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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큰 바다로 우리를 이끄는 살아 있는 부처

달라이 라마에 관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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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권에 이르는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가초의 관련도서는 다양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뚜렷한 특징을 보여준다. 책들은 '지혜의 큰 스승'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표지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내고 있는데 텐진 가초 관련도서는 대부분 제목이 '달라이 라마'로 시작한다.


20여 권에 이르는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가초의 관련도서는 다양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뚜렷한 특징을 보여준다. 책들은 '지혜의 큰 스승'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표지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내고 있는데 텐진 가초 관련도서는 대부분 제목이 '달라이 라마'로 시작한다. '달라이'는 몽골어로 '큰 바다'를 뜻하고,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가리킨다. 정교일치 사회인 티베트에서 달라이 라마는 종교 지도자일 뿐 아니라 정치 지도자이기도 하다.

 

달라이 라마 관련서는 형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담집과 강연록 그리고 잠언집이 그것이다. 그런데 달라이 라마 관련서는 하위분류 내에서도 독특한 특징이 나타난다. 특히, 인터뷰가 바탕이 된 책들은 형식이 자유로운데다 인터뷰어의 개성이 발산된 까닭에 인터뷰어의 단독저서라는 성격이 짙다. 실제로도 이런 책들은 저자가 인터뷰어로 되어 있거나 달라이 라마와 인터뷰어의 공동저서를 표방한다.

 엄밀히 말하면, 게일런 로웰의 『달라이 라마 나의 티베트』 (시공사, 2000)는 대담집이 아니다. 그래도 이 책을 맨 먼저 언급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책의 기획자이면서 사진작가인 로웰이 쓴 서문이 달라이 라마의 생애와 사상을 잘 함축했다는 점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로웰의 사진과 달라이 라마의 에세이를 아우른 구성이 마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서다. 로웰이 찍은 티베트의 풍물과 경치는 참 볼 만하다. 무엇보다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티베트 사람들의 순수한 인간미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로웰이 간추린 달라이 라마의 생애에 따르면, 그는 1935년 7월 6일 티베트 암도 지역에 있는 탁스터 마을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른 애들에 비해 좀 덩치가 크고, 명민하고, 호기심이 많은 것을 빼놓으면 아주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 그에게 그의 부모는 라모 돈드루프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라모 돈드루프가 두 살 되던 해, 40명으로 이뤄진 탐색팀이 돈드루프의 집에서 마차로 하루 거리에 있는 쿰붐 수도원에 도착한다. 이들은 달라이 라마의 화신을 찾기 위해 전국으로 파견된 3개의 탐색팀 가운데 하나였다. 4년 전, 그러니까 돈드루프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제13대 달라이 라마가 입적했는데 그가 암도에서 환생할 것임을 예고하는 여러 조짐이 있었다. 이윽고 탁스터 마을에 아주 특별한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 탐색팀은 돈드루프에게서 첸레지의 화신이 갖고 있는 여덟 가지의 상호(相好)를 확인한다. 또 돈드루프는 탐색팀이 제시한 물건들에서 입적한 달라이 라마의 유품을 모두 찾아낸다.

"이렇게 하여 라모 돈드루프는 텐진 가초로 개명되었고 제14대 달라이 라마로 인정되었다." 네 살 때 티베트의 수도 라사로 거처를 옮긴 텐진 가초는 아주 침착하고 위엄 있는 태도로 사람들을 대한다. 하지만 나이를 속일 수는 없었다. 가초는 호기심 많은 어린 아이였다. 가초의 소년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기계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는 러시아 황제의 선물인 값비싼 스위스 시계나 음악상자 같은 것을 분해했다가는 완벽하게 조립하곤 했다.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자 달라이 라마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피신한다. 몇 달 뒤 티베트의 종교적 자유와 내치를 완전하게 보장하겠다는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다시 티베트로 돌아온다. 그러나 1959년 3월 10일 발발한 티베트의 대봉기를 중국이 강경진압하자 달라이 라마는 기나긴 망명길에 오른다. 이후 반세기 가까이 달라이 라마는 히말라야 산맥 기슭의 인도 땅 다람살라에 거주하며 독립투쟁을 펼치고 있다.

그의 투쟁 방식은 철저히 비폭력적이다. 더구나 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는 데 비해 달라이 라마의 요구사항은 훨씬 온건하다. 외교는 중국 정부가 담당하되 내치는 전적으로 티베트인에게 맡겨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것마저 거부하며, 협상조차 배격하고 있다. 1989년 달라이 라마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달라이 라마의 노벨상 수상과 왕성한 활동의 저변에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측면 지원이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으나, 달라이 라마가 받은 노벨상에는 전세계 피압박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향한 염원이 담겨 있다.

로웰이 인용한 달라이 라마의 자비관에는 달라이 라마 사상의 정수가 녹아 있다. "나의 적은 나의 좋은 친구이며 스승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역경으로부터 배울 기회를 주기 때문이지요. 마음 편한 친구와 함께 있으면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적들로부터 배울 기회가 훨씬 많아요!"

 세 권으로 이뤄진 김용옥의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통나무, 2002)은 셋째 권에 도올과 달라이 라마의 대담이 실려 있다. 달라이 라마의 입을 빌린 도올의 우회적인 자화자찬이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한국인이 직접 달라이 라마와 대거리를 했다는 현재적 의의는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사실, 이 책을 제외한 달라이 라마 관련서는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없지 않다. 우리의 관점이 아니라 미국인과 영국인, 그리고 프랑스인의 눈으로 본 달라이 라마 해석을 수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달라이 라마에게 접근한 순서는 한국인의 히말라야 등정기와 유사한 것 같다. 서구 선진국들의 뒤를 밟았으니 말이다. 어쨌든 여러 모로 달라이 라마는 히말라야 산맥의 높디높은 봉우리 같은 존재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김영사, 2001)은 달라이 라마 관련서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책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하워드 커틀러가 달라이 라마와의 인터뷰를 기초로 지은 이 책은 달라이 라마 행복론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커틀러의 감상과 분석이 책을 이끌고 나가지만 책의 핵심은 역시 달라이 라마의 언명이다. 행복과 쾌락의 분별이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이 이따금 "행복을 쾌락과 혼동"한다고 보는 달라이 라마는, 성적인 행동을 하는 순간에 가장 행복하므로 섹스를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인도의 어떤 영적인 스승의 가르침을 이렇게 빗댄다.

"진정한 행복은 마음과 가슴에 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육체적인 쾌락에 의존하는 행복은 불안정합니다. 어느 날엔 그곳에 있지만, 그 다음 날엔 없어질 수 있는 행복입니다." 그러고 보니, 달라이 라마 행복론이 국내 독자에게 호응을 얻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물질적 풍요와 그로 인한 쇄말적 쾌락주의의 반작용이 아닐까 한다. 한 두 세대 전, 인기를 끈 러셀과 알랭의 다분히 이성(理性)적인 행복론이 달라이 라마의 감성적인 행복론으로 대체된 것도 경제적 측면과 함수관계가 있지 않을까?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예류, 2000)는 1990년대 초반에 있은 네 번째 '마음과 삶' 모임의 기록이다. '마음과 삶'은 달라이 라마가 세계적인 학자들과 종교, 철학, 과학, 환경을 주제로 2년에 한 번씩 의견을 주고받는 모임이다. '인간 의식'을 주제로 한 네 번째 모임에서는 뇌와 수면 사이의 관계, 꿈과 무의식, 임사체험과 죽음 등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티베트 불교와 현대과학의 접점을 모색했다. 프랑스의 생물학자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토론회의 전 과정을 기록했다.

 역시 프랑스 사람인 장 끌로드 까리에르가 엮? 『달라이 라마 지구의 희망을 말한다』(롱셀러, 2000)는 대담집의 형식이 가장 두드러진 책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다방면의 주제가 다뤄지는데 다음은 티베트의 정교일치에 관한 질문의 답변이다. "권력의 개념 자체가 아주 다르지요.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나 제도 자체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답니다. 지구상의 사람의 의사와는 별개로 어떤 힘에 의해 영원을 기약하며 세워진 게 아니에요. 불교와 민주주의 사이에 모순은 없답니다."

 『달라이 라마의 마음공부』 (해냄, 2002)는 강연글 모음으로 1999년 8월 미국 뉴욕을 방문해 행한 법어를 엮었다. 첫머리에 놓인 뉴욕 센트럴 파크 강연에는 20만 명의 청중이 모였다. 이 강연을 통해 달라이 라마는 우리 모두가 똑같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여러분 가운데, 달라이 라마는 어딘지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아주 잘못 생각하시는 겁니다. 나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똑같은 잠재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달라이 라마가 무원칙한 합일이나 통합까지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되려 그는 일치를 위한 확연한 갈라섬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 측면은 1994년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존 메인 세미나에서 행한 강연을 묶은 『달라이 라마 예수를 말하다』(나무심는사람, 1999)에 잘 나타나 있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와 기독교는 근본이 같지만 단지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돼 있을 뿐이라는 견해에 대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반대한다. 자비와 형제애, 그리고 용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종교가 닮았다는 점은 인정하나 창조주와 구세주를 받들지 않는 불교는 기독교와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도이자 그리스도교인'이라 자처하는 것은 '양의 몸에 야크의 머리를 올려 놓으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달라이 라마는 종교인들에게 이런 당부를 한다.

"당신이 그리스도교인이라면 그리스도교를 통해서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이 좋습니다. 훌륭하고 진정한 그리스도교인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당신이 불교 신자라면 순수한 불교 신자가 되십시오. 제발 반씩 섞어서 믿지는 마십시오!(웃음) 그러면 단지 마음만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영국 런던의 바비칸 센터와 맨체스터 자유무역센터에서의 강연을 담은 『달라이 라마 삶의 네 가지 진리』(숨, 2000)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인 사성제에 대한 설명과 불교를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문제를 주된 내용으로 한다.

 베르나르 보두엥이 엮은 『달라이 라마』(이레, 2002)는 달라이 라마의 명구를 수록한 일종의 잠언집이다. 존재, 사랑과 행복, 마음, 인간애, 영적 생활, 명상, 비폭력, 깨달음, 죽음과 환생 등으로 주제를 나눠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싣고 있는데 앞서 인용한 적에 대한 성찰은 이 책에서 약간 변형된 형태로 제시된다.

"누가 당신에게 관용을 가르치는가?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에게 인내심을 가르칠 수 있으나, 관용은 오직 당신의 적만이 가르쳐준다. 적은 당신의 스승과 같다. 당신의 적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대신 그를 존경한다면 당신의 자비심은 커진다. 이 같은 자비심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심이며, 그것의 토대는 건전한 믿음이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보인다』(문이당, 2000)는 일일 묵상집의 형태를 취한다. 날마다 ?음에 새겨야 할 가르침 365가지를 싣고 있다. 다음은 1월 29일의 말씀이다. "폭력을 쓰면 원하는 것을 얻게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의 안위를 해치고 얻는 만족이다. 한 가지 문제는 해결될지라도, 그로써 새로운 문제의 씨앗이 뿌려지는 것이다. 문제 해결의 최선책은 인간적인 이해와 상호 존중을 통한 방식이다."

 『달라이 라마의 아주 특별한 선물』(청아출판사, 2002)에는 달라이 라마가 각기 처한 상황이 다른 이들에게 주는 조언이 담겨 있다. 달라이 라마가 조언을 하는 대상은 젊은이부터 노인, 가난한 사람, 장애인, 동성애자, 정치인, 농부, 종교인, 비종교인,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그리고 무관심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제한이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드리는 달라이 라마의 당부를 허투루 봐 넘길 일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진실로 걱정해주십시오. 우리 친구를 걱정해주듯이 우리 적을 걱정해주십시오. 이때서야 진정한 사랑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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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일 씨는 1967년 인천 부평에서 출생했으며 인하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출판저널』 기자로 출판계에 들어왔다. 『도서신문』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여러 지면에 출판 시평과 독서에세이를 기고하며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베스트셀러 죽이기』(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와『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책동무 논장)이 있고, <살림지식총서> 중『미국 메모랜덤』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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