워드 진은 무작정 비폭력을 외치진 않는다. 그는 흑인민권운동에서 "폭력이 전혀 없는 해결책을 묻는 것은 비현실적이었다"(『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인정한다.
그렇지만 하워드 진에게 궁극적인 힘의 원천은 핵폭탄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받는 보상은 미래의 승리에 대한 전망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 있다는, 함께 위험을 무릅쓰며 작은 승리를 기뻐하고 가슴아픈 패배를 참아내는 과정에서 얻는 고양된 느낌이다." 투쟁에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실천을 위한 역사학'인 셈이다. 장 세노는 『실천을 위한 역사학』(화다, 1985년)에서 "역사학이 자체의 껍질을 깨기 위해서는 특권을 부여받고 있으나, 불행하게도 한정된 지식인의 역할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는 것이 필요한 일"이라 강조했거니와, 하워드 진은 껍질깨기를 실천한 역사가다.
하워드 진의 아프락사스에는 책이 매개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직후만 해도 하워드 진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를 미군의 생명을 아끼기 위한 불가피한 작전으로 받아들였으나, 존 허시의 『히로시마』를 필두로 원폭 피해자의 증언록들을 읽고 나서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이후 그는 철두철미하게 평화반전주의자가 되었다. 미국 운동권 교수들의 글모음인 『냉전과 대학』(당대, 2001년)에 실려 있는 「냉전시대 역사의 정치학: 억압과 저항」은 『오만한 제국』과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의 축약판이다.
지금까지 출간된 하워드 진의 단독저서는 세 권이다. 그런데 올해 안에 세 권이 더 나올 예정으로 있다. 한 권은 이미 나온 책을 재출간하는 것이지만, 두 권은 새로 선보이는 책이다. 더구나 새로 나오는 두 권은 앞으로 한 달 안에 도서출판 이후를 통해 잇달아 출간된다. 이달 말 출간될 『전쟁에 반대한다 : 우리 시대에 고하는 하워드 진의 반전 메시지』(유강은 옮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코소보와 유고 내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개입한 전쟁을 다룬 책이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개입한 양상을 자세히 서술했다. 3월 출간될 『반전의 논리Terrorism and War』(이재원 옮김)는 『전쟁에 반대한다』의 속편으로 9?11과 그 이후 대테러전에서의 미국의 행동이 과연 정당한지 인터뷰 형식으로 따진 책이다. 『미국민중저항사』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이후)로 제목을 바꿔 7월께 선보일 예정이다. 최신판을 번역저본으로 한 이 새로운 『미국민중사』는 클린턴 시대까지 포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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