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만화의 〈전원일기〉 또는 〈제너럴 하스피틀〉 격인 『맛의 달인』은 첫 연재 후 20년을 넘긴 대표적인 장수 만화입니다. 지금까지 보아서는, 카리야 테츠는 제 책장 하나를 다 메울 때까지 평생토록 『맛의 달인』 작업에 매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단행본으로만 벌써 100권을 채워가고 있으니까요. 작가 필생의 작업이니만큼, 『맛의 달인』에서 보여주는 전문성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지요. 인물 그림은 약간 밋밋한 듯하나, 요리를 묘사한 그림은 정말 제대로 세세하게 잘 그립니다. 맛을 묘사하는 대사도 일품이고요. “자극적으로 양념 맛에 치중하지 않았으되, 입 안에 향긋하게 풍미가 퍼지며…” 하는 식이죠. 한창 읽을 때는 『맛의 달인』 식으로 음식의 맛을 묘사해 보라는 요구에 공공연하게 시달리기도 했었지요. “짭짤하니 밥 많이 먹히겠네.” “고기 국물이 참 잘 우러나왔는걸!” “식초가 상큼, 새콤한 맛을 더해 주었군.” 뭐, 이 정도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어 연습도 하고 말입니다.

드라마 〈대장금〉도 음식 맛에 대한 묘사는 참 맛깔 났지요. 그리고 〈대장금〉도 그렇지만, 『맛의 달인』이나 『미스터 초밥왕』 등 요리를 주 소재로 삼는 작품들은 대결 구도로 가는 일이 많습니다. 주인공들은 간을 맞추는 데서부터 사람들의 제각기 다른 입맛이 모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맛을 찾아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을 벌입니다. 그것이 이 드라마와 만화들의 기본적인 구도이거니와, 단순하지만 흥미를 돋우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키친 컨피덴셜’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는, 〈아이언 셰프〉와 같은 원초적인 요리 전투 쇼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레시피를 놓고 벌이는 흥미진진한 대결과 눈길을 사로잡으며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화려한 요리를 구경하리라고 내처 짐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그것도 뉴욕이라도 거대 도시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성공을 거둔 주방장 잭 보데인의 얘기는 그러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저의 기대와 예상을 배반하고 맙니다. 아니, 배반이라니… 제멋대로 기대하고 짐작한 것이 빗나갔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만요. 어쨌거나 〈섹스 앤 더 시티〉로 또 하나의 매력적인 뉴욕 스토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대런 스타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요리 이야기 그 자체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좋습니다. 제목에서부터 음식이 연상된다고 해서 요리로 자웅을 가리는 승부가 꼭 나와야 한다고 하는 것도 억지죠. 주인공의 직업이 요리사라고 해서 요리 레시피에 대한 것만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결코 없으니까요.

그러면 사랑은 어떨까요? 이 드라마를 요리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고 해도, 드라마의 주 무대는 분명히 레스토랑과 그 안의 주방입니다. 때깔 고운 각종 요리가 매 회 자태를 자랑하며 등장합니다. 사실 미국 문화권에서 제작되는 요리 영화나 드라마에는 『맛의 달인』과 같은 포맷을 쓰는 경우가 드뭅니다. 오히려 주 소재로 등장하는 요리를 드라마로 승화시키는 요소는 사랑 또는 성(性)인 경우가 많지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그랬고, 대만영화 〈음식남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리로 득도하려는 장인의 휴먼 스토리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요리라는 소재 자체는 레시피 경쟁 같은 구도를 빼고는 그 자체로 이야기를 끌어낼 만한 요소가 부족한지도 모릅니다. 수사 드라마는 사건으로 말을 하면 되고, 의학 드라마는 치료로 말을 하면 되고, 법률 드라마는 재판 장면을 통해 말하면 되지만, 요리는 그 자체로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늘 다른 소재와 주제 속에 뒤섞이는 것이겠지요.

하루도 안 빼놓고 범죄 사건에 휘말리거나 재판정에 서거나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음식은 모든 사람이 하루라도 빼먹으면 고통을 겪게 되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입니다. 지극히 일상적이기에 드라마를 입히기가 쉽지 않고, 우리의 오감 중 한 감각인 미각을 자극하는 것이기에 사랑 같은 감정적인 소재와 자주 연루가 되는 것이겠지요. 〈키친 컨피덴셜〉은 광고를 빼고는 20분 남짓밖에 되지 않는 러닝 타임에, 캐릭터들도 나름대로 개성 있으며, 에피소드마다 사건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여 보기에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즌 1 에피소드 13까지 보여준 내용에는 무언가 감상을 집중할 만한 드라마적 초점이 조금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에피소드 네 개 만에 이 드라마를 방출한 FOX TV는 이 드라마에 장편 시리즈로서의 연속성을 보장할 만한 큰 줄기가 약했다고 본 것이지요.

이 드라마에 기회가 좀 더 주어졌더라면, 길게 갈 수 있는 드라마적 초점을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은 이제 남자로 바뀌어 다시 뉴욕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앨리어스〉에서 시드니의 친구로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갔던 윌은 뉴욕의 톱 클래스에 속하는 주방장 잭 보데인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것도 그렇습니다. 그가 출중한 요리사가 아니라 그저 어느 정도 잘하는 정도의 요리사로 설정되었더라면, 요리 이야기를 보게 되리라는 시청자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조금 돌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여하튼 그는 지금의 최고급 요리사가 되기까지,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허우적거리다가 개심하고, 새로운 중독 대상으로 요리를 선택해 입신양명했습니다. 기회가 있었더라면, 그 중독 이야기를 좀 더 디테일하게 그려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잠수함 안 같은 폐쇄적인 공간인 주방에서 벌어지는 요리사들의 경쟁과 우정, 음식에 대한 사랑 이야기, 기본적으로는 낯선 사람들을 맞이해야 하는 공간인 레스토랑의 여러 스쳐 지나가는 에피소드도 재미를 더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아무런 기회를 잡지 못하고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할리우드야말로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곳입니다. 그 기회가 아무리 짧아도,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와 겹친다는 혹독한 조건 아래서 시작한 드라마라고 해도, FOX 같은 채널이 가능성이나 보고 저조한 시청률에 눈감아주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호평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코미디 부문에서 시리즈 내내 많은 상을 받은 〈못 말리는 패밀리Arrested Development〉도 장수 시리즈로 가는 시즌 3의 벽을 결국 넘지 못한 채 막을 내렸지요. FOX가 내친 〈키친 컨피덴셜〉에게 영국의 파라마운트 코미디가 회생의 기회를 주었지만, 그것도 아홉 개의 에피소드가 전부였습니다. 여기저기 표류하다가 난파를 피하지 못하고 아쉽게도 운이 다해 버린 〈키친 컨피덴셜〉입니다.

관련 상품 보기 『맛의 달인』 Kariya Tetsu 글/Hanasaki Akira 그림 | 대원 전문성과 재미를 동시에 갖춘 요리만화의 바이블! 동서신문사 창사기념 기획사업인 '완벽한 요리'의 더블팀 '지로'와 '유우코', 그리고 '최고의 메뉴'팀을 이끄는 '우미하라'. 이들이 펼치는 요리 세계의 대격전! 요리에 대한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재미와, 사이 사이 끼어드는 환경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의견 등 교육용 가치와 에피소드와 구성간의 하모니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최고 수준의 품격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