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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코아 폐관을 바라보며...

얼마 전에 <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올 때>를 보고 왔습니다. 70년대에 만들어진 다소 뻔한 호러 영화의 다소 뻔한 리메이크인 이 작품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생각은 없어요. 중요한 건 그 영화의 기자 시사회가 있었던 장소입니다. 바로 시네코아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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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올 때>를 보고 왔습니다. 70년대에 만들어진 다소 뻔한 호러 영화의 다소 뻔한 리메이크인 이 작품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생각은 없어요. 중요한 건 그 영화의 기자 시사회가 있었던 장소입니다. 바로 시네코아였지요. 이 영화관은 6월 30일에 문을 닫으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올 때>는 시네코아라는 이름의 극장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될 것입니다.

슬프냐고요? 아뇨. 별로요. 저 역시 10년 동안 수많은 영화를 그 영화관에서 보았지만 사라지는 극장에 대한 감상은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극장이 아주 사라지는 것도 아닌 걸요. 스폰지하우스의 두 관은 여전히 남아 아트 하우스 영화를 틀 거고, 시네코아라는 극장이 차별화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레퍼토리였으니까요. 결국 달라지는 건 거의 없습니다. 시네코아에서 <엑스맨: 최후의 전쟁>을 볼 수 없어 슬퍼하는 사람들은 없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전 다른 사람들이 향수를 섞어 회상하는 코아 아트홀에 대해서도 그렇게 좋은 기억은 없습니다. 네, 많은 영화를 거기서 봤어요. 무척 나쁜 환경에서요. 화면비율은 아무도 신경 쓰지도 않았고 (1.66대 1이거나 그보다 더 좁은 화면 비율의 영화를 틀 때는 종종 사람 머리가 통째로 잘려나갔죠) 앞사람의 머리가 화면을 가리지 않는 때가 없었죠. 코아 아트홀이 문을 닫았을 때 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 영화관이 제가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단독 상영하는 일은 앞으로 없을 테니까 말이죠.

뻔한 상업영화가 지배하는 멀티플렉스 환경에 대한 불평은 지당합니다. 저 역시 하고 있고요. 그러나 지금 관객들에게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좋습니다. 전 어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시내로 나가 자크 투르뇌가 감독한 옛날 영화를 보고 왔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영화를 정식 통로를 통해 제대로 된 필름으로 접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입니다. 모든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이런 영화를 틀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수도 없지요. 제가 어제 본 영화관도 텅텅 비어 있었는걸요. 결국 그 정도면 딱 적당한 수준인 겁니다. 근처에 이런 걸 상영하는 영화관이 하나 있으면 제가 편하겠지만 그것도 욕심이죠. 이런 영화관은 시내에 있어야 합니다. 서울 반대편에 이런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딱 하나 있다면 전 그냥 폭발해버릴 걸요.

다시 말해, 이런 불평은 퇴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평이 아닙니다. 솟아오르는 우리의 기준이나 희망을 현실이 따라오지 않기 때문에 불평이 생기는 거죠. 이런 불평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텐데, 전 그게 우리가 발전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10년 뒤엔 분명 영화 보는 환경이 지금보단 나아질 거예요. 불평은 여전히 남겠지만. 그때쯤이면 화면 비율도 제대로 안 지키고 사운드도 다룰 줄 모르면서 서울 대표 극장으로 자처하는 몇몇 시내 영화관도 개선되려나요? 저는 모르죠.

그러나, 이런 건 있습니다. 요새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우리의 감상에 어떤 퀄리티를 제공해주지는 못한다는 거죠. 생각해보면, 제가 구체적인 감상 경험을 기억할 수 있는 극장은 모두 시설이 그렇게 좋지 못했던 옛날 극장입니다. 주로 불편하고 지저분하고 더러웠던 느낌이지만 그 역시 추억으로 남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그 때문에 제가 사라진 옛 동네 극장을 그리워하는 것이겠지만요. 그렇다고 그 극장이 남아 있었다면 갔을까요? 아뇨, 어림없어요. 제가 그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미션 임파서블 2>였는데, 어쩜 그렇게 사운드가 형편없었는지, 그리고 제가 몇 년 동안 어떻게 참고 견뎠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답니다.

고로 전 이것 역시 긍정적으로 생각하렵니다. 모든 불편한 것들은 추억 속에 있을 때나 아름답죠. 따라서 이런 것들이 시설 좋은 후배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사라지는 건 좋은 시설과 레퍼토리를 원하는 젊은 관객이나 달콤한 과거를 회상하고 싶어하는 나이 든 관객 모두에게 이상적인 상태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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