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정의 얼굴
문제는 그 결과로 연속성이 깨졌다는 것입니다. 보통 성형 수술을 하는 사람들은 이전 얼굴과의 연속성을 고려합니다. 엄정화처럼 성형 수술로 얼굴이 완전히 바뀐 사람의 경우에도 몇 년간에 걸친 긴 연속성이 있습니다.
얼마 전 <도마뱀>의 시사회에 갔었습니다. 공식적인 목표는 개봉 전에 영화를 보고 거기에 대해 몇 자 끼적이는 것이었지만, 사실 진짜 관심사는 다른 데에 있었지요. 강혜정의 얼굴이 얼마나 변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씨네21>의 사진도 봤고 OCN의 클립도 봤지만 그래도 직접 보고 싶었어요.
어땠느냐고요? 정말 길 가다 봤다면 몰라볼 뻔했습니다. 가끔 그 사람이 강혜정식 장난스러운 눈웃음을 짓지 않았다면 방금 본 영화의 주연 배우와 기자 간담회에 나온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걸 확신할 수 없었을 거예요. 주변에서는 “와, 실물을 보니까 정말 예쁘다”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제가 아는 강혜정이라는 배우가 그만 사라져 버린 거예요.
그 뒤로 별별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전 그 이야기에 대해 뭐랄 생각은 없어요. 강혜정의 선택에 대해서도 뭐랄 생각이 없고요. 당사자의 육체를 가장 잘 아는 건 당사자죠. 치열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고 하니 그러려니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실생활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수도 있죠. 어느 쪽이건 우리가 뭐랄 수는 없습니다. 강혜정의 육체는 강혜정의 소유물이고 우린 멀리서 간접적으로 혜택을 받는 타인에 불과하니까요.
그래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수많은 배우가 성형을 하는데, 강혜정에 대해서만 왜 다들 유난을 떠느냐고요? 강혜정이 한 건 사실 성형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다들 쉬쉬하며 하는 성형수술과는 달리, 치열교정은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거죠. 문제는 그 결과로 연속성이 깨졌다는 것입니다. 보통 성형 수술을 하는 사람들은 이전 얼굴과의 연속성을 고려합니다. 엄정화처럼 성형 수술로 얼굴이 완전히 바뀐 사람의 경우에도 몇 년간에 걸친 긴 연속성이 있습니다. 데뷔 초와 지금의 얼굴은 거의 다르지만, 완만한 흐름이라는 게 존재하고 또 그렇게 바뀌어 가는 과정에 일관성도 있지요. 대중이 스타의 변신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기간이 존재하는 겁니다. 하긴 사람의 얼굴이란 조금씩 변하는 것이니 그런 변화가 이상할 건 없죠. 자연적이건 인공적이건.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다들 너무 인공적이라고 하지만, 전 지금의 엄정화 얼굴이 꽤 엄정화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강혜정은 어느 순간 그냥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연예인과 대중 사이에서 진행되는 게임의 규칙을 위반한 것이죠. 최근에 공공연하게 코를 완전히 뜯어고친 양미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미라의 경우는 처음부터 의도적이었지만 강혜정의 경우는 어땠는지 모르겠군요. 사실 지금의 얼굴이 최종본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전 얼굴이 완전히 안정되고 살이 붙을 때까지 1년 정도 기다려 줄 수 있어요. 여전히 부분적으로나마 제게 익숙한 얼굴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고서요.
이런, 참견 안 한다면서 참견하는 소리만 늘어 놨습니다. 그건 제가 지금까지 객관적인 척하며 늘어놓은 이야기들이 그렇게 먹히지 않기 때문이지요. 물론 강혜정의 얼굴은 강혜정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스타의 이미지는 공공재예요. 스타들은 초상권과 자기 육체를 관리할 수는 있지만 자기가 이미 세상에 펼쳐놓은 이미지까지 어쩌지는 못합니다. 그건 이미 대중에 의해 소유되고 있죠. 많은 강혜정 팬들이 소중한 무언가를 약탈당한 것 같은 기분일 텐데, 거기에 대해서까지 참견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도마뱀>은 어땠느냐고요? 그냥 그랬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고 그 영화에 나오는 강혜정은 제가 아는 강혜정이었습니다. 곧 개봉될 태국 영화 <보이지 않는 물결>은 우리가 옛 강혜정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영화가 될 것 같군요. 벌써 저와 저의 게시판 사람들은 그 옛 강혜정에게 ‘강혜정 1’이라는 별명까지 달아주고 작별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도마뱀>과 <보이지 않는 물결>을 그 사람의 유작이라고 부르면서요. 이 농담은 잔인하고 지나치게 매정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원래 스타를 소유하는 방식은 그렇게 얄팍한 거예요. 우리가 품고 있는 건 자연인 강혜정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재료로 만든 조작된 이미지에 불과하니까요.
푸념한다고 어쩔 수 있나요. 전 여전히 ‘강혜정 2’가 ‘강혜정 1’과 비슷한 사람이길 바라고 그 사이에서 연속성을 읽을 수 있길 바랍니다. 최종 결과가 지금처럼 확고하다면… 어쩔 수 없죠. 2번의 얼굴과 존재감에 익숙해지고 ‘강혜정 1’을 보내줄 수밖에. 잘 가요, 강혜정 1. 그동안 정말로 고마웠어요. 모든 좋은 것엔 끝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몇 년은 더 우리 곁에 머무를 줄 알았는데.