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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비긴즈 - <스몰빌>

드라마 <스몰빌>은 <도슨의 청춘일기> <펠리시티> 등 이른바 청춘물을 많이 다루는 워너 브라더스에서 철저하게 청소년 코드로 제작하고 있는 드라마로서, 미국 현지에서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까지가 주 시청자층인 드라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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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의 할리우드는 리메이크와 속편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천재 감독 피터 잭슨이 2006년을 한 달 여 앞두고 선보인 <킹콩>을 필두로, 해양 재난 영화의 최고 고전 <포세이돈 어드벤처>, 미국 인기 TV 시리즈를 영화화한 <마이애미 바이스> 등이 리메이크로 제작되고 있고, <로스트>의 인기 연출자인 J. J. 에이브럼스가 영화에 도전하는 <미션 임파서블 3>, 돌연변이 인류의 세 번째 이야기 <엑스맨 3>, 블록버스터 해적 이야기 <캐리비안의 해적 2> 등이 전편의 성공을 등에 업고 제작되는 속편의 목록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블록버스터 기대작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슈퍼맨 리턴즈>가 되겠습니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한번 크게 속지 않았느냐, 그러니 슈퍼 영웅의 귀환에는 호들갑을 자제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슈퍼맨이 파랑과 빨강의 원색 쫄쫄이 유니폼을 입고 제대로 하늘을 난다는 상상은, 역시 미국 드라마 팬의 입장에서는 오랜 숙원 사업을 드디어 풀었구나 싶은 감동의 로망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로망의 원천이 바로 <스몰빌>입니다.

리처드 도너 감독,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1978년 <슈퍼맨>은 유성우와 함께 우주선에 실려 지구에 도착한 슈퍼맨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잠깐 나오고, 다 자라서 뉴욕으로 가 신문기자가 된 클락 켄트 이야기를 주로 그리고 있지요. 반면 드라마 <스몰빌>은 클락 켄트가 지구에 도착해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마을, 이름 그대로 아주 작은 마을인 ‘스몰빌’을 무대로 슈퍼맨의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슈퍼맨 비긴즈’라고나 할까요? 즉 영화 <슈퍼맨> 1편 이전의 이야기를 담은 프리퀼(prequel)이 TV 드라마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스몰빌><도슨의 청춘일기>, <펠리시티> 등 이른바 청춘물을 많이 다루는 워너 브라더스에서 철저하게 청소년 코드로 제작하고 있는 드라마로서, 미국 현지에서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까지가 주 시청자층인 드라마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다 큰 사람들이 보기에 어이없을 정도로 엉성한 드라마도 아니거니와, 복잡한 생각만 접어두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아니 사실은 30, 40대 장년층(?)마저 서너 편 보다 보면 슈퍼맨 클락 켄트의 앙증맞고 귀여운 방황과 갈등에 중독되어 추후에는 ‘somebody save me~’ 하는 주제곡만 나오면 어느새 발가락으로 장단을 맞추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정도로 은근히 재미있는 드라마입니다. 그러니까 “애들 보는 드라마가 난 왜 이렇게 재미있지?” 싶은 의문을 가진 다 큰 어른들도 이 드라마를 재밌어라 하면서 자신의 정신적인 성장을 의심할 필요가 하등 없답니다. 왜 <앨리 맥빌> 에서 변호사 앨리가 미성년자와 교제를 했다는 혐의로 재판정에 섰던 에피소드도 있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가장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도슨의 청춘 일기>라는데 미성년자임을 의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앨리가 30대 남자들도 <도슨의 청춘 일기>를 즐겨본다며 항변했을 만큼 워너 브라더스의 청춘물은 애매모호하면서도 매력적인 청소년 코드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자, 이렇게 슈퍼맨 클락 켄트의 청소년기를 그린 드라마를 워너 브라더스에서 제작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설왕설래를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주인공 클락 켄트로 캐스팅된 톰 웰링마저 “도대체 슈퍼맨의 십대 청소년기로 어떻게 몇 년씩 드라마를 이끌어간단 말인가”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는 풍문이 들려옵니다. 현재 미국에서 다섯 번째 시즌을 이끌어가고 있는 <스몰빌>의 장수 비결은 바로 탁월한 구성 능력에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탁월한 벤치마킹 능력이라고 할까요. <스몰빌>을 보다 보면 어째 전체적인 연출 포맷이 어디서 꼭 본 듯한 느낌이 드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스몰빌>의 전체적인 구성은 <엑스 파일>의 골격을 그대로 빌려왔습니다.

<스몰빌>은 슈퍼맨이 탄 우주선과 함께 떨어져 내린 유성우에 영향을 받아서 한 가지씩 초능력을 가진 마을 사람들(주로 슈퍼맨 클락 켄트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등장시키면서 드라마의 에피소드를 이끌어 갑니다. <엑스 파일>이 ‘UFO와 외계인’이라는 하나의 중심적인 맥락에 초현실적인 미스터리 사건 해결을 곁들인다면, <스몰빌>은 ‘본연의 슈퍼맨 스토리’에 유성우의 영향을 받은 초능력 인간들과의 싸움이 주로 그려집니다. <엑스 파일>이 무슨 일이 있어도 시즌 프리미어와 피날레만은 폭스 멀더의 외계인 코드로 일관하는 것처럼, <스몰빌> 역시 시즌 프리미어와 피날레만큼은 클락 켄트의 슈퍼맨 성장기로 못을 박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합니다. <엑스 파일>은 그래도 각 에피소드당 제작비를 적당히 분배하는 참을성도 있었던 반면, <스몰빌>은 어차피 들통 난 ‘엑스 파일 벤치마킹’ 전략인 만큼, 가운데 스무 개쯤 되는 에피소드에는 최대한 제작비를 아끼고 또 아껴서 시즌의 시작과 끝에 남은 제작비를 몽땅 다 쏟아 붓는 ‘모 아니면 도’ 전술을 쓰고 있습니다. <엑스 파일>을 보면서 저렇게 시즌을 끝내버리면 시청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던 ‘클리프 행어 엔딩’마저 <스몰빌>은 그대로 빌려 옵니다. 구조상으로는 가히 <엑스 파일>의 청소년판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연출의 정도와 장난기에 있어서는 오히려 <엑스 파일>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골격을 <엑스 파일>에서 그대로 빌려온 반면, 캐릭터는 만화와 영화 속에서 등장했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와서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의 슈퍼맨이 영웅으로서의 제 본분, 지구를 구하고 제 종족을 보존한다는 본분, 그러니까 클락 켄트가 아니라 조-엘의 아들 칼-엘의 정체성에 순순히 따른다면, 드라마 속 십대로 등장하는 클락 켄트는 애초에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클립톤 행성에서 조-엘이 보낸 파괴자 칼-엘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갈등이 많습니다. <스몰빌>의 클락 켄트는 몇 시즌 동안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또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끝은 어디인지도 아직 미처 모릅니다. 새로운 능력을 발견할 때마다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거나, 힘 조절을 하지 못하여 일어나는 해프닝은 웃음이 배어나오게 합니다. 가령 눈으로 불을 쏠 줄 아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강약 조절을 하지 못하여 흥분만 하면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다니기도 하지요. 그러한 모든 것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지구의 한 인간으로서 평범하게 어울려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과, 원치 않게 부여받은 정체성과 임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이 <스몰빌>의 클락 켄트에게서 드러납니다. 게다가 틴에이저면 재미 볼 일이 좀 많은 때가 아니겠습니까.

<스몰빌>에서는 렉스 루터마저 악당으로서의 제 정체성을 세우지(깨닫지) 못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겠다는 선한 의도로 유성우에 영향 받은 사람들을 실험하고 약을 개발하며 심지어 클락 켄트와는 우정까지 나누지만,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앞선다는 것이,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한 유혹과 타협한다는 것이 영웅으로서는 치명적인 결격 사유가 됩니다. 영화에서는 자동차를 역기 삼아 들어올리는 아기 슈퍼맨을 발견하여 키운 양부모가 무지렁이 늙은 농부 부부로 나오지만, <스몰빌>에서는 합리적으로 농장을 운영하는 젊고 현명한 부부가 클락의 부모로 등장합니다. 클락의 첫사랑 라나도 자기 스스로 어떤 거대한 비밀과 음모의 적극적인 주역으로 역할을 하며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슈퍼맨>의 주연이었던 크리스토퍼 리브와 로이스 레인 역의 마곳 키더도 우정출연하여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기도 했답니다.

<스몰빌>의 클락 켄트, 하면 또 살인순박미소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라나를 볼 때마다, 부모의 말에 동의하며 순종할 때마다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는 시청자들 웃겨보자고 그렇게 짓는 것은 아닐 텐데,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게 합니다. 시즌이 흘러가며 클락 켄트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갈수록, 그 살인순박미소를 점점 잃어간다는 것이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클락 켄트가 아니라 슈퍼맨 칼-엘로서의 정체성을 알아나가는 이야기는 <스몰빌>에서 여전히 진행중에 있습니다.

<스몰빌>을 통해서 알게 된 슈퍼맨의 성장 과정 속 클락 켄트는 그랬답니다. 순박하고 착한 미소의 시골뜨기 청소년이자 천성적으로 남을 돕기 위해 태어난 듯한 남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심성 바른 아이지요. 자, 그런 슈퍼맨 클락 켄트가 2006년 영화 <슈퍼맨 리턴즈>로 또 한번의 출격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슈퍼맨 리턴즈>를 보기 전에 영화 <슈퍼맨> 시리즈를 차곡차곡 복습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얼마 전에 1978년 영화 <슈퍼맨>을 다시 본 적이 있는데, 대사도 많지 않고 흐름도 신속하지 못한 것 같은 것이, 급기야 졸 뻔하기까지 하여 약간 난감한 느낌이 들고 말았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그것을 어찌 그렇게 재미있게 보았는지 영문을 알아차리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조금 피곤한 감이 있는 상태에서 봤기 때문에 그랬겠지’ 하고 생각은 억지 주장을 해보는 것입니다만, 가만히 들춰보자니 <스몰빌>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했던가요. 참말로 <슈퍼맨 리턴즈>를 보기 전에 뭔가 준비운동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는 분이 계신다면 영화 <슈퍼맨> 시리즈보다는 <스몰빌>을 강력하게 권해 드리는 바입니다. 시간이 없으시면 그냥 대충 각 시즌의 프리미어와 피날레만을 보는 것도 방법일 듯합니다. 현재까지 방영된 <스몰빌>의 시즌 프리미어와 피날레를 모아서 한방 시청한다면 가히 역대 최강의 슈퍼맨 시리즈 영화인 <슈퍼맨 비긴즈>가 될 성싶으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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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빌 시즌 4 박스세트』 워너브라더스 | 원제 NBA Dynasty Series : Boston Celtics Collector's Special Edition Boxset | 2005년 11월
12년 전, 캔사스의 한 마을인 스몰빌에 큰 유성이 비처럼 떨어져 많은 마을 사람들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조나단 켄트와 부인 마르타는 유성이 떨어진 옥수수밭에서 파괴된 우주선과 한 갓난아기를 발견하고, 아기를 몰래 데려와 키우기로 한다. 세월이 흐른 후, 어느덧 아기는 클락 켄트라는 소년으로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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