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아이맥스 영화 <앤트 불리> 관람기

<앤트 불리>를 보러 갔습니다. 왜 시사회를 안 갔냐고요? 글쎄요. 연락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언론 시사회를 안 했나?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여간 일반 극장에서 시사회를 했다면 안 갔을 가능성도 꽤 있어요. 전 순전히 아이맥스 입체 화면을 감상하러 갔으니까요.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앤트 불리>를 보러 갔습니다. 왜 시사회를 안 갔냐고요? 글쎄요. 연락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언론 시사회를 안 했나?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여간 일반 극장에서 시사회를 했다면 안 갔을 가능성도 꽤 있어요. 전 순전히 아이맥스 입체 화면을 감상하러 갔으니까요.

왜 아이맥스 입체는 모두 더빙일까요? 자막을 선호하는 저는 조금 아쉽습니다. 줄리아 로버츠니 니콜라스 케이지니 메릴 스트립과 같은 배우들이 목소리를 입혀줬는데 하나도 못 들었거든요. 하긴 입체 화면을 자막으로 보면 좀 어지럽긴 합니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건 아니에요. 자막 역시 입체로 만들면 됩니다. 기술이 없지도 않을 걸요. 하지만 제가 뭐라고 투덜거리건 애들 영화이니 당연히 자막 대신 더빙을 선호하겠죠. 뭐, 목소리를 듣고 싶으면 나중에 DVD를 보면 되니까...

영화가 시작되니 마법사 개미가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더군요. 그런데 잠시 지나니까 그 개미의 여자친구가 들어옵니다. 여기서 전 혼란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이 마법사 개미는 수컷이란 말이야? 그럴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들은 모두 일개미들인 걸요. 개미 세계에서 수컷은 아주 드문 부류입니다. 결정적으로 생긴 것도 다르죠. 그렇다면 이 영화는 수컷 일개미도 있고 암컷 일개미도 있는 새로운 개미를 만든 걸까요? 이들은 교미도 할까요?

하긴 트집 잡기 시작하면 다른 개미 영화들도 다 불러와야 합니다. 우디 앨런이 목소리를 빌려준 <개미>에서 앨런의 캐릭터는 분명한 수컷처럼 행동하죠. <벅스 라이프>에서도 특별히 다르지 않고. 하지만 일개미나 일벌들은 모두 생식력 없는 암컷들입니다. 무성적인 존재처럼 행동하지만 다들 여자들이란 말이에요. 학교에 가면 다 배웁니다. 그런데도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들은 모두 수컷처럼 행동한단 말이에요. 하긴 다른 동화에서도 크게 다른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희귀한 예외는 어린 일벌의 모험을 그린 발데마르 본젤스의 동화 『꿀벌 마야의 모험』 정도죠. 본젤스는 그나마 양심적인 작가였던 겁니다.

다들 왜 그러는 걸까요. 답은 쉬워요, 보편적인 존재로 여자들이 등장하는 걸 상상하지 못하니까요. 그러니 과학적인 사실을 뜯어고쳐서라도 일벌들과 일개미들을 남자들로 성전환 시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군요. 제 게시판에서 어떤 논쟁이 벌어지자 누군가가 '여자들 목소리가 너무 크다'며 저에게 쪽지를 보내고 탈퇴하더군요. 그래서 그 게시물에 들어가 제가 성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세어 봤죠. 여자는 3분의 1도 안 되더군요. 목소리 높여 반박하는 사람들도 남자들이 많았고. 그런데도 왜 그 순진무구한 양반은 여자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을까요? 간단해요. 그 양반에겐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와 여자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같은 의미였던 겁니다. 물론 남자들은 모두 자기와 생각이 같아야 했어요.

와아, 보다보니 아이맥스 입체화면의 진가가 하나씩 드러납니다. 재미있는 건 피사체가 작을수록 큰 화면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겁니다. 아이맥스의 진짜 좋은 점은 화면이 크다는 게 아니라 해상도가 높다는 것이죠. 인간들 집 안으로 들어가는 저 쬐끄만 개미들을 보세요. 일반 영화관에서 저게 제대로 보이겠습니까?

흠... 영화는 은근히 정치적인 우화처럼 보이기도 하는군요. 덩치 큰 아이들에게 놀림 받는 아이가 그 보복으로 개미들을 공격하고 개미들은 그 아이를 마법으로 작게 만들고 아이는 그 안에서 생활하며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배우고... 그러나 참 막연한 우화이고 이런 식의 우화들이 그렇듯 어디에나 끼워 맞출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종전 후 혼란스러운 삶 속에서 몸도 상하고 가족도 테러로 잃은 이라크 인이라면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와 같은 약한 개미들을 괴롭히다니!"라는 개미의 외침은 지금의 미국을 향한 것처럼 들리겠죠. 하지만 그런 의미는 전혀 없었을 걸요. 오히려 이 우화는 적당히 해석하면 극히 친미적인 메시지로 전환될 수도 있는 겁니다.

하긴 꼭 정치적인 우화로 볼 필요는 없지요. 그래도 좀 아슬아슬하긴 하네요. 지금 마법사 개미가 어린 주인공에게 '다름이야말로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라고 설교하고 있는데, 그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저에겐 인간들의 다양한 가능성을 예찬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인간들이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움직이는 전체주의 사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힘을 합치면 덩치 큰 동네 깡패도 무찌를 수 있다" 메시지도 조금 위태로워 보이네요.

자막이 올라갑니다. 쿠키는 없네요. 언제나처럼 극장에 맨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저랑 일행뿐입니다. 다들 자막을 다 볼 생각은 안 하죠. 그게 나쁘냐고요? 아뇨. 지겨운 걸 끝까지 봐야 할 필요는 없어요. 전 그냥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같은 소수를 위해 엔드 크레딧을 끝까지 틀어주는 극장 환경이 조성된 것이 고마울 뿐입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5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