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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가지 공포의 무늬 - 〈마스터스 오브 호러〉

“마스터스 오브 호러”라는 제목도 크리에이터인 믹 개리스가 마련한 이들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주 단순명료하고 거창하여 코믹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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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케이블 채널들은 바야흐로 저예산, 혹은 B급, 혹은 예술영화들의 새로운 터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공중파 채널들이 시청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유료 채널 HBO를 필두로 한 몇몇 케이블 채널은 갖가지 실험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계에서 새로운 시도라기보다는 달라져 가는 TV 환경에서 표현할 수 있는 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가령 2005년 할로윈 무렵부터 시작해서 13편으로 시즌 1을 끝낸 〈마스터스 오브 호러〉도 그렇습니다. 슬래셔와 하드고어 영화의 시절은 갔다는 것이 중론인 이때에, 어지간한 상업 영화관에서는 1년이 가야 거의 볼 수 없는 잔혹 영상이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쥐고 있는 시청자들을 13주나 쭉 찾아간 것이지요.

공포 종합선물세트 〈마스터스 오브 호러〉
역시 유료 채널인 쇼타임은 뒤에 가서 몇 마디 말을 바꾸기는 했으나, 감독들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표현하건 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에피소드까지 나오기도 했지요. 이 드라마는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기는 하지만, 에피소드마다 감독도 배우도 이야기도 모두 제각각인 완전히 다른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틴에이저 슬래셔 무비의 원조라는 〈할로윈〉의 존 카펜터나 은근히 잔인했던 영화 〈그렘린〉의 조 단테,〈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의 토브 후퍼 등을 빼놓고는 어지간한 공포영화 팬이 아니라면 그다지 낯익은 이름이 없을 것 같습니다만, 공포영화의 드림팀이라고 할 수 있는 감독들이 모여 만든 드라마로 제작 단계에서부터 공포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큰 기대와 더불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마스터스 오브 호러”라는 제목도 크리에이터인 믹 개리스가 마련한 이들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주 단순명료하고 거창하여 코믹하다는 느낌마저 드는데, 에피소드를 하나씩 보다 보면 농담이 아니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공연히 당황스러워지기도 한답니다. 그러니 시리즈는 쑤시고, 찌르고, 파내는 것 일색의 영상만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저절로 눈을 피하게 되고, 그 때문에 더 선명하게 들리게 된 소리 때문에 이를 앙다물어 턱이 얼얼해질 만큼 잔혹한 장면도 많지만, 다른 형식으로 “호러”를 탐구하는 에피소드들도 많습니다. 프레드/제이슨 과의 살인마에서부터 좀비, 기형아, 변신 괴물 등 어디선가 본 듯 친근(?)하면서도 다양한 호러 앤솔로지가 펼쳐지는 것이지요.

첫 편인 〈마운틴 로드Incident On and Off a Mountain Road〉는 프레드/제이슨 과의 살인 기계 “문페이스”가 등장하며 무난하게 시작됩니다. 미모의 여주인공이 살인마에게 쫓기며 비명을 지르며 벌벌 떨면서도 기지와 용기로 난관을 헤쳐 나갑니다. 살인마를 물리치기 위해 온갖 기구와 부비 트랩을 만드는 장면에서는 〈나 홀로 집에〉가 떠오르지 뭡니까. 그런데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보아 넘길수록 불편한 마음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사람 무섭고 불편하게 만드는 게 당연한 공포물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언제부터인가 그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것, 가령 특정한 예술 장르 같은 것이 속속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종 그렇듯이 그러한 조명은 아주 정당하지만은 않은 권위로 이어지곤 합니다. 특히 소수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는 것을 특징으로 하던 공포물이나 SF물 또는 이른바 하위문화라고 불리는 것들이 종전의 마니아들과는 성격이 다른 일부 폐쇄적인 “엘리트” 집단을 낳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리하여 재발견의 신선하고도 지축을 뒤흔드는 충격도 잠시, 데자뷔처럼 또다시 찾아오는 건 허탈함이지요.

공포영화의 13인의 거장들이 모여 만든 〈마스터스 오브 호러〉


공포물로서는 특이하게도 반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마스터스 오브 호러〉의 감독들은 전적으로 재량권을 보장받으며 에피소드를 찍었습니다. 그래서라고 생각한다면 무리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공포라고는 웨스 크레이븐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모르는 세상의 또 다른 무시무시한 진실을 알려주겠다는 포부를 느꼈다면 과한 걸까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작품 자체로 설득당하고 감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코드를 모르면 진정한 문화인이 아니지, 하는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일말입니다. 공포물이나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장르에서 그런 코드로 애용되고 있다는 게 상상력입니다.

예전에 〈장화 홍련〉을 보고 당혹스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때깔이 몹시 고운 세트와 소품에 눈이 즐겁기는 했지만,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이야기가 있기는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겸허한 자세를 유지하고자 해도, 그 공백과 부재의 원인을 관객의 상상력 부족에서 찾는다면 무척 곤란한 일입니다. 상상력, 취향, 다양성, 전부 먹기 좋아 보이는 떡들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데 쓰기에는 참 소용없는 물건들이기도 하고요.

가령 〈나라야먀 부시코〉를 비롯한 많은 일본(공포)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주제와 소재를 거의 변주조차 하지 않고 보여준 13편 〈임프린트〉는 최고 수위의 잔혹성 때문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그걸 모르는 새로운 관객 앞이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똑같게 반복한다는 무성의함 때문에 불쾌감을 줍니다. 이런 것은 결코 잔혹성에 대한 취향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를 쓸 수 있는 〈샤이닝〉의 스티븐 킹, 〈도슨의 청춘일기〉를 쓸 수 있는 〈스크림〉의 케빈 윌리엄스가 있으니까, 이야기의 관습 또는 기본과 상상력 사이에 장막을 세우지 않는 그런 작가들이 있으니까 상상력이라는 것이 특정 장르의 작가들에게만 보호막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참으로 안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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