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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유니버스 - 〈파이어플라이〉

2002년에 FOX에서 방영되다가 에피소드 11개 만에 조기 종영되어 버리고 만 〈파이어플라이〉도 하마터면 그런 어리석은 심술에 놓치고 말 뻔한 드라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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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도 많은 영화나 문학작품, 음악, 드라마 등이 세상에 나왔다가 날개 한번 퍼덕거려 볼 일도 없이 사라져갑니다. 그중에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말을 듣는 작품이 꼭 있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이 저주받은 걸작을 알아보는 눈이 저는 웬일인지 날이 갈수록 어두워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뭐, 이 걸작에 정말 단어 뜻대로 거창한 것부터 해서 참 쓸 만한데도 묻혀버린 것까지 다 포함시켜 보기로 하지요. 여하튼 제 눈으로 보기에 줄어들었을 뿐이지, 그런 불운을 겪은 문화상품들은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관객 기록 갱신이 국가적인 과업이라도 되는 양 소비자들을 독려하는 느낌마저 주는 것에도 엇나가는 심정이 들기는 마찬가지라고 해도, 잘 팔리지 않는 것이 작품성의 가치 상승으로 연결되면서 상업성 결여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현상이 간혹 눈에 띄는 것도 반갑지 않기는 똑같습니다.

〈버피〉와 〈앤젤〉의 제작자가 만든 저주받은 걸작이라고나... 〈파이어플라이〉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를 떠나, 한 번이라도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참 기이한 일입니다. 가령 언론보도 과정에서 얼마나 곡해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객 수준을 말하는 영화감독을 보면 난감함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편견에 눈이 가려지다 보니, 저주받은 걸작이다, 관객이 별로 안 들었거나 시청률은 낮지만 좋은 작품이라는 얘기가 들리면 더럭 겁(?)부터 나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2002년에 FOX에서 방영되다가 에피소드 11개 만에 조기 종영되어 버리고 만 〈파이어플라이〉도 하마터면 그런 어리석은 심술에 놓치고 말 뻔한 드라마랍니다. 〈파이어플라이〉는 제작자인 조스 웨든과 FOX의 계속되는 마찰과 낮은 시청률로 조기 종영되었지만, 후에 발매된 DVD는 상당히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래서 2005년에는 극장판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했습니다.

파일럿 에피소드를 보면서는 아닌 게 아니라 스타일에 힘 좀 들어갔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들었습니다. 다소 흔들리는 카메라와 가끔씩 들어가는 컨트리 스타일의 음악이 언뜻언뜻 부자연스럽다 싶게 튀는 점도 있었고요. 조스 웨든과 FOX는 화면 비율서부터 충돌을 빚었습니다. 웨든은 와이드로 가야 한다는 걸 FOX는 TV 표준 비율로 가야 한다고 해서, 웨든이 일부러 인물들을 카메라 구석쟁이에 박아 넣고 찍으면서 결사항전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거의 다 와이드로 화면을 잡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2002년쯤이면, 게다가 공중파 채널이고 SF 드라마인데도 표준 화면비율을 고집한 FOX가 왜 그랬는지 의아하기도 합니다. 또 주인공 캐릭터를 너무 어둡고 퉁명스럽게 그리지 말라고 종용했다고도 하고요.

그 때문에 어쩌면 이 드라마가 공중파가 아니라 〈배틀스타 갈락티카〉처럼 케이블 채널을 근거지로 삼았다면, 그토록 단명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파이어플라이〉는 SF치고는 스케일이 아주 큰 편이라고 볼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어쨌거나 역시 이 드라마는 처음에는 약간 당황스러움을 안겨줍니다. 연방에 맞서 싸우는 독립주의자들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더니, 이내 허망하게 제압당하는데 흩어진 세력을 규합해서 다시 어찌해 보겠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우주의 무법자가 되어 방랑길을 떠나거든요. 그런데 그게 이 드라마의 재미가 됩니다. 패배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동료 두 명이 낡디낡은 개똥벌레급 우주선을 집 삼아,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밑바닥 인생 몇을 모아서 밀수 사업에 뛰어듭니다. 대놓고 의적 노릇을 하지는 않지만 슬쩍슬쩍 공권력을 유린하면서, 패배한 자들의 생존법은 처음의 어두움과 무게에서 벗어나 점점 더 유쾌해집니다.

2517년 미래를 방랑하는 비행선 ‘서레너티’호


승무원 가운데 하나인 조이(〈앨리어스〉에서 시드니 브리스토를 그토록 괴롭히던 숙적, 그 무시무시한 애나를 연기했던 지나 토레스가 분하고 있습니다)는 영웅의 정의는 주변 사람들을 죽게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합니다. 조스 웨든이 DVD에 담긴 제작 뒷이야기에서도 밝혔듯이, 이 드라마의 영웅은 이상을 위해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희생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어떻게든 지키고 그들과 함께 가족을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밀수선 서레너티의 선장이자 드라마의 주인공인 말콤 레이놀즈는 밀수하는 것 빼고는 주인공으로서 역시 도덕적 오점을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지만, 그 밑에서 일하는 제인 같은 사람은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의 장남을 연상케 하는 거의 말종에 가까운 인물이지요. 종종 동료를 배신하는 그를 죽이거나, 혹은 내치기라도하기는커녕 곁에 계속 두는 것이 캡틴 말콤입니다. 그러고 보니 말콤 역의 배우도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의 주인공 마이클과 닮은 것 같기도 하군요.(닮은 사람 찾기 놀이 병이 또 도집니다.)

2517년이 배경인 〈파이어플라이〉는 우주선만 쌩쌩 날아다닐 뿐,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아니, 오히려 더 황폐합니다. 몹쓸 땅이 된 지구를 버리고 다른 태양계를 찾아가 그곳을 터전으로 삼은 인류는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지금보다도 더 척박합니다. 한 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태양계의 여러 행성과 위성에 흩어져 사는 인류는 수도 행성과 몇몇 중심 행성을 빼놓고는 빈곤과 범죄에 시달리고 있지요. 미국과 중국이 최강자로 중심에 선 연방은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갖은 모략과 잔학행위를 일삼습니다. 중심 행성들은 예의 SF들에서 나오는 것처럼 첨단과 화려함의 극치이지만, 변두리 위성들은 19세기를 다룬 서부영화의 무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여기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을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들의 여정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왜 똑같은 출연진들이 영화로 옮겨 타면 다들 그렇게 비장 모드로 변하는 걸까요? 영화 〈서레너티〉
강렬하고 숭고한 이상에 고뇌하고 몸 바치는 영웅은 고사하고 생존하는 것만이 목적인 듯한 서레너티 승무원들의 비천한 인생에서 FOX는 아무런 장삿거리를 찾지 못했나 봅니다. 비난을 보낸다고 달라질 FOX도 아닙니다. 그런 구매자의 요구를 바꿀 수 없고 저주 받은 걸작이라는 명성을 걸치고 원망만을 안은 채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자기가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좀더 교묘하고 영악스럽게 표현할 기지는 제작진의 몫으로 남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케이블에서 방송되었다면 더 오래 갔으리라는 추측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군요.

그나마 〈파이어플라이〉는 〈서피스〉나 〈커맨더 인 치프〉보다는 팬 서비스를 미흡하게라도 제공한 편입니다. 팬들의 성화와 DVD 판매 호조 때문이기는 했지만, 영화로라도 이야기가 마무리됐으니까요. 드라마에서 앞으로 다루고 마무리 지으려던 이야기가 영화에서 정리됩니다. 영화는 원작 드라마의 〈카우보이 비밥〉 톤에 〈최종병기 그녀〉와 〈28일 후〉가 버무려진 것이 볼거리가 꽤 됩니다. 그러나 허름하던 드라마 속의 세트와는 몰라보게 달라진 서레너티 호와 강력해진 액션 때문에 연속성에 약간의 혼란이 오거니와, 감독을 맡은 조스 웨든이 FOX에 굴복했다기보다는 바라는 대로 다 해주겠다고 작정하고 오기를 부린 게 아닌가 하는 데 심증이 갈 정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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