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식 가족주의
디즈니 영화를 비판하면서 많이들 쓰는 표현이 있죠. ‘할리우드식 가족주의’라고요. 과연 이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써 보신 적 있습니까? 물론 뜻이야 다들 알죠. 그 논리도 알고요.
디즈니 영화를 비판하면서 많이들 쓰는 표현이 있죠. ‘할리우드식 가족주의’라고요. 과연 이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써 보신 적 있습니까?
물론 뜻이야 다들 알죠. 그 논리도 알고요.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몇십 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면서 ‘퇴행적 가족주의’라고 말할 입장일까요? 우리나라가 속해 있는 아시아권에서는 디즈니 영화가 속해 있는 현대 서구문화권보다 가족의 의미가 훨씬 크고 무겁습니다. 그런 무게는 우리가 생산해내는 문화 생산품에도 굉장히 많이 반영되어 있고요.
고로 디즈니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할리우드식 가족주의’로 비난받아야 한다면 우리가 만들어내는 문화생산품 대부분이 그 도마 위에 올라야 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텔레비전 시리즈나 영화들에 비하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가족주의는 거의 진공 거품처럼 보이는 걸요.
하지만 우린 그러지 않습니다. 편리하게 이중잣대를 놀리고 있지요. 따지고 보면 훨씬 억압적인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편안하게 ‘할리우드식 가족주의’를 비난할 수 있는 건, 그것 자체가 서구적인 개념이고 우리가 그걸 그냥 수입해 서구적인 논리에 따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과 논리를 우리 작품들에 대입하면 결과가 어떨까요?
물론 우리나라 예술 작품의 가족주의에 대한 비판들은 존재합니다. 디즈니 영화와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비평가도 많아요. 그게 엄청 대단한 일은 아니에요. 논리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건 이중잣대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손쉬운 일이거든요. 그런데도 우리가 이런 이중잣대를 당연히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순수한 사고 실험의 영역에서도 쉽게 탈출할 수 없는 함정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신의 가족이 끔찍하고 지겨워도 정작 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원론으로 돌아가고 마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가족인데….” 결국 우리는 대부분 생각 자체를 포기하는 쪽을 택하고 맙니다. 하지만 디즈니 영화에 대해서는 맘대로 욕할 수 있죠. 남의 영화니까.
도대체 우리에게 가족이란 뭘까요? 결코 쉽게 답할 수 없죠. 사람들이란 다 제각각이니까. 가족 안에서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도 있고 가족의 울타리에서 달아나는 게 유일한 희망인 사람들도 있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보통일 겁니다. 아니면 보통보다 조금 밑이거나. 우린 그렇게까지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하여간 여기서 정답은, 가족이라는 무리를 그리는 데 한 가지 방법이나 교훈만이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얼마 전에 전 <가족의 탄생>을 봤습니다. 좋은 영화였고 그 영화가 만들어낸 대안 가족의 모습도 맘에 들었어요. 디즈니 가족주의보다 위였느냐고요? 흠… 글쎄요. 여러분은 <릴로와 스티치>의 가족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족의 탄생>은 그와 비슷했습니다. 사랑과 필요에 의해 뭉쳐진 단점 많은 사람들의 연맹을 예찬하고 있지요. 가족에 대한 이 영화의 리버럴한 관점이 디즈니 영화와 동격이라니 좀 민망하죠? 더 민망한 건, 이 작품의 주제가 무척 매력적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서구적으로 느껴졌다는 겁니다. 드라마의 논리와 캐릭터의 심리묘사는 완전히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서구식 리버럴한 사고의 결과처럼 보였다는 거죠. 그건 영화의 잘못은 아니었어요. 실생활에서 결코 그 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리의 문제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