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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For Nothing - 〈오버 데어〉

오스카 와일드는 “악은 없다, 어리석음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지요. 아일랜드 태생의 이 독설가의 명언은 오늘 말씀드리려는 〈오버 데어Over there〉라는 FX 채널의 드라마에서도 전쟁의 역설을 드러내기 위해 적재적소에서 인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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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는 “악은 없다, 어리석음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지요. 아일랜드 태생의 이 독설가의 명언은 오늘 말씀드리려는 〈오버 데어Over there〉라는 FX 채널의 드라마에서도 전쟁의 역설을 드러내기 위해 적재적소에서 인용됩니다. 〈오버 데어〉는 현재 진행형인 이라크 전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2005년 미국 방영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던 작품입니다. 어느 측에서는 그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고 하지만, ‘사실상’이라는 말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암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끝나지 않은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이 송유관 건설이라는 ‘과업’과 그것의 보호(?)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사람들이 미국은 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으며, 이라크에서 어떤 참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정작 전쟁(전투)의 ‘당사자’인 군인들, 특히 병사들은 그런 것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조차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참전이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죽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입니다. 대학 학비를 면제받기 위해, 사택에 있는 동안 집세를 아낄 수 있고, 그것은 곧 집 살 돈을 하루라도 빨리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이고, 20년을 복무하면 평생 받을 수 있는 연금을 위한 선택입니다. 그들에게 징집홍보를 위한 비디오의 애국적 선동과 반전구호는 서로 다를 것이 없는 공염불일 뿐입니다.

같은 처지에 있기는 매한가지인데, 마약상이 될 것이냐, 입대해서 참전할 것이냐, 두 가지 선택밖에 없는 스무 살짜리 사병들의 이야기가 〈오버 데어〉의 주요한 줄거리를 이룹니다. 어차피 둘 다 ‘개죽음’을 당할 확률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거니와, 기왕이면 사람들, 특히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덜 욕먹는 일을 해보고자 그들이 선택한 것이 참전입니다. 성별, 학력, 인종이 드라마틱하게 뒤섞인 〈오버 데어〉의 일곱 명 분대원들의 지상 최대의 목표는 바로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살아서 대학에 가고, 자식을 먹여 살리고,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이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오버 데어〉는 그런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그들은 군대에서 가장 하위 계급에 속하는 군인들이자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아직 ‘말뚝’을 박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내성은 민간인에 가까운 부류입니다. 그들에게 전쟁터는 돈벌이의 장이자 피신처 혹은 일탈에 불과합니다. 애국심 역시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하지요. 숭고하지도 않을뿐더러 자발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이라크 전쟁의 명분과 논리가 무엇인가’라고 굳이 묻는다면, 대답으로 내놓을 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저 말밖에 없다는 것이겠지요. “악은 없다, 어리석음만 있을 뿐.” 그리하여 한편에서 시리아의 부유한 젊은이들에게는 이 전쟁이 일종의 우드스탁 같은 것이 됩니다. 마리화나 대신 폭탄을 들고, 진창에서 며칠간 뒹굴다가 마약 과다복용이나 흥분한 인파에 깔려 죽는 대신 테러리스트로 오인 받아 죽는 미군의 총알받이가 되는 것입니다.


〈오버 데어〉가 집중하는 것은 대규모 전투나 그 전투의 박진감이 아닙니다. 전투장면이라면 CNN이나 FOX 뉴스 채널에서 질려도 좋을 만큼 실제 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계합니다. 또한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다 보면 ‘엽기’라는 태그를 달고서 이라크에서 행해진 다종다양한 전투의 참극을 노 컷으로 체험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런 것이라면 CNN과 FOX 뉴스 채널이 픽션에 픽션을 보태 연일 넘치고 차게 형상화합니다. 이라크 전쟁을 다룬 이야기에서 편집의 묘를 보고 싶다거나 정보와 선정성에 대한 욕구를 채우고 싶다면 뉴스 채널의 갖가지 버전을 보는 것이 낫지, 이 드라마는 그런 면에서는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지옥의 묵시록〉이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전쟁영화나 전쟁 드라마가 대부분 비주얼로는 대규모 전투장면을 사용하고, 간혹 개인의 관점에서 전쟁의 부조리나 형이상학을 조명하고 있다면, 〈오버 데어〉는 그러한 부조리조차 낄 틈 없이 최대한 사실만을 그리려고 합니다. 드라마는 일곱 명 분대원들의 가장 인간적인 시선을 중심으로 시야를 확대해 나갑니다. 죽으려고 뛰어든 전쟁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잘 먹고 잘 살아보려고 뛰어든 전쟁이지만, 육체의 고통과 죽음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과 대면할 때의 공포는 막연히 전쟁에 나간다고 결심했을 때 예상했던 공포와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이 드라마에서는 ‘날것’으로 드러납니다. FOX 뉴스의 픽션은 애초부터 포기한 것이지요.

군복도 유니폼인지라 러닝타임이 끝날 때까지 누가 누구인지 얼굴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단체생활의 캐릭터들 대신, 몇 안 되는 분대원 개개인의 사연에 집중하며 캐릭터의 개성을 알아가고 정을 붙여가면서, 이 드라마는 첫 번째 시즌 열세 개 에피소드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드라마의 장점과 감동을 헤아릴 새도 없이 안타까움이 먼저 밀려드는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미국 현지에서 파일럿 에피소드 방영 당시에는 역대 케이블 TV 드라마 중 10위 안에 드는 대단한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시즌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방송국 경영진이 안타까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시청률 하락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괜찮은 내용과 전개를 가지고도 어정쩡하게 하차한 작품은 〈오버 데어〉 말고도 부지기수입니다. 하지만 〈오버 데어〉는 시즌 후반부로 가면서 차근차근 캐릭터를 정립해 나가고 드라마의 전개를 탄탄하게 다져가는 과정에서 폭탄이라도 맞은 양 어쩔 수 없이 전장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더욱 커지는 작품입니다. ‘미국민들이 왜 이 드라마를 외면했을까?’ 하는 질문은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것일까요?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고요해지려고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려고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아, 정말이지 냉혹하고도 황량한 쇼 비즈니스의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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