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에는 경계가 없다
- 전방위 비평가, 가타리니 고진
가라타니 고진은 문예비평가를 자임한다. 이를 두고, 지난해 연말 번역 출간된 『유머로서의 유물론』(문화과학사, 2002년)의 말미에 덧붙은 해설에서, 아즈마 히로키라는 사람은 "그것은 아주 반시대적인 제스처"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가라타니가 지금 '비평가'를 자칭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비평적 전통의 죽음에 맞서고 저항하기 위한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문예비평가를 자임한다. 이를 두고, 지난해 연말 번역 출간된 『유머로서의 유물론』(문화과학사, 2002년)의 말미에 덧붙은 해설에서, 아즈마 히로키라는 사람은 "그것은 아주 반시대적인 제스처"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가라타니가 지금 '비평가'를 자칭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비평적 전통의 죽음에 맞서고 저항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 문학계에는 일본문학이라면 한 수 아래로 접고 보는 풍조가 없지 않은데, 이는 근거가 빈약한 편견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가라타니 고진처럼 새로운 독자가 자신의 텍스트로부터 멀리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비평적 전통을 옹호하고자 하는 비평가가 존재하지 않거니와, 그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춘 비평가도 찾아볼 수 없다.
평론집이라고 해야 할 『유머로서의 유물론』에서 고진은 플라톤부터 데카르트,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그리고 바르트, 푸코, 데리다, 레비나스에 이르는 서양철학 사상을 종횡무진한다. 고진은 자신이 호명한 서양 철학자들에게도 비평적 감식안을 발휘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칸트적인 주관은 어떤 시대 어떤 인간에게도 공통된 공허한 형식이지만, 데카르트의 회의는 단독적이며 역사적이다."
그런데 고진의 생각은 같은 섬나라인 영국의 경험론보다는 대륙의 합리론 쪽에 기울어 있는 듯하다. '정신'의 '명석(明晳 )' 및 '판명(判明)'에 호소한 데카르트와 '대상'이 인간 감성의 형식과 오성의 카테고리에 의해 구성된다고 말한 칸트를 거론한 다음 언급한 "경험적인 데이터는 진리를 보증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설이 경험적 데이터를 불러 모은 것"이라는 인식은 이 책을 끌고 나가는 화두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화두는 "너무 먼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책의 핵심 어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진이 너무 먼 과거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주 가까운 '기원'에서의 전도(轉倒)를 과거로 투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새로 난 길이 하루이틀 만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인 냥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고진은 '기원'을 먼 과거로 보거나 순서를 착각할 우려가 있는 몇 가지 예를 들고 있는데 먼저, 단테, 데카르트, 루터, 세르반테스 등이 쓴 언어가 각 국어를 형성했다는 점을 꼽는다. "그것들이 각국에서 현재에도 읽을 수 있는 고전으로 남아 있는 것은, 각국에서 언어가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역으로 그러한 작품을 통해 각 국어가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또한, 고진은 1635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설립됨으로써 프랑스어가 개량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입말로서의 '프랑스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글로 씌어진 '프랑스어'가 나중에 입말로 된 것일 뿐"이어서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진은 "먼저 성서를 읽고 신앙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우선 유대교나 기독교를 믿고 나서, 성서를 읽은 것이다."
한편, 표제로 쓰인 '유머로서의 유물론'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월론적 비판'이 지닌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비(非) 데카르트적 코기토」에 따르면, '초월론적 비판'이란 "우리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불명확한 어떤 '형식'으로 구성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진술이 바로 초월론적 비판에 해당한다. 마르크스가 지은 『자본(론)-국민 경제학 비판』 역시 경제학에 대한 초월적인 '비판'이다. 표제글인 「유머로서의 유물론」에서 고진은 '초월적인 것'을 유머로 대체한다. 고진은 마르크스나 프로이트의 사고방식이 스피노자나 칸트에게서 유래한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자기는 세계(역사) 안에 있으며, 그것을 초월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렇다.
"초월한다는 믿음마저도 그것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는 초월적 비판이야말로 '유물론'이며, 이는 그 무엇보다도 유머인 것이다." 유물론에서 혹시 주체의 계기가 나오지 않을까?,라고 고지식하게 반문하거나 경제결정론 또는 심리학적 결정론을 도출하는 사람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고루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고 고진은 덧붙인다.
서양철학사와 일본 근현대문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는 『유머로서의 유물론』의 내용이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원주와 역주가 뒤섞인 주석이 독서의 충실한 길라잡이 구실을 한다. 더구나, 가라타니 고진이 엮은 『근대 일본의 비평』과 『현대 일본의 비평』(소명출판, 2002년)은 일본 근대현대문학의 참고서로 손색이 없다.
일본의 비평사를 검토한다는 취지로 고진이 기획한 이 책들은 발제글과 좌담으로 이뤄져 있지만 좌담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독자가 책장을 넘기기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다만, 고진이 문고판 서문에서 환기하고 있는 비평의 개념과 관건을 유념해가며 읽는 것도 하나의 독서 요령이다.
고진은 어떤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돌아본다는 본원적 의미의 비평을 추구한다. 아울러 "'비평'은 무엇을 대상으로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태도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 문학뿐 아니라 철학과 사회과학이 논의되는 것도 이런 비평관과 무관치 않다. 그런 비평관은 고진이 비평을 업으로 삼게 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제가 1960년대에 비평이라는 영역을 선택한 하나의 이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비평을 문예비평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즉 비평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뭘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비평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경계를 가지지 않고, 역으로 경계를 무화시켜 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는 좀더 자각하게 되었는데 그 시점에서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가라타니 고진 입문서로는 작지만 풍부한 책 『윤리21』 (사회평론, 2001년)이 적합하다. 21세기의 윤리를 논구한 이 책에서 고진은 칸트의 윤리학을 준거로 삼는다. '윤리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고찰할 때, "칸트의 '비판'이 지금도 가장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진은 『윤리21』에서 칸트가 말한 윤리의 준칙들을 마냥 되뇌고 있지는 않다. 고진의 칸트 해석은 독특하고 신선하다. 칸트가 보편적인 도덕법칙으로 삼은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특히 그렇다. 고진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죽은 개' 취급을 당하는 칸트의 윤리학을 '복권'시킨다.
고진은 칸트의 도덕법칙이 잘못 읽히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나 지금이나 "타자를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식으로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는 있다. 고진은 학생들이나 승려들 사이에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붙인다. 하지만, 곧바로 학생들의 관계를 확장시켜 이를 반박한다. "학생들은 부모에게 의존하고 이를테면 부모를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고, 부모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
고진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필연적으로 칸트의 연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칸트가 타자를 수단으로서뿐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을 때, 칸트는 구체적으로 독립 소생산자들의 연합 사회를 머릿속에 그렸다는 것이다. 고진은 칸트의 도덕법칙을 공산주의에 적용한다. "코뮤니즘은 타자를 수단으로 하면서 또한 목적으로 대하는 사회가 아니면 안 된다."
그리고 칸트의 유명한 명제를 패러디해 '가능한' 공산주의의 핵심을 다음같이 간파한다. "코뮤니즘은 경제적인 것만도 아니고 도덕적인 것만도 아니다. 칸트의 말을 비틀어 말하면 경제적 기반을 갖지 않은 코뮤니즘은 공소하고 도덕적 기반을 갖지 않은 코뮤니즘은 맹목이다."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이산, 1999년)은 고진의 이름을 만방에 알린 책이다. 또한, 이 책은 가라타니가 사상가 이전에 뛰어난 비평가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비평가는 전문적인 독자 또는 훈련된 독자를 일컫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 사람의 사상가에 대해 논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작품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이는 자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령 마르크스를 알고자 하면 『자본론』을 숙독하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적 유물론이라든가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외재적인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단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자본론』을 읽는다. 그것은 읽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읽는 게 제대로 읽는 것인가? "'작품' 이외의 어떠한 철학이나 작자의 의도도 전제하지 않고 읽는 것,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하는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다." 일견 내재비평의 기율을 연상케 하기도 하나, 고진의 독서술은 원전비평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자본(론)』 의 초판에 주목한다. 초판에서 마르크스는 일반적인 형태의 가치의 도래를 놀라운 방식으로 기술했다는 것. 하지만 『자본(론)』의 많은 나중판들에서는 단정한 편집과 배열로 인해 초판의 눈에 띄는 어떤 것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고진은 초판을 텍스트로 한 제대로 읽기를 통해 가려졌던 것들을 끄집어 낸다.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아직 사유되지 않은 것'을 읽는다. 그리고 그런 독서에서는 누가 '정통'이냐는 진위 논란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읽는 일은 작자를 변형시킨다. 여기에서 '올바른 이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만약 그것이 있을 수 있다면 이른바 역사 자체가 완결되어 버린다. 헤겔 미학이 그의 역사철학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이해'에 의해 완결되어 버린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그것은 작품이라는 텍스트가 극복할 수도 없고 환원할 수도 없는 불투명함을 지니고 자립한다는 사실을 작자와 독자 모두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유로서의 건축』(한나래, 1998년)의 내용은 좀 어렵다. "이상의 존재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건축에의 의지를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이 건축에의 의지가 바로 서양 사유의 토대"라는 것이 책의 골자로 보인다. 그러면 은유로서의 건축은 '이상(idea)'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분명치 않다. 이 책이 '압축 파일'이라서 그런가? 『은유로서의 건축』은 표제작 외에 『내성과 회고』(미번역)와 『탐구?1』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부제로 쓰인 '언어?수?화폐'는 '소쉬르?괴델?마르크스'를 지칭한다.
"기존의 모든 철학과 사유 체계에 대한 전복적 사유를 통해 위기를 탐구해 나가면서 새로운 윤리를 탐색하는 지적 여행." 『탐구』(새물결, 1998년)의 표지에 새겨진 문구다. 이 책에서 고진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를 거쳐 비트겐슈타인에 이르는 서양사상가들에 대한 '뒤집기'를 시도한다. 이 같은 전복을 통해 고진은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세속적 비평'이, 형식주의가 야기한 지적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편임을 주장한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민음사, 1997년)은 고진 번역의 물꼬를 튼 책이다. 이 책은 일견 '문학사'의 외양을 띠고 있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이라는 제목은 실은 일본, 근대, 문학이라는 단어,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기원이라는 단어에는 꺾쇠 기호가 들어가야 한다." 여기에다 고진은 '문학사'를 비판하기 위해 문학사적 자료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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