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 사이도니아 - 오른쪽 상단에 얼굴 모양이, 왼쪽 중간에 피라미드 모양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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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마스 익스프레스에서 화성의 사이도니아 지역의 사진들을 찍어 보내왔습니다. 물론 화성의 얼굴도 함께요. 어땠냐고요? 화성의 얼굴은 그냥 바위 같았고 피라미드와 성벽은 그냥 언덕이나 산 같았습니다. 물론 직접 가서 보면 사정이 다를지도 모릅니다. 화성의 얼굴을 파보면 <미션 투 마스>에 나오는 얼굴 모양의 우주선이 나올지도 모르지요. 지금 고고학자들이 열심히 발굴 중인 보스니아의 피라미드도 밖에서 보면 그냥 산처럼 생기지 않았습니까?
마스 익스프레스가 화성의 얼굴이나 사이도니아를 찍은 최초의 우주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사진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사이도니아와 화성의 얼굴을 찍은 우주선들은 모두 나사에서 쏘아올린 것들이었죠. 하지만 마스 익스프레스는 유럽우주국에서 보낸 우주선입니다. 나사와 미 정부의 음모론이 먹히지 않죠.
물론 여러분이 폭스 멀더처럼 음모론에 미쳐 있다면 유럽우주국까지 포함하는 보다 거대한 음모론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리처드 호글랜드처럼 화성 문명론의 열광적인 지지자라면 더욱 그럴 거고요. 호글랜드가 이 사진을 보고 뭐라고 할까요? 전 그게 궁금해서 얼마 전에 그 사람의 웹사이트에 가 봤습니다. 별 말이 없더군요. 너무 일찍 갔었나 봅니다. 그래도 사이트를 뒤지다가 1958년의 SF 만화책에 화성의 거대한 얼굴이 언급되어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긴 했습니다. 흠...
하지만 마스 익스프레스가 무슨 사진을 찍어 보내오건 호글랜드의 생각이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직접 유인 우주선을 타고 화성으로 날아가 사이도니아 주변을 삽질하기 전까지 그 사람은 무인 우주선이 찍어 온 사진들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에 반대하겠죠. 그게 믿음이라는 겁니다. 하긴 우리가 과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증거와 가설이 절대적인 건 아니죠. 좋은 증거와 가설은 기껏해야 믿음직할 뿐입니다. 다시 말해 그 역시 믿음의 문제라는 겁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과학철학에 대한 산만한 논쟁에 빠질 수 있겠지만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죠. 제가 하려는 말은 여러분이나 마스 익스프레스가 리처드 호글랜드의 믿음을 바꾸지는 못할 거라는 겁니다. 직접 만나서 대화해도 마찬가지일 걸요. 오히려 여러분이 질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 사람은 화성에 대해 여러분보다 많이 아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전 화성의 얼굴 아이디어를 좋아했습니다. 어린이 잡지에서 바이킹이 찍어 온 첫 사진을 본 뒤로 늘 그게 사실이길 바랐죠. 전 여전히 피라미드와 운하가 있는 고전적인 SF 무대인 화성을 좋아합니다. 멋대로 설정을 바꾸어 그런 것들을 등장시키기도 하고요. 최근에도 전 화성의 피라미드가 지나가면서 슬쩍 언급되는 단편을 하나 썼어요. 물론 전 거기서 피라미드가 인공물이라고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 정도 예의는 있었지요.
그러나 제가 아무리 고전 SF의 화성을 좋아하고 여전히 바이킹이 보내온 그 멋들어진 이미지를 마음속에 품고 있어도 제가 사이도니아의 문명을 믿어야 한다는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제 눈엔 사이도니아가 멸망한 도시의 흔적처럼 보이지 않아요. 물론 로르샤흐 테스트지의 얼룩을 보는 것처럼 화성 사진을 보면서 ‘이건 이걸 닮았고 이건 이걸 닮았고...’라고 중얼거리며 놀 수는 있겠지만 그건 호글랜드 주장의 신빙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겁니다. 아무리 호글랜드가 멋들어진 주장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이론을 변호해도 화성의 얼굴 지지자들은 서서히 줄어들 거예요. 그게 세상이 흘러가는 방식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여전히 이 아저씨나 그의 옹호자가 뒷마당에서 직접 만든 우주선을 타고 화성으로 날아가 사이도니아 주변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니, 그냥 웃기는 일입니다. 하긴 꿈은 누구라도 꿀 수 있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