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이만 리의 미스터리 -〈서피스〉
미국 캘리포니아에 면한 북태평양에서 미 잠수정 하나가 무엇엔가 잡아먹히기라도 한 듯 산산조각이 나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사는 해양생물학자 로라 도트리는 일상적인 잠수 탐사에 나섰다가, 깊은 바다 속에서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척추동물을 목격합니다
바다에 사는 생명체 중에서 인류가 이제까지 알아낸 것은 10퍼센트 정도라고 합니다. 인간의 몸과 마찬가지로 3분의 2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지구, 바다는 아직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밝혀내지 못한 90퍼센트 중에 어떤 종이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는 것이지요. 만약 “지구가 멸망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질 때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점치는 혜성 충돌도, 혜성이 지구에 와서 부딪치는 것보다 혜성이 지구에 접근하면서 생기는 바다의 몸부림으로 육지가 물바다가 될 것이라는 이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영화 〈딥 임팩트〉나 〈투모로우〉 등이 그 같은 재난을 그렸지요.
지구 전체를 위협하는 대규모 혜성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하지만, 지난 서너 해 동안 바다의 압도적인 힘은 동남아나 미국의 뉴올리언스, 멕시코 등에 밀어닥친 쓰나미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때때로 그런 압도적인 시위를 벌이지 않더라도, 깊고 푸른 바다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경탄과 위압적인 느낌을 함께 줍니다. 미지의 바다에 대한 호기심, 공포, 상상력은 우주에 대한 것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의 소재로 심심치 않게 사용됩니다. 작년 9월에 NBC에서 시작하여 올해 초에 한 시즌을 마친 〈서피스Surface〉도 제임스 카메론의 〈어비스〉처럼 바다 속에 사는 미확인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면한 북태평양에서 미 잠수정 하나가 무엇엔가 잡아먹히기라도 한 듯 산산조각이 나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사는 해양생물학자 로라 도트리는 일상적인 잠수 탐사에 나섰다가, 깊은 바다 속에서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척추동물을 목격합니다. 뉴올리언스에 사는 보험설계사 리치 코넬리는 동생과 함께 멕시코만으로 잠수 여행을 갔다가 그 미지의 동물에게 동생이 끌려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봅니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열네 살짜리 소년은 바다에서 젤리 같은 이상한 알을 발견하고 집으로 가져와 수조에 넣습니다. 소년은 식구들 모르게 알에서 깨어난 그것과 비밀스런 동거를 시작하며 정을 쌓아 나갑니다. 그리고 밤배를 탄 어느 부자는 하늘에서 밝은 빛을 내며 바다로 쏟아져 내리는 어떤 물체들을 바라봅니다.
다시, 비밀의 열쇠를 쥔 자들과 비밀의 존재를 알게 되어 그것을 밝혀내려는 자들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시작됩니다. 역시 주도권을 쥔 쪽은 비밀의 열쇠를 가진 쪽이지요. 해안가를 중심으로 미 전역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전 세계적으로 피해 보고가 들어오는데도, 정부기관은 음모의 베일 뒤로만 숨으려고 합니다. 포유류가 분명한 그 생명체는 어부 부자가 본 대로 하늘에서 외계인이 쏟아 부은 것일까요? 그런데 드라마에는 누군가가 게놈 지도를 몇 년 전이 아닌 수십 년 전에 완성했으며, DNA 복제가 그 수십 년 전부터 가능했다는 설정이 등장합니다. 바다의 포식자가 되어, 심지어 육지까지 넘보는 그 ‘괴물’들이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지, 아니면 정말로 수십 년 전에 DNA의 비밀을 완전하게 알아낸 몇몇 과학자가 외계인과 내통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서 생긴 일인지, 이 드라마는 여전히 의문점만을 쌓아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어떤 것, 특히 새로 발견된 그 무엇이 괴물이 되느냐는, 그 대상 자체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의 마음가짐과 대처에 따르기도 한다는 ‘미지와의 조우’식 코드가 이 드라마에도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새로운 것에 직면했을 때, 공포부터 앞세우느냐, 아니면 무언가 좀더 알아보겠다는 마음이 앞서느냐에 따라 드라마가 전개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새로운 생명체에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가 되는 마일스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만이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해양생물학자 로라와 보험설계사 리치 콤비의 열망도 점점 커져만 가고요.
헌데 그간 휴대전화에 달린 GPS 장치를 통해 추적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거니와 인공위성까지 동원하는 추격 장면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로라와 리치의 도망 생활은 어딘지 좀 싱겁게 느껴집니다. 쫓기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빠져나가고, 쫓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놓쳐서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할까요. 꼭 최첨단 장비가 아니더라도 〈도망자〉처럼 박진감 넘치는 추격 영화가 눈에 선하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지나 봅니다. 뭐 그거야 이 드라마의 초점이 ‘도망자’ 코드가 아니라고 한다면야 공연히 크게 걸고넘어질 일은 아니거니와, 이 드라마는 재난 상황을 그리는 데서 충분히 긴장감이 넘칩니다. 특히 에피소드 2의 마지막 장면은 무서워서 재난영화를 잘 안 보는 저에게는 압권인 장면이었답니다.
DNA 지식을 바탕으로 한 생명공학이 재앙을 가져다줄 것이냐, 질병 없는 밝은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냐 하는 문제, 사실 그런 식으로 쪼개어 물어서는 해답이 나오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요즘 귀에 못이 박이도록 회자되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주제가 결국은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축입니다. 생명공학이 새로운 전쟁도구가 된 요즘에 음모이론의 주 무대가 군사나 안보의 세계가 아니라 제약회사로 옮겨가는 것도 대세이겠고요. 그런데 산더미 같은 의문과 절체절명의 위기로 시즌 1을 끝낸 〈서피스〉의 시즌 2는 없다는 발표가 바로 이틀 전인 5월 15일, NBC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NBC 시청자 게시판에는 시즌 2 취소 결정을 성토하는 글로 소동이 일고 있습니다. 끝내야 할 쇼는 붙잡고, 끝내지 말아야 할 쇼는 싹둑 잘라버린다며, 시청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지요.
시작하는 드라마마다 기대하던 성과를 내지 못하며 수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NBC가 시청률이 조금이라도 여의치 못한 쇼는 가차없이 취소 결정을 내려버리니, 시청자들 사이에 공분이 일 만합니다. NBC 측에서는 취소 결정을 발표하며, 영화로 만들거나 자회사 케이블 채널인 Sci-Fi에서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흘렸는데, 그것이 시청자들의 원성을 진정시키려는 물 타기 작전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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