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추억의 못난이 인형

얼마 전 할인마트의 완구매장에서 못난이 인형들을 발견했습니다. 70년대만 해도 거의 모든 한국 가정에서 볼 수 있었던 장식용 고무 인형이지요. 당시엔 못난이 삼형제라고 불렀습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돌아온 못난이 삼형제
얼마 전 할인마트의 완구매장에서 못난이 인형들을 발견했습니다. 70년대만 해도 거의 모든 한국 가정에서 볼 수 있었던 장식용 고무 인형이지요. 당시엔 못난이 삼형제라고 불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조금만 들여다봐도 이들이 여자아이라는 건 분명한데 말이죠. 여자 아이처럼 생겼고 여자아이 옷을 입고 있어요.

하여간 이 아이들은 없는 곳이 없었어요. 제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 피아노 위에서도 이 인형들은 있었죠. 놀러갔던 친구네 집의 화장대 위에도 있었고 미장원이나 가게에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마치 지구를 정복하러 온 작은 외계인들 같았어요. 그리고 이들의 공습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지구를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남한 땅을 한 십 여 년 가까이 정복했었지요.

이들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일본에서 건너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 인형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니 못난이 인형의 유행은 전적으로 한국적인 현상입니다.

왜 인형들이 그렇게 인기였던 걸까요? 싸고 귀여웠으니까요. 못생긴 외모(사실 꽤 귀여워요!)는 친근했고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하는 표정들은 감정이입하기 쉬웠습니다. 나름대로 치유효과가 있었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당시 우리들의 미학적 빈곤에 있었을 겁니다. 한 마디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 거죠. 6,70년대 한국 영화들을 한 번 보세요. 일반 가정집을 꾸미는 장식물들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일률적입니다. 못난이 인형은 그 몇 안 되는 예들 중 하나였을 뿐이에요. 그 이외엔...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유명했던 옛 텔레비전 광고에 나왔던 눈 큰 여자 인형 기억하세요? 그런 인형들도 은근히 많았었지요. 옛날 사람들이라고 늘 똑같은 장식품만 가지고 싶었겠습니까? 그 사람들도 선택하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고 싶어도 가게엔 늘 똑같은 물건들만 진열되어 있는데 어쩌겠어요. 그렇다고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다양한 장난감들을 요구해야 할까? 그런 식으로 머리가 돌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죠. 그럴만한 여유도 없기도 했고요.

여기서 하나 쓸 만한 논리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종종 비난 받고 자조의 대상이 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떼거리 정신이 과거의 문화적 빈곤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거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시대의 습관이 그 핑계가 사라진 지금에 와서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의미 있는 분석일까요? 글쎄요. 이런다고 해서 우리의 떼거리 정신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70년대와 지금은 꽤 다른 편이죠. 지금의 우리는 못난이 인형들 말고도 선택할 수 있는 게 많고 실제로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다들 멀티플렉스의 뻔한 영화들에 대해 비난하지만 예전엔 그 정도의 선택 여지도 없었습니다. 조금만 발품을 팔거나 DVD와 같은 다른 매체를 이용하면 선택의 기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요. 몇 년만 여유 있게 기다리면 우리가 문화 상품을 소비하는 방식은 더 긍정적으로 변할 거예요.

여기서 전 다시 못난이 인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전에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따르면 이 인형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판매가 중단된 적 없이 계속 만들어졌다는군요. 하지만 할인 매장에서 제가 본 그 인형은 같은 틀을 사용하긴 했어도 사람들의 복고 취향을 노린 신상품이었습니다. 포장 상자에 쓰인 ‘추억의 못난이 인형이 돌아오다’라는 문장에만 해도 그런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지요.

전 아까 못난이 인형이 문화적 빈곤의 증거라고 주장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이제 이들은 지구를 정복한 작은 외계인들이 아니에요. 이들은 과거의 일부를 담은 독특한 인형입니다. 지금 못난이 인형을 사서 피아노와 오디오 위에 장식용으로 올려놓으면 이들은 노골적인 키치적 분위기를 발산하며 대중의 상상력 부족을 폭로했던 70년대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죠. 그래서 제가 거의 만원 가까이 하는 이 인형들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던 거지만요.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